전쟁을 짊어진 사람들
3화

체르니히우의 테탸나 ; 레이브 톨로카

테탸나 부리아노바(Tetiana Burianova, 26세)는 ‘리페어투게더(Repair Together)’라는 단체에 소속된 자원봉사자다. 리페어투게더는 IT 기업에 근무하는 친구들과 파티 플래너였던 친구들 일곱 명이 만든 자원봉사 단체다. 이들은 체르니히우(Chernihiv)를 중심으로 폐허가 된 지역의 부서진 잔해를 수습하고 망가진 건물을 수리한다. 모두 레이브(Rave) 같은 파티 문화를 사랑하는 만큼, 봉사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자 마치 파티에 초대하듯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한다. 봉사 활동 현장에 모인 이들은 디제이가 트는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며 잔해를 청소하고 지역 사회에 음식을 나눈다. 테탸나와는 2022년 8월 5일에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이들이 하는 행사의 총칭을 ‘톨로카(Толока)’라고 하는데, 이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서 농촌 내 상호 지원 형태로서 이뤄지는 노동을 말한다. 품앗이와 같은 의미다. 구소련 지역에서 김장 등을 할 때도 이 용어를 썼다고 한다. 주로 추수, 삼림 벌채, 마을 내 공사 등 노동 인력이 많이 필요한 긴급 상황일 때 진행되는 행사를 톨로카라고 불렀으며 그 외에도 교회, 학교, 도로 공사 및 건설 작업, 쓰레기 수거 등의 노동이 그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잔해로 뒤덮인 마을


본인과 함께 리페어투게더의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테탸나 부리아노바다. 친구들과 함께 ‘리페어투게더’라는 자원봉사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리페어투게더는 전쟁으로 망가진 건물이나 황폐해진 지역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해당 지역 주민들이 다시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복구하는 작업을 한다.

리페어투게더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리페어투게더는 친한 친구 일곱 명이 만든 단체다. 원래 각자 키이우나 체르니히우 등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시작된 이후 우리들은 함께 모여 자원봉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도움을 누구에게 줄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처음 체르니히우가 점령군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우리는 바로 그곳에 가서 마을에 나와 계신 분들과 얘기를 나눴는데 그 과정에서 리페어투게더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당시 체르니히우의 상태는 어땠나?

일단 전반적으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주택가가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창문이 다 터지고 지붕은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집 벽면은 부서졌거나 회반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당은 불에 탄 흔적이 역력했다. 점령 기간 동안 약 4000채 이상의 집이 파괴된 것으로 안다. 모든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 부서진 상태였다. 당시엔 날씨도 아직 추워서 주민들이 그곳에서 지내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잔해를 치우고 건물을 보수하는게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Toloka VII ⓒPasha Youz
Toloka VII ⓒPasha Youz
처음 봉사를 시작한 곳은 어디인가?

4월 말에 처음으로 체르니히우의 야히드네(Yahidne)라는 마을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5월 초를 시작으로 도움을 주게 되었다. 어찌 됐든 그곳에서 거주하셔야 하는 주민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다시 그분들이 거주할 수 있는 집을 만들어 드려야 했다. 처음엔 일단 쓰레기를 치우고 무너져 내린 부분을 정리했다. 모아진 성금으로는 창문을 새로 달아 드리고 지붕을 고쳐 드리며 내부 공사를 해드렸다.

전쟁 전 다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나? 건설 관련된 일을 해본 사람이 있나?

핵심 멤버 일곱 명 중 건설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예를 들어 우리 대표나 다른 남자 멤버들은 IT 계열에서 근무하거나 포토그래퍼, 그래픽 디자이너 등의 직업을 갖고 있다. 나를 포함한 여자 친구들 셋은 이벤트 플래너다. 같이 이벤트 매니지먼트에서 일했다.

전쟁 전의 직업이 봉사활동에 오히려 도움이 됐을 수 있겠다.

그렇다. 이벤트 플래너였던 나와 내 친구들은 우크라이나 국내 여행과 옥외 파티, 야외 이벤트 등을 개최해 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직업에서 기인한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국내 곳곳에 많이 다녀 봤고 인맥도 넓고 어떤 행사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어떻게 차량을 구해 이동하고 캠핑을 진행하는지, 숙박 시설을 어떻게 마련하고 야외에서 어떻게 음식을 만들고 대접하는지 말이다.

그래도 건물 수리와 관련된 전문 인력이 필요했을 터다.

물론 건설 쪽 전문가도 필요하다. 단순히 청소를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집을 짓거나 보수하는 등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 가운데서도 건설 전문가분은 따로 사례비를 드리며 모셔 와 도움을 받았다.

 

우리의 삶은 파티였다


이벤트 플래너였던 만큼 그 정반대인 지금의 전쟁 상황이 참 힘든 시간이겠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우리의 삶은 테크노, 음악 페스티벌, 레이브 등의 이벤트로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삶은 오로지 자원봉사로 가득하다. 우리 팀 모두 전쟁 전의 일상이 너무나 그립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다. 별 고민 없이 즐거워할 수 있던 그때의 분위기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Rave Toloka ⓒPasha Youz
Rave Toloka ⓒPasha Youz
‘레이브 클린업(Rave Cleanup)’이 정말 인상 깊었다. 어떻게 자원봉사에 음악을 곁들일 생각을 했나?

지금 키이우는 그나마 안정적인 상태가 됐고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을 되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통행 금지가 있고 심리적인 안정을 찾기는 어려운 상태다. 자유롭게 일상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유익하게 봉사를 하면서 우리 자신들도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을지,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우리의 삶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며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 자신부터 필요했다. 그러다 테크노 음악을 떠올렸고 자원봉사 현장을 마치 파티처럼 만들어 보고자 했다.

현장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정말 궁금하다.

테크노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청소를 하는데 마치 예전 삶으로 돌아간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은 매우 지쳐 있고 몸과 마음도 몹시 힘들다. 우리가 방문하는 현장 역시 참혹하다. 하지만 함께 와준 자원봉사자 모두 즐겁고 희망차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지금의 봉사도 예전 우리의 직업과 다를 게 없었다. 이 많은 분들에게 진정한 도움과 희망을 주는 일을 우리부터도 즐기면서 이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우리의 삶이 테크노 음악으로 가득했다면 지금은 자원봉사로 가득하다고 하지 않았나. 이 두 가지가 결코 상반되거나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확인한 것이다.

소셜 미디어를 보니 행사를 늘 재밌게 조직하더라. 일반적인 파티 홍보 게시물처럼 보였다.

우리는 모든 행사나 이벤트를 치를 때 모두가 흥미롭고 즐거울 수 있게 많은 노력을 한다. 단순히 유익한 활동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각자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게시물을 보고 현장에 온 자원봉사자들은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나며 새로운 친구와 지인을 사귀게 된다.
리페어투게더의 인스타그램 ⓒRepair Together
Rave Toloka ⓒPasha Youz
행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지역에서 레이브 클린업을 열면 며칠간 그 지역에서 머물게 되는데, 그곳에서 반드시 마을 근처의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 이를테면 호수 같은 곳을 찾아 캠핑을 준비한다. 자원봉사자들이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숯불에 구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함께 캠핑하면서 밤새 대화를 나눈다. 캠프파이어 주변에 앉아 함께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면 힘든 것도 금세 잊게 된다. 레이브 기간 중 보통 둘째 날 공연을 한다. 우리 지인 중에는 많은 수의 우크라이나 뮤지션이 있고 이들을 초청해 공연을 진행했다. 고맙게도 다들 무료로 공연을 진행해 주신다.

많은 인원을 통솔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우리가 행사를 열 때마다 인원이 정말 많이 오는데 그래서 꼭 조를 나눠 팀별로 움직인다. 다들 한마음 한뜻이라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가 가끔 전문 DJ를 초청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각 팀별로 꼭 스피커를 하나씩 구비하도록 해 어디서든 음악이 울려 퍼지게 한다. 유익한 일을 하며 몸도 마음도 즐거울 수 있도록.
Rave Toloka ⓒPasha Youz

 

지역을 바꾸는 봉사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대체로 우리가 도움을 주는 지역은 러시아군으로 인해 점령되었던 곳이라 주민분들이 모두 마음고생을 정말 많이 하신 분들이다. 이 행사는 자원봉사자들뿐 아니라 마을 주민을 위한 행사이기도 하기에 이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게 다방면의 노력을 한다. 무엇보다 심리적인 안정을 찾고 이제 안전하다고 느끼실 수 있도록 우리 자원봉사 커뮤니티가 행사 내내 함께해 드리고 있고, 경제적 도움도 드리고 있다. 이를테면 지역에서 만드는 식료품이나 유제품 또는 지역 기념품들을 우리 자원봉사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하고 다른 지역으로도 판매할 수 있게 도움을 드리고 있다.

크레모아나 지뢰 등의 재래식 무기가 남아 있진 않았나? 잔해 속에 위험 요소가 많았을 텐데.

사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곳곳에 무기나 군사 흔적, 지뢰 등이 발견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야히드네 마을 회관을 청소하려고 했을 때 한참 동안 허가를 받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곳이 러시아군의 군사 무기 창고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일반 자원봉사자나 주민들이 들어가기에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 시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 했다. 몇 차례나 요청한 끝에 거듭 안전 확인을 거쳐 겨우 허가가 났다. ‘긴급 상황에 대한 우크라이나 국가 서비스(DSNS)’[1]라는 기관이 있는데, 여기에 지뢰 제거를 전문으로 하는 군인들도 있다. 이분들이 몇 차례나 확인했는데도 무기나 파편들, 또는 제거되지 않은 지뢰가 발견됐다. 물론 그렇게 발견된 지뢰들은 더 이상 위험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 어쨌든 자원봉사 현장에 와주시는 분들이 위험하지 않도록 항상 미리 주의시키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 드리고 있다. 현장에서 다양한 전문가분들의 도움도 받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전후 재건이 필요할 것이다. 각자 본업으로 돌아가게 될 텐데 또 어떤 방법으로 힘을 보태고 싶은지 궁금하다.

이미 우리는 복원과 재건 사업을 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여러 건의 주택 공사를 계획 중이며 전쟁 종식과 관계없이 모두 진행할 것이다. 친구들 모두 우리가 사람들에게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이것이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고, 정말 많은 분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으며 이미 좋은 커뮤니티가 결성됐다. 우리가 연 프로젝트에 여러 차례 참석해 주신 분들도 많다. 무엇보다 우리 행사에 처음 오신 분은 있어도 한 번 오시고 마는 분들은 없다. 일차적으로는 이렇게 주택 공사와 재건에 힘쓸 예정이고 그다음엔 사회적 인프라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이를 위해 꾸준히 성금을 모금하고 있다.

지금까지 행사를 진행한 지역, 앞으로 진행할 지역은 어디인가?

지금까지 청소 행사를 진행한 것은 세 곳이다. 루카시브카, 야히드네, 이바노프카(Ivanovka). 다음 청소 행사는 슬로보다(Sloboda)에서 진행한다. 이와 별개로 루카시브카에서 주택 공사를 열두 건 진행하려고 하는데 그중 네 개의 프로젝트는 이미 구성이 마무리됐고 전문가들을 초청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2주 후부터 새로운 공사에 들어간다.
Toloka VII ⓒPasha Youz
한국 독자들, 그리고 리페어투게더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나?

일단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준 한국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매번 이벤트를 진행할 때마다 북미 지역이나 유럽에서 오시는 외국인분들이 많은데 혹시라도 키이우에 오실 한국 분들이 있다면 우리는 정말 기쁘게 맞이할 것이고 너무 반가울 것 같다. 전쟁이 끝나고라도 언제든 키이우에 오면 우리와 즐겁고 유익한 일을 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우리 소셜 미디어에 들어가 보면 인스타그램에 후원금을 주실 수 있는 경로가 적혀있다. 소셜 미디어에 우리 계정의 사진이나 후원 정보를 리포스팅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1]
우크라이나의 국가 비상 서비스로 민방위, 구조, 보험 기금 서류의 생성 및 관리, 방사능 폐기물 관리, 긴급 상황 시 인구 및 영토 보호, 긴급 예방 및 대응 등이 주요 활동이다. 우리나라 행정안전부의 일부 기능과 유사하다. 해당 기관의 전신은 체르노빌 사태의 수습 및 관리 목적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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