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돈으로 번역한다면

8월 16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소더비가 한국 시장에 다시 진출한다. 그림을 사지 않는 우리에게 이는 어떤 의미인가.

  • 세계 양대 경매회사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한국을 주목한다. 그림을 사고팔 일이 없을지라도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시그널이다.
  • 우리는 예술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취향을 손쉽게 가질 수 있는 시대이며, 더 많은 사람이 구매라는 행위까지 이를 연결하고 있다.
  • 떠들썩한 레거시 미디어의 아트테크 기사와는 달리 마켓은 침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예술을 더욱 가까이할 권리를 얻었다.

DEFINITION_ 낙찰의 순간

1990년, 크리스티(Christie’s)의 뉴욕 경매장에서 반 고흐의 〈닥터 가셰〉가 8390만 파운드에 낙찰되었다. 주인공은 반 고흐가 아니라 한 일본인 사업가였다. 천문학적인 낙찰 금액에 전 세계가 놀랐다. 이것이 신호였다. 80년대 기형적인 호황을 누렸던 아트 마켓의 거품이 급격히 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졌기 때문이었다. 인상주의 작품들을 맹목적으로 사들이던 일본 바이어들이 사라졌다. 뒤이어 국제 주식시장도 주저앉았다. 또 다른 큰손 미국과 호주의 바이어들마저 힘을 잃었다. 결국, 같은 해 11월 크리스티 경매 판매금액은 3분의 1로 줄어든다. 그리고 하락세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2008년 9월로 시간을 뛰어넘어 보자. 데미안 허스트는 200여 점의 작품을 딜러 없이 직접 소더비(Sotheby’s) 경매에 내놓았다. 작품들은 총 1억 1100만 파운드에 낙찰되었다. 경매가 열리던 날,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고, 21세기판 호황의 정점을 찍은 아트 마켓은 다시 경기 침체의 영향권 안으로 빠져들었다. 예술은 무한하지만 가치는 변덕스럽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속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경매장이다. 그런데 이는 더 이상 유럽이나 미국만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 미술 경매 시장을 거의 양분하고 있는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바로 지금, 한국 시장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BACKGROUND_ 서울 상륙 작전

문제의 1990년 4월, 소더비는 외국계 경매회사로는 한국 최초 상륙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시장의 침체와 국내 미술 시장의 폐쇄적인 구조를 뛰어넘지 못하고 10여 년 만에 철수했다. 그런데 소더비가 올 하반기, 한국에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사무소를 다시 연다는 것이다. 관련 인력 내정까지 마쳤다는 소식이다. 크리스티도 한국에 공을 들이는 티가 역력하다. 크리스티코리아는 다음 달 초 프란시스 베이컨과 아드리안 게니의 작품 16점을 선보이는 기획전을 열 예정이다. 이에 맞춰 크리스티 주요 경영진도 서울을 방문한다. 전 세계 아트 마켓을 쥐고 흔드는 두 경매회사는 지금,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 물론 두 회사 모두 서울에 경매장을 열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더 많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크리스티 홍콩 경매장이나 소더비 싱가포르 경매장에서 전 세계의 콜렉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CONFLICT_ 예술의 소유권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소더비나 크리스티에 내놓을 작품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면 멀고 먼 이야기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경매장에서 100억 원, 1000억 원을 지불하고 그림을 사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은 예술이 우리 모두의 삶을 어떻게 채색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오래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불행히도, 예술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으며 지금도 대개 그러하다. 이유는 다양하다. 현대 예술이 대중과 유리되어가는 과정, 뉴욕 《아트포럼》 매거진으로 대표되는 미술 비평의 현학성과 폐쇄성 등 미술계의 어느 곳으로 눈을 돌리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예술이 가치가 되는 과정에도 예술이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숨어있다.
KEYPLAYER_ 화랑과 경매회사

예술 작품이 시장에서 가치를 부여받는 데에는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작가와 계약을 맺은 갤러리가 막 완성된 작품들로 개인전을 열어 작가의 경력을 만들고, 콜렉터들과 작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시장이다. 이것이 1차 시장이다. 갤러리 딜러들이 주인공이다. 소수에 의해 움직이며 지금이 아닌 미래의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반면, 2차 시장의 딜러들은 작가보다는 경매회사들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는다. 주식시장에 비유하자면 주식을 상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국 미술계의 경우, 2000년대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화랑과 그 네트워크에 크게 의존해 왔다. 어차피 극소수의 사람들만 접근 가능한 세계였던 탓이다. 작품에 관한 지식과 평가를 폐쇄적으로 관리하며 정보의 권력관계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에서 미술이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되었던 이유 중 하나다. 시장에서 어떤 작품이 얼마에 거래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리그에 속하지 못한 사람 입장에서는 관심을 둘 이유도 없다. 이에 반해 미술품 경매는 공개된다. 원한다면 누구든 볼 수 있다. 미학이 금액으로 환산되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참석자들의 이브닝드레스와 천문학적인 거래금액을 통해 가장 고상한 자본주의 거래의 현장으로 포장된다. 그 투명성 때문에, 쇼 비즈니스적 성격 때문에 미술품 경매는 예술이 모두의 것이 되는 과정의 출발점이 된다.
RECIPE_ 예술을 번역하면

사실, 우리는 미술관에서 종종 당황하고 만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나게 되는 고흐르누아르 앞에서는 아름다움이 주는 쾌락을 향유하면서도, 퐁피두 센터에서 만나는 이브 클랭의 〈모노크롬〉 앞에서는 무엇을 느껴야 할지 혼란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물론, 그 경험은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인생의 일부가 될 것이다. 미술관을 빠져나온 후 누군가의 해석이나 비평 따위를 기준 삼아 스스로의 감상을 직조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새파랗기만 한 캔버스 앞에서 우리가 경탄할 만한가는 또 다른 판단의 영역이다. 경매장은 그 해답을 내놓는다. 우리가 데미안 허스트라는 스타 작가의 이름을 듣고 낯설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백화점 옥상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제프 쿤스의 작품을 만나는 순간, 그리고 유니클로 매장에서 앤디 워홀의 작품이 전사된 티셔츠를 고르는 그 순간에는 소더비가 있고 크리스티가 있다. 예술을 금액으로 번역해 낸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예술 작품의 권위를 간편하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REFERENCE_ 김환기

뒤집어 말하자면,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한국을 주목하면서 한국 작가들의 이름이 전 세계에 더 알려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2억 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우주〉는 김환기라는 작가는 물론, 한국 작가 전반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끌어올렸다. 한국 사람이 판매한 그림을 한국 사람이 샀을 뿐이지만, 크리스티라는 무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 거래는 전 세계의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계기가 되었다. 김환기라는 작가를 인식하게 되는 계기 말이다.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번 일이 한국의 화가에 눈길을 주게 되는 순간이 되었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어느 주말 가방을 둘러메고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환기 미술관을 찾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계기가 깜짝 놀랄 만한 낙찰 가격이라고 한들, 더 많은 이의 삶이 다채로워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지도 모른다.
STRATEGY_ 2022 쁘띠 부르주아

그러나 여기에 모두가 만족하는 것 같지는 않다. 시장이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사실, 90년대의 암흑기를 견딘 이후, 아트 마켓은 다시금 호황을 맞았다. 저금리와 유동성의 시대 덕분이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 등 굵직한 경기 침체를 겪으며 휘청였지만, 시장은 곧 회복을 거듭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쁘띠 부르주아 계급이 크리스티를 키웠던 역사처럼, 우리 중 누군가도 미술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흔히 이들을 ‘신흥 자산가’나 ‘전문직 고소득층’이라고 묘사하곤 한다. 이들의 열기가 드러난 것이 바로 아트페어다. 소더비나 크리스티와 같은 세계 유수의 경매장과는 달리, 아트 페어에서는 잠재력을 가진 신진 작가의 작품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참가자 중 누구라도 원한다면 바로 작품을 구매할 수 있고, 가격도 1000만 원 미만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작년에 이어 엄청난 흥행이 예상되는 우리나라 최대의 아트 페어 Kiaf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세계적 아트 페어인 영국 ‘프리즈’와 공동 개최에 나선다.
FORESIGHT_ S의 공포

그러나 이 열기가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아트 마켓이 다시 침체의 사이클로 향하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최근 발간한 ‘상반기 미술시장 분석보고서’에서 하락장을 예측했다. ‘물방울 화가’로 불리는 김창열 작가의 작품가를 근거로 들었다. 지난해 작가가 타계한 후 작품 가격이 크게 올랐다. 추가적인 작품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작가의 사망 이후 작품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후 김창열 작품의 국내 경매 낙찰 총액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2분기 기준으로 60억 원을 넘겼던 낙찰 총액은 올해 2분기에 10억 원대로 떨어졌다. 이러한 전망은 해외에서도 나오고 있다. 영국 ‘아트택틱’은 최근 글로벌 컬렉터들의 40퍼센트가 “앞으로 신진 작가의 작품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경기가 침체할 수록 희소성이 높고 가치가 충분히 증명된 안전자산에 돈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쉽게 말해,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신예 조각가는 지금보다 외면받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더 각광받는다는 얘기다.
INSIGHT_ Nouvelle Vague

예술은 다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부자들의 세계로 회귀하게 될까? 《현대미술의 상실》의 저자 톰 울프(Tom Wolfe)는 현대 미술계를 가리켜 ‘계층구(Statusphere)’라고 설명한 바 있다. 명성, 신용, 예술성, 제도권의 인정, 부와 교양 수준 등의 요소들에 좌우되는 계층구조가 위태롭게 쌓여있는 구체 말이다. 그러나 톰 울프가 책을 집필했던 1970년대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거의 모든 의미에서 정보 접근성이 급증한 것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화이트 큐브’로 상징되는 미술관에 방문하고, 고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내가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언제든 원한다면 손안에 미술관을 불러올 수 있다. 인터넷이 난공불락의 하얀색 정육면체에 이미 균열을 내고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각자의 취향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이들의 미술관 방문은 분명 1970년대와는, 2000년대와는 다르다. 취향은 수요를 만든다. 수요는 공급을 만든다.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새로운 기회를 위해 서울을 향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미술도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다. 더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아트 마켓의 요즘 사정이 궁금하시다면 〈미술품 사면 기분이 좋거든요〉를 추천 드립니다. 작년 Kiaf의 열기를 엿보고 싶으시다면 〈아트 오브 머니〉도 분명 흥미로우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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