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바깥에는 볕이 들까요?

8월 17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반지하는 이름과 모습을 바꿨을 뿐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없앤다고 사라진 적이 없다는 말이다.

  • 홍수로 인해 낮은 곳이 잠겼다. 정치권은 반지하라는 공간에 주목한다.
  • 반지하는 주택의 최저 임금이다. 모두가 단점을 알지만 그곳을 택할 수밖에 없다.
  • 누군가에게 집은 낮거나 높았다. 중요한 건 집이 잠기거나 떨어졌을 때 그들을 받칠 안전망이다.

NUMBER_ 20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번 침수를 기점으로 서울시 반지하의 종말을 꺼냈다. 2024년까지 노후 공공 임대 주택과 재건축 가구를 합해 23만 가구 이상을 공급해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취지다. 2020년 기준 전국 반지하 거주 가구는 약 33만 가구 중 서울이 20만 가구로 가장 많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즉각적인 반지하 소멸과는 거리를 뒀다. 국토부가 16일 발표한 주거 안정 실현 방안은 재해 취약 주택에 대한 심층 분석과 임대 확대, 개보수 및 이주 지원을 시행하겠다고 답했다.
MONEY_ 38만 7000원

서울시 반지하의 평균 월세는 38만 7000원이다. 지하 임차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187만 7000원이다. 월세가 오르면 한 끼를 해결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모두가 반지하의 단점을 안다. 침수에 취약하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여름철에는 습기와 싸워야 하고, 매일 밤마다 취객 소음과 싸워야 한다. 범죄 위험이 높으니 튼튼한 방범창을 설치해야 하지만,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방범창은 순식간에 감옥 창살로 변한다.
EFFECT_ 눈에 보이는 반지하

그렇다면 반지하를 없애자는 서울시의 정책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반지하의 종말이 주거 질의 하한선을 올리는 것이라 볼 수 있을까? 이번 중부 지방을 덮친 폭우로 인해 반지하는 눈에 보이게 잠겼다. 그러나 38만 원의 월세를 감당하기 힘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이 있다. 일부는 비닐하우스에, PC방에, 텐트에, 고시원에 산다. 자그만치 37만 가구다. 반지하에 대한 단기적 접근만으론 부족하다. 취약한 주거 형태를 겨냥한 폭넓은 복지적 접근이 필요하다. 재난은 때로는 침수로, 때로는 화재로, 때로는 고독사로 모습을 바꾼다.
CONFLICT_ 최저주거기준
  • 최저주거기준; 주거기본법상에는 최저주거기준이 설정돼 있으나 강행 규정이 아니다. 기준 자체도 모호하다. 무엇이 “적절한 방음·환기·채광 설비”인지, 어느 정도가 “내열·내화·방열 및 방습에 양호”한지가 불명확하다는 뜻이다. 법령상 주거를 목적으로 하는 주택에만 적용되는 법이기 때문에 반지하나 옥상과 같은 곳은 규율에 포함되지 않는다.
  • 건축법 11조 ; 이번 침수는 선례를 찾기 어렵지 않다. 2001년과 2010년 폭우가 쏟아져 수 만 가구의 반지하가 물에 잠겼을 때 건축법 11조에는 근거 규정이 마련됐다.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지역의 일부 공간에 주거용 공간을 불허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그러나 이 조항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서울시에는 약 4만 가구의 반지하 주택이 신규로 공급됐다.

ANALYSIS_ 상시적 재난

최저주거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집은 그 자체로 재난이다. 거주자들은 심리적 불안감, 다양한 질환을 감수해야 한다. 이번 침수 사태는 일종의 상시적인 재난을 가시화한 것에 가까웠다. 일제강점기, 경성부 바깥에는 빈민층의 집단 거주지가 생겼고, 해방 이후 서울 인구가 급증하자 1967년에는 이들을 이주시키기 위한 시민 아파트가 건설됐다. 시민 아파트로 지어진 와우 아파트는 1970년 4월 붕괴됐다. 단기적인 계획은 역사의 반복에 하나의 사례를 늘릴 뿐이다. 지금 필요한 건 반복된 사례가 아닌 반복할 만한 본보기다.
RECIPE_ 세심한 대책

반지하에 사는 이들이 왜 반지하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공간에서만 가능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직시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청년 세대는 반지하에서 얻을 수 있는 수도권만의 인프라를, 중장년 세대는 반지하에서 얻을 수 있는 면적과 자녀의 미래를 택했다. 노년층에게 쪽방은 재난에 취약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족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국가는 이들의 선택을 보존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그러나 이들이 잠기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없애고 옮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청년층에게는 반지하 바깥의 인프라가, 다인 가구에게는 교육 인프라와 거주 가능한 면적이, 복지 사각 지대의 노년층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커뮤니티와 보다 나은 주거 환경이 필요하다. 
INSIGHT_ 기생충과 소공녀 사이

기생충〉의 지하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전쟁을 피할 방공호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시적인 재난의 공간, 또 누군가에게는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위스키 한 잔과 담배 한 갑을 위해 한강변에 텐트를 치고 산다. 누구에게나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다양하다. 분명 지하는 사람이 살기에 좋지 않은 공간이다. 아주 작은 쪽방이나, 시간 연장을 반복해야 하는 PC방이나, 이동을 전제하는 모텔방도 마찬가지다. 살기에 좋지 않다고 선택지를 없애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이 그 공간을 선택한 이유와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지하층과 텐트는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1920년대 독일에는 산업화 이후의 비적정 거처들이 크게 늘었다. 독일은 한 세기 동안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놨다. 그럼에도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혁신적이고 완벽하고 간편하고 빠른 해결 방법은 없다. 결국은 긴 싸움이다.
FORESIGHT_ 다른 방안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한편, 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 역시 중요하다. 2012년, 서울시는 이미 수해를 막고자 침수 취약 가구 돌봄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번 폭우로 인해 참사를 당한 이들은 모두 서비스 대상이 아니었다. 인력 부족과 현실과 동떨어진 신청 과정으로 인해 안전망은 성겼다. 벨기에는 주거 품질 감독관 제도를 통해 주거 환경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한다. 미국 뉴욕주는 허리케인이 닥친 지하층을 합법화하고 안전망 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비적정 주거 환경에서 거주하는 이들에게 닥치는 감정적 고난을 최소화하기 위한 상담, 또 냉난방과 청결 문제 등을 간편히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제2의 공간을 마련하는 방법도 떠올릴 수 있다. 반지하를 없애거나 배수관을 튼튼히 하는 방법 외에도 눈을 돌려볼 곳은 있다. 누군가에게 재난은 더 잔인했고, 잔인하고, 잔인할 것이다. 낮고 취약한 곳에는 빠르고 튼튼한 손길이 필요하다.


서울시의 고시원 관련 건축 조례 개정이 궁금하시다면 〈1인 주거의 미래〉를, 기후 위기와 불평등, 사회 보장 제도의 위기와 타개책이 고민되신다면 《기본소득 101》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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