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감축은 거들 뿐

8월 18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바이든 대통령이 4300억 달러 규모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했다. 내용을 보면 미국 최대 기후법에 서명한 것과 다름없다.

  •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는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에 서명했다.
  •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이름이 무색하다. 이건 미국 최대 기후법이다.
  • 겉과 속이 다른 이 법을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MONEY_ 4300억 달러

지난 16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무려 휴가 중에 백악관을 찾았다.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nflation Reduction Act, IRA)에 서명하기 위함이었다. 바이든은 이 법을 두고 “내일을 위한 법”이라 했다. 그 의미에 맞게 돈을 아끼지 않았다. 기후 변화 대응과 의료보장 확충 등을 골자로 한 법에 투입되는 예산은 4300억 달러다. 한화 558조 원에 달한다. 미국 정부는 그 중 3600억 달러를 기후 변화 대응에, 나머지 640억 달러를 의료 분야에 지출한다. 천문학적 숫자에 놀란 마음을 달래고 나면 의문이 남는다. 기후 변화 대응에 집중된 이 법의 이름은 어떻게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됐을까?
BACKGROUND_ BBB

말하자면,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BBB의 축소판이다.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BBB)’은 취임 후 바이든 대통령이 중점적으로 추진한 법안이다. 복지 확대와 기후 변화 대책 등을 골자로 한 3조 5000억 달러 짜리 법안이었다. 막대한 예산은 인플레이션 우려로 이어졌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의 반대에 부딪혔다. 3개월의 난항 끝에 2조 달러 규모로 축소돼 하원을 통과했지만, 끝내 조 맨친 민주당 의원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BBB 법안을 줄이고 줄여 얻은 타협점이 지금의 IRA다.
DEFINITION_ IRA

IRA가 BBB의 축소판이라는 것은 내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세 가지 분야로 나눠 접근하고 있다. 세부적인 내용만 수정됐을 뿐, 기후 변화 대책·복지 확대·증세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 기후 ;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퍼센트를 감축하기 위해 신에너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풍력, 태양광, 전기차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기간을 10년 연장하고, 적용세율을 30퍼센트로 올린다.
  • 의료 ; 공공 건강보험인 메디케어에서 노인의 본인 부담금을 연간 2000달러로 제한한다. 1300만 명이 건강보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조금 지급기간을 3년 연장한다.
  • 세금 ; 연간 수익 10억 달러가 넘는 기업에 최소 15퍼센트 법인세를 부과한다.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

RECIPE_ 새로운 이름 짓기
  • 민주당은 대놓고 BBB의 연장선인 법안을 의회에 보낼 수 없었다. 바이든 정부의 중간 평가 격인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IRA는 정치적 명운을 가를 법안이기도 했다. 민주당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인플레이션’이란 단어에 정면 돌파했다.

  •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민주당은 대규모 지출은 오히려 물가 상승을 완화한다는 주장을 이어왔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였다. 민주당은 ‘인플레이션의 41퍼센트는 화석 연료에서 기인한다’는  연구에 주목했다. “화석 연료 소비를 줄이는 기후 변화 대응책이 곧 인플레이션 감축”이라는 논리를 완성했다. 그렇게 BBB 축소판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란 이름을 얻었다.


REFERENCE_ 기후 법안에서 사라진 '기후'
  • ‘기후’가 ‘인플레이션’으로 대체됐다. 이는 기후 법안에서 ‘기후(Climate)’라는 단어가 없어지는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 2003년 기후 관리법(Climate Stewardship Act)은 2년 후 기후 관리 및 혁신법(Climate Stewardship and Innovation Act)이 되었다. 그리고 2009년엔 ‘기후’라는 단어가 아예 지워졌다. 미국 청정 에너지 및 안보법(American Clean Energy and Security Act)이 되었다.
  • ‘기후’라는 단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 대다수는 “기후위기를 걱정하기보다 친환경(Clean) 에너지를 지지한다”고 설명했다. 동어반복으로 보이지만, 각 단어의 뉘앙스에 집중하면 달리 읽힌다. 미국 국민들은 걱정이 내포된 ‘기후’라는 단어보다, 가능성이 담긴 ‘친환경’이란 말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 민주당은 BBB 축소판에 인플레이션 감축이란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했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천재적인 수사학”이라 표현했다.

RISK_ 중국

IRA에서 친환경은 빠질 수 없는 단어가 됐다. 자국 중심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을 만들겠다는 미국의 계획은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배터리 주원료의 상당 부분을 미국 내에서 해결하거나 FTA 체결국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조항이 문제였다. 중국은 배터리 주원료 세계 최대 생산국이지만,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상태다. 중국은 이 조항을 두고 신에너지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악의적인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CONFLICT_ 겉과 속이 다른 법
  • 중국 말고도 IRA가 넘어야 할 것은 많다. IRA는 한 표 차이로 통과됐다. 50대 50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이 갈라진 상황, 상원의 캐스팅보터가 된 해리스 부통령이 찬성에 표를 던지며 장장 13시간의 표결이 끝났다. 겨우 통과는 했지만, 겉과 속이 다른 이 법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 일각에선 미국 온실가스의 11퍼센트를 배출하는 축산업·농업 분야 관련 내용이 전무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애초에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법의 이름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기 때문이다.

  • 일각에선 이 법이 인플레이션 감축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증세 중심의 내용이 물가 상승과 미국 경제에 대한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일견 타당하다. 이 법의 본질은 ‘기후 대응’이기 때문이다.


INSIGHT_ 승자의 저주

겉과 속이 다른 법은 바이든에게 양날의 검이다. 일부 언론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통과를 바이든의 정치적 승리라 표현한다. 하지만 속단할 수 없다. IRA의 진정한 의미는 11월 중간 선거가 지나야 드러난다. 이 법이 중간 선거 승리라는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바이든은 막대한 예산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FORESIGHT_ 우리나라는?
  • 인플레이션 법안 서명 소식에 국내 주가가 오르내리고 있다. 전기차는 울고 2차 전지는 웃고 있다. 미국에서 판매 중인 현대 아이오닉5, 기아 EV6 등의 국산 전기차는 전량 국내에서 생산된다. 때문에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면 미국 신에너지 시장에서 중국의 입지가 줄어들면서, 국내 2차 전지 시장은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 바이든에게 있어 IRA의 진정한 의미는 11월이 지나야 드러난다. 그러나 IRA가 우리나라에 던지는 메시지는 확실하다. 이미 3600억 달러라는 막대한 돈이 친환경 시장에 풀렸다는 것이다. 전기차, 2차 전지만이 친환경이 아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 더 넓게 더 멀리 봐야 한다.


자국 중심의 신에너지 공급망을 만들려는 미국에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가 궁금하다면, 《미중 갈등의 구조》를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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