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갓생살기

8월 19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갓생은 트렌드가 아니다. 청년 세대가 보내는 위기의 시그널이다.

  •  ‘헬시 플레저’라는 키워드가 새로운 마케팅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 그러나 이 흐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헬시 플레저는 갓생이며, 갓생은 심각한 위험 신호다.
  • 청년들이 보내는 이 신호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위기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BACKGROUND_ 헬시 플레저

기업들이 ‘헬시 플레저’라는 키워드에 집착하고 있다. 건강(Health)에 기쁨(Pleasure)을 더해 만들어낸 단어로, 최근 ‘세계관’과 함께 마케팅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기업들은 ‘마음 건강’에 주목한다. 단연 눈길이 가는 브랜드는 시몬스다. 반복적인 영상을 보며 지친 심신을 달래는 SNS의 트렌드, ‘멍 때리기’를 전면에 내세운 ‘Oddly Satisfying Video’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시몬스 유튜브 공식 채널

‘여유’나  ‘힐링’같은 단어가 떠오르는 영상이다. 고급 침대 브랜드인 만큼 휴식이라는 제품 속성에 딱 맞는 기획 같기도 하다. 그러나 헬시 플레저 열풍을 속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위기의 시그널이 보인다.
MONEY_ 돈 되는 트렌드

과연 이 헬시 플레저라는 트렌드에는 실체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 소비를 보면 그 실체가 드러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대비 2021년 우리나라 단백질 식품 시장 규모는 4배 이상 증가했다. 3364억 원 규모다. 마켓컬리가 내놓은 숫자도 비슷한 경향을 짚는다.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홈트(홈 트레이닝) 용품의 제품 수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30만 유료 가입자를 확보한 ‘마보’, 구글 플레이스토어 ‘올해를 빛낸 숨은 보석 앱’ 최우수상을 받은 ‘코끼리’ 등 우리나라 스타트업들이 개발한 유료 마음 챙김 애플리케이션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건강을 위한 소비가 늘어났다는 것은 헬시 플레저가 그저 공허한 마케팅용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라는 증거다.
ANALYSIS_ 자기 개발

그렇다면 이 흐름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헬시 플레저는 ‘갓생(God生)’이라는 키워드와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정확히는 하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에 따르면, 자기 개발이라고 생각하는 활동을 묻는 질문에 MZ세대 72.2퍼센트가 신체 건강 관리를, 59.3퍼센트가 정신 건강 관리를 꼽았다. 헬시 플레저라는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갓생을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다.
DEFINITION_ 갓생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갓생을 FOMO (Fear of missing out) 현상의 일종으로 해석한다. 즉, 남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갓생에 열광하는 시대를 낳았다는 것이다. 갓생은 치열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법이다. 생존자와 낙오자를 가르는 선이 있으며, 반드시 생존자 그룹에 속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갓생을 추종하는 원동력이 된다. 청년세대가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하다고 느낄수록 갓생은 ism이 되어갈 뿐이다.
EFFECT_ 번아웃

더욱 큰 문제는 갓생이 번아웃과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성장과 고용불안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의 성공담은 현실 불가능한 전설이 되었고, 그나마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능력치를 최대로 끌어올려 스스로의 시장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 내야 한다. 결국 없는 시간을 쪼개 새벽에 일어나서라도 자기 개발을 한다. 내 삶을 내가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는 좌절감은 오늘 새벽의 루틴을 마치고 체크리스트를 클리어하면서 해소한다. 분명, 사회 구조의 문제인데 해결의 역할이 개인에게 주어진 결과다. 번아웃에 빠진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를 조망한 《요즘 애들》의 저자 앤 헬렌 피터슨은 번아웃을 가리켜 “단순한 일시적 병증이 아닌, 우리 시대의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 이유가 보인다.
REFERENCE_ Calm

헬시플레저와 갓생, 갓생과 번아웃의 상관관계를 읽고 나면 왜 시몬스의 ‘Oddly Satisfying Video’ 캠페인에 우리가 열광하는지 명확해진다. 지속되고 있는 멍 때리기 트렌드에 대해서는 외신의 관심도 이어졌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지난 2021년 11월, 〈‘Hitting mung’: In stressed-out South Korea, people are paying to stare at clouds and trees〉라는 기사를 통해 불멍, 구름멍, 물멍 등 다양한 멍 때리기의 방법을 소개했다. 명상, 치유 등과 같은 단어가 ‘Hitting mung’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되었다. 사실, 멍 때리기에 몰입하는 이유는 명상앱을 찾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견디기 힘든 상황, 사람, 감정과 거리를 둘 수 있는 피난처에 대한 욕구다. 그런데 최근 흥미로운 발표가 있었다. 세계 1위 명상 앱인 ‘Calm’의 이용 시간이 급격히 줄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Calm은 전체 직원의 약 20퍼센트를 해고하기로 결정했다.
RISK_ 우리의 우울

Calm이 마주한 급작스러운 내리막길은 일상 회복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팬데믹 상황이 종료되면서 스트레스 지수도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 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2분기 기준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우울 위험군 증가세는 점차 안정화되는 추세다. 하지만 아직도 2019년의 3.2퍼센트에 비하면 5배가 넘는 16.9퍼센트에 달한다. 자살생각률은 지난 분기 대비 오히려 반등했다. 여덟 명 중 한 명이 자살을 생각했다. 연령별로 보면 역시 30대가 18.8퍼센트로 가장 높았으며 20대, 40대, 50대, 60대 순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연령에게 가혹한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끝났지만, 우리의 우울은 끝나지 않았다.
INSIGHT_ 오은영 현상

최근 한 조사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가 전문가 대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인으로 선정되었다. 2022년의 대한민국이 오 박사에게 열광하는 까닭은 여러 가지로 짚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갓생을 신봉하며 살아남아야 하는 번아웃 세대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위로가 필요하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문제는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다’, ‘지금의 문제는 지난 세대에게 책임이 있다’, 그리고 ‘괜찮다’라는 위로 말이다.
FORESIGHT_ 사회의 짐은 누가 지는가

그러나 이런 위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헬시 플레저라는, 일견 유쾌해 보이는 트렌드의 이면에 내포된 위기의 시그널을 언제까지고 유명인의 위로와 갓생 챌린지로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는 없다. 결국 실패해도 ‘정말’ 괜찮은, 사회적 안전망이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유엔의 ‘2022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행복 지수에서 한국은 146개국 중 59위에 그쳤다. 1위는 핀란드였다. 두터운 복지로 단단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낸 국가다. 지금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우울감 등 쉽게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에서 24시간 상담 받으실 수 있습니다.


 
MZ 세대가 처한 현실을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본 〈빚쟁이가 되어버린 MZ를 아시오?〉를 추천합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