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 예술과 정치적 올바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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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켈레파 사네
에디터 민혜린
발행일 2022.08.24
리딩타임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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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3,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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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깊이 읽어야 하는 이유
특유한 역사를 가진 힙합은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받기도, 쿨하고 무모할 것을 요구받기도 한다. 우리에게 힙합은 ‘힙찔이’, 갱스터 음악을 넘어 그 무엇이 될 수 있을까? 혹은, 되어야 할까?

힙합은 1970년대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동한 이래 줄곧 논쟁적이었다. 힙합이 인권 운동에 앞장서며 사회적 메시지의 선봉장이 될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저 자유롭고 신랄한 악동 혹은 독설가가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힙합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힙찔이’라고 조롱당하거나, 과격하고 혐오 섞인 가사와 문화로 비난받기 일쑤다. 한국 힙합은 미국의 그것과 분명 다른 형태로 발전해 대중문화로 자리잡았으나, 힙합의 탄생 배경과 특유한 역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 없이 반문화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저자는 기존과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힙합을 바라본다. 힙합은 물론 정치적 색깔을 띠고 사회 운동의 일환이 될 수 있지만, 반드시 교훈적인 계몽의 메시지를 주어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장르로서의 힙합뿐 아니라, 아티스트 개인을 표현하는 예술적 수단으로서의 힙합에 주목한다.

그럼에도 분명 지켜져야 할 선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정치적 올바름을 제공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은 성립하는가? 한국 사회에선 PC주의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어느 새부터 안 멋져’진 힙합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The Guardian × BOOK JOURNALISM
북저널리즘이 영국 《가디언》과 파트너십을 맺고 〈The Long Read〉를 소개합니다.〈The Long Read〉는 기사 한 편이 단편소설 분량입니다. 깊이 있는 정보 습득이 가능합니다. 내러티브가 풍성해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부터 패션과 테크까지 세계적인 필진들의 고유한 관점과 통찰을 전달합니다.

원문: 완결
저자 소개
저자 켈레파 사네(Kelefa Sanneh)는《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에 대중음악 관련 글들을 써왔으며, 현재는 《뉴요커(The New Yorker)》 소속의 기자이자 음악평론가이다. 저서로는 《메이저 레이블, 일곱 가지 장르로 살펴보는 대중음악의 역사(Major labels: A history of popular music in seven genres)》(2021)가 있다.

역자 전리오는 서울대학교에서 원자핵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총연극회 활동을 하며 글쓰기를 시작해 장편 소설과 단행본을 출간했다. 음악, 환경, 국제 이슈에 많은 관심이 있으며 현재 소설을 쓰면서 번역을 한다.
키노트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1. 길티 플레저
2. 신뢰할 수 없는 우군
3. 갱!
4. 진정한 힙합은 무엇일까


에디터의 밑줄

“힙합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주로 미국 전역의 가난한 흑인 거주 지역들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러한 연관성 때문에 힙합이라는 음악은 여러 요구를 받곤 한다. 많은 음악 팬들은 힙합이라는 장르가 정치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거나 명백한 혁명성을 띠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래퍼들이 주로 전달하는 메시지가 그러한 생각과 불일치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 때면 실망감을 표출했다.”

“음악을 분석하는 입장에선 이러한 주장이 그리 타당하지만은 않다. 이런 의식을 갖는다고 해서 힙합의 사운드가 더욱 흥미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힙합이 언제나 진실을 말해왔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랩이라는 것이 무언가에 대한 고발이라기보다는 그저 헛소리에 불과한 경우도 많았다. 오히려 힙합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는 그들이 수십 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유별난 즐거움을 고집해 왔기 때문이었다.”

“힙합은 탄생한 이래 나쁘다는 걸 알아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일종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로 여겨져 왔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사회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사회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음악들은 적어도 처음에는 반사회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힙합은 기본적으로 흑인들의 음악이기 때문에, 특히 수많은 흑인들은 힙합을 그냥 싫어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갖고 있다. 그들은 힙합을 제대로 들어 봐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걸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 그렇지 않으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화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로즈는 스스로를 “친-흑인, 혼혈, 전(前) 노동 계층, 뉴욕 거주 페미니스트, 좌파 문화비평가”라고 밝힌다. 그는 자기와 같은 정치적 성향, 문화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힙합이 신뢰할 수 없는 우군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로즈는 “사회적 의식을 가진” 힙합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 주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음악들이 많은 래퍼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힙합계를 나누어 놓았기 때문이다. 로즈는 “어떤 래퍼가 ‘사회적 의식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상업적으로는 거의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다”고 말한다. 그런 표식이 붙으면 사람들은 그 노래의 가사에 선명한 메시지가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아마도 유머 감각이라고는 전혀 없을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의식 있는’ 힙합이라는 관념에 있어서 낙담스러운 부분은, ‘의식 있는’이라는 표현이 문화 및 이념의 영향력 내에서도 지극히 협소한 범위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흑인들의 고통과 힘을 기록한, 의심할 여지 없이 위대한 70년대의 소울 음악에 한정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가끔씩 내가 좋아하는 래퍼들이 ‘무의식적인’ 힙합을 만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책임감 있기보다는 무모한, 논리적이기보다는 꿈꾸는 듯한, 분명하기보다는 은근한 음악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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