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품격

8월 25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74년간 청와대는 정치적 장소였다. 청와대는 정치를 떠나 무사히 국민 품에 안길 수 있을까?

  • 청와대에서 찍은 보그 코리아의 한복 화보가 청와대 품격 논란을 불러왔다.
  • 청와대를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지만, 청와대에 남은 정치의 흔적은 여전히 짙다.
  • 개방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 청와대는 시민의 것이었던 적 없다. 청와대를 되찾기 위해선 시민의 품격이 필요하다.

ANALYSIS_ 활용과 훼손 사이, 개방과 폐쇄 사이

보그 코리아 홈페이지에 올라온 한복 화보가 하루 만에 삭제됐다. 청와대를 배경으로 한 화보 속, 과감한 의상과 포즈가 청와대의 역사적 의미를 훼손한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청와대 관리 주체인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은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청와대를 활용한 것이라 밝혔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윤석열 정부의 청와대 폐쇄는 실패한 결정”이라 주장하며 추진단의 설명을 반박했다. 지금 청와대는 활용과 훼손 사이, 개방과 폐쇄 사이에 있다. 정치적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이 논란은 아직 청와대가 정치를 떠나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DEFINITION_ 청와대

오랜 세월 청와대는 정치권력과 함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청와대 개방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지난 74년간 청와대엔 권력의 심장부인 통치자가 머물렀다. 모두의 인식 속에서 청와대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우리나라 최고권력의 상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청와대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줌으로써 권력의 상징성을 지우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청와대 개방은 곧 윤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를 의미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함께 청와대의 문이 열렸다. 결과적으로 청와대 74년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였다.
KEYPLAYER_ 문화재청

거의 100년에 달하는 역사가 짧은 시간에 정리됐다. 청와대 관리 주체는 대통령실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재청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청와대는 정치가 아닌 문화의 영역으로 옮겨 갔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처럼 원형을 보존하며 청와대를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겠단 계획을 밝혔다. 정치가 빠져나간 자리를 문화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REFERENCE_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 궁전 또한 권력의 상징이었다. 루이 13~16세, 나폴레옹까지 사용한 베르사유 궁전은 특히 루이 14세의 통치 스타일과 맞닿아 있다. 루이 14세는 거대하고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표현하며, 절대 군주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권력을 내몰아 낸 건 프랑스 혁명이었다. 청와대가 베르사유 궁전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여기 있다. 최고권력이 돌려준 것과 시민이 주체적으로 얻은 건 다르다. 문화로만 채우기엔 권력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가 너무 크단 뜻이다.
CONFLICT_ 역사성vs현대성

일단 정부는 청와대 관리를 문체부에게 넘겨줬다. 청와대 활용 계획은 문체부가 주도하되, 대통령실 관리비서실도 협의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청와대 관리·활용 자문단을 꾸리며, 민간 전문가에게도 귀를 열어 뒀다. 청와대 활용에 관한 민간의 의견은 보존 가치를 역사성, 현대성 중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갈린다.
  • 역사문화공간 ; 문화재·역사 학계는 청와대의 역사성에 초점을 맞춘다. 천 년의 역사를 가진 궁궐터로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권역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으니, 학자들에게 먼저 개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 문화예술공간 ; 미술계와 관광업계는 현대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술계는 ‘청와대 미술관’을 주장하고 있다. 1850~1960년대 근대기 국내 미술품을 집중적으로 전시하는 국립기관이 없으니, 청와대를 예술 클러스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광계는 문화 랜드마크로서 청와대의 경제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RISK_ 청와대의 몸살

빠른 시일 내에 정치에서 문화적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하는 청와대는 몸살을 앓고 있다. 개방 이후로 지속적으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 상업화 ; TV, OTT 등 미디어로 청와대가 공개되면서 상업화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가수 비는 지난 6월 넷플릭스 음악 예능 촬영 차 청와대에서 깜짝 공연을 했다. iHQ OTT 플랫폼 바바요 영상에선 청와대 앞뜰에 놓인 까사미아 소파 아래 ‘대한민국 최초 청와대를 방문한 소파’라는 자막이 달렸다. 상업적 이용이 대한민국 정치사를 담고 있는 청와대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 오버 투어리즘 ; 청와대는 개방 44일 만에 누적 관람인원 100만 명을 넘었다. 개방 이후, 관람객이 문화재 시설을 훼손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관람객 불법주차로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것도 오버 투어리즘의 단면이다. 오버 투어리즘이 문화유산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문제 제기다.

ANALYSIS_ 문화유산의 딜레마

문화유산으로서 청와대는 누려야 하는 동시에 지켜야 하는 것이다. 현재 청와대를 관리하고 있는 문화재청의 근간은 문화재관리국이다. 1961년 문화재관리국 창립 목표는 ‘문화유산의 창조적 계승·발전’이었다. 문화유산은 원형이 보존되면서도 현 시대의 흔적이 덧입혀져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문화유산적 가치란 과거에만 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INSIGHT_ 정치의 품격
  • 여전한 정치의 그림자는 청와대의 문화적 재창조성을 가로 막고 있다. 지금도 정치권에선 청와대 개방과 집무실 이전을 동의어로 읽고 있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시작을 앞두고 “시작이 잘못됐기 때문에 청와대 이전 문제로 내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 용산 집무실에서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대통령 세종집무실 설치를 국정과제로 확정했다. 세종집무실은 2027년 설치를 목표로 추진된다. 새로운 집무실이 자리를 잡는 동안, 청와대는 언제든 정쟁화될 수 있다는 소리다. 문화유산으로서 청와대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선 정치의 품격이 필요하다.

FORESIGHT_ 시민의 품격

청와대 이전 공약은 대선의 단골소재였다. 김영삼·김대중·이명박 대통령은 정부서울청사로 집무실을 옮기려다 실패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기는 방안을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담았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중단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 했지만 실현하지 못했다. 청와대 개방이 이뤄진 지금도, 청와대 집무실 부활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청와대는 이제야 시민들의 품에 돌아오려 하고 있다. 누리는 만큼 아껴야 한다. 청와대의 새로운 역사는 시민들이 써야 한다. 권력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건 시민의 품격이다.


오버 투어리즘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으시다면, 《코로나는 기회다》의 2화 '여행의 종말' 부분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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