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의 맛

8월 29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치킨의 가격에 한국인은 흔들린다. 하지만 정말, 우리의 취향은 치킨일까?

  • 우리는 치킨을 사랑한다. 치킨은 음식이 아니라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 사랑의 승리자는 소비자가 아니다. 하림이다.
  • 우리의 취향이 정말 치킨인지, 질문해야 할 때다.

BACKGROUND_ 사랑의 이유

치킨은 식사인가? 아니다. 치킨은 이벤트다. 치킨을 먹기 위해서는 ‘이유’가 필요하다. 40년쯤 전에는 가장의 월급날이 이유가 되었고, 20년 전에는 월드컵이라는 달뜬 축제가 있었다. 2022년에도 우리는 치킨을 반가운 사람과의 약속이나 주말 저녁의 혼술과 같은 이벤트에 곁들인다. 특별한 날, 별생각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소박한 사치. 치킨에 추억을 쌓고 의미를 쌓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치킨이 너무 비싸지는 삶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대한민국 치킨展》의 저자 정은정 농촌사회학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치킨은 즐거워야 먹는 음식”이다. 그렇다. 치킨은 즐거워야 한다.
KEYPLAYER 1_ 김 과장님

그러나 치킨에는 즐거움만 배어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치킨 프랜차이즈는 일하는 사람들이 결국 자영업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연약한 고용구조를 바탕으로 성공한 산업이다.
 

“김과장님! 아직도 넥타이에 연연해 하십니까?” 98년 외환위기 직후 BBQ 치킨의 가맹점 모집 광고 카피다. 21세기라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유일한 선택지가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프랜차이즈는 통제가 이윤이 되는 시장이다. 이벤트를 포함한 마케팅은 물론, 영업시간과 휴무일, 사용하는 재료부터 양념 파우더까지 모든 것을 본사가 쥐고 있다. 김 사장님은 사라는 대로 사서 교육받은 대로 튀긴 후 팔라는 대로 판다. 그 결과 프랜차이즈 본사가 혁신적인 영업 이익률을 가져간다. 지난해만 따져봐도 bhc의 영업이익률은 32.2퍼센트대, BBQ의 경우 16.8퍼센트였다. 지난해 애플의 영업이익률이 28.5퍼센트,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집계한 요식업계의 최근 2년간 평균 영업이익률은 8.5퍼센트 수준이다.
KEYPLAYER 2_ 이제훈 대표

6900원짜리 ‘당당치킨’을 홈플러스가 출시했을 때, 그래서 가맹점 사장님들은 그 가격을 납득할 수 없었다. 본사로부터 공급받는 염지닭의 가격만 해도 이미 6000원 선인데 어떻게 6900원짜리 치킨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가능했다. 재료의 수급부터 구조가 다른데다 이미 고용된 노동자들이 화장실도 가지 못하며 신메뉴 조리를 담당하니 인건비 부담도 없다. 일각에서는 당당치킨을 업계 2위 홈플러스의 단기적인 마케팅 전략일 뿐이라고 분석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홈플러스의 이제훈 대표는 KFC와 피자헛 코리아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가장 잘 아는 무기로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이미 홈플러스는 이마트가 선점하고 있던 저가 피자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F&B에서 전략을 찾고 있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당당치킨의 상표권 등록까지 마쳤다. 장기전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다.
KEYPLAYER 3_ 한국육계협회

한국인의 소울 푸드인 치킨은, 이렇게 누군가의 생존이면서 산업이고, 전략이다. 이 모든 것은 안정적인 생닭의 공급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냥 안정적인 것이 아니다. 공산품의 수준으로 가격과 물량이 모두 안정적이어야 말이 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 많은 닭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정말 공장에서 온다. 정확히는 공장식 도계장이다. 이러한 시설을 소유하고 있는 하림, 마니커 등 대형 업체들이 모인 조직이 바로 한국육계협회다. 육계협회는 2005년 1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냉장 상태로 판매되는 육계의 판매 가격과 생산량, 출고량 등을 공동으로 결정한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모두 1758억 23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이와 관련해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REFERENCE _ 하림의 방식

왜 육계협회가 이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닌 빅브라더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강력한 수직 계열화로 닭고기 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하림을 뜯어보면 알 수 있다. 사료부터 육가공까지, 산업의 모든 과정을 소유하고 있는 명실상부 업계 1위 업체다. 다만, 양계 농장은 소유하지 않는다. 지배한다. 한 해 3억 마리 이상의 닭을 생산하지만, 이 중 98%는 1000여 곳이 넘는 계약농가에서 공급받는다. ‘상대평가’를 통해 사료를 되도록 덜 먹이고, 덜 죽이고 닭을 키워낸 농가에 인센티브를 주고 나머지 농가는 패널티를 받는다. 농가 간에 경쟁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는 본사가 가져간다. 이미 수억 원을 들여 생산 설비를 갖춘 농가들은 어떻게든 계속해서 거래를 이어 나가야 한다. 이런 제도나 행태에 반발하는 계약농가에는 병아리를 넣어주지 않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병아리를 공급한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일부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과 닮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사의 요구사항에 반발하는 가맹점주에 닭을 끊어버리는 수법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DEFINITION _ 현대적 닭고기

현재가 아닌 역사 속에서도 하림은 승자였다. 특히, ‘타이밍’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1990년, 하림은 전북 익산에 하루 30만 마리의 닭을 도계할 수 있는 도계장을 짓기 시작한다. 곧 허가받은 도축장에서만 도축을 허가하는 축산물 위생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시장이나 식당에서 닭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다.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터졌다. 하림은 정부로부터 200억 원을 지원받았다. 하림이 망하면 하림에게 닭을 납품하고 있는 계약농가들이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2004년에는 ‘닭고기 포장 유통 의무화’가 시작된다. 90년대부터 포장 유통을 했던 하림에게는 기회였지만 준비되지 않은 영세 업체들은 당시 도산에 이른다. 산업의 수직 계열화는 정부가 바라는 바였다. 1980년대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수입 개방에 맞서 축산의 현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원은 양계 농민을 향하지 않고 기업만을 향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을 것이다.
RISK _ 단순한 방법

하림과 함께 성장하여 산업을 틀어쥔 육계협회가 가격을 통제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을 때는 공급을 줄여버리는 것이다. 생닭을 거둬들여 냉동해 버리는 것은 기본이고, 병아리를 살처분하기도 한다. 공장에서 생산량을 줄이려면 라인 하나를 멈춰 세우면 된다. 그러나 닭은 살아있는 생명이다. 공급을 줄이려면 죽여야 한다. 그 가치 그대로 먹거리가 될 수 없게 숨겨야 한다.
INSIGHT _ 치킨의 맛

우리가 먹는 치킨은 보통 10호 닭이다. 당당치킨 등 마트 치킨의 경우 8호에서 9호 사이다. 10호는 35일 동안 키운 닭이다. 닭은 보통 닭장에서는 7년에서 13년 정도를 산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기 수명의 120분의 1만큼 산 닭을 먹는 것이다. 닭은 나이가 들수록 살이 탄탄해지고 고기 맛이 진해진다. 거꾸로 말하면 어린 닭일수록 육질과 맛이 연하다. 이 연한 닭에 여러 가지 맛을 들여 치킨을 튀긴다. 양계 농가의 고단함, 마트 노동자의 과로, 가맹점 사장님의 한숨 같은 것들이다. 우리 사회의 뒤틀린 구조가 진하게 응축된 양념 맛이, 맥주를 부른다.
FORESIGHT _ 정당한 가격

생명을 생명답게 기르고, 그 과정이 정당하게 보상받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말 치킨을 3만 원, 아니 5만 원 주고 사 먹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살 만한 공간에서 자라난 닭을 먹는 대가라면, 농부와 동네 치킨집 사장님이 일한 만큼 돈을 버는 대가라면, 결국 우리는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저서 《미식예찬》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미식 철학자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은, “그대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겠다”라고 적었다. 당신의 미식 취향을 근거로 신분이나 학식을 유추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언어는 유효하다. 우리는 저렴한 치킨을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소박한 사치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취향은 정말, 치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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