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구해주지 않는다

8월 31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파월이 선언했다. 일단 미국이 살아야 하겠다고.

  • 원/달러 환율이 1350원을 돌파했다. 파월 미 연준 의장의 선전포고 영향이다.
  • 지금의 강달러 기조의 정체는 외환위기가 아니다. 각자도생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일 뿐이다.
  • 위기는 닥쳐왔다. 미국은 한국의 조력자가 아니다. 정의롭기보다 영악해야 할 시기이다.

NUMBER _ 1350

환율이 미쳤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1350원대마저 깨졌다. 이번에 환율을 끌어올린 것은 ‘파월 쇼크’다. 지난 26일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잭슨홀 미팅에서 파월 미 연준 의장이 선언에 가까운 금리 인상 의지를 밝혔던 것이다. 선언에는 ‘고통’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었다. 미국 경제의 고통도 일정 부분 감수하면서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RISK _ 1997년

금리를 올리면 유동성이 마른다. 당장 주식시장이 반응했다. 뉴욕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거래소에서 하락세가 이어졌다. 그리고 환율이 반응한 것이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돈은 이자가 높은 쪽으로 흐른다. 당장 외화 유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우리로서는 97년 IMF 외환위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DEFINITION _ 각자도생의 시대

정말 한국은 제2의 외환위기를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전문가 대부분은 아니라고 말한다. IMF 당시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전문가는 지금 당장 다른 종류의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과연 어떤 위기일까? 지금의 강달러 현상의 정체를 들여다보면 그 답이 보인다. 우리가 대비해야 할 것은 ‘각자도생의 시대’이다.
BACKGROUND_ 각자의 사정

숫자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상대적인 것이다. 달러가 강하다는 얘기는 상대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약하다는 얘기다.
  • 불 꺼진 유럽 ; 지금 특히 약한 것은 유로화다. 1유로가 1달러보다 싸졌다. 패리티가 깨졌다는 사실은 유럽이 휘청거리고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시화한 에너지 위기로 유럽은 지금 겪어본 적 없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 영국의 7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10.1퍼센트 상승하면서 40년 만에 처음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독일의 경우 37.2퍼센트라는 믿기지 않는 수치를 기록하며 1949년 통계집계 개시 후 최고 기록을 세웠다. 삶이 팍팍해지는 수준이 아니다. 서민이 빈곤층으로 떨어져 내리는 인플레이션이다.
  • 봉쇄된 중국 ; 중국은 경기 둔화로 금리 역주행 중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기준금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 금리(MLF)를 시장의 예상을 깨고 인하한 것이다. 그만큼 중국이 내부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생산도 소비도 기대치를 밑도는 수치를 보이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고강도 코로나19 방역 대책으로 광저우와 상하이 등 주요 산업, 관광 도시를 봉쇄한 영향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 의도된 일본 ; 의문의 1승을 거두고 있는 국가가 있다면 일본이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아직도 자국 통화 약세를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부터 일본은 적극적인 통화 정책을 통해 엔화의 가치를 떨어트리며 기업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써 왔다. 이로 인해 오히려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졌으며 가계는 가난해지고 있다는 비난이 있지만 단기적으로 수치는 나쁘지 않다. 수출에 기대고 있는 일본 산업들이 엔화 약세의 효과를 보면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0.5퍼센트를 기록한 것이다.

KEYPLAYER_ 이창용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의 외화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즉, 97년도와 같은 외환 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총재의 구체적인 상황 인식은 잭슨홀 미팅을 마친 후 외신들과 가진 인터뷰 내용을 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한국 정부로부터는 독립되어 있지만,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 않다"라며 지속적인 금리 인상 기조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최근의 원/달러 환율 상승 국면이 달러의 글로벌 강세에 따른 영향이라는 인식도 드러냈다. 즉, 금리는 계속 올리겠지만 연준보다 빠르게 가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STRATEGY _ 미션 임파서블

법률에 명시된 한국은행의 역할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다. 이창용 총재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작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 작전은 미션 임파서블이 될 수도 있다.
  • 금리 인상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시장에 풀린 돈을 거둬들여야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는 기본적인 경제 원리는 차치하고서라도, 수입 의존도가 큰 우리나라에서는 환율 급등이 물가 상승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금리를 올려 환율 방어를 어느 정도 해 줘야 물가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 그런데 천천히 ;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금리를 올리면 가계 부채라는 뇌관이 터질 수 있다. 금융안정이라는 역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안 그래도 고금리 시대로 들어서면서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가시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금리를 올리되 천천히 올릴 수밖에 없다. 미국보다 금리가 낮아지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래서 외환이 한국 시장을 빠져나가는 상황이 오더라도 어느 정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 결국 가계 부채 ; 그런데 여기에도 또 딜레마가 있다.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면 기업 입장에서는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자금을 확보하는 비율이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부실 차주 위험이 커져가는 개인보다 기업 쪽에 대출이 쏠린다. 결국 가계 부채 뇌관을 다시 자극하게 된다.

INSIGHT _ 고통을 감당하는 자

이런 상황에서 파월 의장의 발언을 다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은 세계 경제 원탑으로서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가, 파월이 언급한 ‘pain’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정말 ‘미국의 기업과 가계’일까? 잭슨홀 회의의 참석자는 전 세계 중앙은행의 총재들과 경제학자들이다. 즉, 파월의 경고는 미국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것일 수도 있다. 미국이 일어서기 위해 연준은 계속해서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경고다. 강달러에 따른 각국의 여파를 ‘알아서’ 감당할 준비를 하라는 경고 말이다. 
REFERENCE_ 아이오닉

지금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의 시간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을 때의 머쓱한 그 장면이 시대상을 대변한다. 그 어떤 명제보다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경제 체제에 편입된다고 해서 배려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얘기다. 당장 바이든 대통령 방한이 남기고 간 계산서를 다시 점검해 보자. 조지아주 공장 등 미국에 105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현대차가 돌려받은 대가는 전기차 보조금 제외 선고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포드의 전기차보다 500만 원 저렴했던 아이오닉은, 이제 포드보다 500만 원 비싸졌다.
FORESIGHT_ 구원자

미국이 한국 경제의 구원자가 되어줄 것이라는 환상은 이미 깨졌다. 자국 우선주의는 냉혹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어떠한가? 적어도 민첩해 보이지는 않는다. 전기차 보조금 관련해 뒤늦게 정부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해 예외 조항이라도 만들겠다며 나섰지만, 법 개정을 거쳐야 하는 문제라 조속한 해결은 요원하다. 게다가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가 쉬이 움직일 리가 없다. 강달러와 고금리 대응은 어떠한가? 뾰족한 대책은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미국 쪽으로 기운 선택을 한 대가는 그럼 어떠한가? 한중 수교 30주년 축하 서신에서 시진핑 주석은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한 관심 사항을 배려해 왔다"라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려선 안 된다는 경고를 보내왔다. 정의롭기보다 영악해야 할 시기이다. 위기에서 한국을 구할 자는 한국뿐이다.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결과에 관한 당시 평가가 궁금하시다면〈깐부라고? 우리 다 죽어!〉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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