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종말 시대의 음모론

9월 8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7퍼센트는 백신에 괴생명체가 산다고 믿는다. 음모론은 이 시대에 어떤 물음을 던지나?

  •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코로나19 백신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화학 무기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음모론을 한국 국민 다섯 명당 한 명꼴로 믿는 것으로 드러났다.
  • 언론은 진실을 좇는다는 공통의 인식도 옅어지고 있다.
  • 지금의 음모론은 어떻게 형성되고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DEFINITION_ 백신 음모론

백신 접종 시작과 동시에 백신과 관련한 음모론도 퍼지기 시작했다. 백신 내에 미생물의 형태로 기생충 혹은 괴생명체가 있다는 것, 빌 게이츠 혹은 중국의 연구소가 사적 이득을 위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발명했다는 것, 백신을 맞으면 주변 사람에게 부작용이 전염된다는 ‘쉐딩 이론’까지, 믿음의 종류는 다양하다. 코로나 백신 접종을 완료한 한국의 인구 비율은 86.3퍼센트에 달한다. 그럼에도 백신에 대한 수많은 믿음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RISK_ 19.5퍼센트

고려대학교 천병철 교수팀이 조사한 결과 백신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루머에는 19.5퍼센트가, 백신 속에 괴생명체가 있다는 주장에는 7.9퍼센트가 동의했다. 복잡성 연구자인 닐 존슨(Neil Johnson)의 조사에 의하면 백신 음모론을 믿는 자들은 실제로 백신 맞기를 거부하고, 아직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미결정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BACKGROUND_ 지금의 음모론

엔데믹이 찾아왔으니 백신 음모론은 이제 지난 논제일까? 백신 음모론은 지금 시대 음모론의 대중성과 파급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앞서 언급한 닐 존스의 연구에 따르면 백신 음모론은 백신과 관련이 없는 커뮤니티에서도 활발하게 퍼지고 있다. 이를 테면 반려동물 애호가 커뮤니티, 학부모 모임, 요가 그룹 등이다. 이전까지의 음모론은 대체로 적은 이들에게 소구했다. 《환단고기》가 진짜 역사라고 해도 내 삶이 바뀌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 큰 파장을 불러왔던 ‘큐아논’의 미 의사당 점거도 한국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팬데믹은 달랐다. 팬데믹은 세상 전체를 위기에 빠트렸다. 지금의 음모론이 위협적인 이유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세계가 마주한 문제 해결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RECIPE_ 커뮤니티

관심사로 엮인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소통의 장이 됐다. PC통신 시절부터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소통하며 크고 작게 모였다. 지금의 커뮤니티는 동호회보다는 언론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한다. 디시인사이드, 일베저장소, 오늘의 유머 등의 커뮤니티는 2000년대 급속한 성장을 이룬 뒤 광범위한 정보 교환의 장이 됐다. 토막 난 정보에는 커뮤니티가 관심을 가질만한 맥락이 덧붙는다. 뉴스는 헤드라인이나 자극적인 정보만 담긴 부분이 캡처돼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업로드 된다. 커뮤니티의 정보는 새로운 뉴스의 소재가 되어 커뮤니티에 출입하지 않는 이들에게까지 닿는다.
EFFECT_ 기생 언론

이 유통 과정에는 언론도 하나의 손을 얹는다. 취재를 첫 번째 원칙으로 삼았던 과거의 언론과는 다르다. 미디어 환경이 바뀌었고 클릭 수는 매출과 직결된다. 빠른 시간에 기사를 뽑기 위해 기자들은 커뮤니티의 정보를 이용한다. 맥락과 생략으로 포장된 커뮤니티의 정보는 “누리꾼의 반응”으로 엮인다. 미디어 오늘의 조사 결과 기생 언론이라 불리는 ‘인사이트’의 기사 절반은 보도 자료나 SNS 및 온라인 커뮤니티가 출처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기사의 32퍼센트는 보도 자료를, 23.3퍼센트는 소셜 미디어와 커뮤니티에서 출발했다. ‘언론사’라는 타이틀은 커뮤니티의 토막 난 관심사를 정보로 포장하기에 유리했다.
CONFLICT_ 기성 언론

그러나 기성 언론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시사IN의 조사에 따르면 전반적인 언론 매체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했다. 신뢰하는 언론 매체를 묻자 응답자의 28.1퍼센트는 없거나, 모르거나, 응답하지 않았다. 2018년에 비해 ‘없음/모름/무응답’은 두 배 이상 뛰었다. 언론 불신은 가속화되고 있다. 비단 한국만의 사례가 아니다. 뉴스를 즐겨 본다고 답한 미국의 MZ세대는 30퍼센트에 불과했다. MZ세대는 최근 불거진 정보 위기(misinformation crisis)를 언론, 정치인, 소셜 미디어 모두의 탓으로 봤다.
REFERENCE_ 키위 팜즈

‘키위 팜즈(Kiwi Farms)’는 조직적인 스토킹과 신상 공개 등을 통해 특정 인물을 괴롭히는 혐오 커뮤니티다. 이들은 피해자의 개인 정보를 공개하거나 경찰을 집으로 보내기 위해 허위 신고를 일삼기도 했다. 소수자, 여성, LGBTQ, 정신 질환자가 주된 혐오 대상이다. 최근 캐나다의 한 트랜스젠더 스트리머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계속되자, 호스팅 업체인 ‘클라우드플레어’는 키위 팜즈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중단했다. 키위 팜즈의 전신인 ‘8chan’은 백인 우월주의 성격의 커뮤니티로 2019년 엘패소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원인을 일부 제공했다. 해당 사건의 범인은 백인 대체주의를 신봉했다. 히스패닉과 이민자들이 백인 문화를 절멸시킬 것이라는 일종의 음모론이다. 총격 사건 후 폐쇄된 8chan은 키위 팜즈로 부활했다.
INSIGHT_ 해결과 책임

음모론과 커뮤니티로 대중의 믿음이 해체되는 것은 전지구적 문제 해결을 요원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것은 기후 위기 극복이다. 도널드 트럼프만이 지구 온난화를 부정했던 것은 아니다. MIT의 대기 과학자 리처드 린즌(Richard Lindzen)은 2017년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탄소 배출을 줄이는 국제 협정의 방향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때로는 기후 위기에 대한 언론의 자극적이고 단순한 서술이 새로운 음모론을 만들기도 한다. 그럴수록 모두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파편화된다. 결국 이들의 믿음은 모두의 책임이다.
FORESIGHT_ 연결하는 뉴미디어

공동의 믿음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영국의 심리학자인 패트릭 레만(Patrick Leman) 박사는 음모론의 원인을 분리감으로 설명했다.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분리되고, 무력하다고 느끼는 만큼 음모론은 더욱 강해진다는 뜻이다. 내가 바꾸고, 바꿀 수 있다는 감각이 중요하다.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미디어와 새로운 커뮤니티다. 혁신적이지 않아도 된다. 바른지역언론연대 이영아 대표는 “ 나의 삶에 대한 선택권 나의 의사 결정권이 조금 더 확대되는 게 목적”인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건강한 지역 신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믿을 수 있는 커뮤니티와 의견 제시는 낡은 민주주의에 긴장감을 줄 수 있다. 서로의 세계를 오가는 과정에서 더 나은 믿음이 형성된다.


음모론에 대한 색다른 접근이 궁금하다면 정지돈 작가의 인터뷰 〈우리 모두는 픽션 속에 산다〉를 추천합니다.
대체주의와 텍스트 과잉 시대, 음모론의 창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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