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맛있는 추석
2화

워니 ; 설명할 에너지가 부족할 때

2년차 사회부 기자, 비건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플렉시테리언이라 할 수 있다.
 
비거니즘은 언제 처음 접했나.
 
대학교 동아리에 비건 친구가 있었다. 육식만 하던 친구였는데 어느 날 비건이 됐다. 그때 ‘저런 게 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덴마크로 교환학생을 갔다. 학식에도 비건 옵션이 있고 비건 친구들도 많았다. 항상 주변에 비건이 있었다. 배려의 개념도 아니었다. 친구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 취지 또한 이해하니까 나도 못 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간헐적이나마 채식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
 
2019년 호주 산불이었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고는 있었는데 더 인식하게 된 계기였다. 환경 문제를 미래 세대가 아닌 내 문제로 느끼게 됐다. 일상에서 텀블러를 쓰고 재활용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채식이 보다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겐 채식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그나마 덜 죄책감을 느끼는 방법이었다.
 
뭘 안 먹기 시작했나.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닭 소비량이 너무 많다는 기사를 봤다. 치킨만 안 먹는 것도 의미있겠다 싶어서 내 맘대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채식하는 날을 정했다. SNS 프로필에 ‘화요일은 채식’ 이라고 써놨다. 화요일이 내 기준 제일 밥 약속이 적은 요일이었다. 프로필을 보고 친구들이 이유를 물으면, 기후 위기와 동물권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완전 비건 지향에 대한 강박은 없나.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의 올바른식습관연구소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한 명의 비건보다 백 명의 리듀스테리언을 위해’ 활동하는 곳이다. 한 사람이라도 한끼라도 육류를 덜 먹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나.
 
요리를 좋아하진 않는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 영양소를 챙길 수 있는 채식 메뉴를 고민한다. 사실 혼자 있으면 어렵지 않다. 식재료를 살 때 육류를 안 사면 된다. 콩 마요네즈를 사고 비건 페스토를 사고 채소를 사면 된다. 볶음밥을 자주 해먹는다. 또 요즘은 나가서 먹을 수 있는 옵션도 많다. 한정식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게 많고 채수 마라탕 집을 찾아가도 좋다. 물론 반찬에 액젓 등이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완전 비건이 아니라면 어렵지 않게 채식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이다.
혼자 있을 때 주로 먹는 채식 식단 ⓒ본인 제공
혼자 있으면 어렵지 않다고 했다. 사람들이랑 있을 땐 어떤가.
 
취직하기 전까진 괜찮았다. 회사에 붙고 사내교육을 받을 땐 회사 측에서 챙겨주기도 했다. 햄버거를 시킬 때 내 건 새우버거를 시켜주는 식이었다. 본격적으로 취재를 다니면서가 문제였다. 실제로 무례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채식을 한다고 했던 내가 고기 먹는 것을 보며 “너가 먹어도 맛있지?” 같은 말을 했다. 그럼 원래 고기가 맛있는 게 아니라 달달한 옥수수 먹여서 맛있게 키운 거라고 답하곤 했다. 축산업이 사람들 입맛에 맞게 발전한 거라고 설명하지만 표정관리는 힘들다. 대응법은 아직 고민 중이다.
 
어떻게 반응하길 바라나.
 
덴마크에 있을 때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외국인 친구를 만났다. 김치볶음밥을 해준다고 하니까 굉장히 좋아했다. 그 친구가 비건이었는데 내가 모르고 베이컨을 넣어버렸다. 결국 그 친구는 베이컨 김치볶음밥을 먹지 못했다. 미안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걸 내가 먹지 못하게 만들었구나 싶었다. 이렇게 상대방의 선택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않을까. 채식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
 
일하다 비건을 만난 적은 없나.
 
많진 않지만 채식하는 동료 기자도 있다. 회사에 말을 안 했다고 들었다. 고깃집 회식에서는 쌈 채소랑 김치만 먹는다고 한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외식이 잦은 직업 특성상, 아직까진 힘든 것 같다. 물론 회사와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제 비건은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닌 것 같은데. 기사도 많이 나오지 않나.
 
비건이 나름 하나의 화두긴 하지만, 사실 관련 기사는 비율로 따져보면 소수다. 기자 사회에서 비거니즘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이슈다. 당장의 사건을 취재하기에도 바쁜 기자들에게 환경이나 동물권은 미래의 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관련해서는 취재거리가 부족한 걸까.
 
사실 그렇지도 않다. 비거니즘은 다양한 문제와 연결된다. 식탁에 올라온 육류가 어떻게 생산되고 그걸 생산하는 데 물과 곡물은 얼마나 드는지, 동물이 자라는 환경은 어떤지만 취재해도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수입 육류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는 어느 정도인지 알아 볼 수도 있다. 축산업 종사자의 트라우마는 또 노동 이슈로 연결된다. 식량은 경제와 안보 문제기도 하다. 결국 비거니즘은 이 모든 문제를 생각하자는 뜻이다.
 
이 모든 문제를 비거니즘과 엮는 기사는 없던 것 같다.
 
나만 해도 쓸 엄두가 안 난다. 일단 시간이 없다. 그리고 시간을 준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읽힐 만큼 성과를 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단순하게 접근하면 기존의 짧은 트렌드 기사가 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기성 언론은 비거니즘을 유행으로만 취급하는 것 같다. 비거니즘은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
 
이번 추석은 어떻게 보낼 예정인가.
 
가족들이랑 보낸다. 가족들이 육식을 권하면 먹을 것 같다. 아직 사람들이랑 있을 땐 힘들다. 반박할 에너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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