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맛있는 추석
3화

유현정 셰프 ; 내가 행복한 비건 지향

비건 1년차 유현정, 셰프로 일하다 '키자미 테이블'이란 사회적기업을 창업해 르완다에서 5년간 있었다. 지금은 귀국해서 친환경 포장지를 만드는 스타트업에 근무 중이다. 비건 셰프를 꿈꾼다.
 
비건 지향 계기가 궁금하다.
  
아프리카에 살다 보니까 기후 정의를 실감하게 됐다. 개발도상국에 있는 사람들은 기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그걸 직접적으로 목격했다. 아프리카는 우기와 건기로 나눠진다. 건기 때도 비가 엄청 와서 산사태로 많은 현지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기후 위기를 피부로 느꼈다. 탄소부터 줄여야겠다고 결심했다. 할 수 있는 게 먹는 것부터였다. 비건을 실천해야겠다 생각했다.
 
르완다 키자미 테이블 앞에서 ⓒ 유현정
단계적 채식을 시작한 건가.
 
아니다. 바로 시작했다.
 
마음먹으니 바로 되던가.
 
안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하루아침에 식단이 바뀌는 건데, 어려움은 없었나.
 
요리하던 사람이라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원래 해 먹던 것에 재료만 바꾸면 됐다. 르완다에서 살았던 경험도 한몫했다. 웬만한 르완다 식당에 베지테리언 메뉴가 있다. 비거니즘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다.
 
사회생활 하면서는 어떤가.

아무래도 환경 관련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니까 괜찮은 편이다. 점심에만 회식을 하고 비건 메뉴와 논비건 메뉴가 같이 있는 식당으로 가는 편이다. 스타트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추석은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우리 집이 큰집이라 제사를 지낸다. 나는 삼색 나물이랑 약과 같은 것만 먹는다. 적어도 나물엔 액젓이나 동물성 조미료가 안 들어가게 한다. 떡국도 육수가 아닌 맹물로 따로 끓인다.
 
육류 반찬이 식탁에 올라와 있을 텐데 그건 괜찮나.
 
엄청 괜찮진 않지만 나도 논비건일 때가 있었으니까. 한때는 나도 같이 먹던 사람인데 비건 지향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최대한 비건에 대한 나쁜 인식을 안 주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도 있다.
 
비건 제사상은 불가능한가. 사실 우리나라에서 육류 소비가 높아진 건 산업화 이후다. 그전까지는 조상님들도 채식을 즐겼을 것 같은데 전직 셰프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한식이 원래 7:3이다. 채소가 7이고 육류가 3 정도였다. 그걸 가장 이상적인 식사법이라 여겼다. 원래 우리나라는 지금처럼 “고기, 고기”하는 문화가 아니었다. 종갓집 제사밥도 보면 육류가 그렇게 많지 않다. 예전에 즐겨 드시던 것들을 올리는 게 제사밥이라면 비건 제사상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 싶다. 샤인머스캣 같은 유전자조작된 과일도 제사상에 올라가는 시대 아닌가. (웃음)
비건 한상 ⓒ 유현정
전직 셰프가 추천하는 추석 음식도 궁금하다.
 
가장 좋아하는 추석 음식은 삼색 나물이다. 삼색 나물의 뜻이 있다.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가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뜻한다. 조상, 우리, 미래 세대라는 의미가 좋은 것 같다. 사실 제로 웨이스트든 비거니즘이든 앞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것도 있지 않나. 함께 잘 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추석 음식으로 딱이지 싶다.
버섯 뚝배기밥 ⓒ 유현정
비건 떡국 레시피를 추천해달라.
 
맹물에 떡과 채소를 넣고 끓이기만 해도 좋지만, 캐슈넛을 갈아 넣으면 더 고소하고 진한 맛이 난다. 참기름으로 감칠맛을 더해도 좋다. 개인적으로 감자를 넣는 것을 추천한다. 으깨진 감자랑 떡을 함께 떠먹는 것도 별미다. 비건 지향하면 먹을 게 없어질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게 된다.
 
상상력이 중요한 것 같은데, 지금까진 좋은 음식이라고 하면 쉽게 육류를 떠올리는 것 같다.
 
맞다. 옛날에는 그럴 수 있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주변 논비건 친구들은 복날에 채식을 먹으러 다니기도 한다. 가지 덮밥이나 버섯전골 등 육류 위주 식단에서 벗어나 채식으로 보양하는 문화도 생긴 것 같다.
 
가족들에겐 비건을 어떻게 설명하나.
 
기후 정의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보다 그냥 육류를 많이 먹으면 건강이 나빠진다더라, 이렇게 얘기하니까 아버지도 긍정적이셨다. 아무래도 주변에서 육류 섭취를 줄이고 채소를 많이 먹어라, 이런 말씀을 많이 들으시는 것 같다.
 
동물권이나 기후 위기를 얘기하는 비건은 유난으로 보는 시선도 많은데, 건강을 위한 채식은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같다.
 
아직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남은 것 같다. 나는 기후 위기로 시작해서 동물권까지 확장한 케이스다. 인간, 비인간 동물 모두를 위해서 비건을 지향하고 있다.
 
많은 가치관이 비거니즘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비거니즘이 모든 사회 문제를 포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또 비거니즘이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기후 정의는 탈성장을 이야기하는데, 대기업 중심의 비건 산업 성장 등은 소비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비건을 절대선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과대해석인 것 같다. 비건이라고 하면 도덕론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다. 사실 그렇지 않다. 나는 스스로 행복하고 싶어서 비건 지향을 하는 것이지, 세계를 구하겠다는 게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가치가 비거니즘에 있고 내 삶을 솔직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인 건 맞다. 하지만 비거니즘이 나의 모든 걸 설명하진 않는다.
 
비거니즘도 많은 가치관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논비건도 각자 지지하는 가치가 있듯 말이다.
 
비건도 다양하다. 비건 지향 생활을 나누는 비건 클럽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비건 커뮤니티가 아직 작기 때문에 한 색깔로 보이긴 하지만, 사실 그 안에도 많은 색깔이 있다.
 
그래서 비건이 아닌 비건 지향인 건가.
 
외국에서는 보통 채식을 한다고 하면 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 페스코라고 하면 페스코 식단을 유지한다. 한국에는 비건 지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비건이 하나의 지향점이라는 뜻이다. 언젠가는 비건까지 갈 거야, 이런 말을 내포하고 있어 더 광범위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다.
 
플렉시테리언에 대한 해석도 갈리는 것 같다.
 
그렇다. 개인적으로 플렉시테리언을 정의내리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육식 생활을 하다가 일주일에 한 끼 정해놓고 채식하는 것도 플렉시테리언이다. 반면 동물성 식재료는 하나도 먹지 않는 비건 지향 생활을 하다가 회식 등에서 어쩔 수 없이 육식하는 것도 플렉시테리언이다. 뭐가 맞다고 할 수 없다.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크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거니즘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하나 전해줄 수 있나.
 
멜라니 조이의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를 읽었다. 비건과 논비건이 어떻게 같이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사람과 사람이 알아가는 과정이다. 철학이나 신념도 중요하지만 나에겐 관계도 중요하다.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하나다. 인간이든 비인간 동물이든 사랑으로 대하자. 다 같이 행복하자.
 
보통 사회적인 문제를 의식하고 어떠한 신념을 갖게 될 때, 처음부터 행복하긴 쉽지 않은 것 같다. 많이 깎이고 단단해진 결과인가.
 
사람 때문에 힘들고 사람 때문에 치유를 받는다. 나의 비건 지향을 무시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또 같이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지하는 신념으로 인해서 본인이 힘들면, 그것도 좋지 않은 일일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도 함께 살아가는 곳이니까,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비건과 논비건 그리고 비인간 동물도 행복한 한가위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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