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았다

9월 14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을 수사해온 특검이 수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 공군 성추행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을 수사해온 특검이 100일간의 수사를 끝냈다.
  • 군대 내 인권 문제는 늘 도마 위에 오르지만, 해결은 요원하다. 군이라는 조직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
  • 이제는 팔을 걷어붙이고 손을 더럽힐 때다. 안보를 위해, 우리의 내일을 위해.

DEFINITION_  창군 이래 최초

2021년 5월, 한 공군 중사가 사망했다. 극단적인 선택이었지만, 심리적 부검 결과에 따르면 사망한 이는 그 선택으로 ‘내몰렸다’. 이유는 그가 군대 내 성추행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이름은 이예람, 스물세 살이었다. 이 사건에는 수식어가 여럿 따라붙는다. “창군 이래 첫 군 특임검사”, 그러나 결과에 납득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창군 이래 최초 특검”, 사망 330일이 지나 통과된 ‘이예람 중사 특검법’이다. 100여 일간의 수사가 끝나고, 어제 결과가 발표되었다.
NUMBER _ 81일

최초 성추행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81일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상상 이상의 많은 변화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수사 상황을 보면, 군이 정말 가해자를 수사할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군사경찰은 가해자 조사도 하기 전부터 ‘불구속’ 수사 방침을 정했고, 군검사는 지난해 4월 7일부터 5월 21일 이 중사 사망 전까지 가해자 조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수사에 진척은 없고 이 중사는 2차 가해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사망 사흘 전, 이 중사는 상담에서 ‘우울, 불안, 공포, 죄의식, 분노, 불면, 남성혐오, 자살충동, 살인충동, 자신감 상실, 해리’ 등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법률적인 지원도 없었다. 이 중사의 국선변호사는 단 한 차례도 이 중사와 직접 면담을 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혼자서, 81일을 고스란히 버텼다.
KEYPLAYER_ 언론과 대통령

81일 동안 진척이 없던 수사는 2021년 5월 31일, 급물살을 탄다. 언론보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당시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엄정처리’ 지시가 내려졌다. 상명하복의 조직답게 군의 움직임은 민첩했다. 대통령의 지시 바로 다음 날 이성용 당시 공군 참모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창군 이래 처음으로 특임 군검사도 임명됐다. 전형적으로 ‘부조리가 해결되는 공식’을 따랐다. 시민의 관심이 정치권을 움직이고 빠른 조치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전형적으로 ‘부조리가 잊히는 공식’도 따랐다. 관심이 식자 다시 조직의 관성대로 돌아간 것이다. 이 중사의 마지막 81일간 초동수사를 맡았던 군사경찰과 군검사를 포함한 수사 지휘부는 모두 불기소 처분되었다.
RISK_ 군대문화

왜 군은 계속해서 눈을 감았을까. 그것은 조직 내에 팽배한, ‘문제를 만들면 안 된다’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중사와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증언자는 당시 해당 부대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문제 안 생기게 하는 것”이었다고 회상한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번 달도 잘 넘기자’라는 것이 업무 목표였을 정도”라며, 조직의 폐쇄성을 2차 가해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런 문화가 해당 부대만의 문제였다고 치부하기 어렵다. 이 중사 사망 사건의 수사 결과는 문제를 드러내 해결하기보다 문제의 크기를 줄이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RECIPE_ 특검이라는 우연

그래서 유가족은 “부실 수사를 다시 부실 수사한 국방부”가 내놓은 결과를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해법이 특검이다. 군을 대상으로 하는 특검은 최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표류하던 특검법은, 대선 국면에서 극적으로 궤도에 오른다. 그리고 이제, 100일 간의 특검 수사가 종료했다. 유가족은 군사법체계 내에 존재하는 공고한 카르텔과 이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위법행위가 확인된 점, 이 중사가 겪었던 2차 피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진 점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특검은 대선이라는 정치적 이벤트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기가 좋았다. 그러나 운은 늘 정의의 편을 들지 않는다. 공고한 시스템만이 늘 정의를 지킬 수 있다.
STRATEGY_ 시스템과 땜질 사이

그렇다고 군이 시스템을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시스템이 생겨났다.
 
  • 2005년 1월 ;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 군대 내 인권과 신설
  • 2011년 7월 ; 해병대에서 후임들의 괴롭힘을 받던 상사가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켜 4명이 사망했다. → 해병대 인권과 신설
  • 2014년 4월 ; 육군 28보병사단 의무병으로 근무하던 윤 일병이 선임 병사들의 가혹행위와 집단 구타로 사망했다. → 군인복무기본법 제정

그러나 시스템을 만들고 또 만들어도 문제는 계속 발생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REFERENCE_ 2014년

군의 문제 해결 방식, ‘작전’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군은 ‘병영문화개선 100일 작전’ 또는 ‘1000일 작전’을 벌인다. 그리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되면 그 작전은 ‘종료’된다. 군대 내 인권 문제가 주목받았던 2014년으로 돌아가 보자. 윤 일병 가혹행위 사망사건과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지면서 사회 전체가 병영문화에 관심을 갖자, 군은  ‘병영문화 혁신안’을 제시했다. 한동안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듯했지만 결국 문제는 반복되었다. 작전이 끝난 그 틈을 파고들어 또다시 사고, 혹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결국,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현상 완화에만 집중하는 방식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INSIGHT_ 6년 동안 달라진 것

지난 2016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 보호의 문제와 개선방안 연구〉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6년 전의 보고서인데, 마치 시간을 뛰어넘기라도 한 듯 이 중사가 겪었던 상황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 및 신원에 대한 비밀 보장이 잘되지 않는다.
  • 신고자는 '배신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 신고 이후 보복성 괴롭힘도 빈번하다.

이 중사는 사건이 발생한 공군 20전투비행단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피해 사실을 신고한 이후 부대원들은 문제를 키우지 말라며 피해자를 설득했다. 가해자와의 분리는 즉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이 중사는 휴가를 신청했다.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보 발령을 받은 이후에도 2차 가해는 계속됐다. 이 중사와 관련해 성 관련 문제가 있어 옮겨온다, 관련해서 언급만 해도 고소한다더라 등의 이야기가 이미 퍼져있었다. 이 중사는 생전에 본인이  “‘튕기기’를 당했다”라고 주장했다. ‘튕기기’는 특정 인물을 다른 부대로 보내기 위해 군법에는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불편 등을 겪게 하는 행위를 일컫는 은어다.
FORESIGHT_ 굴러다니는 돌멩이

이 중사의 사망 이후 군 바깥에 감시기관을 두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지난 7월, 국가인권위원회에 군인권보호관이 만들어진 이유다. 그러나 지난 8월 19일까지 약 50일간 군인 및 군무원이 23명이나 숨졌다.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제도가 탄탄한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할 이유다. 이 중사의 문제는 사실 군대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러한 부조리는 우리 사회 곳곳에, 마치 길가의 돌멩이처럼 굴러다닌다. 못 본 척 할 것인가, 팔을 걷어붙이고 손을 더럽혀 치울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이다. 오늘은 생판 모르는 남이 그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지만 내일은 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친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 돌부리가 안보의 발목까지 잡기 전에 군이 나서야 한다.

정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관해 고민하고 계신다면《왜 차별금지법인가》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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