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이누르 ; 16~19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호령한 무굴 제국에는 ‘코이누르(Koh-I-Noor)’라는 10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나타났다. “소유자는 세상을 지배할 수 있지만 남성의 경우 최악의 불행을 경험한다”는 전설이 있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통해 인도에서 약탈한 이 보석은 대대로 영국 여왕의 왕관을 장식해왔다. 1억 파운드(1740억 원)의 가치를 갖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오랫동안 반환 운동을 벌여왔는데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와 동시에 소셜 미디어에 #KohinoorDiamond라는 해시태그로 다시 한 번 반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 컬리넌 ; 평시 국왕이 쓰는 ‘영국 제국관(Imperial State Crown)’의 하단부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317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컬리넌 II’가 박혀 있다. 190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발견된 ‘아프리카의 별’, 컬리넌(Cullinan) 다이아몬드를 세공한 아홉 조각 중 하나다. 1907년 에드워드 7세가 당시 남아공 트란스발 정부로부터 15만 파운드에 구입했지만 남아공 국민들은 이를 사실상 지배력을 이용한 강탈로 여긴다.
- 대영박물관 ; 《가디언》은 대영박물관을 ‘세계 최대의 도난 물품 보관소’라고 비난한 바 있다. 사실상 약탈의 역사가 전시된 대영박물관은 1963년 대영박물관 법에 의해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유물을 처분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지난 5월 22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독일의 과거 식민지였던 나미비아에서 수탈한 유물 23점을 반환한 것과 대비된다.
RISK _ #NotMyKing
구체제는 저물고 군주제에 대한 의문은 계속돼 왔다. 건재했던 건 엘리자베스 2세뿐이다. 곧바로 즉위한 찰스 3세는 다이애나 스펜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소셜 미디어에는 #NotMyKing이라는 해시태그가 빗발치고 공화국주의자들은 군주제의 몰락을 점친다. 이와 같은 흐름은 영연방 국가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공화국이 결국 뉴질랜드가 향해야 할 길”이라고 말한 바 있으며, 호주에서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공화국 전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자메이카, 바하마, 벨리즈 등의 카리브해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공화국 전환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영연방의 영향력 때문도 있지만 그에 따라 바꿔야 할 국가의 상징물이나 화폐 등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에서 처음 맞는 국왕의 교체는 영연방 해체 논의의 마중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INSIGHT _ 영국몽(英國夢)
영국이 브렉시트를 감행할 수 있던 배경에는 영연방이 있다. EU를 벗어나 영연방의 인프라, 미국과의 유대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던 영국은 예견되어 있던 국왕의 죽음을 맞았다. 엘리자베스 2세에 대한 영국인들의 애도에는 일종의 ‘영국몽(英國夢)’이
읽힌다. 제국의 잔상이 영면에 드는 순간이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 이후로 새로이 영국을 이끌게 된 리즈 트러스 총리는 장례가 모두 끝나고 나면 아직 다 수습되지 않은 브렉시트의 여파와 인플레이션, 에너지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 독립을 원하는 스코틀랜드, 고결함이 사라진 로열 패밀리와 함께 새로이 역사를 써야 한다. 《
가디언》은 유럽 저널리스트들의 여러 논평을 소개하며 “애도가 끝나면 현실이 무겁게 들이닥칠 것”이라 제목 붙였다. 현실의 문제에 더해 지난한 과거사의 청산이 이뤄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FORESIGHT _ 다극체제
호주와 뉴질랜드의 영연방 탈퇴 움직임, 영국에 대한 인도의 반감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세력 균형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장기화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EU 각국과 미국의 동상이몽이 드러나고 있고, 영연방이 흩어질 조짐을 보이며 세계는 신냉전이 아닌 ‘다극체제(multipolar system)’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인도가 2022년 1분기 GDP에서 세계 5위에 오르며 영국을 처음으로 제쳤고, 커다란 시장 가치를 인정받으며 새로운 현상 변경 세력으로 점쳐지고 있다. 영국의 소프트파워 부재는 영연방이란 이름 아래 가려져 있던 수많은 중견국의 부상을 이끌어내며 국제 관계의 지형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