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굴은 끝났다

9월 20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블록체인계 역대 최대 규모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더머지는 이더리움을 혁신할 수 있을까.

  • 9월 15일, 이더리움이 더머지(the merge) 업그레이드를 완료했다.
  • 시장 기대와는 달리 이더리움 가격은 하락세를 보인다.
  • 이더리움은 비트코인을 뛰어넘는 시총 1위 가상 자산이 될 수 있을까.

BACKGROUND_ 웹 3.0
  • 올해 5월 구글 클라우드가 웹 3.0 앱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웹 3.0 인프라 개발 기업 미스틴랩스에 3억 달러를 추가 투자했다. 정보의 소유권이 플랫폼이 아닌 사용자에게 돌아가는 탈중앙 시스템, 웹 3.0에 거물 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웹 3.0의 시대는 온다.
  • 그 기반의 중심에 이더리움이 있다. 비트코인이 현 국가 화폐의 대체재가 되고자 한다면 이더리움은 더 큰 청사진을 그린다. 탈중앙 플랫폼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 이번 머지는 이더리움 2.0 시대로 도약하는 분기점이자, 다가올 웹 3.0 시대로 향하는 기반이다. 천재 개발자 부테린은 정보를 소유한다는 개념에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수 년간 준비해 왔다. 가상 자산이 투자자들만의 영역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다. 이번 머지의 함의를 이해하는 것은 차세대 정보의 개념을 이해하는 첫발이다.

DEFINITION_ 더머지
지난 9월 15일 이더리움[1]이 더머지(the merge) 업그레이드를 완료했다. 2015년 블록체인 등장 이후 역대 최대 규모 업그레이드다. 거칠게 말하면 구버전과 신버전을 합치는(merge) 것이 핵심이다. 이더리움 메인넷(작업 증명 방식)과 비콘체인(지분 증명 방식)을 합쳐, 전체 시스템을 지분 증명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에 이더리움 채굴(mining)은 전면 중단된다.
KEYPLAYER_ 비탈릭 부테린
업그레이드의 장본인은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이다. 1994년생 개발자로 2011년부터 비트코인 커뮤니티에 관여했다. 분산형 플랫폼에 대한 뚜렷한 철학으로 유명하다. 글로벌 블록체인의 메카 크립토 밸리를 스위스에 조성해 산업 자체의 규모를 키우고 있다. 이더리움이 비트코인과 목표 설정부터 달리 한 배경에도 부테린이 있다. 부테린이 꿈꾸는 이더리움 생태계의 모델은 ‘merge + surge + verge + purge + splurge’ 총 5단계로 이뤄져 있다. 그 중 이번 업그레이드는 불과 1단계에 해당한다.
이더리움 머지 파티. 머지 과정과 비트코인 및 이더리움에 대해 논한다. ©Ethereum Foundation

ANALYSIS_ 효율, 탈중앙화, 친환경
지분 증명(PoS) 방식은 기존 작업 증명(PoW)의 단점을 보완하는 대안으로 등장했다.
  • 효율 ; 작업 증명은 채굴을 통해 이뤄졌다. 퍼즐을 가장 빨리 푸는 사람에게 디지털 자산이 주어진다. 그래서 채굴업자들은 퍼즐을 풀고자 하루 종일 전기를 쓰고, 고사양 하드웨어를 돌린다. 반면 지분 증명의 핵심은 말 그대로 ‘지분’이다. 내가 이더리움을 더 많이 가질수록 더 큰 권한을 갖는다. 디지털 자산을 소유한 검증자만 참여하기 때문에 채굴 경쟁이 사라지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 탈중앙화 ;  작업 증명 방식에선 채굴 난이도가 어려워지며 개인 채굴자가 살아남기 힘든 구조로 고도화됐다. 자연스레 기업형 채굴자들이 등장했다. 이들간의 담합 현상으로 블록체인의 핵심인 탈중앙화가 흐려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지분 증명에선 채굴 경쟁이 사라지며 이 부분 또한 해소된다.
  • 친환경 ; 비트코인은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번 업그레이드를 통해 이더리움 채굴 시 사용되던 전력의 99퍼센트 이상이 해결된다. 탄소 배출량 또한 연간 1100만 톤에서 870톤으로 급감할 예정이다.

NUMBER_ 97만
주목할 것은 이더리움 발행량의 변화다. 이더리움의 신규 발행량이 90퍼센트 가량 줄어든다.[2] 투자 분석 회사 니드햄앤드컴퍼니에 따르면 기존 이더리움 발행량은 총 490만 이더리움이었으나 이번 머지 이후 97만 이더리움 수준으로 급감할 예정이다. 이더리움 1개당 가격을 1500달러로 계산하면 연간 약 74억 달러 규모의 신규 발행량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를 두고 이더리움의 희소성으로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입장과 디플레이션에 따라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입장, 두 축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CONFLICT1_ FOMC
업그레이드가 성공하며 이더리움 가격이 상승하리라는 시장의 기대는 정확히 어긋났다. 이더리움 가격은 지난 9월 16일 오히려 9퍼센트 가량 하락해 15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리플(XRP), 카르다노(ADA), 도지코인(DOGE) 등 이더리움보다 규모가 작은 알트코인들은 하락 폭이 더 깊었다. 강력한 원인은 다가오는 9월 20~21일 예정된 FOMC다. 연준은 올해 다섯 차례에 걸쳐 과감한 행보를 보여 줬다. 이번 FOMC에서도 자이언트스텝 혹은 울트라 스텝까지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기준 금리 인상이 또 한 차례 발표될 시, 투자 심리 위축에 따라 이더리움 가격은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더리움 머지가 시기를 잘못 택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CONFLICT2_ 가스비
이번 업그레이드는 이더리움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가스비(gas fee)[3]나 거래 속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이더리움 공식 재단에서도 “머지는 합의 매커니즘의 변경일 뿐 네트워크 용량의 확장이 아니며, 가스비도 낮춰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더리움의 가스비는 올해 5월 건당 최대 2만 4300원을 기록했다. 높은 수수료는 소비자 부담으로 직결된다.  이더리움 블록 생성 속도 또한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기존 약 13.3초에서 약 12초로 소폭 줄어들었다. 사용자 입장에서 체감하긴 어려운 변화다.
RISK1_ 규제
모호한 정체성은 가상 자산의 특권이었다. 최근 미국 및 유럽 내 가상화폐 관련 규제 논의가 본격화되며, 이 특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올해에만 미국 상하원에서 미 상품거래위원회(CFTC) 측에 발의한 암호 화폐 규제 관련 법안이 세 개다. 그중에서도 올해 6월 공화당과 민주당이 공동 발의한 ‘책임 있는 금융 혁신법’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일종의 상품으로 간주하고, 암호 화폐 거래가 CFTC의 관할에 포섭되도록 했다. 암호 화폐에 관한 포괄적인 규제의 틀을 미국 최초로 제시한 것이다.
RISK2_ 증권
설상가상으로 게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지난 9월 15일 “지분 증명 암호 화폐를 증권으로 규제하는 안에 대해 더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특정 코인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으나, 이번 이더리움 업그레이드가 완료된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발표된 입장이다. 현재까지 이더리움이 상품거래위원회의 규제를 받을 수 있던 것은 ‘증권’이 아닌 ‘디지털 상품’으로서의 위치를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만일 증권으로 분류될 경우, 이더리움은 금융사 수준의 공시 의무를 준수하는 등 SEC의 엄격한 규정을 따를 의무가 생긴다.
REFERENCE_루나
  • 가상 자산의 증권 여부는 국내 시장과도 무관한 얘기가 아니다. 올해 5월 코인 시장을 뒤흔들었던 테라·루나 사태 이후, 최근 검찰은 루나의 증권성 조사에 착수했다. 미 SEC 또한  디지털 자산 거래 플랫폼 미러 프로토콜(Mirror Protocol)을 중심으로 루나의 증권성을 조사 중이다. 
  • 그간 국내에선 가상 자산이 증권성을 인정받은 사례가 없었다. 만일 루나의 증권성이 인정된다면, 시세 조종 같은 불공정 거래 등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다. 비단 테라·루나 코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례는 시장을 바꾼다. 증권형 코인을 선별하는 기준이 세워지며, 전체 산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INSIGHT_ 화폐 < 플랫폼
  •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 테더(Tether)의 파울로 아르도이노 CTO는 이더리움이 비트코인에 필적할 수 없다고 강력히 비판해 왔다. “무한정으로 발행하고, 확장성(scalability)도 낮은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경쟁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이더리움과 비트코인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관점일 수 있다.
  • 이더리움은 2014년 알트코인(Alternative Coin)으로 출범했다. 문자 그대로, 기존 비트코인의 대체재로 등장했다. 그러나 둘의 지향점은 다르다. 비트코인은 국가 화폐의 대체재, 세계 1위 암호 화폐로 부상하고 있다. 자국 통화의 유동성이 큰 남미, 아프리카 내 일부 개발도상국에선 이미 통화로 사용되는 추세다. 반면 이더리움은 화폐로서의 기능보단 플랫폼으로서의 기능, 탈중앙화라는 가치 실현에 방점을 둔다. 즉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시가 총액 1, 2위를 다툴 수는 있어도 하나의 성공이 다른 하나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으며, 시장 내 쓰임새에 따라 함께 몸집을 키워 갈 수 있다.

FORESIGHT_ 포스트 머지
  • 주목할 것은 머지 이후 첫 업그레이드, 상하이 업그레이드(Shanghai Uprgrade)다. 상하이 업그레이드에서 어떤 기능이 추가될지는 아직도 개발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언스테이킹(unstaking), 즉 자신이 스테이킹한 자산을 취소 또는 해제하여 출금 가능한 상태로 만들고 차익을 내는 기능이다. 현재 메인넷에 묶여 있는 이더리움의 규모는 210억 달러다. 만약 상하이 업데이트에서 언스테이킹 기능이 추가될 경우, 대규모 출금 사태가 일어나며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
  • 이외에도 블록 간 상호 작용을 통제하는 이더리움 가상 기계(EVM),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이고 용량을 극대화하는 댕크샤딩(danksharding) 등의 기능 등을 검토 중이다. 기능의 가짓수와 복잡성이 업데이트의 규모와 시기를 결정하는 만큼, 부테린과 개발자들이 어떤 기능을 엄선할 것인지가 차기 관전 포인트다. 머지는 이더리움 업데이트의 끝이 아닌 여정이다. 다음 여정의 성패는 2023년 예정된 상하이 업그레이드에 달렸다.



가상 자산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비트코인 제국주의》와 〈루나 사태는 예견된 재앙이다〉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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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더리움은 1) 블록체인 기반의 스마트 계약을 구현하기 위한 분산 컴퓨팅 플랫폼이자 2) 플랫폼의 자체 통화명이다.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암호 화폐의 한 형태로 거래된다. 단위는 이더리움(Eth)으로 사용한다. 위키백과 참조.
[2]
작업 증명 때와는 달리, 지분 증명에선 네트워크 유지를 위해 그만큼 많은 발행량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영상 참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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