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돌고래를 허하라

9월 21일 - FORECAST

제주에서 돌고래에 법적 지위를 인정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과연 비인간을 동등한 지구생활자로 바라볼 수 있을까?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생태법인’이라는 개념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 엉뚱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람이 아닌 주체에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 이 논의는 우리가 지구인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BACKGROUND_ 부끄러운 이야기

제주 바다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들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20년도 되지 않았으며, 대략 120여 명 규모로 추정된다. 2009년, 이들 중 몇 명이 납치되었다. 범인들은 납치한 원주민 중 몇을 팔아넘겼다. 원주민 쇼를 하는 곳이었다. 고된 훈련과 몸도 가누기 힘든 열악한 숙소를, 이들은 견뎌야 했다. 이들이 자유의 몸이 되어 살던 곳으로 돌아간 것은 납치 후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 후였다. 그 시간을 견뎌내지 못하고 몇 명은 사망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제돌이, 춘삼이, 태산이, 복순이. 4명의 제주 남방큰돌고래 이야기다.
CONFLICT_ 법정에 돌고래를 허하라

이 4명이 자유를 찾기까지는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했고, 정치와 관례의 프레임을 거둬내야 했다. 그 자리에 정의와 과학, 행동을 채우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법원이 이들에게 자유를 돌려주는 결정을 한 이유 또한 그것이 이들의 당연한 권리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들이 범죄의 피해자였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이들을 납치한 ‘인간’의 행위가 ‘불법 포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법원은 이들을 ‘몰수’했다. 만약 이들이 직접 법정에서, 소송의 당사자가 되어 자신들의 피해를 호소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납치 당했으니 일단 나를 풀어달라고 ‘인신구제청구’ 소송을 할 수 있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나의 권리가 침해당했노라고,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우리 동료들도 기꺼이 법적 권리를 주장할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DEFINITION_ 법인격

물론, 언뜻 생각하면 납득하기 힘들다. 실제로 법률에서 자연은 누군가의 소유물로 취급된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의 소유물에 해당하는 자연이 법정에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은 허황된 것만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인간이 아닌 법적 인격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바로 법인(法人)이다. 자본주의의 성장은 기업과 재산이라는 비인간 주체에 법인격을 허락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대는 어떠한가? 당장 올여름 우리는 폭우와 태풍이라는, 지구의 경고장을 받아들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번 우리의 법적인 패러다임을 전복시켜야 할 시점일 지도 모른다. 자연에게도 법인격을 부여하는, ‘생태법인(eco legal person)’이라는 개념은 그래서 탄생했다. 
RECIPE_ 생태법인

관련 논의는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제주에서 현실이 될 가능성이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 9월 15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17회 제주포럼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모델, 생태법인’이라는 제목으로 세션이 열렸다. 제주 남방큰돌고래에 생태법인을 도입하기 위한 발표와 논의가 이어졌다. 이미 정치권에서도 관련 논의는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제주특별자치도의 오영훈 도지사는 국회의원 시절 해양환경 단체 ‘핫핑크돌핀스’와 함께 ‘제주 남방큰돌고래 보호와 생태법인 입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주최한 바 있다. 당장 법을 제정하는 것은 힘들 수 있어도 제주특별자치도 차원의 조례 제정 등을 노려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REFERENCE_ 황가누이강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사례는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뉴질랜드 ; 2017년 뉴질랜드는 황가누이강(the Whanganui River)에 법인격을 부여했다. 수백 년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마오리족의 수송로이자 이동로가 되어 온 이 강은, 그러나 유럽의 침략 이후 개발이라는 이름의 훼손에 시달려야 했다. 법인격을 부여받은 황가누이강은 권리와 의무, 책임 등 인간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보유하게 됐으며 마오리족 공동체가 임명한 대표자 1명과 정부가 위임한 대리인 1명이 공동으로 강의 법인격을 대변한다.
  • 콜롬비아 ; 같은 해 콜롬비아 헌법재판소는 아마존강의 일부인 아트라토강(Atrato River)과 그 일대에 법적 권리를 부여했다. 2018년 4월, 콜롬비아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인용하여 콜롬비아 정부로 하여금 강이 흐르는 지역을 보호하도록 명령했다.
  • 에콰도르 ; 2008년 에콰도르는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the rights of Nature)를 헌법에 명시했다. 이후 자연의 권리를 보호법익으로 주장하는 소송이 제기되었으며, 이를 인정하는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제주도에서 남방큰돌고래들이 법인격을 부여받게 된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거주지를 관광 보트의 소음으로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된다. 함부로 납치당하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된다. 폭행당하지 않을 권리, 환경오염이나 난개발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된다.
KEYPLAYER_ 법정대리인

그렇다고 법정에 돌고래들이 직접 출석하여 증언을 할 리는 없다. 생태법인이라는 제도가 도입된다면 남방큰돌고래의 법인격을 대변할 법정대리인을 세우게 된다. 미성년자의 부모 혹은 양육자가 법정대리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치매 등의 정신적 제약을 요건으로 하는 성년후견인 제도와도 닮아있다.
INSIGHT_ 체계를 만든다는 것

이번 제주포럼에서 발표자로 나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 동물권소위원회의 김도희 위원장은 북저널리즘과의 인터뷰에서 생태법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그리고 현실화 과정에서 깊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에 관해 희망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생태법인은 굉장히 낯선 개념이다. 시도만으로도 많은 노력과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왜 생태법인에 관해 논의해야 하나?

인간은 수많은 지구생활자 중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사는 데에 참으로 서툴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 된다.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고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자본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비인간을 개발과 정복의 대상, 이용할 재화로 보는 시선이다. 그러나 지구를 버리고 떠날 것이 아니라면 이제 다른 지구 구성원과 인간이 동등한 위치임을 인정해야 한다. 생태법인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지구의 구성원 중 일부라는 점을 인식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생태법인의 법정대리인이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져 제도를 악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방큰돌고래의 법정대리인이나 그 후원 단체 등에 제주 개발 기업이 끼어든다든가 하는 가정도 해 볼 수가 있겠다.

아주 중요한 문제다. 단순히 자연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법인의 경우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법인은 기본적으로 정관이나 이사회 등을 통해 악용을 방지한다. 즉, 누군가의 입김에 좌우되지 않도록 표준 정관을 처음부터 세심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기업의 후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목적이 명확한 후원만을 받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또, 성년후견인 제도 등에서도 후견 감독인을 두는 것처럼 외부 감시 감독을 받게 하는 부분도 필요하다.

생태법인 제도가 현실화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뀔까?

인도에서는 강에 쓰레기를 버리고 더럽히는 행위를 상해죄로 취급한다. 제주 바다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쉽겠다. 돌고래 서식지 주변의 선박 관광을 두고 어디까지가 문제이며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길게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침입 등으로 다루게 될 수도 있다. 함께 살기 위해 인간이 해야 할 것, 멈춰야 할 것을 비인간이 법적 주체가 되어 직접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FORESIGHT_ 지구인의 의무

아직 동물에 생태법인 제도를 적용한 사례는 없다. 만약 제주도에서 생태법인이 현실화한다면 우리가 세계 최초인 만큼 더 많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생태 관광의 관점에서 제주도는 더욱 각광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개발이나 관광 산업의 영역에서 손해는 보는 사람들도 생겨날 수밖에 없다. 논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이 논의의 출발선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가 지구생활자로서 기여는 고사하고 책임이라도 다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식민주의와 노예제를 비판할 줄 아는 이성이라면, 동료 지구생활자를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도 이제는 판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음향 오염이 해양 생태계를 병들게 하는 구체적인 사례에 관해 궁금하시다면 〈소음의 바다〉를 추천합니다.
인간의 활동이 어떤 방식으로 비인간의 피해가 되는지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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