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가까운

9월 22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죽음이 세계적인 화두인 지금, 우리는 죽음에 대해 말할 준비가 됐나.

  • 웰다잉 흐름이 퇴비장이라는 새로운 장례 방식으로 번지고 있다.
  • 그간 금기시됐던 죽음이란 주제가 어느 때보다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 죽음에 대해 논하기 위해선 죽음에 대해 알아야 한다.

BACKGROUND_ 새로운 장례 문화

인간은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 상징성을 유지하기 위해 매장은 오랜 시간 전통적인 장례 방식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과정은 자연과는 거리가 멀었다. 관을 만들기 위해선 나무가 필요하고 방부 처리에 쓰이는 화학물질은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2시간 화장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자동차로 500마일을 운전할 때의 배출량과 같다고 추정된다. 웰다잉, 잘 죽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퇴비장이란 새로운 장례 문화를 만들어냈다.
DEFINITION_ 퇴비 장례
  • 퇴비 장례는 세상을 떠나는 길에도 탄소발자국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다. 인간 퇴비화는 시신을 거름으로 만들어 나무에 심거나 바다에 뿌리는 장례 방식이다. 미국의 첫 퇴비 장례 전문 업체 리컴포즈(Recompose)에 따르면 시신은 짚, 나뭇잎, 유기물 등이 든 특수용기에 들어가 30일간 퇴비화 과정을 거친다. 퇴비화된 유해는 가족들이 가져가거나 비영리 단체에서 신탁관리하는 벨즈 마운틴(Bells Mountain) 숲에 기부할 수 있다.

  • 최근 캘리포니아에서 ‘인간 퇴비화’ 법안이 통과되며, 미국 내 퇴비 장례가 합법인 주는 다섯 개가 됐다. 현재 퇴비 장례는 워싱턴, 콜로라도, 버몬트, 오리건 주에서 가능하며 캘리포니아에선 2027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리컴포즈 설립자는 환경론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퇴비 장례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NUMBER_ 80퍼센트

퇴비 장례에 대한 관심은 최근 미국 장례문화 변화와 무관치 않다. 미국인이 선호하는 장례 방식은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정점에 달한 2020년, 미국에선 4천 500구의 시신이 화장됐다. 이는 전년 대비 35퍼센트 증가한 수다. 2000년대만 해도 27퍼센트였던 미국의 화장률은 2020년 50퍼센트를 넘어섰다. 북아메리카 화장 협회와 전국 장의사협회는 2040년에는 80퍼센트가 넘는 미국인이 화장을 선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러한 현상은 죽음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 변화를 드러낸다고 설명하며, 친환경 장례 방식의 등장도 일찍이 예고한 바 있다.
REFERENCE_ 우리나라

코로나19는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2020년 리서치 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0퍼센트가 코로나19 이후 간소화된 장례 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코로나 이후 한국장례문화가 어떻게 변화될 것으로 전망하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밝고 긍정적인 죽음 맞이 문화로의 변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길 원하는 장례문화 확산’ 등을 꼽았다.
EFFECT_ 죽음에 대한 논의

전 세계 6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다. 죽음과 가까이 살고 있는 시대, 어느 때보다 질병과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죽음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가 촉발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장례 방식과 절차에 대해 고민하는 건 웰다잉에 속한다. 웰다잉은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흐름이다. 삶과 죽음이 균형을 이루는 개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의 논의는 ‘밝고 긍정적인 죽음’, ‘아름답게 기억되는 죽음’ 과는 거리가 멀다. 삶보다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RISK_ 명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죽음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지는 오래 되지 않았다. 때문에 관련 개념이 명확히 공유되지 않은 상황이다. 예컨대, 웰다잉이 존엄한 죽음으로 해석되며 안락사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의 말에 따르면, 죽음과 관련한 의학적 용어들 또한 혼재되어 쓰이고 있다. 연명의료결정과 의사조력자살·안락사는 방향성이 다른데, 모두 ‘존엄한 죽음’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 연명의료결정 ;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크게 네 가지다.
  • 의사조력자살 ; 의사가 처방한 주사제를, 환자가 직접 복용 또는 투약하는 것이다.
  • 안락사 ;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가장 고통이 적은 의료행위를 통해 생명을 단축하는 것이다. 연명의료 중단을 소극적 안락사라고 하기도 한다.

CONFLICT_ 조력존엄사법
  •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이른바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됐다. 법안의 근거는 국민 76퍼센트가 조력자살에 찬성한다는 조사였다. 해당 조사를 진행한 서울대 가정의학과 윤영호 연구팀은 데이터 해석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찬성 응답자 중 20퍼센트가 이유로 가족의 고통과 부담을 생각해서라고 답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경제적 이유로 환자의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 존중이 핵심인 조력존엄사법의 취지가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40개국을 대상으로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 순위를 평가하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 기관 EIU는 좋은 죽음의 기준을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가족, 친구와 함께, 고통 없이 죽어가는 것’으로 나누고 있다. 2020 노인실태조사의 응답엔 좋은 죽음의 조건으로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이 언급된다.
  • 실제로 존엄한 죽음을 위해 필요한 정책에 대한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의 조사에선 생애말기 돌봄 체계 강화에 대한 의견이 주를 이뤘다. 간병비 부담 완화,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 확충 등이다. 준비되지 않은 논의는 혼란을 낳는다.

INSIGHT_ 죽음에 대해 말할 의무

좋은 죽음에 대한 기준과 인식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찬반으로 물을 수 없는 문제다. 프랑스 영화계 거장 장 뤽 고다르는 삶을 마감하며, 프랑스 사회에 질문을 남겼다. 고다르 감독의 사인이 조력자살이란 사실이 알려진 당일, 대통령실은 죽음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토론 계획을 밝혔다.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향후 6개월 동안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 토론할 것이라 설명했다. 죽음에 대해 말할 의무가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안 찬반이 아닌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쟁점이 되어야 한다.

FORESIGHT_ 죽음을 가까이

죽음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죽음을 알아야 한다. 미국, 독일, 영국 등의 공교육에선 죽음 교육이 이뤄진다. 다양한 각도에서 죽음을 깨닫고, 이로 인해 생명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을 하게 한다. 알폰스 디켄 생사학 교수는 죽음준비 교육을 두고, 진정한 삶에 대한 교육이라고 했다. 독일 시인 릴케는 “죽음은 우리에게 등을 돌린 또 다른 삶”이라고도 했다. 죽음에 대해 논하는 것은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감염병, 고령화 등의 이유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는 지속적인 화두가 될 것이다. 죽음을 가까이 하고 죽음을 다양하게 사유할 기회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 죽음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은 꿈꿀 수 없을 것이다.
     

죽음에 대해 더 깊은 고찰을 하고 싶다면,《적당한 거리의 죽음》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묘지를 대하는 서울과 파리의 태도를 통해, 두 도시의 생사관을 알 수 있습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