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시대의 창조자

9월 23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기름보다 가벼운 금속, 리튬의 가격이 치솟는다. 한국 경제의 리스크도 함께 치솟고 있다.

  • 배터리 산업의 핵심 원료, 리튬의 가격이 치솟고 있다.
  • 언뜻 낯선 물질처럼 느껴지지만, 리튬이야말로 21세기를 만들어낸 금속이다.
  • 자원 안보 전쟁이 시작된 지금, 현명한 대응 없이는 미래 먹거리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

DEFINITION_ 리튬

리튬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익숙한 물질이다. 가장 가벼운 금속으로, 기름에도 둥둥 뜰 정도다. 원자번호는 3번. 우리 대다수와는 별 상관없을 것 같은 이 금속은, 그러나 생활 깊숙이 스며들어있다. 리튬이 배터리의 중요한 원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휴대 전자기기가 리튬 이온 배터리를 사용한다. 가장 큰 장점은 기존 휴대용 배터리에 비해 가볍다는 점이다. 즉, 리튬 없이는 지금처럼 작고 가벼운 스마트폰도, 노트북도, 하다못해 휴대용 선풍기도 존재할 수 없다. 리튬이 모바일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리튬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NUMBER_ 4배

이유는 전기차의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는, 리튬 없이 만들 수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수요가 폭발하면서 리튬 가격도 덩달아 뛰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21일 기준으로 탄산리튬의 가격은 1톤당 1억 원에 육박하며, 1년 전에 비해 약 4배 수준을 기록했다.
CONFLICT 1_ 환경

당연히 리튬이 광물 상태 그대로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리튬은 반응성이 매우 높고, 너무나 가벼워 석유에도 둥둥 뜨는 금속이다. 때문에 바셀린 등에 묻어 보관할 정도이니 배터리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여 판매된다. 이 가공된 리튬을 정제 리튬이라고 하며 주로 탄산리튬과 수산화리튬의 형태이다. 리튬을 추출하는 과정은 물론, 이 정제 과정에서도 심각한 환경 오염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경우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20퍼센트를 보유했지만, 적극적인 생산에 나서지 않았다. 그 결과 리튬 생산의 주도권은 완전히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리튬의 국제가격이 아주 이례적으로 위안화로 표기되는 이유다.
CONFLICT 2_ 인권

이뿐만이 아니다. 리튬 생산에는 인권 문제도 걸려있다. 탄산리튬의 주 생산지로 꼽히는 곳이 바로 중국 신장 지역이다. 이곳이 바로 중국이 세계 리튬 이온 배터리의 75퍼센트가량을 생산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신장 지역은 미국이 중국을 겨냥하는 과녁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바로 위구르족 강제노역,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한 미국의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 EU가 추진 중인 ‘강제노동 금지법’ 등의 직접적인 대상인 것이다. 문제는 미국도 EU도 직접적인 리튬 생산을 중국에 미뤄둔 상황에서 신장 지역에서 생산된 리튬을 사용할 수 없게 하는 자승자박을 걸어버렸다는 점이다.
INSIGHT_ 기술팀 vs 자원팀

그렇다면 우리 사정은 어떨까? 미국과 EU의 자승자박에는 우리도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 2위에 빛나는 한국도 리튬 등 원자재 공급망은 많은 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강제노동 금지법’의 제재 대상에 해당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게다가 미국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로 인해 북미 지역이나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채굴 및 정제해 사용한 비율을 내년에 40퍼센트 이상으로 맞춰야 하는 부담까지 끌어안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지금 글로벌 경제 구도 재편의 한중간에 끼어있다. 기술과 소비 시장을 내세우고 있는 미국 쪽, 그리고 자원을 틀어쥐고 있는 다른 한 편 사이 말이다. 이는 리튬을 비롯한 주요 원자재 확보에 있어 커다란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RISK 1_ SCO

사실상 반미(反美)진영이라고 칭해도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이는 SCO(상하이협력기구)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다. 중동의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이란이 이번에 정식 회원국이 되었고 튀르키예도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아픈 손가락’인 인도 또한 회원국이다. SCO 8개 회원국은 전 세계 인구의 41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성은 차치하고라도 노동력을 틀어쥐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자원 대국 중국과 러시아가 포진하고 있으니 전 세계 원자재 공급망을 완전히 쥐락펴락 할 수 있다. 체력이 국력인 시절이 있었고, 기술이 국력인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바야흐로, 지금은 자원이 국력인 시대로 향하고 있다. 지금은 어쩐지 어색한 SCO 회원국들의 결속력이 강해진다면 상상해 본 적 없는 경제 질서가 도래할 수도 있다.
RISK 2_ 자원민족주의

이러한 ‘자원 안보 위협’이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번지는 이유다.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뿐만 아니라 남미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관찰된다. 리튬으로 한정해서 보자면, 남미의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3개국에 걸쳐 전 세계 매장량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남미의 ‘리튬 트라이앵글’이다. 볼리비아 정부는 이미 2008년 리튬 산업을 국유화했다. 배터리와 전기차를 키우겠다는 전략이었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칠레의 경우에도 산업을 국가가 틀어쥐려는 움직임이 강화하고 있다. 지난 3월 취임한 가브리엘 보치리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영 리튬 회사 설립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RECIPE_ 개발, 개발?

그렇다면 이런 위험들을 피해 리튬을 비롯한 원자재를 확보할 방법은 없을까? 이미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3월 리튬 확보를 위해 리튬 트라이앵글 국가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에 약 4조9000억원을 투자했다. 연간 10만t의 수산화리튬 생산체제를 갖출 계획이다.아르헨티나는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어 IRA를 피할 수 있는 국가라는 점도 이점이다. 그 외에도 LG에너지솔루션, 현대자동차 등은 호주, 캐나다, 동남아시아의 문을 두드리고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장기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친환경 정책을 위해 필수적인 리튬이지만, 추출과 정제 과정에서 엄청난 오염이 발생한다. 해외 광산을 개발한다 해도, 외교적인 알력 관계나 현지 정치 사정에 따라 리스크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자력갱생의 시대,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강구되어야 하는 이유다.
FORESIGHT_ 순환경제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리튬 정제사업에 관해 ‘돈 찍어 내는 면허(License to print money)’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만큼 가까운 미래를 떠받칠 산업에서 빠질 수 없는 원자재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석유가 생산되지 않는다. 그리고 ‘하얀 석유’로 불리우는 리튬도 생산되지 않는다. 매장량 자체도 현재로서는 극히 작고, 채산성이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배터리 재활용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폐배터리에서 리튬 등을 뽑아내 재활용하는 사업에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차그룹, SK그룹, LG에너지솔루션 등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정책적 접근도 필요하다. EU는 배터리 기본법(basic act) 제정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제조부터 재사용, 원재료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배터리 순환경제’ 구축에 나섰다. 우리도 발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이다.


리튬 가격 폭등의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입니다. 전쟁이 촉발한 공급망 교란과 그린 역주행이 궁금하시다면〈문제적 단어, GREEN〉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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