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독, 리셀을 물어뜯다

9월 26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나이키코리아가 리셀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리셀은 트렌드인가 트러블메이커인가.

  • 나이키코리아는 개정 약관을 통해 ‘재판매를 위한 구매 금지’ 조항을 발표했다.
  • 리셀테크의 중심엔 나이키가 있고 리셀은 나이키의 드로우 전략과 함께 성장했다. 
  • 나이키가 진짜로 노리는 것은 비단 악성 리셀러가 아닐지도 모른다.

CONFLICT _ 나이키 리셀 인피닛 밴 22’

‘리셀테크’라는 말이 유행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 트렌드에 비수가 꽂힐 예정이다. 나이키코리아는 지난 9월 2일 ‘이용약관 개편 안내’를 통해 리셀(resell)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변경된 약관에 “재판매를 위한 구매 불가”를 규정한 항목을 넣은 것이다. 나이키는 리셀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나이키의 조치는 리셀 시장 전반을 흔들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재테크 수단이 부재한 가운데 리셀테크는 젊은 세대에게 나름 소소한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운동화를 겨냥한 ‘슈테크’는 소액으로 단기 차익을 노릴 수 있고 정보에 있어 진입 장벽이 낮은 저위험 고수익 재테크다. ‘드로우(draw)’ 등을 통해 일단 구매 기회를 잡는 것이 우선이므로 영끌을 통한 무리한 투기도 어렵다. 코인과 주식 시장의 암흑기가 계속되며 리셀테크로 소소하게 손실을 메웠던 젊은 투자자들은 또 하나의 기회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
MONEY _ 7000억 원

리셀은 쉽게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된다. 몇백, 몇천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의 가격이나 오픈런 현상 등 수요자의 관점이 주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셀은 주목해야 할 시장이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현재 국내 리셀 시장은 2021년 기준 7000억 원 수준이다. 2025년까지 약 2조80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7000억 원 중 스니커즈 거래 규모만 5000억 원이다. 네이버의 자회사 스노우가 만든 ‘크림(KREAM)’, 무신사의 에스엘디티(SLDT)가 만든 ‘솔드아웃(soldout)’, 최초의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 ‘아웃오브스탁(OUTOFSTOCK)’은 국내 3대 플랫폼으로 거래액이 도합 1조 원에 육박하지만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는 등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만큼 돈이 되는 시장이고 대중화되어있다. 나이키코리아는 이 리셀을 트렌드가 아닌 트러블메이커로 규정한 것이다.
STRATEGY 1 _ JUST DO IT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Phil Knight)가 자서전 《슈독(SHOE DOG)》에서 밝힌 창업 과정을 보면 ‘Just Do It’ 그 자체다. 무모한 집념은 기존 업계 1위 아디다스를 꺾을 수 있던 힘이 됐다. 오는 10월부터 적용되는 나이키코리아의 약관도 ‘Just Do It’이다. 리셀을 막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울 기세다.
  • 재판매 일체 ; ‘재판매를 위한 구매’를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제품을 재판매하거나 재판매하려는 의도로 제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단순히 리셀 업자뿐 아니라 사실상 모든 경우의 재판매를 막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 증거와 믿음 ;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나이키코리아가 발견한 증거나 믿음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 상황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의심의 대상이 되면 계정 제한, 주문 취소, 계정 중지·폐쇄 등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

EFFECT _ 헛발질

이 공지는 ‘스니커헤드(Sneaker Heads)’, 리셀 플랫폼, 리셀러 모두에게 파장을 불렀다. 나이키의 공지대로라면 다음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드로우에 직접 당첨되지 않고는 희소성 있는 신발을 결코 살 수 없다.
  • 크림, 솔드아웃, 아웃오브스탁 등 국내 리셀 플랫폼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 리셀러라는 증거 수집과 판단의 기준이 불명확해 일반 구매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 리셀 시장을 모니터링하겠다는 얘기는 없다. 그러나 증거 수집을 위해 활용될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일반 중고 거래와 리셀은 명확한 구분이 어려운데 개인 간 발생하는 모든 거래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불분명하다.

ANALYSIS 1 _ 나이키를 위한 변론

불만은 다양하게 파생된다. “신발을 더 찍어내면 안 되나?” 안 된다. 희소성이 감소하고 불필요한 제작을 하게 된다. 순환 경제를 생각하면 친환경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드로우 말고 다시 선착순 판매를 하면 안 되나?” 안 된다. 이는 드로우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 브랜드에 따라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구매 기회를 임의 부여하는 드로우 혹은 래플(raffle)은 이미 나이키를 통해 효과적 마케팅 수단임이 입증됐다. 제품의 희소성을 유지하면서도 제품 획득을 위한 ‘공정한 기회’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희소성 높은 한정판의 오픈런 현장에서 몇 날 며칠 노숙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디지털 전환과 함께 응모 절차를 간소화한 드로우는 이 장벽을 허물었다. 공평한 기회를 위해 도입한 드로우에 부정 행위가 생긴다면 나이키는 막을 명분이 있다. 매크로를 통해 다량의 임시 계정을 생성하거나 과도한 웃돈으로 일반 소비자의 접근이 어려워져서는 안 된다.
ANALYSIS 2 _ 리셀을 위한 변론

사실 리셀이 성행한 이유는 상품의 희소성 때문이고 이는 나이키의 드로우가 원인 제공을 했다. 게다가 나이키는 브랜딩에 있어 희소성의 수혜를 봤다. 나이키에 한정한 사례는 아니지만 구찌(GUCCI)나 리바이스(Levi’s)는 리셀 플랫폼과 협업해 리셀 플랫폼에 상품을 제공하거나 자체 리셀 사이트를 열기도 했다. 리셀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고 상품을 순환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나이키 역시 재판매 되는 가격이 사실상 나이키 제품의 시장 가격으로 통용되는 바, 나이키가 재판매를 위한 구매를 막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드로우를 통해 구입한 한정 수량 제품이 막상 다시 신어보니 사이즈가 잘 맞지 않거나 색상 등을 이유로 변심할 경우 중고 거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실제 중고 거래를 막거나 이를 사전에 판단할 방법도 없어 선언적 구호에 가깝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리셀을 막는 것은 드로우를 없애야 가능한 일이다.
KEYPLAYER _ 쿡

신발을 광적으로 수집하는 ‘스니커헤드’와 악성 리셀러를 의미하는 ‘되팔렘’[1]의 싸움은 ‘에어 조던(Air Jordan)’ 시절부터 고질적 문제였다. 악성 리셀러들은 이미 일부 유명 제품에 한해 시세 조작까지 가능했다. 나이키코리아의 조치가 뒤늦고 갑작스럽게 여겨지는 이유다. 나이키가 사실상 리셀을 부추겨온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동시에 재조명되는 것이 ‘쿡’이다. 지난 2월 14일 오후 4시부터 판매가 예고된 ‘나이키 에어 포스 1 LV8’은 상품 판매가 품절 상태로 시작됐다. 음지의 나이키 리셀 시장에서 활동하는 ‘쿡’들은 일종의 리셀러로, 소위 ‘쿡방’에서 수백만 원의 회비를 내며 활동한다. 이들은 나이키 관계자로부터 상품을 발매 전에 살 수 있는 백도어 링크를 제공받는데 그 과정에서 쿡들이 물건을 전량 매수해 벌어진 사태다. 나이키가 단속해야 할 적은 외려 내부에 있었다.
RISK _ 나이키의 위기
조던의 점유율을 넘긴 아디다스 ©finance.yahoo.com
나이키가 드로우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에는 위에 언급한 표면적 이유뿐 아니라 복잡한 사정과 전략 변화가 있다. 칸예 웨스트(Kanye West)를 놓친 나이키[2]는 2015년 1분기부터 성장률이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2017년 기준 나이키 매출의 44퍼센트를 차지했던 북미 시장에서는 2017년부터 성장률이 10퍼센트 아래로 떨어졌고 2018년에는 역성장을 보였다. 점유율도 떨어졌다. 2016년 나이키의 북미 시장 점유율은 39퍼센트, 조던은 9.4퍼센트로 도합 58.4퍼센트의 점유율을 보였고 아디다스는 6.6퍼센트에 불과했으나 2017년 상반기 조던은 아디다스에 역전을 허용했다. 아디다스는 11.3퍼센트로 올라서고 나이키는 2퍼센트포인트 주저앉으며 굴욕을 맛봤다. 나이키는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STRATEGY 2 _ 직접 팔 결심

도매 판매(wholesale) 중심의 유통 구조를 가졌던 나이키는 2017년 회계연도 실적 발표 후 ‘D2C(Direct to Customer)’ 강화를 통해 유통을 효율화하겠다고 발표했다. 2025년까지 전체 매출의 60퍼센트를 D2C에서 발생시키겠다는 포부를 덧붙였다. 이전까지 3만 개의 유통업체와 11만 개에 달하는 나이키 취급점이 있었으나 이를 40개 유통업계 위주로 재편한 것이다. 거기에 ‘NIKE+’ 멤버십을 출시해 고객을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드로우를 하려면 가입이 필수인데, 나이키 플러스의 회원 수는 2021년 기준 2억 5000만 명이다. 소비자의 취향이나 정보를 쉽게 수집할 수 있고 패스트패션의 속도로 디자인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 2019년 11월 아마존과 작별하며 나이키는 신발 제조 업체가 아닌, 이커머스 기업으로 거듭났다. 드로우는 디지털 전환과 유통 구조 변화의 결과다. 악성 재고를 양산할 필요가 없이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라인업을 대폭 축소해 한정 발매를 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진 것이다. 오프라인으로 구매 경험을 확장하며 고객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나이키에게 드로우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이다.
INSIGHT _ 공정 거래

지금의 리셀 시장은 시장 경제 초기와 닮았다.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상품은 희소성이나 효용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치를 가진다. 리셀 시장이 성행하기 전, 중고 시장은 상품을 저렴하게 사려는 수요자적 관점에서 이해됐다. 과거 ‘위탁 판매 업체’ 등으로 대표되던 명품 중고 시장도 이 문법을 따랐다. 그러나 고부가가치를 담보하는 한정판 운동화가 게임 체인저가 됐다. 하이엔드 브랜드가 아니어도 문화적 영향력이 큰 한정판 운동화가 접근 가능한 가격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리셀 시장은 데드스탁(deadstock)[3]을 중심으로 기존의 중고 시장과 크게 갈라서며, 한정 수량의 제품에 웃돈을 얹어 팔려는 공급자의 문법을 따르게 됐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세를 형성하고 구매자와 거래자가 합의한 가격에 물건이 거래되지만 현재까지 중간자의 적절한 개입은 없는 상태다. 시장은 맹신의 대상이 아님이 역사를 통해 증명됐다. 공정 거래를 담보하는 제도나 기관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기업이 단속의 주체가 될 순 없다. 나이키의 접근이 공허하고 부적절하게 보이는 이유다. 드로우와 리셀이 숙명의 관계라면 이를 조정할 제3자가 필요하다. 중고 시장을 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된다.
FORESIGHT _ IP 전쟁
 
아직 나이키코리아가 ‘재구매를 위한 구매 금지’ 조항으로 크림과 솔드아웃 등에 전달한 입장은 없다. 그러나 갈등은 언제든 비화할 수 있다. 나이키코리아가 진짜 노리던 것은 악성 리셀러가 아닌 리셀 플랫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나이키 본사는 글로벌 리셀 플랫폼 ‘스탁엑스(StockX)’와 소송 중이다. 시작은 나이키 한정판 스니커즈를 소재로 한 볼트 NFT(Vault NFT)를 스탁엑스가 출시하면서인데 나이키는 스탁엑스를 상대로 맨해튼 연방 법원에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거기에 스탁엑스가 실제 네 켤레의 가품을 판매하고 ‘검증된 정품(Verified Authentic)’ 행택을 달았다며 위조와 허위 광고 혐의로 소송 항목을 추가했다. 스탁엑스에 대한 정조준으로 미루어볼 수 있는 것은 나이키가 상품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RTFKT’ 인수로 웹 3.0 생태계로도 빠르게 진출하고 있는 나이키는 나이키의 이미지를 차용해 성장한 산업에 대해 광범위한 지식재산권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리셀테크의 성장세가 궁금하다면 〈투자의 신〉을, 브랜드와 가품 시장의 관계가 궁금하다면 〈짝퉁 경제학〉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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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성 전매상을 의미한다.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게임 ‘디아블로(Diablo)’ 시리즈에서 인류는 ‘네팔렘(Nephalem)’이라 지칭되는데, 되파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되팔렘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2]
운동화는 스포츠의 대중화와 함께 문화가 됐다.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싸움은 비단 피트니스 열풍에만 기인한 게 아니다. 수많은 길거리 문화 속 드레스코드로 자리매김하며 일종의 ‘거리 문화 쟁탈전’ 양상을 띠었다. 나이키는 마케팅, 특히 광고에 집중했고 ‘에어조던(Air Jordan)’이 적시타를 터트렸다. 상품에 녹아든 스토리텔링과 함께 조던 열풍이 불고 스니커즈 게임은 유명인 쟁탈전이 됐다. 개인의 내러티브는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힙합 문화의 거장인 ‘칸예 웨스트(Kanye West)’를 두고 경쟁했다. 칸예 웨스트가 나이키의 ‘에어 이지(Air Yeezy)’ 이후 나이키로부터 지분 요청을 거절당하자 그는 아디다스로 가 오랜 히트작이 될 ‘이지(Yeezy Boost)’를 안겼다. 이지 부스트는 여러 종이 성공적으로 발매되며 나이키의 대항마로 작용했다.
[3]
중고지만 사용하지 않은 새 상품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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