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가 드로우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에는 위에 언급한 표면적 이유뿐 아니라 복잡한 사정과 전략 변화가 있다. 칸예 웨스트(Kanye West)를 놓친 나이키
[2]는 2015년 1분기부터 성장률이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2017년 기준 나이키 매출의 44퍼센트를 차지했던 북미 시장에서는 2017년부터 성장률이 10퍼센트 아래로 떨어졌고 2018년에는 역성장을 보였다. 점유율도 떨어졌다. 2016년 나이키의 북미 시장 점유율은 39퍼센트, 조던은 9.4퍼센트로 도합 58.4퍼센트의 점유율을 보였고 아디다스는 6.6퍼센트에 불과했으나 2017년 상반기 조던은 아디다스에 역전을
허용했다. 아디다스는 11.3퍼센트로 올라서고 나이키는 2퍼센트포인트 주저앉으며 굴욕을 맛봤다. 나이키는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STRATEGY 2 _ 직접 팔 결심
도매 판매(wholesale) 중심의 유통 구조를 가졌던 나이키는 2017년 회계연도 실적 발표 후 ‘D2C(Direct to Customer)’ 강화를 통해 유통을 효율화하겠다고 발표했다. 2025년까지 전체 매출의 60퍼센트를 D2C에서 발생시키겠다는 포부를 덧붙였다. 이전까지 3만 개의 유통업체와 11만 개에 달하는 나이키 취급점이 있었으나 이를 40개 유통업계 위주로 재편한 것이다. 거기에 ‘NIKE+’ 멤버십을 출시해 고객을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드로우를 하려면 가입이 필수인데, 나이키 플러스의 회원 수는 2021년 기준 2억 5000만 명이다. 소비자의 취향이나 정보를 쉽게 수집할 수 있고 패스트패션의 속도로 디자인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 2019년 11월 아마존과 작별하며 나이키는 신발 제조 업체가 아닌, 이커머스 기업으로 거듭났다. 드로우는 디지털 전환과 유통 구조 변화의 결과다. 악성 재고를 양산할 필요가 없이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라인업을 대폭 축소해 한정 발매를 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진 것이다. 오프라인으로 구매 경험을 확장하며 고객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나이키에게 드로우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이다.
INSIGHT _ 공정 거래
지금의 리셀 시장은 시장 경제 초기와 닮았다.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상품은 희소성이나 효용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치를 가진다. 리셀 시장이 성행하기 전, 중고 시장은 상품을 저렴하게 사려는 수요자적 관점에서 이해됐다. 과거 ‘위탁 판매 업체’ 등으로 대표되던 명품 중고 시장도 이 문법을 따랐다. 그러나 고부가가치를 담보하는 한정판 운동화가 게임 체인저가 됐다. 하이엔드 브랜드가 아니어도 문화적 영향력이 큰 한정판 운동화가 접근 가능한 가격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리셀 시장은 데드스탁(deadstock)
[3]을 중심으로 기존의 중고 시장과 크게 갈라서며, 한정 수량의 제품에 웃돈을 얹어 팔려는 공급자의 문법을 따르게 됐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세를 형성하고 구매자와 거래자가 합의한 가격에 물건이 거래되지만 현재까지 중간자의 적절한 개입은 없는 상태다. 시장은 맹신의 대상이 아님이 역사를 통해 증명됐다. 공정 거래를 담보하는 제도나 기관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기업이 단속의 주체가 될 순 없다. 나이키의 접근이 공허하고 부적절하게 보이는 이유다. 드로우와 리셀이 숙명의 관계라면 이를 조정할 제3자가 필요하다. 중고 시장을 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된다.
FORESIGHT _ IP 전쟁
아직 나이키코리아가 ‘재구매를 위한 구매 금지’ 조항으로 크림과 솔드아웃 등에 전달한 입장은 없다. 그러나 갈등은 언제든 비화할 수 있다. 나이키코리아가 진짜 노리던 것은 악성 리셀러가 아닌 리셀 플랫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나이키 본사는 글로벌 리셀 플랫폼 ‘스탁엑스(StockX)’와 소송
중이다. 시작은 나이키 한정판 스니커즈를 소재로 한 볼트 NFT(Vault NFT)를 스탁엑스가 출시하면서인데 나이키는 스탁엑스를 상대로 맨해튼 연방 법원에 상표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거기에 스탁엑스가 실제 네 켤레의 가품을 판매하고 ‘검증된 정품(Verified Authentic)’ 행택을 달았다며 위조와 허위 광고 혐의로 소송 항목을 추가했다. 스탁엑스에 대한 정조준으로 미루어볼 수 있는 것은 나이키가 상품에 대한 독점적 지위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RTFKT’ 인수로 웹 3.0 생태계로도 빠르게 진출하고 있는 나이키는 나이키의 이미지를 차용해 성장한 산업에 대해 광범위한 지식재산권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