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의 뉴 노멀

9월 29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세계 정치 무대의 여성 리더십이 달라지고 있다. 유럽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들은 지금, 우파 포퓰리즘의 새로운 얼굴이다.

  • 지금껏 현대 정치를 수놓은 여성 지도자들은 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왔다.
  • 최근 경제 위기 속에 탄생한 우파 포퓰리즘의 새로운 얼굴은 모두 여성이다.
  • 정치 극단화 속에 여성 리더십의 대표성과 가치는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

REFERENCE _ 줄리아 길라드
줄리아 길라드의 ‘여성 혐오에 관한 연설(Misogyny Speech)’ ⓒGuardian News
호주 최초이자 아직까지 유일한 여성 총리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는 2010년에 당선됐다. 당시 여론은 그의 정치 비전이 아닌 그의 사적 영역에 관심이 높았고, 언론은 이에 맞춰 성차별적 가십을 쏟아냈다. 한국 언론도 예외가 아니었다. 같은 노동당의 케빈 러드 전 총리에게 향하던 정치 공세도 길라드를 향할 땐 여성 혐오의 서사가 덧씌워졌다. 토스카 루비 감독의 영화〈강력한 여성 지도자(Strong Female Lead)〉는 이 과정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약 3년의 짧은 재임 기간 동안 그야말로 ‘일 하는 정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 교육 투자 및 장애인 지원, 탄소 가격 책정 등 무려 570개의 법안을 상원에서 통과시켰다. 2012년, 의회에서 15분간 발언한 ‘여성 혐오에 관한 연설’은 그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기며 그를 세계 여성 정치인들의 영원한 롤모델로 만들었다. 세계 정치의 여성 리더십은 우리에게 때로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같은 중량감과 포용으로,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 같은 추진력으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같은 강직함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최근 한 여성 지도자의 탄생은 여권(女權) 후퇴와 함께 유럽의 결속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KEYPLAYER 1 _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의 ‘최초 여성 총리’지만 그 상징성은 묻혔다. ‘여자 무솔리니’,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인’ 등 언론의 수사(修辭)는 극단적이다. 그는 바로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 ‘이탈리아의 형제들(Fdl·Fratelli d'Italia)’ 대표다. 지난 9월 25일에 열린 이탈리아 총선에서 우파 연합이 상·하 양원 과반을 확보하며 우파 연합 제1당 대표로서 차기 총리의 자리를 굳혔다. 이탈리아로서는 무솔리니 이후 79년 만에 맞는 극우 성향의 지도자다. 그의 정치 데뷔는 ‘국가파시스트당(PNF·Partito Nazionale Fascista)’을 전신으로 하는 ‘이탈리아 사회운동당(MSI·Movimento Sociale Italiano)’이다. 무려 15세에 가입하기 시작해 중도 우파 ‘전진 이탈리아(FI·Forza Italia)’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내각에서 최연소로 청년부 장관을 지냈다. 2012년에 그는 지금의 Fdl당을 창당했는데 주요 정책은 불법 이민 반대, 국경 강화, 동성 결혼 및 동성혼 육아 반대, ‘정상가족’[1] 개념 지지 등이다.
CONFLICT _ Sono una donna..!
Io Sono Giorgia (Giorgia Meloni Remix) ⓒMEM & J
“저는 여자이고, 엄마이고, 이탈리아인이고, 크리스천입니다” 2019년 10월 그가 동성 육아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한 연설은 절묘한 리듬감으로 인해 리믹스로 재탄생했다. 멜로니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미혼모 가정에서 자란 미혼모이자 워킹 맘이지만 이에 대한 대표성을 기대하는 이는 적다. 이탈리아 여성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예술계의 반발이 크다.[2] 성 소수자 인권을 중시하지 않고 낙태에도 부정적이었던 그의 과거 발언들 때문이다. 그는 총선 선거 운동 과정에서 이탈리아 북부 피아첸차시에서 발생한 이주자 성폭행 사건 영상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게재했다가 역풍을 부르기도 했다. 반이민 선전과 더불어 성폭력에 대한 비판을 위해서였지만 동시에 2차 가해였기 때문이다.
EFFECT _ 위기의 유럽연합?

극우 정당의 득세는 세계, 특히 유럽의 긴장 수위를 올린다. 굵직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은 더 그렇다. 《가디언》은 “유럽이 숨을 멈추고 있다”고 표현했다. 러시아 등에 자칫 유럽의 균열을 예고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멜로니의 이탈리아는 유럽연합(EU)을 흔들 것인가? 우려와 달리 EU에 대한 멜로니의 입장은 중립적이다. 러시아에 대해서도 일단은 부정적이다. 우려를 의식한 듯 그는 현지시간 27일 밤 트위터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폭적 지원을 약속하는 트윗을 남겼다. 정치적로는 대립하지만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우크라이나를 향한 무기 지원을 결정했을 때도 이를 지지했다. 우려되는 지점이 없는 건 아니다. 함께 우파 연합을 구성하는 지도자들은 친러, 친푸틴으로 분류된다. 앞서 언급한 베를루스코니와 ‘동맹(Lega)’의 마테오 실비니 대표가 그렇다. 이들은 차기 내각에서 중용될 가능성이 커 EU에 부담을 안길 수 있다. 740만 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난민 문제, 우크라이나를 향한 경제적 지원, 유로존의 결속에 있어, EU 국가들이 이탈리아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이유다.
ANALYSIS _ 극우 포퓰리즘의 생존법
  • 멜로니를 향한 EU의 시선이 기우가 아닌 이유가 있다. 멜로니의 노선 정리는 최근 정계에서 득세하는 우익 포퓰리즘의 전략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초접전을 벌인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대표와도 맞아떨어진다.
  • 르펜은 대선을 앞두고 공개 석상의 발언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거리를 뒀다. RN보다 더 극단적인 우파 포퓰리즘 정당 ‘재정복!(Reconquête!)’의 당수 에릭 제무르가 푸틴 리스크로 침몰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 EU 탈퇴에 가까웠던 기존 입장도 ‘EU 개혁’으로 선회했다. 장외에 있을 땐 여타 반이민 정당에 가까운 당론을 제시하다가도, 정권 창출이 가능할 것 같으면 유럽의 ‘색깔론’에 해당하는 국제 이슈는 모호성을 띠는 것, 그리고는 민생 이슈로 소구되는 ‘감세 정책’을 내세우는 것이 지금 유럽 포퓰리즘의 생존 전략이다.[3]
  • 실제 Fdl의 집권에 유럽 각국의 극우 정당들은 환영 인사를 보내고 있고, Fdl은 유럽의 우파 정당 연합인 ‘유럽 보수와 개혁(ECR·European Conservatives and Reformists)’에 소속된 ‘스웨덴민주당(SD)’, 폴란드의 ‘법과정의당(PiS)’, 스페인의 ‘복스(VOX)당’ 등 극우 정당과 여전히 연대 중이다.

KEYPLAYER 2 _ 리즈 트러스
총리가 된 후 리즈 트러스의 첫 연설 ⓒBBC
르펜, 멜로니에 이어 영국에서도 여성이 우파의 새 얼굴이 됐다. 현지시간 9월 6일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의 뒤를 이어 영국의 78대 총리가 된 리즈 트러스(Liz Truss)다. 언론은 보수적 색채가 짙은 그를 ‘제2의 마거릿 대처’로 부른다. 트러스는 독특한 인물이다. 반(反)대처 성향이던 학창 시절을 지나 보수당에서 데뷔했고 교육 장관, 환경 장관, 법무 장관, 재무 장관을 거치며 정치 이력을 골고루 쌓았다. 존슨 전 총리가 사임하며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리시 수낙과 경선 결선을 벌였는데, 결국 보수당 당수가 됐다. 자신을 ‘정통 보수’로 소개한 트러스는 극우 성향은 아니지만 우파 포퓰리즘의 일부 문법을 답습했다. 그는 부유층 감세, 에너지 가격 상한제,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등의 의제로 수낙 전 장관을 눌렀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임기 시작부터 세계 경제를 충격에 빠뜨린 감세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STRATEGY _ 미니 버짓

트러스 내각은 ‘Mini Budget’이라 불리는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는데 1972년 이후 가장 파격적인 감세안이다. 전체 감세 규모가 약 450억 파운드(70조 원)에 이른다. 영국 신임 재무장관 쿼지 콰텡은 감세를 통해 2.5퍼센트의 성장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다. 에너지 부문에서 6개월간 600억 파운드를 지출하는 대규모 지출안을 함께 발표했는데 재원으로 영국의 국채인 ‘길트(gilt)’가 거론되고 있다. 즉, 감세와 차입으로 성장을 유도하려는 경기 부양책을 선택한 것이다. 감세 정책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 2023년 4월부터 소득세율 19퍼센트로 1퍼센트포인트 인하.
  • 2023년 4월부터 고소득자에 적용되는 소득세 최고 세율 40퍼센트로 5퍼센트포인트 인하.
  • 주택 구입 시, 부동산 인지세[4] 부과 기준 상향.
  • 법인세 25퍼센트로 인상하려는 계획 폐지 후 현행 19퍼센트로 유지.
  • 영국 노동자들에게 지난 4월부터 부과된 국민보험료 1.25퍼센트 추가 인상 분 올 11월 6일부터 폐지.

MONEY _ 돈의 매운 맛

멜로니와 트러스, 세계 무대에서 이제껏 보아 온 여성 리더들과는 사뭇 다른 두 여성 지도자는 새로운 리더십으로 자국과 유럽을 구할 수 있을까? 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돈이다.
  • 이탈리아 ; EU의 이단아가 될지 모를 이탈리아지만 당장 독자 행동을 하긴 어렵다. EU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회원국을 위해 마련한 7500억 유로 규모의 ‘경제 회복 기금’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다. 경제 지원이 절실한데, 이 경제 회복 기금 중 무려 약 2000억 유로(276조 원)가 이탈리아에 배정됐다. 문제는 이 기금이 2026년까지 이탈리아에 분할 지급된다는 점이다. 국가 부채 비율이 국내 총 생산(GDP)의 150퍼센트에 달하는 이탈리아는 EU의 개혁 조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경화에 대한 우려는 줄어들지만 EU의 압박 수위에 따라 멜로니 내각의 입장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 영국 ; 영국의 경제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 8월 영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9.9퍼센트를 기록하며 40년만에 가장 가파르게 상승했다. 영국 중앙 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은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는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빅스텝을 밟는 등 금리 인상에 주력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정부는 돈을 풀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이 불협화음을 내는 것이다. 파운드화 가치는 브렉시트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고 영국의 국채 금리는 급격한 매도로 인해 현지시간 27일 기준 5퍼센트를 돌파하는 등 가격이 폭락하고 있는데 트러스 내각의 감세안·지출안은 여기에 불을 지핀 꼴이 됐다. 정부의 신뢰도가 감소하며 재정 건정성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이다.[5] 국제통화기금(IMF)은 현지시간 9월 28일 트러스 내각의 정책이 인플레이션과 불평등을 부추긴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INSIGHT _ 위기의 리더십

세계 정치 무대의 현대 여성 지도자들은 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왔다. 성장 일변도의 신자유주의 속에서 외면 당하던 기후 위기와 불평등, 다양성 등의 의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는 글로벌 거버넌스가 실종된 21세기에 많은 국가가 국제적으로 협력을 도모해볼 만한 쟁점들이다. 그러나 르펜, 트러스, 멜로니로 이어지는 최근의 유럽 여성 정치 지도자들은 우파 포퓰리즘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고 있다. 여성 리더십의 대표성과 가치는 우파 포퓰리즘 안에서 쉽게 훼손될 수 있다. 여성 지도자의 탄생이 세계의 후퇴를 의미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들은 녹록지 않은 경제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분열하는 세계에 필요한 포용적 의제는 위기의 리더십에서 나오지 않는다.
FORESIGHT _ 약한 고리와 새로운 얼굴

극우 포퓰리즘은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 실제 이들 정당의 의제가 실제 표를 준 모두에게 소구된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를 포함한 많은 유럽의 의원내각제 국가들은 정강·정책이 아닌 기술 관료 중심으로 구성된 ‘테크노크라트 내각(Governo Tecnico)’의 성격 때문에 정치 공학이 강조된다. 상대적으로 극우 정당이 득세하기 쉬운 것이다. 게다가 멜로니는 경제통[6]임을 자랑하던 드라기 총리가 이탈리아 경제를 수습하지 못한 것의 수혜를 입었다. 트러스의 경우처럼 그 역시 이탈리아의 경제 위기가 당선에 호재로 작용헸다. 가장 주효했던 것은 기존 정치인이 아닌 새로운 얼굴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다. 《폴리티코》 유럽판의 한 논평은 항상 민주당(PD)에 투표해 오던 진보 성향 지역 ‘레드 벨트’의 주민들이 멜로니에 표를 준 이유를 밝힌다. “그들은 더 이상 서민과 노동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기성 정당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성 정치가 포섭하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은 쉽게 극단화되거나 새로운 얼굴을 찾게 된다. 지금의 유럽 상황을 보면 그 새로운 얼굴은 또 다른 여성 정치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포캐스트에 등장한 마린 르펜과 프랑스 정치에 관해서는 〈톨레랑스는 죽었다〉를, 트러스 총리의 전임자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리더십이 왜 실패했는지 궁금하다면 〈쇼는 계속되지 않는다〉를, 일하는 여성을 위한 새로운 규칙이 궁금하다면 《뉴 룰스》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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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인과 혈연으로 이루어진 부모와 자식 관계(주로 4인)를 일컫는 정책 용어다. 우리나라의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는 “가족이라 함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고 규정하는데, 이는 1인 가구 및 비혼의 증가로 구시대적이라 비판받고 있다.
[2]
이탈리아 예술계는 반(反)파시즘 색채가 강하다. 한 인플루언서도 이에 동참했는데, 276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지닌 모델 치아라 페라그니(Chiara Ferragni)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멜로니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투표 독려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3]
이같은 이미지 쇄신은 최근 스웨덴의 극우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총선을 승리하며 제2 정당으로 안착할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4]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내야 하는 거래세인데 현재 약 2억 원 이상의 집을 살 경우 인지세를 내야 한다. 그 기준이 두 배 가량 올라 4억 원 이상의 집을 살 때만 인지세가 부과된다. 첫 주택 구매자의 경우 4억 7000만 원(30만 파운드) 이상일 때만 인지세가 부과되는데 이 기준 역시 6억 6000만 원으로 상향된다.
[5]
현재 영국 부채 규모는 1900억 파운드(293조 5700억 원)로 2차 대전 이후 세 번째로 높다.
[6]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출신으로 2011년 유로존 위기를 타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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