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끌 시간

10월 6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전기요금이 올랐지만, 한전의 적자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 재앙을 막기 위해 정치 논리는 접어둬야 한다.

  • 고공행진중인 물가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 인상이 단행되었다. 그러나 한전의 경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둘러싼 논란 너머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 풍요의 시대는 끝났다. 저렴한 전기의 가격을 전제로 한 산업구조부터 생활 습관까지,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

BACKGROUND_ 전기요금

올랐다. 10월의 시작과 함께 전기요금이 오른 것이다. 4인 가구 월평균 사용량 307kWh를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10월 대비 월 7700원이 오른 셈이다. 당장 물가 얘기가 나온다. 안 그래도 고공행진 중인 물가상승률을 더 밀어 올린다는 우려다. 그런데 아직도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전력의 경영상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한전의 상반기 영업적자는 14.3조 원을 기록했고 올해 적자 규모는 35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MONEY_ 빚더미

한전은 35조 적자를 보게 된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구당 8만 원씩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설명한다. 물론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 될 가능성도 없다. 정부는 전기요금을 가파르게 올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민의 필수 서비스인 전기요금을 적자 대응을 위해 단기간에 올린다면 국민은 엄청난 부담에 직면한다”고 못 박았다. 결국 한전은 빚을 더 지는 쪽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8월까지 19.8조 원어치 발행한 사채 규모를 늘리는 것이다. 이 정도면 원래 회사채 발행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한전의 경우는 특수하다. 정부가 지급 보증을 서기 때문에 빚을 더 질 수 있다. 채권시장에서는 ‘시장 교란’이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다만, 한전이라는 기업의 가치는 분명히 하락하고 있다. 
WHY_ 누가 전기요금을 결정하는가

전기를 안 쓰고 살 수 없는 시대다. 그런데 전기를 만들어 파는 기업이 왜 이렇게 적자의 늪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오랜 민영화 추진 과정에도 불구하고 한전이 단순한 사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1]일반적인 기업이라면 원가산정을한 후 어느정도의 이윤을 붙여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한전의 가격결정구조는 전혀 다르다. 한마디로, 한전은 가격 결정의 권한이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은 물론이고 전기요금 및 소비자보호 전문위원회와 전기위원회라는 기구의 심의와 자문을 거치게 된다. 한전이 다음달 부터 한달에 8만원씩 전기요금을 올리겠다고 신청을 해도 물가 영향을 우려하는 기재부가 막아서고, 수출 실적에 악영향을 우려하는 산업부가 막아서고, 소비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전문위원회가 막아선다는 얘기다. 결국 한전은 원가에도 못미치는 가격으로 전기를 팔 수밖에 없다. 팔면 팔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CONFLICT_ 지속가능한 한전

이 구조는 나쁜가? 소비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급률은 18퍼센트 정도다. 해외 상황에 따라 에너지 가격이 요동을 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충격을 한전이나 한국가스공사 등이 중간에서 흡수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났다고 해서 전기요금이 8만원 오르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이 구조는 지속 가능한가? 올해 상반기의 적자 폭을 감안하면 답은 ‘그렇지 않다’가 될 공산이 크다. 국가의 세금으로 떠받칠 수 있는 적자 폭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REFERENCE_ 유럽의 겨울

이 구조가 주저앉게 된다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다음 수순은 전기 요금을 시장원리에 맡기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휘발유의 가격이 국제 정세에 따라 출렁이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런데 지금 전기 에너지는 생존의 문제이다. 폭염과 혹한이 반복되는 기후 위기의 시대, 냉난방을 충분히 하지 못해 생명에 위협을 받는 사람들은 지금도 존재한다. 전기 요금이 온전히 시장에 의해 결정된다면 위협의 크기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유럽이 겪고 있듯 말이다.
RECIPE_ 원전?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방법은 두 가지다. 원가를 낮추거나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먼저 원가절감을 살펴보자. 원자력이 싸다. 신재생에너지는 비싸다. 2019년 발전원별 구입단가를 보면 원자력이 58.39원/kWh로 가장 저렴하고 신재생에너지는 174.47원/kWh이었다. 구입단가가 3배라면 경제성만 생각했을 때는 원전을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단기적으로는 유효한 전략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따져봤을 때에는 그렇지 않다. 노후 원전 처리 비용이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같은 재난을 막을 안전 비용 등까지 계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RISK_ GREEEEEEEEN

또한, 단기적으로 유럽이 원전과 천연가스를 ‘그린’으로 정의하는 무리수를 뒀지만, 전쟁이 끝나고 상황이 호전되면 ‘그린’의 정의는 다시 까다로워질 수 있다. 게다가 최근 삼성전자까지 참여를 선언한 RE100신재생에너지 사용이 거스를 수 없는 산업적 흐름임을 감안한다면, 신재생에너지가 비싸다고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극단적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신재생에너지의 절대량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생산 시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가능할 수 있다. 대기업 10곳 중 3곳이 글로벌 고객사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를 받았다. 수출을 하려면 이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7.5퍼센트 수준이다. OECD 평균은 30퍼센트다. 결국 원전이냐 아니냐는 합리적인 질문이 아니다. ‘아직’ 원전이냐 아니냐가 맞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비용을 ‘지금’ 지불할 것이냐 나중에 지불할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원전에 관한 논란은 진보와 보수, 여와 야의 문제가 아니라 비용과 타이밍의 문제라는 얘기다.
FORESIGHT_ 전기가 비싼 시대

원가 절감이 힘들다면 결국 가격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이미 전기료 상승이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재계에서 나온다. 맞는 얘기다. 기업들이 지금처럼 전기를 쓴다면 말이다. 예를 들어 현대제철은 우리나라가 쓰는 전기량의 2.5퍼센트가량을 소비하고 있다. 쇠를 녹이는 용광로를 전기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이 싸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애당초 전기요금이 비쌌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할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기 소비 분야인 반도체, 철강, 화학 분야 등도 전기를 값싸게 쓸 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폐기하고 새로운 생산 방식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다.
INSIGHT_ 절약이라는 오래된 해법

산업 분야의 혁신만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는 않다. 우리도 정말 낭비 없이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지의 문제는 다시 점검해야 한다. 사람의 근력과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경우도 간편하게 전기의 힘을 빌리는 경우는 없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결국, 요금 인상이 전기 사용 습관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가정용 전기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전기의 경우 최소 사용량까지는 필수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을 지낸 조용성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전기요금 현실화와 함께 취약계층에는 에너지 바우처 등을 지급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필요 없는 전등을 꺼야 한다는 생각,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헤어드라이어를 쓰지 않는다는 생각, 꼭 필요하지 않은 전자 기기는 쉽게 구매하지 않는다는 생각. 당연하지만 현실이 되지 않았던 이 생각들이 현실이 되어야 할 때이다.


에너지 위기는 우리에게도 현실입니다. 석탄으로 회귀한 유럽의 길을 우리도 따라 걷고 있습니다. 그린의 정의를 다시 쓴 유럽의 현실이 궁금하다면 문제적 단어, GREEN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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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현에 사실을 잘못 전달할 여지가 있음을 인지하여 다음과 같이 수정하였습니다.

(2022. 10. 07 08:10)

그 이유는 민영화에도 불구하고 한전이 단순한 사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 그 이유는 오랜 민영화 추진 과정에도 불구하고 한전이 단순한 사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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