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감각으로

10월 11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으로 백색소음을 듣는 시대다. 가상과 현실을 잇는 콘텐츠에 필요한 건 어떤 소리일까?

  • 전 세계가 소리와 음향 시장에 주목한다.
  • 전기차는 듣기 좋은 주행 소음을 만드는 한편,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대중화됐다.
  • 현실의 감각이 가상으로 이동하는 시대, 음향 시장의 성장은 무엇을 말하는가?

MONEY_ 170억 달러

소리는 인간의 감각이다. 맛이 브랜딩의 전략이 되고, 보는 것이 콘텐츠 유통에 뉴노멀을 제시한 것처럼 소리도 시장의 전략으로 편입했다. 먹는 것은 인간 역사에서 언제나 거래의 대상이었다. 화질과 미장센 경쟁은 이미 한 세기 전에 시작된 일이다. 미래가 마주한 변곡점은 무엇보다 소리다.
  • 하드웨어 ; 시장 조사 기관 모르도르 인텔리전스(Mordor Intelligence)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2020년 오디오 장비 시장 규모는 121억 달러였다. 2026년에는 170억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 내다봤다. 자동차 오디오, 홈 오디오, 마이크 분야에서 큰 성장이 예상된다.
  • 기술 ; 하드웨어 뿐 아니라 관련 신기술도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음성 인식 기술은 연평균 21퍼센트 성장할 것이라 추산되고, 국내 음향 스타트업 ‘가우디오 랩’은 네이버, 삼성 등의 지원에 힘입어 169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DEFINITION_ 음향 기술

음향 기술은 소리를 만들거나 가공해 듣기 좋게 하거나 몰입도를 높이는 기술을 뜻한다. 최근의 음향 기술은 음악이나 영상 등의 콘텐츠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접목되고 있다.
  • 전기차 ; 전기차에는 주행 소음이 없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대비 주행 소음이 20데시벨 가량 작다. 주행 소음은 보행자의 안전과도 직결되며, 자동차를 운전하는 감각을 약화시킨다. BMW는 주행음을 만들기 위해 세계적인 영화 음악 감독 한스 짐머(HANS ZIMMER)와 손을 잡았다. 제네시스는 주행자의 속도에 맞춰 몰입도를 높이는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을 선보였다.
  • 메타버스 ; 메타버스에서도 음향 기술이 다양하게 적용된다. 네이버는 음향 스타트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했으며 크래프톤은 자체 R&D를 진행했다. 특정 메타버스 공간에 들어가면 해당 공간에 어울리는 배경음이 나오고, 캐릭터가 메타버스 안의 책장을 넘기면 랜덤한 종이 소리가 구현되는 식이다. 음성 변조와 인식, 변환 등의 기술도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하다.

REFERENCE_ 노이즈 캔슬링

한편으로 하드웨어에서 비약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노이즈 캔슬링 기기였다. 2019년 출시된 대표적인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인 에어팟 프로는 작년 2분기에만 천만 대 이상 판매고를 올리며 무선 이어폰 시장을 견인했다. 노이즈 캔슬링은 마이크에서 외부의 소음을 감지해 해당 소음과 반대되는 파형을 발생시켜 소음을 상쇄하는 기술이다. 시끄러운 지하철이나 도로에서도 문제없이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볼 수 있다.
STRATEGY_ 음악이 된 소리

노이즈 캔슬링 시장의 성장과 메타버스 및 전기차를 위한 음향 작업은 일견 양립하기 어려운 현상처럼 보인다. 어딘가는 듣기 좋은 소음을 만들고 누군가는 현실의 소음을 제거한다. 현실의 소리는 물리적 인과가 꽤나 명확하다. 빛에 의해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비치는 이나, 확실한 입자가 없다면 전하기 힘든 과는 다르다. 버튼을 누르면 버튼의 장치와 장치 사이에서, 손가락으로 종이를 넘기면 지문과 종이 사이에서 마찰음이 발생한다. 이런 물리적 소리는 음악과 다르다. 의도적으로 선율을 만드는 음악과 달리 현실의 소리는 때로는 불규칙적이고 우연하다. 지금의 음향 기술의 발달 방향은 소리를 음악으로 대하는 것에 가깝다.

BACKGROUND_ 사운드스케이프

어쩌다 소리는 음악이 됐을까? 지금의 소리는 많은 이에게 감각의 기쁨보다는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1960년대 말, 캐나다의 작곡가 머레이 쉐이퍼(Murray Schafer)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인간과 소리, 도시와 풍경 사이의 관계를 재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소리는 다양한 혼합을 거쳐 하나의 풍경으로 재탄생한다. 지금의 사운드스케이프는 어떤 모습일까?

  • 도시 ; 머레이의 사운드스케이프는 50년 간 고도의 산업화와 발전을 거치며 크게 바뀌었다. 수도권 과밀화는 점차 심해졌고 그만큼 도로에는 더 많은 차와 오토바이가 달렸다. 지난 3월, UN환경프로그램은 도시 소음 공해로 인한 피해를 새로운 환경 위협이라 정의했다. 프랑스는 7개 도시에서 과도한 소음을 내는 차량을 구분하는 센서를 실험 중이다. 지금의 도시는 기분 좋은 소리 풍경과 멀어졌다.
  • 스트레스 ; 한편으로 사운드스케이프의 조화에서 오는 편안함은 정제된 사운드 콘텐츠 형태로 정착했다. 조사 결과, 두 명 중 한 명의 현대인은 일상생활에서 심각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이런 현실에서 CALM과 같은 명상 어플이 제공하는 편안한 자연의 소리,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에서 들리는 백색 소음의 인기는 당연한 결과다.

EFFECT_ 경험
  • 경첩 ; 결국 지금 기술과 시장이 주목하는 소리는 정보를 전하는 매개체보다는 현실과 가상을 잇는 경첩에 가깝다. 판데믹은 실제 경험의 폭을 축소했고, 사람들은 ASMR과 같은 극대화된, 하지만 듣기 좋은 소리로 경험의 한계를 극복한다.
  • 감각 ; 한편, 소리만 이러한 감각 고도화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인위적으로 촉각을 구현하는 햅틱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햅트엑스(HaptX)’는 VR 장갑을 통해 가상현실에 촉감을 도입했다. 2022 애플 디자인 어워즈에서 수상한 어플리케이션인 ‘Not Boring’ 시리즈는 햅틱과 3D 그래픽를 통해 매일 쓰는 타이머, 습관, 날씨 어플에 실제 버튼을 누르는 듯한 감각을 부여했다.

INSIGHT_ 가상을 위해 필요한 것

소리의 의미는 계속해서 변했다. 사냥과 채집으로 하루를 버티던 때의 발자국 소리는 적의 침범이나 야생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시그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발자국 소리는 배경음에 가깝다. 이정권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소리가 비즈니스 전략이라고 정의한다. “향후 중요한 것은 일종의 매개체를 이용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또는 기계와 기계가 상호 작용을 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물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현실로 침투해오는 미래에 둘을 끈끈하게 연결시키는 건 무엇보다도 감각이다. 자동차는 내가 달리는 속도에 맞추어 적당한 주행 소음을 만들어 준다. 메타버스라는 무한의 세계를 달리면서도 사용자가 실제로 그 곳을 달리는 것처럼 현실감을 촉각과 소리로 구현해야 한다. 플래그십 스토어와 패션 브랜드의 F&B 사업, 체험 위주로 재편된 마트도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지금, 소리라는 감각은 가상을 현실적으로 완성하는 요소다.
FORESIGHT_ VR헤드셋

미래의 가상은 색과 소리, 움직임과 촉각 모두가 종합적으로 구현된 VR(Virtual Reality)을 꿈꾼다. 지금 이 가상 현실을 구현하는 하드웨어로 주목받는 것은 VR헤드셋이다.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애플은 VR헤드셋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메타의 VR 기기인 오큘러스는 2021년 기준 누적 판매량이 천만 대를 넘어섰다. 에어팟은 항상 꼬이는 이어폰의 줄이라는 현실적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노이즈 캔슬링과 공간 음향을 통해 기분 좋은 가상을 만들어 냈다. 에어팟이 음향 하드웨어의 뉴노멀이 됐듯, 메타와 애플의 VR헤드셋이 가상의 뉴노멀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감과 가상의 해방감을 연결하는 탄탄한 고리가 필요하다. 그 고리는 편안한 착용감일 수도, 콘텐츠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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