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 주의보
5화

트렌드가 뉴 노멀이 되기까지

2022년 8월, 115년 만의 폭우가 중부 지방을 강타하며 영화 〈기생충〉의 장면이 현실로 나타났다. 30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며, 3000개 이상의 주택과 상가가 침수됨에 따라 재산 피해가 잇따랐다. 특히 반지하 주택에 사는 취약 계층에게 일어난 인명 피해에 많은 국민이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누군가에게는 장마철 잠깐의 불편한 이슈인 폭우가, 취약 계층에게는 심각한 생존의 위협이 된 것이다.

이러한 기상 이변의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사막에서는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홍수가 발생했고, 정작 비가 필요한 유럽은 폭염으로 인해 철로가 휘어지고 가뭄 및 산불 피해를 겪고 있다. 재난 영화에서나 보던 자연재해와 바이러스는 이미 인류에게 현실이 됐으며, 지금과 같이 화석 연료를 사용하고 자연 생태계를 파괴해 나간다면 영화 이상의 심각한 현실이 우리에게 닥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 대란을 유발하며 지금까지 국제 사회가 이끌어 온 기후 위기 대응의 노력을 위축시켰다. 전쟁을 선포한 러시아에 유럽이 제재를 가하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에 대한 반발로 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지금껏 천연가스 발전을 EU 택소노미에 포함시키고 친환경 발전으로의 전환을 도모해 온 유럽은 러시아의 대응에 따라 다시 석탄 발전량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며, 기존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이라는 목표에는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 변화 대응에 쓰일 비용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일까? 언론에서 보도하는 그린워싱의 주체는 대다수가 기업인 탓에, 기업 스스로의 자정 작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그린워싱의 리스크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보다 다양한 주체들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번 장에서는 기업과 정부, 투자자, 그리고 소비자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각 집단별로 살펴보겠다.

 

성과를 소통하는 3단계


기업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면, 그린워싱을 방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녹색 활동을 확대하는 데 있어 기업의 역할은 어떤 주체보다도 중요하다. 기업의 친환경 성과를 논할 때는 크게 세 가지 단계를 고려해야 한다.
 
  •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하는 단계
  • 제품의 친환경 성과를 창출하는 단계
  • 제품의 친환경 성과를 측정하고 관리하는 단계

먼저 제품 생산 단계에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유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아야 한다. 지난 2020년 방영된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선 폐수를 무단으로 방류하는 악덕 기업과, 이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치명적인 질환을 얻게 된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른 드라마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이 레퍼토리는 주로 기업이 사업장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또는 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사업장의 경우 관리는 철저히 이뤄지지만, 제품 생산을 위해 원료를 납품받는 협력사 사업장에서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자연환경보전법, 환경영향평가법 등 환경 보전을 위한 법과 제도를 구비한 국가로, 기업이 기준치 이상의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행위는 위법이다. 또한 위법 수준의 오염 물질이 아니어도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에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영업 활동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자사의 사업장 관리는 물론, 공급망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협력사가 환경 유해 물질을 올바르게 관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기적인 감독을 진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 단계는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다. 기업이 생산한 제품 혹은 제공하는 서비스가 환경에 미친 악영향을 저감하는 일, 다시 말해 실질적으로 친환경적인 효과를 보이는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는 활동이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 기관차, 에너지 효율이 낮아 타제품 대비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가전제품,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식음료품 등 소비자가 제품을 이용하는 단계에서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품이 많다. 소비자의 행동을 기업이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연구 개발 단계에서부터 유해한 원재료의 사용을 최소화하거나 재활용 가능한 원재료로 대체해서 제품을 생산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친환경 성과를 창출했다면, 그 성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하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 혹은 재활용 가능한 원재료의 비중을 높인 제품을 제작한 뒤 동종 업계의 다른 제품과 그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활동이 일회성 노력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3장에서 다룬 LCA 개념을 적용해, 제품 생산 전 과정에서의 친환경 성과를 측정할 필요가 있다. 국내 대표 화학 기업인 LG화학의 경우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2022년까지 국내에서 생산하는 자사의 전 제품에 대한 LCA를 완료하고, 2023년까지 해외에서 생산하는 전 제품에 대한 LCA를 완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1]

이처럼 제품의 전 생애에 걸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거시적인 관점의 친환경 성과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제품의 사후 관리 체계를 전환하려는 노력이 기업 측에서 이뤄지고 있다. 친환경 기업을 표방하는 기업 중에는 데이터를 조작해 소통하는 기업도 있을 수 있고, 혹은 데이터를 정확히 측정하는 데 실패해 잘못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기업도 있을 수 있다. 양자 모두 법적인 제재를 받아야 할 위법 활동인 동시에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동에 해당한다. 친환경 기업으로서의 비전을 가진 경영진이라면, 감성에 호소하는 홍보 전략에 치중하는 대신 정확한 데이터를 산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각종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체계를 갖출 것이 기대된다.

 

친환경도 구심점이 필요하다


모든 기업이 친환경 성과를 창출하고자 정확한 데이터를 도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소통한다면 정부에겐 특별히 주어진 과업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린워싱으로 점차 복잡다단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감독 당국으로서 정부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 기업이 친환경 성과를 올바로 측정하고 공시할 수 있는 기준 제시
  • 해당 정보의 신뢰도를 검증할 인증 제도 마련
  • 잘못된 정보로 소통하는 기업에 대한 규제 및 처벌

특히 위 세 가지 역할을 정부에게 기대할 수 있다. 우선 무엇이 친환경인가에 대한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정부 혹은 정부가 인정한 공신력 있는 단체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기업이 재무 성과를 정확히 측정하고 공시할 수 있도록 한국회계기준원에서는 회계 기준을 제정하고, 정부는 기업에게 그 기준에 부합하는 재무제표를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기업의 친환경 성과에 있어서도 유사한 접근이 필요하다. 2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에선 환경부 주도하에 녹색 활동의 진위를 판단하는 K-택소노미가 제정됐다.

또 한국회계기준원을 포함한 국내 다수 기관들이 국제 사회의 환경 성과를 포함한 비재무 정보 공시 기준에 대한 논의에 관여하고 있다. 비재무 정보 공시 기준의 경우 국제회계기준(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재단 주도로 마련한 국제 기준인 만큼 특정 국가의 의견을 전부 반영하긴 어려우나, 추후 국내 도입을 고려해 각국의 상황에 맞게 유연한 조정이 가능하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은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한국 채택 국제회계기준’이라는 명칭하에 국내 상황에 맞는 상세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현 정부 계획상, 상장 회사들은 2025년부터 순차적으로 비재무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이에 대한 기준으로는 IFRS 재단이 마련한 비재무 정보 공시 기준이 한국 채택 기준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으며, 친환경 성과를 포함한 비재무 정보 공시에 관심이 있는 기업이라면 해당 공시 과정을 계속해서 살필 필요가 있겠다.

기업이 기준에 맞춰 친환경 성과를 측정하고 공시하더라도, 이를 기업의 이해 관계자가 그대로 신뢰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공시에 있어 기업이 의도적으로 혹은 착오로 잘못된 정보를 공시하는 문제를 방지하고자, 독립적인 외부 기관의 감사를 받는 체계는 이미 마련돼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상장 회사들은 의무적으로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하며, 비상장 회사라고 하더라도 매출액 100억 원 이상 등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법적으로 외부 감사를 받을 의무가 있다.

친환경 성과 공시에 있어서도 동일한 접근이 필요하다. 향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기준이 만들어져야겠으나, 정부에 등록된 회계 법인만이 회계 감사를 수행할 수 있듯이 정부가 인정한 외부 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러한 기관에게 요구되는 것은 친환경 성과에 대한 전문성뿐만 아니라 외부 인증에 대한 전문성이다. 국내의 환경 컨설팅 기관은 이러한 환경 전문성과 인증 전문성, 두 역량 중 한 가지 역량만을 갖춘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역량 있는 인증 기관을 확보하고, 해당 기관을 통해 기업이 주기적으로 친환경 성과를 검증받도록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끝으로 기업의 그린워싱에 대한 책임을 묻는 제도가 필요하다. 녹색 데이터가 자본으로 연결되며 그린워싱의 소지도 증가함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입법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친환경 표시 제품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그린워싱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 또한 2021년 4월 기후 변화와 복원력에 관한 소비자 코드 리뷰를 통해 그린워싱에 대한 벌금을 부과하는 규정을 마련한 바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그린워싱에 대한 비판성 기사들이 언론의 사회 면을 장식할 뿐, 아직 이를 처벌할 기준이나 제도는 부재한 상황이다. 녹색을 내세우는 기업들에게 지원과 투자가 몰리고, 친환경 제품을 소비하려는 트렌드 또한 강화되며 친환경 성과를 공시하는 기업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에 정부는 명확한 기준 제시, 외부 인증을 통한 신뢰성 확보, 위반 활동에 대한 엄격한 처벌로 이어지는 3단계 체계를 통해 기업을 감독할 필요가 있다.

 

진짜 녹색에 투자하라


최근 몇 년간 ESG가 화제로 떠오르며 관련된 각종 비즈니스가 생겨나고 있다. 가장 활발한 분야 중 하나가 기업의 ESG 데이터를 취합해 분석하는 것인데, 특히 S&P와 무디스 등 국제적인 신용 평가사들이 관련 전문성을 보유한 회사들을 인수해 해당 비즈니스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S&P는 2021년 SAM(Sustainability Assessment Model)의 지속 가능 경영 평가 부문을 인수해 ESG 평가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있으며, 무디스의 경우 같은 해에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둔 기후 및 재난 리스크 모델링 전문 기업 RMS(Risk Management Solutions)를 20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러한 신용 평가사들은 기업과 국가의 신용 등급을 책정하는 것뿐 아니라 투자자의 투자 의사 결정을 돕는 재무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자산 규모, 매출액, 순이익과 같은 전통적인 재무 정보 제공과 더불어 비재무 정보라고 할 수 있는 ESG 정보를 함께 제공하는 비즈니스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모든 투자의 핵심은 투자하려는 대상의 데이터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투자자들이 운용하는 자산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투자 운용사 블랙록(Blakcrock)이 운용하는 자산은 한화로 약 1경 원이다. 일반인들이 가늠하기도 어려운 금액을 하나의 금융사가 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규모 자산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투자처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다. 투자 대상은 부동산이나 인프라와 같은 실물 자산도 있고, 원유나 금도 있지만 핵심은 과거나 지금이나 기업이다. 세계의 수많은 기업에 투자하려면 해당 기업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의 가치를 산정해 투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친환경 성과를 포함해서 기업의 환경·사회·지배 구조에 대한 정보가 기업의 가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아직 추가 연구가 많이 필요한 주제다. 다만 기업의 재무 정보를 토대로 기업의 가치를 산정해 왔던 방법과 유사하게, 미래에는 기업의 비재무 정보를 토대로 기업의 가치를 산정하는 체계 또한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기업 가치 측정 방법론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의 흐름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해 기업의 가치를 측정하는 현금흐름할인법(DCF·Discounted Cash Flow)이다. 미래를 기준으로 높은 액수의 현금을 낮은 리스크로 벌어들이는 기업의 가치가 높게 측정되는 식이다.

이 방법론을 적용한다면 친환경 성과를 포함한 ESG 성과가 기업 가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친환경 성과를 창출하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많은 현금을 벌어들인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동시에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기업이 높은 리스크로 인해 높은 요구 수익률을 갖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개념적으로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를 학술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등을 비롯해 구체적으로 기업의 어떤 친환경 성과와 어떤 재무적 성과가, 얼마큼의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연구할 사항이 산재해 있다.

현재로선 ESG 정보가 비재무 정보로 분류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역시 재무 정보의 한 영역으로 포섭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사회에선 이미 이러한 기조가 형성되고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 등 유럽과 미국의 주요 연기금들은 투자 대상 기업의 ESG 수준을 평가하고, 이를 투자 의사 결정에 반영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관 투자자인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기후 변화의 주범인 석탄과 관련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에 투자 제한 기준을 도입하고자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우리 Climate & ESG 팀 또한 해당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선진국 사례와 국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안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싸맨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한편 투자자도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그린워싱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기업이 공시하는 정보를 토대로 투자를 진행하고 그에 따라 수익을 내거나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이에, 투자자 차원에서도 그린워싱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다음 두 가지를 중점으로 기업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 친환경 성과를 얼마나 직접적으로 창출하는가?
  • 친환경 성과를 창출하고자 어떤 경영 전략을 펼치는가?

둘은 엄밀한 차이가 있는데, 전자는 기업이 온실가스를 연간 몇 톤이나 줄였는지 분석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해당 기업이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전략, 목표, 체계를 얼마나 높은 수준으로 상정하고 구현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예컨대 테슬라는 전자에 있어서는 전기차 생산 기업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지만 후자에 있어서는 낮은 평가를 받는 편이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문제를 제기한 ESG의 기준 또한 이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국내의 경우 현대자동차는 최근 출시한 전기차 아이오닉 5로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동시에, 향후 제네시스 브랜드 내 모든 차종을 2025년부터 전동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후발 전략 또한 본격적으로 추진 중이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ESG 평가 기관인 DJSI(Dow Jones Sustainability Indices)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친환경 정책을 갖추고 체계를 마련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앞으로도 이러한 성과를 유지해 나간다면, 투자자의 관점에서도 친환경 성과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모범 기업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것이다.

아직은 친환경 성과를 스스로 측정할 수 있는 기업 자체가 많지 않은 만큼, 많은 투자자들이 후자 위주로 정보를 수집해 투자처를 결정하고 있다. 다만 전략과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친환경 성과 창출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투자자들 역시 점차 본인이 투자한 기업이 정부 기준에 맞춰 성과를 공시하고, 이를 투자자에게 정확히 제공하도록 요구할 필요가 있다. 결국 차세대 녹색 투자의 핵심은 기업의 친환경 성과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며, 이는 사회적으로도 그린워싱을 방지하는 가장 실질적인 방안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일상을 질문하는 습관


오랫동안 환경 문제에 목소리를 내 온 사람이라면, 누군가 환경 문제에 함께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다수 기업이 환경 오염에 관한 문제를 외면하고 단순히 법적 요구 조건을 충족하는 데 만족하거나 그마저 지키지 않던 시대가 분명히 있었으며, 압축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일들은 아주 오래 전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나 기후 위기와 환경 오염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 자체가 이제는 달라졌다. 녹색이 곧 자본이 되는 시대에서 기업의 지원, 투자자의 자금, 소비자의 선택이 친환경 기업에 몰리고 있다. 더 이상 그린워싱은 비판을 피해 갈 수 없으며, 그 주축에 선 대중은 스스로 현명한 소비자가 돼야 한다.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소비자는 기업이 제시하는 정보를 토대로 소비 의사를 결정한다. 잘못된 투자 의사 결정으로 투자자가 피해를 입는 것처럼, 잘못된 소비 의사 결정은 소비자에게 피해를 가져온다. 직접적 규제를 가할 수 있는 정부나대규모 자금을 보유해 기업을 움직이는 기관 투자자와 달리, 개인 소비자의 힘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집단의식이 올바른 형태로 구현된다면 기업의 변화를 촉구할 수 있다.

개인으로서 기업이 준용할 친환경 기준이나 이에 대한 정부의 관리 체계를 투자자처럼 알기란 어렵다. 하지만 ‘친환경 기업’을 자처하는 브랜드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접했을 때, 그것이 실제 친환경 성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 친환경 성과를 데이터로 제시할 수 있는가?
  • 친환경 성과를 제품의 전 생애 주기 관점에서 측정하고 표기했는가?
  • 친환경 성과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았는가?
 
그린워싱을 판별하기 위해 주어진 집단별 과제
기업 정부 투자자 소비자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하는 단계 검토 기업이 친환경 성과를 올바로 측정하고 공시할 수 있는 기준 제시 친환경 성과를 창출하는 기업에 투자 친환경 성과를 데이터로 제시한 제품인지 검토
제품의 친환경 성과를 창출하는 단계 검토 해당 정보의 신뢰도를 검증할 인증 제도 마련 친환경 경영 전략을 펼치는 기업에 투자 친환경 성과를 생애 주기 관점에서 측정하고 표기한 제품인지 검토
제품의 친환경 성과를 측정하고 관리하는 단계 검토 잘못된 정보로 소통하는 기업에 대한 규제 및 처벌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부터 친환경 성과를 인증을 받은 제품인지 검토

적어도 이 세 가지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 제품과 기업이라면, 그린워싱으로 인한 피해를 얻을 확률은 낮아진다. 마트에서 음료수를 살 때, 쇼핑몰에서 옷을 고를 때 해당 제품 정보에 제품 생애 주기 관점에서 측정된 친환경 성과가 숫자로 표시돼 있고 인증 라벨이 붙어 있다면 그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제품의 생애 주기와 친환경 성과를 정리해서 소비자 입장에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커뮤니티나 플랫폼이 생긴다면 유용하겠으나, 체계화된 플랫폼은 아직 국내에 등장하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실 인류의 과제는 결과적으로 굉장히 단순할 수 있다. 풍족하고 편한 삶은 소비와 자원을 필요로 하고, 이러한 소비는 결국 환경에 유해한 물질을 배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개인으로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답은 결국 미니멀리즘(minimalism)일 것이다. 3장에서 친환경 제품을 얘기하며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다른 사람과의 비교,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소비 욕망에서부터 조금은 거리를 두고 꼭 필요한 자원만을 사용하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어렵다면, 지속 가능한 지구로 향하는 첫 단계는 비판적인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제품과 서비스의 친환경 성과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갖고 판단하는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기업 차원의 변화를 촉구할 수 있다. 그린워싱을 견제하는 현명한 소비가 취향이나 대세가 아닌 뉴 노멀로 굳어질 때, 사회는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1]
LG화학 지속가능전략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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