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은 사랑이다
완결

비움은 사랑이다

인간의 게으름과 이기심이 배변을 비극으로 전락시킨다. 현대인은 지금 제대로 똥 싸는 법을 고민해야 한다.

ⓒIllustration: Guardian Design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의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브라이언 크랜스턴(Bryan Cranston)은 결혼 27주년 기념일을 맞이해 아내인 로빈에게 선물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게 당신 인생에서 최고의 똥을 선사할 거야. 장담할게.” 그가 선물한 것은 스쿼티포티(Squatty Potty)였다. 스쿼티포티는 약 18센티미터 높이의 플라스틱 스툴로, 변기의 아래쪽을 둘러서 감싸게끔 휘어져 있는 모양이다.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인 여성과 그녀의 아들이 디자인했으며 최근에 큰 인기를 얻었다. 이처럼 반쯤 내려간 스쿼트 자세로 볼일을 보면, 몇 세기 동안 익숙해져 있던 좌식 변기는 어느새 바닥의 구덩이처럼 좀 더 원시적인 것으로 변해버린다. 스쿼티포티를 만든 이 가족은 이러한 자세가 (대장의 일부인) 결장(結腸)을 곧게 펴줘서 배설물이 창자에서부터 변기까지 곧장 빠져나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복부 팽만과 변비, 그리고 치질을 일으키는 압박감을 줄여 준다고 한다. 2016년에 미국의 낮 시간 토크쇼에 나와서 이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던 크랜스턴은 이렇게 말했다. “비움은 사랑입니다.”

2011년에 처음 출시된 후 2018년까지 스쿼티포티의 판매량은 500만 개가 넘는다. 샐리 필드(Sally Field)나 지미 키멜(Jimmy Kimmel)과 같은 유명인들이 스쿼티포티에 대해 열변을 토했으며, 농구계의 슈퍼스타인 스테픈 커리(Stephen Curry)는 자택의 모든 화장실에 이걸 하나씩 두고 있다.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한 방송인 하워드 스턴(Howard Stern)은 2013년에 스쿼티포티를 처음 사용해본 후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러니까, 완전히 없애 버렸어요. 믿을 수 없었어요. 비워냈다는 걸 느꼈어요. 저는 마치 이런 기분이었어요. ‘홀리 쉿(holy shit).[1]’” 스쿼티포티는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에서 농담의 소재가 됐고, 드랙퀸(drag queen)의 여왕인 루폴(RuPaul)에게는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스쿼티포티 유한회사(Squatty Potty LLC)가 연매출 3300만 달러를 달성하자, 미국의 비즈니스 채널인 CNBC는 2018년 1월에 이 제품을 “광신적 괴물(cult juggernaut)”이라고 묘사했다. CNBC는 이전에 리얼리티 창업 프로그램인 〈드래곤스 덴(Dragon’s Den)〉의 미국 버전을 통해 스쿼티포티를 소개하면서 이 제품이 인기를 얻는 데 도움을 줬다.

스쿼티포티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2015년 10월에 공개된 ‘이 유니콘이 똥 싸는 방법을 바꿨어요(This Unicorn Changed the Way I Poop)’라는 제목의 온라인 광고가 나름의 기여를 했다. 그 이후로 이 동영상의 조회수는 1억 회가 넘는다.[2] 이 동영상에는 만화 캐릭터 같은 특이한 유니콘이 스쿼티포티 위에 뒷발을 걸치고 있고, 유니콘의 엉덩이에서는 무지개 빛깔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나와서 콘 위에 내려앉는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동화 속의 멋진 왕자님이 쪼그려 싸기의 장점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아이스크림, 유스크림[3], 풍덩 풍덩 베이비!” 영상의 마지막이 되면 왕자님이 한 무리의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눠준다. “어때, 맛있니? 지금까지 먹어 본 아이스크림 중에서 최고지?”

초기에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은 이 발판을 그저 장난스러운 크리스마스 선물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스쿼티포티는 마치 뽀송뽀송한 린넨 침구류나 프렌치 불도그처럼 그것을 가진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챔버거스(chamburgers)라는 별명을 사용하는 레딧(Reddit) 이용자는 최근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제가 (스쿼티포티를) 하나 갖고 있는데, 여러분께 말해야겠습니다. 이건 여러분의 삶을 망칠 겁니다. 저는 이제 스쿼티포티가 있는 집이 아니면 그 어느 곳에서도 똥을 쌀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직장에서 똥을 싸야 할 때면, 만족스럽지 못한 기분이 남습니다. 마치 축축한 침낭 안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스쿼티포티를 발명한 바비 에드워즈(Bobby Edwards)는 이런 사람들을 ‘전도사’라고 부른다. “그들은 저녁 만찬에서, 그리고 가능한 어느 곳에서든 스쿼티포티 이야기를 합니다. 스쿼티포티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그는 거의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쿼티포티의 인기, 그리고 그에 맞서는 많은 유사품의 존재는 지난 10년 동안 서구에서 ‘똥을 완전히 잘못 누고 있다’라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신호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멘즈 헬스(Men’s Health)》, 《제저벨(Jezebel)》, 《클리블랜드 클리닉 의학 저널(Cleveland Clinic Journal of Medicine)》과 같은 매체들은 물론이고, 《본 아페티(Bon Appétit)》와 같은 음식 매거진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목의 기사들을 뽑았다. 이 문제는 인류가 진화하며 물려받은 자연스럽게 쪼그려 앉는 자세를 포기하고 세라믹 왕좌(porcelain throne)[4]에 정착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장 트러블이라는 질환을 스스로 소환한 것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치질로 고통받는 사람은 수백만에 달하는데, 일부에서는 그 수치를 1억 2500만 명까지 추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외에도 수백만 명이 장염과 같은 관련 질환을 겪고 있다.

질병이 생겨나면 거대한 비즈니스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연고, 수술, 도넛 모양 치질 방석 등 이러한 질환의 치료를 위한 시장의 규모는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이러한 증상의 주요한 원인은 식단이라는 의견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우선은 식이섬유를 섭취하는 것이 좋겠지만, 최근에는 배변 자세의 영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저명한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에서는 현재 스쿼티포티가 만성 변비를 완화시킬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무작위대조시험(RCT)을 진행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에서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약 5000만 명인데, 그중 대부분은 여성이며 상당수는 45세 이상이다.

사람들은 배변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에는 그것이 약간의 문화적 페티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 살짜리 아이를 위해 똥 이모티콘으로 생일 파티를 열기도 하고, 자신의 대변 사진을 왓츠앱으로 친구들에게 전송하기도 하며, 여행 정보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에는 쪼그려 싸는 변기를 피하거나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주제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온라인 공간의 파급력에 힘입어 지난해 화제가 되었던 ‘조깅하며 똥 싸는 사람’에 대한 뉴스를 찾아볼 수도 있다. 호주의 브리즈번과 미국 콜로라도의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누군가가 남의 집 잔디밭에 똥을 싸지르고 돌아다니는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유튜브에는 구식 변기가 설치된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서 은밀하게 몇 번이고 물을 내리는 영상들만 보여주는 하나의 서브컬처(subculture)가 형성되어 있다. (그런 곳들 가운데 하나인 이 채널[5]의 총 조회수는 1600만 회가 넘는다.) 유명 소설가인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Karl Ove Knausgaard)는 자신의 배변 활동을 단계별로 세심하게 설명했다.[6] 심지어는 옷을 다 벗고 배변하는 즐거움에 대한 칼럼들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저 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똥을 누는 방법에 대해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스쿼티포티라고 할 수 있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바틀렛 건축대학(Bartlett School of Architecture)의 건축인문학 교수이자 현대식 화장실 전문가인 바버라 페너(Barbara Penner)는 이렇게 말했다. “(스쿼티포티는) 신체의 사용법과 신체의 기능에 대한 마지막 베일을 찢어 놓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이 작고 볼품없는 받침대가 거대한 야망을 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난 2세기 동안 서구에서 정설로 여겨졌던 볼일 보는 방식을 뒤집어엎겠다는 것이다.
유니콘이 등장하는 스쿼티포티의 광고.

 

1. 누구에게나 공평한 똥


죽음과 마찬가지로 똥이라는 건 공평무사(公平無私)하다. 최고급 벨루가 캐비어(beluga caviar)도 똥이 되면 통조림 햄과 구분되지 않으며, 귀부인도 강아지와 똑같이 신진대사 활동을 한다. 신의 유일한 아들조차도 이러한 변화를 거치는지도 모른다. 초기 기독교의 한 분파인 스터코라니스트(stercoranist)들은 영성체 의식의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살과 피로 바뀐 다음에 결국엔 소화되어 똥이 된다는 이중 화체설(double transubstantiation)을 믿었다. 시대나 장소에 따라서 달라이 라마(Dalai Lama)의 대변이나 ‘건강한’ 장내 유익균을 가진 특정한 인물들의 배설물에 치유력이 있다며 추앙받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똥 그 자체는 절대적으로 평등하다. 콜레라처럼 대변을 매개로 전염되는 질병은 왕이라고 해서 피해 가지 않으며, 누구나 죽일 수 있다.

인류는 대변이 가진 이러한 민주적인 힘을 오랫동안 부정해 왔고, 그 행위와 과정을 엄격하게 구분했다. 적어도 19세기 이후의 화장실은 인종과 젠더를 억압하는 공간이었다. 그것은 흑인을 차별하던 미국 남부에서부터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옹호하는 요즘 시대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이다. 카스트 제도로 악명이 높은 힌두교에서는 예전에 ‘불가촉천민(untouchable)’이라 불렸던 달리트(Dalit)들이 그들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들의 대변을 손으로 치워야 했다. 케냐의 삼부루(Samburu) 유목민들은 각자의 모종삽을 사용해서 자신의 대변을 덮는데, 모종삽 손잡이의 구슬 장식을 보면 부족 내에서 그 사람의 지위를 알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의 각 가정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비싼 공간은 화장실인 경우가 많다. 할머니들이 애용하는 고급 식기 브랜드인 웨지우드(Wedgwood)는 역시나 할머니들이 애용하는 고급 변기를 만들기도 했다.

인간의 배변에 관한 역사의 기록은 분리에 대한 일련의 시도로 읽을 수도 있으며,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리 신체의 배설물을, 그리고 우리 가정과 도시의 오물을 어떻게 분리해낼 것인가? 우리의 생체 활동으로 인한 소리와 냄새가 다른 사람들의 감각을 거슬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권력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을 (서로 다른 곳에) 분리함으로써 사회적 위계질서를 강제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좌식 배수형 화장실이나 수세식 변기는 굉장히 최근에 나타난 것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인 답안이었다. 비록 좌식 변소나 화장실이 적어도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존재하기는 했더라도, 역사의 거의 모든 시기 동안 호모 사피엔스 대다수는 노출된 장소에서 쪼그려 앉은 자세로 볼일을 봤다. 앞선 천 년의 후반부를 거치며 지구의 인구가 증가하고 사람들이 도시에 무리 지어 살면서, 노상에서의 배변 행위는 이질(痢疾)과 같은 전염병의 발병률을 높이는 골칫거리가 되었다. 지금도 현대식 위생 설비를 갖추지 못한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 이는 여전히 커다란 문제다.

일반적으로 수세식 변기는 16세기 영국의 어느 귀족이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영국의 도예 공방과 철공소들이 산업화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세식 변기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이후 수세식 변기가 북유럽 전역에 퍼져나가면서 위생, 의료, 사교는 물론이고 심지어 심리학 분야에서도 혁명을 이끌었다.

사람들이 점점 더 각자의 가정에 있는 화장실에 가서 은밀하게 볼일을 보기 시작하면서, 배변은 이제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자 거의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저속한 행위가 되었다. 일부에서는 다른 사람의 배변 활동이 원래부터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존재한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인 16세기에만 하더라도 유럽의 부유층 사이에서 통용되었던 예절 중에는 엉덩이를 닦은 냄새나는 천을 과시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다. 18세기까지 수백 년 동안 영국의 군주들은 문자 그대로 추밀원(privy council, 직역하면 ‘변소위원회’) 앞에서 업무를 처리했는데, 그들이 앉은 왕좌는 변기통이 들어있는 상자 위에 천을 덮어놓은 것이었다. 실제로 ‘사회적 배변(social defecation)’은 여러 시대와 문화권에서 발견된다. 1970년대에 인류학자인 필리프 데스콜라(Philippe Descola)는 아직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아마존의 아추아르(Achuar) 부족에 그런 문화가 있다고 기록했다. 중국에서는 (볼일을 보면서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탁 트인 ‘니하오(你好)’ 화장실을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수세식 변기가 대중화된 제국주의 시대 후기에는 개인의 사생활을 지켜주는 변기와 화장실이 유럽 문명의 필수요소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시대(1837-1901)의 선구적인 위생 기사(sanitary engineer)[7]였던 조지 제닝스(George Jennings)는 1850년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어떤 집단의 문명화 정도는 가정 환경과 위생 설비로 평가할 수 있다.” 지금도 서양의 많은 여행자는 미지의 지역에서 타일 바닥에 덩그러니 구멍이 뚫린 걸 처음 마주하면 적지 않은 당혹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독일의 건축가인 헤르만 무테지우스(Hermann Muthesius)가 1904년에 다음과 같이 예언했을 정도로 현대의 서구를 바라보는 시각과 수세식 화장실 사이의 연관성은 매우 깊었다. “예술 분야에서 ‘모더니즘’이라는 유행이 지나가면”, 심미적으로 기능적인 세간을 갖춘 (수세식) 화장실이, “우리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양식으로 여겨질 것”이다. 모더니즘 예술의 창시자들 가운데 한 명인 사진작가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도 이러한 주장에 동의했다. 그는 1925년 가을에 자신의 변기를 촬영하며 2주의 시간을 보낸 뒤에 “(수세식 변기의) 볼록함과 매끄러운 곡면, 아름답게 돌출되어 앞으로 향하는 실루엣”은 서양 문명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 사모트라케의 니케(Winged Victory of Samothrace)에 견줄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느 기술적인 해결책들과 마찬가지로, 수세식 화장실은 새로운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와 관련하여 캐나다의 한 학자는 배설물의 처리를 위해 물을 사용하는 행위를 두고 “지구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여기는 아주 위험한 발상의 중심적 요소”라고 서술했다. 위생 환경이 개선되고 (배설물을) 금기시하는 태도가 더욱 강해지면서, 좌식 변기의 사용으로 유발되는 치질이나 변비와 같은 다양한 ‘현대적인’ 질병들도 폭증했다. 20세기의 한 물리 치료사는 변비를 두고 “백인들의 건강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문제”라고 묘사했다.

앞서 소개한 바버라 페너가 자신의 책 《화장실(Bathroom)》에서 설명하는 바에 의하면, 높이를 낮춰서 반쯤 쪼그린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건강 변기(health closet)’와 같은 제품들이 적어도 1920년대부터 영국에서 출시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20세기 중반 무렵에는 스쿼티포티의 선조에 해당하는 제품이 런던의 해러즈(Harrods) 백화점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중반에 코넬대학교의 건축학 교수인 알렉산더 키라(Alexander Kira)가 자신의 기념비적인 저서인 《화장실(The Bathroom)》에서 완전히 쪼그려 앉는 변기와 반쯤 쪼그려 앉는 변기의 디자인을 여러 개 제안했다. 이 책에서 그는 좌식 변기에 대해 “이제껏 디자인된 고정 세간들 가운데 가장 부적절하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변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실질적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약 1670-1705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덮개식’ 실내 변기통. 햄프턴 코트 궁전(Hampton Court Palace) 소장. ⓒPhotograph: Royal Collection Trust

 

2. 쪼그려 앉아야 가능한 것


가장 원초적인 것들이라 하더라도 그것의 생산을 위해 때로는 너무나도 복잡한 과정이 요구되기도 한다. 한 덩어리의 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자율 신경계의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 근골격계, 세 가지의 부드러운 항문 반사(anal reflex), 두 개의 괄약근이 서로 조화롭게 작용해야 하며,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곳으로 찾아갈 수 있는 문화적인 배경지식도 요구된다. 그래서 독일의 과학자인 기울리아 엔더스(Giulia Enders)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내장(Gut)》에서 이러한 과정을 “완벽한 연주”라고 표현했다.

엔더스는 배설물이 우리의 신체를 따라 내려가는 과정을 하나의 풍경처럼 묘사한다. 그 풍경에는 직장(rectum)으로 연결되는 마개 조직인 ‘휴스턴 밸브(valves of Houston)’와 혈관 다발이 들어있는 ‘항문 음와(anal crypt)’라는 부위가 있다. 직장에 소화의 산물이 가득 차면, 직장은 척수의 엉치 부위(sacral region)로 연결되는 신경을 통해서 배설이 필요한 것 같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직장의 안쪽과 바깥쪽에 있는 괄약근들은 우아한 파드되(pas de deux, 2인무)를 추기 시작한다. 전자는 내보내라며 압박하고 후자는 적절한 시점이 되기까지 방출을 제한한다.

이윽고 때가 되면 우리는 기도를 막고 숨을 반대로 밀어 넣어서 복부 안쪽의 압력을 높이는 발살바 조작(Valsalva manoeuvre)을 할 수도 있는데, 이는 마치 비행기를 타면 귀가 부풀어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골반 아래쪽의 근육이 이완되고, 회음부가 내려가고, 바깥쪽의 괄약근이 열리면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마침내 세상에 나온다. 포유류가 대변을 내보내기까지는 약 12초가 걸리며, 사람은 초당 1~2센티미터의 속도로 이 작업을 수행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엉덩이가 바닥에서 15센티미터 높이까지 내려가도록 바짝 쪼그린 자세에서는 배출이 개시되는 순간부터 비워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평균적으로 1분도 안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33센티미터나 35센티미터 높이에서부터 ‘편안한 높이’라고 하는 최대 50센티미터에 이르는 규격을 가진 좌식 변기에 앉아서 이 작업을 수행하려면 두 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당신의 내장이 교도소이며 그곳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수감자들(당신의 대변)이 출입구로 쇄도하고 있다. 만약 그들의 앞에 느닷없이 모퉁이가 나타난다면, 대열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그곳에서 정체가 발생할 것이다. 반면에 곧게 이어진 복도라면, 그들은 쉽게 출입구까지 도달하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볼일을 보기 위해 자리에 앉으면, 우리는 직장 안에 있는 작은 해먹 모양의 근육인 치골직장근(puborectalis)에 의해 형성된 굽잇길을 배설물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힘을 줘야 한다. 서있거나 앉은 자세에서는 바로 이 치골직장근이 내장을 틀어막아서 우리가 자제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반면에 완전히 쪼그려 앉으면 그 매듭이 풀리는데, 그러면 앞서 말했던 굽잇길인 ‘항문과 직장이 이루는 각도(anorectal angle)’가 열리고 복부 안쪽의 압력이 상승하면서 내용물을 밀어내는데 필요한 힘을 줄여 준다.

이것은 대단히 좋은 자세다. 강제로 똥을 누기 위해 치골직장근 주변에 안간힘을 주면 치질 또는 장염에 걸리거나 기절할 가능성을 높이며, 심지어는 뇌졸중이나 뇌출혈, 심장 마비까지도 일으킬 수 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이유가 혈전성 치핵(thrombosed haemorrhoid)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도저히 전투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원인에 대하여 그의 주치의가 변비 때문에 심장 마비가 왔다고 추정한 것은 유명한 사례이다. 만약 우리의 항문 쪽에 뒤틀린 부위가 있다면, 제때 내장을 빠져나가지 못한 잔변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배설물 정체(faecal stagnation)’ 현상은 결장암, 맹장염, 염증성 장 질환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범한 성인 한 명은 1년 동안 136킬로그램 이상의 대변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배우 존 웨인(John Wayne)이 죽었을 때 그의 내장 안에 한 달 치 분량이 넘는 약 18킬로그램의 대변이 들어 있었다는 설이나 엘비스 프레슬리에게는 약 27킬로그램 정도가 들어 있었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있음직한 이야기이다.

스쿼티포티도 이처럼 안타까운 상황에서 태어났다. 스쿼티포티의 공동 개발자인 주디 에드워즈(Judy Edwards)는 2016년에 이렇게 시인했다. “저는 평생을 변비에 시달렸습니다.” 사실 그녀는 오랫동안 화장실에서 발 받침대를 사용해 왔다. 그녀의 아들인 바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어머니를 놀렸어요. 휴가를 갈 때도 이 바보 같은 배변 스툴을 갖고 다녔거든요.” 하지만 이 받침대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건축업자로 일하고 있던 바비가 디자인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주디가 아들에게 그것을 한 번 봐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가 저를 화장실로 데려가서 그게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를 보여 줬어요. 어머니가 거기에 앉아서 제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바로 그 순간에 제 머릿속에 불빛이 켜졌습니다.” 바비는 이렇게 말했다.

페인트 통과 전화번호부를 활용해서 그들은 새로운 받침대에 적용할 완벽한 높이와 폭을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바비가 만든 견본이 첫 번째 스쿼티포티의 디자인이 되었다. 바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미있었어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게 아주 훌륭하다고, 이제 광고 시안을 그릴 수 있겠다고 말이죠.” 그리하여 에드워즈 모자는 그들의 차고에서 2010년에 최초의 스쿼티포티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판매량은 저조했다. 이들 가족은 유타의 고지대 사막 마을인 세인트 조지 출신인데, 이곳은 8만 명의 주민들 가운데 70퍼센트가 주디와 같은 모르몬교 신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신체의 배출물에 대해 수다를 나누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바비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신자이시고, 신앙심이 무척 깊으시며,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십니다. 우리가 이걸 만들 당시에는 분위기가 좀 어색했습니다. 어머니를 난처하게 만든 적도 많습니다.” (바비는 이 점이 그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17살에 게이로 커밍아웃을 하며 교회를 떠났기 때문이다.) 현지의 한 여성은 주디에게 그녀가 만드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스쿼티포티를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했던 이유는 에드워즈 모자가 지역의 산업 박람회에서 변기 위에 해골을 올려놓고 홍보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쿼티포티는 최대한 신경 써서 깔끔하게 디자인했지만(실제로 스쿼티포티의 표준형 제품인 흰색 플라스틱 버전을 무채색 위주의 현대식 화장실에 놓아두면 거의 묻혀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이다), 마케팅을 미니멀리즘으로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에드워즈 모자가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스쿼티포티를 선물했을 때, 그 받침대를 받아본 사람들은 기분 좋게 놀라곤 했다. 그래서 바비와 주디는 참고 견뎠다. 어쩌면 세인트 조지 마을은 스쿼티포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려 하고 있었다.
튀르키예의 에페수스에 있는 고대 로마의 공동 화장실. ⓒPhotograph: Leonid Serebrennikov/Alamy

 

3. 이기적인 배변 생활


우리 시대의 혼란스러운 아이러니 중 하나는, 예전에는 문명화의 과시를 숭배했더라도 이제는 현대적인 습관과 기술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도시를 망쳤고, 사람들을 파편화시켰으며, 대기를 오염시켰다. 플라스틱은 바다를 오염시켰다. 탈취제와 방향제는 우리가 유해물질에 중독되게 만들었다. 항균 비누는 슈퍼버그의 출현을 초래했다. 의자는 우리를 죽이고 있다. 운동화도 마찬가지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나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말에 따르면 농업 문명의 발달은 어쩌면 이제껏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인지도 모른다. 활력과 생기를 얻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곡물 위주의 식사를 포기하고 구석기의 식단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변기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그래서 스쿼티포티 위에 잠시 올라가 있는 동안 좀 더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그들의 말에 솔깃함을 느낀다. 2014년의 인터뷰에서 바비 에드워즈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그저 기초적인 메커니즘을 말하는 것입니다. 수천 년 전에 하던 방식으로 되돌아가자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쪼그려 앉아서 볼일을 보는 자세가 선사 시대 선조들의 습관임에도 불구하고, 스쿼티포티의 인기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욱 청결하고, 친환경적이고, 유기농이고, 원시에 가깝고, 인간이 진화한 방식에 더욱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고, 자연에 더욱 가까운 걸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주로 최첨단 문명 수단을 통해서 널리 유행하게 됐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만스럽게도, 요즘에는 구석기 스타일의 애피타이저(appetiser)보다도 구석기 식단에 대한 앱(app)이 더 많은 것 같다.[8] 스쿼티포티의 매출이 처음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한 하나의 계기는 7만 5000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어느 비건 블로거 덕분이었다. 그리고 팔레오 맘(The Paleo Mom), 웰니스 마마(Wellness Mama), 마더 네이처 네트워크(Mother Nature Network)와 같은 영향력 있는 블로그 및 웹사이트에서도 찬사를 받았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건 다들 아는 이야기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아름답고 행복하며, 최고로 #축복받은 삶을 살아간다. 장 청소에 대한 예전의 광풍이나 클린 이팅(clean eating)에 대한 열풍, 명상에 대한 열기와 마찬가지로, 스쿼티포티는 이러한 완벽주의를 우리 신체의 안쪽에까지 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버라 페너는 이렇게 말한다. “스쿼티포티는 사람의 인체 그 자체를 복잡한 하수처리 시스템과 같은 효율적인 배수 메커니즘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스스로를 비워내자’라는 정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에게서 ‘나쁜’ 먹을거리, 부주의한 생각, 마지막 한 덩어리의 대변까지 제거하는 것이 우리를 건강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뭔가 순수한 상태에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가 내재된 것 같다.

동시에 소셜미디어는 보다 인간적인 또 다른 효과를 가지고 있다. 1970년대에 코넬대학교의 알렉산더 키라는 미국인들이 가장 기초적인 인체의 기능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길 꺼리는 것만큼이나 심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쪼그려 앉는 걸 싫어한다고 진단했다. 한 세대가 넘는 시간이 흐른 요즘에는 사람들이 배변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풉리포트닷컴(poopreport.com)이나 레이트마이푸닷컴(ratemypoo.com)과 같이 대변에 특화된 소셜미디어 사이트에서 일찍이 보여준 바 있다. 이런 사이트들은 전통적인 매체에서 작동하는 문화적인 규범의 틀을 벗어나서 거의 완전히 자유롭게 익명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요즘 사람들은 배변 운동에 관한 이야기에서 자신의 이름을 기꺼이 공개하기도 하며, 뉴욕타임스의 지면에서는 항문 열창(anal fissure)에 대한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거리낌 없는 태도는 스쿼티포티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치골직장근의 과학적인 원리와 똥 싸는 유니콘, 그 다음 버전에서는 용이 금괴를 싼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결합함으로써, 이 회사는 은밀하면서도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배변 활동을 거의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즐거움으로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유니콘이 등장하는 광고 영상에서 왕자님은 이렇게 말한다. 이 발판은 “엉덩이에서 똥을 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이 말을 새겨들었다. 해당 광고 영상이 공개되고 나서 세 달 후, 회사는 19만 5000대의 발판을 판매하면서 7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스쿼티포티의 웹사이트에서는 이 제품의 사용 후기를 보여주는 인스타그램의 피드가 끝없이 이어진다. 현재 그들이 판매하는 제품에는 23센티미터 버전, 대나무 버전, 하마처럼 생긴 아이들 버전, 블랙, 그레이, 핑크 버전이 있고, 배변 활동과 연관된 다른 제품들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평범한 화장지를 물티슈로 만들어서 물에 흘려보낼 수 있는 위치하젤 추출 폼이나, 똥 이모지 형태의 뚫어뻥도 있다. 현재 스쿼티포티의 신제품은 ‘나 오늘 똥 쌌어!’라는 문구가 적힌 배지와 함께 배송된다.

그러나 은밀한 행위를 밖으로 드러내는 갑작스러운 열풍은 더욱 심오한 진실을 가리고 있다. 배변 활동과 똥이 완전히 공공화되는 걸 결코 멈춘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화장실의 닫힌 문 뒤에는 언제나 배관, 관련 법률, 노동력 등 인간의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한 공공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 이면에는 배설물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우리의 신체와 지구라는 행성이다.
1899년에 선보인 받침 물탱크(pedestal) 변기 광고. ⓒPhotograph: Science History Images/Alamy

 

4. 배설이라는 세계


흔히들 ‘자연스러움’과 ‘건강함’과 ‘좋은 것’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건강하거나(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이나, 밤에 마시는 레드와인 등), 자연스러운 것(어떤 이들에게는 폴리아모리(polyamory, 다자간 연애)가, 또 어떤 이들에게는 종교가 그렇다)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전후 관계를 바꾸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자연스러움의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무언가를 자연스럽다고 믿으면, 그것이 건강하며 좋은 것이라고 추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동굴에 살았던 인류의 선조들은 본연의 지혜로운 상태로 지냈을 텐데, 그들이 과연 도토리나 훈제 매머드만을 먹었을까? 나는 견과류 버터와 풀을 먹여 키운 스테이크를 먹는데!

쪼그려 앉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다.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스쿼티포티도 과연 좋은 것일까? 다윈 이후로 우리는 인류가 불과 수백 년이나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창의력을 발휘한다고 해서 태고 시절부터 서서히 이어져 온 진화의 과정을 단축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역사에 의해 수세식 화장실의 정당성이 입증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좌식 변기와 맞물려 있는 현대의 하수 처리 시스템이 실제로는 얼마나 불안정한지,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비합리적인지를 무시하고 있다. 이는 지금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현대적이고 위생적이지만 쪼그려 앉는 변기에서 볼일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그렇기 때문에 스쿼티포티가 우리를 일종의 똥 싸기 낙원으로 되돌려 보내줄 수도 있다는 주장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발판을 대상으로 수행한 몇몇 연구들만으로는 그 근거가 미약하다. 관련된 세 건의 연구에서는, 비록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거나 표본의 규모가 매우 작긴 했지만, 쪼그려 앉아서 볼일을 보는 게 배변의 수월함과 배출량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다는 증거가 있었다. 그러나 발판을 활용하여 쪼그려 앉는 자세를 모방했을 때의 결과는 확실치 않았다. 반쯤 쪼그려 앉는 자세는 항문과 직장이 이루는 각도를 넓게 벌리거나 배출을 위해 필요한 노력의 양을 줄여주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런 연구들도 과학적인 사실에 접근하고 무언가를 입증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엄밀하게 수행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의 고속도로나 영국 로치데일의 익스체인지(Exchange) 쇼핑몰에 여전히 남아 있는 쪼그려 싸는 변기를 굳이 찾아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데일리 메일(Daily Mail)은 로치데일 익스체인지 쇼핑몰의 화장실에 대해서 충격적이라며 보도한 적 있다. 메이요 클리닉에서 스쿼티포티의 무작위대조시험(RCT)을 이끌고 있는 아딜 바루차(Adil Bharucha) 박사는 이 연구를 통해 스쿼티포티 사용의 효과 여부와 작동 원리에 대해서 더욱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 제품이 많은 사람들의 변비와 치질을 줄여 준다고 해서, 스쿼티포티가 자연스럽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발판은 우리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런 (현대의) 시스템과 사용 패턴에 묶여 있습니다.” 바버라 페너의 말이다. “그렇지만 스쿼티포티는 그러한 시스템에 개입해서 그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조할 필요 없이 그것을 변형하고 있습니다.” 레딧의 어느 사용자는 대신 26센티미터 높이의 하이힐을 신고 볼일 보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또한 스쿼티포티는 유쾌하면서도 단순한 기술이다. 엉덩이를 따뜻하게 해주는 열선이 있거나 변기에 와이파이가 연결되어 있어서 소변의 상태를 분석할 수 있는 (그리고 누구든 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최첨단 변기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독일과 프랑스, 영국의 변기 디자인을 보면, 이들 유럽의 주요 문화권들 사이에서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독일의 변기는 ‘펼쳐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배설물이 넓적한 돌출 바닥에 내려앉게 해서 그것이 쓸려 내려가기 전에 확인할 수 있게 해놓았는데, 이는 보수성과 사색적인 특성이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변기는 배설물을 최대한 신속하게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이는 프랑스 사람들의 급한 성미를 드러내고 있다. 영국의 변기에는 그 중간쯤의 실용성이 반영되어 있는데, 지젝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변기의 아래쪽에 물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대변이 그 위에 떠서 눈에 보이긴 하지만 자세히 관찰할 수는 없다.”

만약 스쿼티포티도 어떤 세계관을 표출하고 있다면, 그것은 거의 복음주의적일지도 모른다. 즉, 우리 스스로를 정화하고 완벽하게 하며, 이 세계의 혼돈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열망인 것이다. 바버라 페너는 스쿼티포티와 관련한 판타지들 가운데에는 그것이 우리의 신체에서 대변을 완전히 분리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현대의 하수 처리 시스템이 일상생활에서 배설물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바비 에드워즈가 바랐던 것은 성공적인 사업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배변에 대한 열정은 우리가 배출한 다양한 배설물들이 다시 사방에서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현시대에 대한 어떤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제 배설물을 그냥 흘려보낸 후에 그것과 ‘떨어져’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것은 바다 거품 속의 대장균이든,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디날리(Denali) 산의 경사면과 가장 거친 봉우리들에 등반객들이 남기고 오는 수십 톤에 달하는 인간의 배설물이든,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우리의 몸과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부터 대변을 완전히 없애버린다는 건 불가능한 생각이다.

그런데 스쿼티포티는 좀 더 세속적인 유형의 정념도 표현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과학자 줄리아 엔더스는 우리의 항문 괄약근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과 연관되어 있다”라고 썼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내부와 외부 세계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여기에 영적인 세계를 추가할 수도 있다. 완전한 배변이 주는 단순한 쾌락은 우리의 신체가 우리 영혼의 궁극적인 보금자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맨 처음에 소개한 배우 브라이언 크랜스턴처럼, 우리 모두는 완전히 비워냈을 때의 황홀감과 쾌변한 이후에 느껴지는 자기애를 원한다.
[1]
상당히 놀라운 상황에서 ‘이런 젠장’ 정도의 의미로 쓰이는 비속어이지만, 여기에서는 글자 그대로의 ‘성스러운 똥’이라는 의미와 함께 중의적인 표현으로 쓰였다.
[2]
(역자 주) 해당 동영상의 조회수는 2022년 10월 초 기준으로도 약 4064만 회이다.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3]
영어권에서 흔히 쓰이는 언어유희
[4]
우스갯소리로 좌변기를 의미
[5]
Commodes
[6]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대표작 시리즈인 《나의 투쟁(My Struggle)》 3권(한국어판으로는 《나의 투쟁 4: 유년의 섬》)에는 친구와 함께 숲속에서 똥을 누는 장면을 회상하고 있고, 2015년에 뉴욕타임스에 발표한 〈나의 모험(My Saga)〉에는 호텔 화장실에서 막혀버린 변기를 마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7]
상하수도 등의 배관을 담당했던 직업
[8]
애피타이저(appetiser)와 앱(app)으로 일종의 라임을 맞춘 것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