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아빠가 필요해

10월 13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공부하면 신용 한도를 늘려준다는 스타트업이 나타났다. 허황된 이야기 같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아이디어다.

  • 미국의 한 핀테크 스타트업이 금융이해력을 높이면 신용 한도를 늘려주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 공부하면 한도를 늘려준다는 이 발상은 단순히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영리한 제안이다.
  • 묻지마 투자의 책임은 우리 사회에도 있을지 모른다. 정보 불균형은 양극화를 만들고 양극화는 사회를 바닥부터 흔든다.

REFERENCE_ 카드 한도를 늘리는 새로운 방법

미국의 핀테크 스타트업 아로(Arro)가 최근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금융 소비자의 신용 한도를 늘리는 데에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즉, 앱 이용자가 금융이해력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서 수행하면 신용 한도 증가 등의 보상을 하게 된다. 마치 듀오링고로 언어를 학습하듯 신용 및 금융 관련 지식을 학습하면 신용카드 한도를 늘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발상이 재미있다. 그러나 현실은 재미있지 않다. 아로의 이 기발한 프로젝트는, ‘금융이해력’이 지금 우리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는지를 반증한다. 알면 신용 한도를 더 줄 수도 있는 ‘생존 지식’이란 얘기다.
MONEY_ 영끌이 끝난 후

최근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작년 2021년 말 기준 금융부채 고위험 가구는 모두 38만 1천 가구였다. 처분 가능한 재산을 다 처분해도 빚을 다 갚을 수 없는 집이 전국에 38만 가구 넘게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팬데믹 기간 이른바 ‘영끌’ 투자에 나섰던 2030을 우려한다. 팬데믹에 따른 양적 완화로 전 세계가 상승장의 파도에 올라탔던 지난 2년간 주식 투자 안 하면 바보,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가난해진다는 신화가 우리 사회에 맴돌았다. 이른바 ‘파이어족’ 등 투자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얻어야 성공한 삶으로 평가받는 풍조도 퍼졌다. 이때 본격적인 투자에 처음으로 뛰어든 청년층은 급격한 경기 침체와 고금리 시대에 접어들자 마자 청구서를 받아 들었다. 올해 2분기 말 기준 전체 가계부채 가운데 30대 이하의 비중은 4분의 1이 넘는다.
DEFINITION_ 금융이해력

일각에서는 이들의 ‘묻지마 투자’를 비난한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아무도 무지성 투자를 말리지 않았다. 시장의 호황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되었고, 새롭게 등장한 가상 자산 관련해서도 규제나 보호 장치는 헐거웠다. 테라·루나 코인에 투자해 큰 손해를 본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나서야 관련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도 금융이해력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금융이해력은 금융에 관한 기본 지식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를 판단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다. 해외에서는 Financial Literacy라는 용어로, 이미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준은 어떨까? 전반적인 금융이해력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높다. 그러나 청년층의 경우 60대보다 떨어진다.
WHY_ 학교의 역할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학교에서 경제는 가르치지만, 생활경제는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70퍼센트 이상은 ‘신용카드 사용이 빚’이라는 사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은행 금리, 인플레이션, 환율 등의 개념도 학생들에게는 생소했다. 교사들의 전문성도 아쉽다. 학교에서 경제 교육을 담당하는 사회과 교사들의 절반 이상이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경제학 관련 과목은 4과목, 혹은 그보다 적게 이수했다. 이쯤 되면 묻지마 투자의 이유를 물어야 할 대상은 청년층이 아니라 우리 사회다.
CONFLICT_ 부자 아빠

교육 시스템이 가르치지 않는 지식은 사적 영역에서 전수된다. 돈에 관한 지식도 그렇다. 즉, 부모가 가르치면 갖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지식이 되는 것이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책,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기요사키가 부자 아빠를 찾아 나선 이유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부자 아빠를 찾아 나설 수는 없다. 결국 부모의 지식과 의지에 따라 자녀가 부를 획득할 확률이 달라진다. 부의 세습을 만들어내는 결정적 고리가 공교육의 구멍에 있다.
RISK1_ 리딩방

이를 역행하고자 하는 욕망이 소셜미디어의 시대와 만나 각종 투자 정보 유튜브 채널, 코인방, 정보방, 리딩방 등을 양산해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콘텐츠를 통해 키워지는 것은 금융이해력이 아니라 피해 금액이다. 2020년도 11월 기준으로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피해 사례가 1만 4300여 건에 이른다. 일확천금을 꿈꿨다고 피해자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모든 투자자의 우상 워런 버핏은 11살 때부터 주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살의 버핏이 가난한 아빠를 가진 소년이었다면 과연 가능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RISK2_ 위기

투자자에게만 금융이해력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경제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금융이해력이 곧 경제적 생존과 직결된다. 어제 한국은행이 빅스텝을 밟았다.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퍼센트포인트 올린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0년 만에 기준금리 3퍼센트대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IMF는 내년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또 낮췄다.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도 역시 하락했다. 부동산도 심상치 않다. 전세의 시대가 기어이 끝날 수 있다는 시그널이 나온다. 집값은 오른다는 신화가 깨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위기다. 경제적 위기의 시대다. 그리고 위기 대처 능력은 바로 금융이해력에서 나온다. 미국 및 영국 등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교육 의무화에 나선 이유다.
INSIGHT_ 10조를 아끼는 방법

정부는 지난 7월 금융부문 민생 안정 계획을 발표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정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시행 중이지만, 청년 정책으로 포장하는 과정에서 ‘영끌족 구제’나 ‘빚투 구제’와 같은 자극적인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곧바로 형평성 논란에 불이 붙었다. 가상 자산을 구제 범위에 포함한 법원의 결정도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공정이냐 불공정이냐를 따지는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적 위기를 막기 위해 막대한 세금이 투여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달부터 30조 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해 10조가 넘는 규모의 채무 감면을 목표로 한다. 이 비용을 애당초 줄일 수는 없었을까? 우리는 종종 평등한 교육이야말로 가장 저렴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점을 잊곤 한다.
FORESIGHT_ 기회의 문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불로 소득을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튜브에, 인스타그램에, 부자가 되려면 이것을 알아야 한다, 저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들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그리고 그 어느 곳에도 성실하게 일하라는 낡은 경구는 없다. 노동으로 부를 쌓을 수 있다는 말은 이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믿는 마음만큼이나 순진한 레토릭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진하고 뻔한 말들은 힘을 갖고 있다. 노동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사회는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는 사회에 내일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뻔하지만, 힘을 가진 사실이 있다. 정보의 불균형은 양극화를 심화하고 사회를 바닥부터 망가트린다는 점이다. 금융이해력을 우리 사회의 의제로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다. 이제 우리는 모두 필연적으로 금융 소비자다. 우리 중 많은 숫자는 작든 크든 투자자이다. 그렇다면 금융이해력은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노동의 가치가 떨어져 모두가 투자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위기 앞에 맞서 싸울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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