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의 곤란한 스토리

10월 18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기업이 마냥 이타적일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양심적일 필요는 있다.

  • 카톡이 멈추자 일상이 멈췄다. 카톡은 이 시대의 신분증이자 연락처이며 동시에 시장 그 자체이다.
  • 카카오의 영향력에 비해 책임의 무게가 너무 가볍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관련 논의는 이미 진행된 바 있지만, 어쩐지 멈춰서고 말았다.
  • 대통령까지 나서 카카오가 국가기간통신망과 다름없다고 선언했다. 상황은 달라질 것이고, 달라져야 한다.

BACKGROUND_ 멈춘 것들

곤란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카카오톡 없는 세상에 관해 상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카카오는 갑자기 멈춰서면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했다. 송금이 멈췄고, 택시가 멈췄고, 상거래가 멈췄다. 무엇보다 소통의 수단이 닫혀버렸다. 그동안 우리는 카카오의 중요성에 비해 카카오에 관해 너무 몰랐다. 카카오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리고 카카오를 멈춰 세운 이번 화재는 재난인가 과실인가.
DEFINITION_ 카톡의 정체

2010년, 무료 메신저앱 카카오톡의 이용자는 약 200만 명이었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 중 절반에 가까운 숫자였다. 2022년. 카카오톡 누적 가입자 수는 1억 명, 월간 사용자 수는 약 4500만 명이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국내 메신저 시장 점유율은 87퍼센트에 달한다. 2010년의 카카오는 수익 모델을 고민했다. 2022년의 카카오는 거대 플랫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한다. 지난 10여 년간, 카카오는 우리에게 무엇이 되었는가.
  • 전화번호 ; 일과 생활 사이에 구분선을 명확하게 긋는 한편 느슨한 관계의 미덕을 누리는 시대다. 업무 연락은 되도록 카톡으로 한정하는 경우도 많고,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사적 관계에서는 전화번호 대신 닉네임과 카카오톡 프로필만 교환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개인과 개인 사이, 카톡 프로필은 일종의 전화번호이자 주소로 기능하고 있다. 그 결과, 카톡이 막혀버리자 개인 간의 소통이 방법을 잃어버렸다.
  • 시장 ; 각종 경제 활동에 있어서는 카카오가 거대한 시장의 역할을 한다. 장터에 모여 노동력과 재화를 사고팔듯, 카카오라는 플랫폼에 사람도 상품도 모여들어 거래된다. 지금 당장의 이동 수단을 제공하는 카카오T, 간편하게 마음을 선물하는 모바일 쿠폰의 구매와 배달, 최첨단 결제 수단인 카카오페이의 사용까지 시장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들이 카카오라는 거대 플랫폼 안에서 이루어진다. 택시 및 대리 기사 직군, 소상공인 등으로부터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서버가 멈추자 시장이 멈췄기 때문이다. 시장이 멈추면 누군가의 생계가 멈춘다.
  • 신분증 ; 쇼핑몰부터 가상화폐 거래소까지 카카오 간편 로그인을 활용한 사이트에도 접근이 제한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카카오가 지금까지의 플랫폼 사업자와 구별되는 특이점은 따로 있다. 카카오톡과 연계된 카카오 인증서가 일종의 신분증 역할을 대신한다는 점이다.각종 행정기관의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신분 증명까지 포함하여 광범위한 분야에서 인증서가 이용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인증서 사용은 지난해 코로나19 잔여백신 예약 및 ‘방역 패스’ 등을 계기로 급증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기준, 카카오 인증서 사용자는 3500만 명에 달한다.

RISK1_ 카카오가 멈추면

이쯤 되면 카카오는 국민 플랫폼이 확실하다.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국민 플랫폼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국민의 필수 플랫폼이다. 그런데 확실하지 않은 것이 있다. 카카오가 국가적 플랫폼, 즉 기간통신사업자인지의 문제다. 법적으로는 아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기간통신사업자로 지정되어있어 재난 상황에 대한 예방 및 조치 계획을 세우고 이를 정부로부터 점검받아야 한다. 그러나 네이버, 카카오 등은 부가통신사업자로, 이러한 의무로부터 자유롭다. 쉽게 말해 통신이 멈추면 통신 3사는 손실 보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국가 기간통신사업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이버, 카카오 등이 멈추면 얘기가 다르다. 이번 카카오 먹통 사태 관련, 유료 서비스에만 한정하여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의 근거다.
RISK2_ 데이터센터가 멈추면

그렇다면 이번에 실제 화재가 발생한 데이터센터(IDC, Internet Data Center)는 어떨까. 이른바 ‘네카라쿠배’와 같은 IT 기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곳이 바로 데이터센터다. 기업과 이용자 사이에 오가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대형 서버들을 한곳에 모아둔 곳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고성능 서버와 컴퓨터 등을 회사 안에 직접 구축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비용이 많이 들고 관리도 복잡하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데이터센터에 돈을 내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SK C&C의 데이터센터를 카카오도, 네이버도 빌려 쓰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데이터센터가 피해를 당하여 데이터가 손실되면 IT 업체는 사업 기반 자체를 잃게 된다. 그리고 IT업체에 데이터를 맡겨둔 개인들도 순식간에 정보를 삭제당하거나 접근할 수 없게 된다. 지난 주말에 우리 모두 겪었던 것처럼 말이다.
RECIPE1_ 입법부의 실패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카카오 및 네이버와 같은 부가통신사업자도 ‘방송통신재난관리기본계획’의 테두리 안에 포함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데이터센터도 마찬가지다.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해야 할 책임의 무게를 확실히 하자는 얘기다. 그러나 늦었다. 왜 늦은 것일까? 이 문제의 중요성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이미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 사건 이후 관련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바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에는 여·야·정이 합의를 이루어 해당 상임위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관련 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그런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고꾸라졌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업계에서 ‘중복규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구글 등 외국계 기업은 규제하지 못하고 국내 기업만 잡는,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거셌다. 또, 당시 부산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려 했던 구글이 법무법인을 동원해 법사위를 찾아다녔다는 증언도 보도된 바 있다.
RECIPE2_ 언론의 변심

당시 언론 보도의 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제지를 중심으로 민간 데이터센터를 정부가 규제하려 한다며 “업계와 전문가, 이용자 등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을 펼쳤다. 해당 개정안을 “카톡 검열 허용법”이라고 지칭한 보도도 나왔다. 물론, 실제 상황이 벌어진 지금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우리가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은 이번 재난을 막을 기회를 놓쳤느냐의 여부다. 제대로 막을 기회가 있었던 사고라면, 그것은 재난이 아니라 과실이기 때문이다.
FORESIGHT_ 비관적인 상상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전 국민이 혼란의 주말을 보낸 이후, 대통령까지 나서 카카오가 국가기간통신망과 다름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가 카카오를 비롯한 부가통신사업자들을 유심히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또 있다. 한국은행이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와 함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달, 시중은행이 참여한 파일럿 플랫폼 검증작업이 시작되었다. 민간 기업 플랫폼을 활용해 온라인 행정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디지털플랫폼 정부’ 계획도 차근차근 실행되고 있다. 이번엔 카카오페이가 주말 동안 멈추며 소상공인들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어떠한 이유로 CBDC 플랫폼에 문제가 생긴다면, 혹은 디지털플랫폼 정부 인프라가 먹통이 흔들린다면 그 피해의 규모와 여파는 상상도 하기 힘들다. 결국, 이번에는 카카오가 규제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MONEY_ 2000억 원

다만,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카카오의 실적에는 영향이 올 수 있다. 이번처럼 데이터센터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을 만큼의 비상 재해복구(DR, Disaster Recovery) 시스템을 갖추려면 돈을 더 써야 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2000억 원가량이 추가로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지금 짓고 있는 경기도 안산의 데이터센터 외에 추가적인 데이터센터 건설에 나서야 할 수도 있다. 비용 증가에 따른 실적 악화의 영향은 주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6월 기준 카카오의 소액 주주는 200만 명이 넘는다. 그야말로 삼성전자를 잇는 ‘국민주’라는 얘기다. 다만 카카오의 주가 하락이 실적 때문만인지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 연매출 6조 시대를 처음 열고 영업이익도 6000억 원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카카오는 이번 사태를 겪으며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 떠돈, ‘카카오가 주식은 잘 쪼개는데 서버는 안 쪼개뒀다’라는 씁쓸한 농담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른다.
INSIGHT_ 일론 머스크의 꿈

카카오는 지난 2012년에도 카카오톡 먹통 사고를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어서 돈 많이 벌어서 대륙별로 초절전 데이터센터를 분산 가동해 안전을 도모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사과문을 올렸다. 그러나 그 약속은 온전히 지켜지지 않았다. 카카오톡 무료 가입자를 바탕으로 한 무서운 성장으로 돈을 많이 벌긴 했지만, 시설에 투자하겠다는 부분은 현실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 ‘논란’ 과정에서 “슈퍼앱 X(엑스)”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슈퍼앱은 소셜미디어, 결제, 메시지 전송 등 전방위적인 기능이 통합된 앱을 지칭한다. 일론 머스크의 청사진은 어쩌면 카카오라는 거대 플랫폼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앱 하나에 일원화된 것은 아니지만, 카카오라는 거대 플랫폼에 필요한 모든 것이 종속되어 있다. 혁신의 아이콘이 꿈꾸는 바를 이미 이루어버린 카카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카카오의 스토리에 흠결은 없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주말을 보냈다. 기업이 마냥 이타적일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양심적일 필요는 있다. 카카오처럼 커뮤니티를 발판으로 성장한 회사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카카오가 계속해서 국민 기업이라는 가치를 짊어질 수 있을지, 그 판단의 첫 번째 기준은 아마도 이번 사태의 대응에 달려있지 않을까.


카카오의 위기와 그 맥락에 관해 더 알고 싶다면 〈비욘드 카카오〉를 추천합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