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꿈

10월 27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서울시의 랜드마크 실험은 진행 중이다. 이번엔 도심 속 2000킬로미터의 녹지 공간을 조성한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프랑스 파리8구역에서 착안한 서울 도심 녹지 구상안을 발표했다.
  • 2026년까지 서울 도심에 총 2000킬로미터의 녹지 공간을 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 랜드마크로서의 선언은 충분했다. 지금 도시 개발에 필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BACKGROUND_ 초록길 프로젝트
서울시가 녹지 공간을 늘린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세종대로 사람숲길은 세종대로 사거리부터 숭례문을 거쳐 서울역에 이르는 1.5킬로미터 구간이다. 2021년 5월 완공됐다. 기존 세종대로는 9~12차로에서 7~9차로로 줄이고 서울광장 면적의 두 배가 넘는 보행길을 신설했다. 초록길 프로젝트는 서울시가 올초 발표한 녹지 공간 조성 계획이다. 기존 숲길을 정비하고, 새로운 숲길을 더 만들고, 숲길들끼리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번 녹지 구상안은 초록길 프로젝트를 발전·보완한 형태다.
REFERENCE_ 파리
프랑스 파리에서 해당 구상을 착안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0월 22일 프랑스 파리8구역을 방문했다. 파리는 2030년까지 샹젤리제 거리와 콩코드 광장을 재편 중에 있다. 매연과 소비주의로 점철된 거리를 녹지 공간으로 탈바꿈하고자 한다. 샹젤리제 거리의 8차선 도로를 4차선 도로로 축소한다. 콩코드 광장은 전면 보행화한다. 알투알광장 주변에 정원을 조성해 여름엔 해변, 겨울엔 아이스링크로 활용할 계획이다. 파리를 벤치마킹하는 이유는 이미 많은 부분 개발이 이뤄져 시설들이 밀집한 도시라는 점에서 서울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DEFINITION_ 국가상징거리
이번에 발표한 녹지 조성안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 국가상징거리 ; 광화문-서울역-용산-한강까지 잇는 7킬로미터의 거리다. 여기서 차로를 대폭 축소한다. 보행로 폭을 1.5배 확장한다.
  • 공원 ; 국가상징거리를 중심으로  녹지 거리 및 공원을 조성한다. 2026년까지 서울 도심에 총 2000킬로미터의 녹지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 국회대로 ; 양천구 신월IC부터 여의도 국회의사당 교차로에 이르는 왕복 8차선 도로다. 7.6킬로미터 거리다. 이 중 4킬로미터는 지하도로로 바꾼다. 나머지 3.6킬로미터는 차선을 축소한다. 이렇게 확보한 11만 제곱미터의 지상 공간에 길쭉한 공원을 만든다. 2024년 6월 준공이 목표다.

NUMBER_ 11.6
도시에는 녹지 공간이 어느 정도로 필요할까. 해외의 경우 2010년 기준 1인당 도시 공원 조성 면적은 독일 베를린은 27.9제곱미터, 영국 런던은 26.9제곱미터, 미국 뉴욕은 18.6제곱미터로 드러났다. 반면 한국은 2022년 기준 1인당 11.6제곱미터, 좁혀서 서울만 보면 2016년 기준 1인당 8.0제곱미터였다.
EFFECT_ 관광, 환경, 교육, 정체성
서울에 녹지 공간이 생기면 무엇이 좋을까?
  • 관광 ; 서울은 문화 유산이 집중된 도시다. 이를 잇는 녹지 도로가 생긴다면 역사·문화 공간의 접근성이 커지고 각종 행사와의 시너지도 낼 수 있다.
  • 환경 ; 도심 속 녹지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오래전 수치로 확인됐다. 대표적으로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는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빗물과 토양을 정화하며 근사한 자연 경관을 선사한다.
  • 교육 ; 녹지 접근성이 클수록 교육의 질도 높아진다. 학생들의 신체 활동이 늘고, 공간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으며, 무엇보다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데 일조한다.
  • 정체성 ; 오 시장이 이번 파리 탐방에서 내세운 도시 계획의 초점은 ‘정체성’이었다. “서울시의 국가상징거리도 서울의 역사·문화 공간 특성을 살려 국가 정체성을 회복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 밝혔다. 즉, 이번 국가상징거리는 단순히 도시 개발이 아니다. 사대문과 고궁, 광장 등으로 대표되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대내외적 브랜딩이다.

CONFLICT1_ 외곽
녹지 공간을 확충하는 것이 시민의 생활권 향상에 직결될 수 있을까? 2019년 도시 계획 학술지 〈Landscape and Urban Planning〉에 게재된 한 논문에 따르면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10개 주를 조사한 결과 녹지 접근성은 임금 및 교육 수준과 밀접한 연관을 보였다. 서울시의 이번 프로젝트 또한 중구와 용산구, 여의도 등 서울 도심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CONFLICT2_ 그린젠트리피케이션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도시 계획 및 공공 보건과의 마틸다 보쉬 교수는 “녹지 공간에 접근하기 좋은 지역은 주로 고품질 도시 공간이다”라며 녹색 젠트리피케이션(green gentrification)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특정 지역에 녹지 공간이 조성될 경우, 집값 및 물가 상승에 따라 기존 주민들이 그 지역을 불가피하게 이탈한다는 것이다.
RISK1_ 연속성과 실용성
  • 지난 2014년 박원순 전 시장은 ‘2030 서울플랜’을 발표하며 ‘소통과 배려가 있는 행복한 시민도시’를 내세웠다. 올해 3월 오세훈 시장은 이를 철회하고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으로 대체하며 ‘살기 좋은 나의 서울, 세계 속에 모두의 서울’을 제안했다. 10월 24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선 기존 도시 재생 사업의 기조를 틀고 개발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 새로운 도시 계획은 언제나 큰 잠재력을 담보한다. 그러나 연속성 없는 정책은 예산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시민의 피로감을 가중할 소지가 있다. 이번 국가상징거리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 여론 또한 한강 르네상스를 비롯해 오 시장이 역대 제안한 개발 사업들 중 실용성과 수익성, 환경 파괴 등의 논란으로 부결된 건들의 연장선일 것이다.

RISK2_ 모뉴먼트
역대 서울 시장들은 모뉴먼트에 대한 야망을 보여 왔다. 이명박 전 시장은 청계천과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고 박원순 전 시장은 뉴욕의 하이라인을 꿈꾸며 서울로 공사를 추진했다. 오세훈 시장은 세빛둥둥섬과 DDP에 이어 용산 르네상스,  세운지구 개발에 재시동을 걸었고 서울형 샹젤리제 거리를 제안한다. 서울의 랜드마크는 사업 규모가 크고 우리나라 인구 절반의 생활권과 맞닿아 있다는 특성상 쉽게 도마에 올랐으나, 해당 정치인의 비판과 직결되며 여론은 단편적으로 갈렸다. 새로운 랜드마크의 장단과 적절성을 살피는 것 자체가 공치사를 애써 분석하는 어수룩한 시각으로 간주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도시 계획의 디테일은 쉽게 묻혔다.
KEYPLAYER_ 안 이달고
  • 서울 녹지 조성안이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레퍼런스가 된 파리 도시 계획의 이면엔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 시장의 강력한 목소리가 숨어 있다. 이달고 시장은 2014년 첫 당선 이래 줄곧 ‘녹색’을 강조하며, 지난 8년간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정책적 실천으로 옮긴 이례적인 정치 리더로 손꼽힌다. 택시 업계와 거대 마찰을 빚을 정도로 자동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급진적 환경주의를 내세우는 엘리트 중산층”이라는 조롱에도 탈탄소 정책에 집중했다. 그 결과 파리 시민의 자동차 소지율은 2001년 60퍼센트에서 2015년 35퍼센트로 감소했으며, 향후 2030년까지는 도시 면적의 50퍼센트를 녹지로 채울 계획이다.[1]
  • 파리가 꾸준한 개혁을 단행할 수 있던 가장 큰 힘은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선명한 의제와 이를 관철한 리더, 그리고 대중적 지지에서 나왔다. 기후 위기 대응이 모든 도시의 의제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의제는 필요하다. 지금의 서울 개발 계획에서 필요한 것은 심미적 랜드마크로서의 선언이 아닌 그만한 시간과 예산을 투입할 이유를 설득할 수 있는 정치적 메시지다.

INSIGHT_ 관계로서의 공간
홍익대 유현준 교수는 “벤치는 휴식과 소통의 공간”이라며 “공공으로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질수록 삶이 윤택해”진다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 이에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는 올봄 ‘세상의 모든 벤치’ 프로젝트를 시작해 거리 곳곳에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를 조성 중이다. 공공 공간은 대중의 공통 분모다. 서울이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커피숍 숫자가 가장 많은 도시라는 것은 만남의 공간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시사하는 한 지표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만남이 발생하는 공간, 콘텐츠가 아닌 관계에 집중하는 공간이 많아질 때 도시는 숨통이 트인다. 서울시가 계획하는 녹지 공간이 한 열쇠가 될 수 있다.
FORESIGHT_ 모빌리티
도시 개발 계획은 필연적으로 모빌리티 시장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주거와 출퇴근, 여가 생활까지 거의 모든 일상의 데이터 수집은 이동 경험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김민형 모빌리티 애널리스트는  “모빌리티 시장은 생태계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모빌리티 시장에서 배달, 배송, PM, 택시 등 단독 사업의 수익성보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흐름을 잇는 물류망을 선점하는 것이다. 카카오는 화물 산업에 뛰어들었고 현대차는 자율주행 스타트업 포티투닷을 인수했다. 이번 서울시 녹지 조성안의 핵심인 국가상징거리와 지하 국회대로 또한 모빌리티와 맞닿아 있다. 향후 도시 개발 계획에서도 주시할 것은 특정 거점이 아닌, 점을 선으로 잇는 모빌리티 생태계의 개입일 것이다.



[1]
*참고로 파리는 2024년 올림픽 및 패럴림픽 개최지로, 도시 개발 또한 올림픽 일정과 맞물려 돌아간다. 2024년까지는 보행자 도로를 늘리는 등의 보수 공사가 개발 1단계에 해당한다면, 개발 2단계는 올림픽 폐막 이후 1만 5000제곱미터의 숲을 조성하는 등 녹지 공간을 집중 확충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사라지는 공공 공간이 궁금하다면 〈백화점 멸종의 시대〉를, 분열과 경계가 심화되는 도시의 새로운 해결책이 궁금하다면〈코로나 시대, 도시의 부활 전략〉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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