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질문

11월 1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추모의 시간이다. 그러나,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이 글에는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관련 현장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글에 연결된 외부 링크에는 혐오 표현을 인용한 기사가 있습니다.
  • 믿을 수 없는 참사가 벌어졌다.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애도와 위로다.
  • 그러나 추모의 시간을 위해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비극의 확장을 막고, 우리 사회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질문이다.
  • 막을 수 있었다면 사건이고, 막을 수 없었다면 사고다. 납득할 수 있는 답이 필요하다.

BACKGROUND_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5분

폭 4m, 길이 40m 정도의 좁은 골목이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나와 약속 장소로 향하려면 지나야 하는 지름길인 동시에 클럽과 음식점이 들어찬 길이기도 하다. 사상자가 발생한 공간은 그 골목 안에서도 폭이 3.2m 정도, 길이는 5.7m 정도 되는 공간이었다. 5.5평 정도 되는, 작은 원룸 수준의 공간이다. 최소 1천여 명 이상이 동시에 뒤엉키며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ANALYSIS_ 애도와 위로

책임 소재를 가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정확한 현장 상황과 데이터, 증거와 증언 등이 모여 수사가 진행되고 나면 비로소 우리는 그에 관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나 이틀이 더 걸릴 수도 있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급한 것은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있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애도와 위로다.
RISK_ 비극의 확장

그러나 추모의 시간이라고 해서 누구에게든 면죄부가 주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추모의 시간이기 때문에 당장 필요한 질문이 있다.
  • 우리가 맞닥트린 비극의 크기를 누군가 키우고 있지는 않은가?
  • 이 비극은 어디에서 어떻게 닥쳐왔는가?
이 두 가지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 첫 번째 질문은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두 번째 질문은 참사를 추모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KEYPLAYER 1_ 언론

첫 번째 질문은 언론을 향한다. 이번 일을 얼마나,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의 문제다. 참사 직후 무차별적으로 쏟아진 기사 중에는 ‘커뮤니티 취재’를 통해 작성된 것들이 적지 않다. 사실 여부의 확인 과정도 없이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는 ‘온라인 소문’을 그대로 옮겨 싣는 수준이다. 현장 사진까지 SNS에서 그대로 수집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래서는 언론이 가짜 뉴스의 확산을 부채질하는 꼴이 된다. 물론, 발생한 소식을 빠르게 널리 전하는 것이 언론의 미덕인 시절도 있었다. 거리의 풍문을 전하는 일도 의혹 제기로 이어지는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누구나 검색은 할 수 있다. 21세기, 언론의 존재 이유가 있다면 수많은 정보 중에 사실을 가려내는 팩트체크 기능과 사적인 이익이 아닌 공공의 선을 고려한 보도 준칙일 것이다. 과연 이번 주말, 언론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얼마나 증명했는가?
CONFLICT 1_ 미디어 리터러시

질문에 답해야 할 대상은 언론뿐만이 아니다. 빅테크 기업과 교육 당국도 답변의 의무가 있다. 이제 참사를 이야기하는 방법에 관해 숙고해야 할 주체는 기존의 언론사에 한정하지 않는다. 누구나 불특정 다수에게 글과 이미지를 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 직후 피해자의 얼굴과 신체가 무분별하게 노출되어있는 현장 동영상이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 누구라더라’라는 식의 근거 없는 낙인찍기도 빠르게 확산했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불행히도 비극을 등에 업은 거짓의 힘은 파괴적이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생산해 낸 개개인 모두가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일까? 그들 만의 책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 누구도 온라인 공간에서 이러한 참사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교육받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플랫폼으로부터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받은 일도 없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넘어 ‘미디어 윤리’ 교육이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다. 이미 독일에서는 의무 교육에 포함되어 있다.
CONFLICT 2_ 말이 칼이 될 때

사회적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고개를 드는 혐오 표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허위 정보야말로 혐오의 크기를 키우는 가장 좋은 연료가 되기 때문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에서 연구자들이 이야기하는 혐오 표현의 세 가지 해악을 이야기한다. 첫째, 혐오 표현에 노출된 소수자 개인 또는 집단이 ‘정신적 고통’을 당한다. 둘째, 누구나 평등한 사회 구성원이라는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혐오가 당장 생존과 직결되는 까닭이 세 번째 해악이다. 혐오는 실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KEYPLAYER 2_ 행정 당국

두 번째 질문은 행정 당국을 향한다. 막을 수 있었느냐는 것과 막을 책임이 있었느냐는 것에 관한 질문이다.
  • 좁고 경사진 골목에 인파가 몰려들면서 참사는 발생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해당 지점의 지형적 특성이 피해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는 있겠지만, 절대적인 요인은 아니었다”라고 선을 긋는다. 현장 주변의 다른 도로들까지 이미 수 시간 전부터 인파로 꽉 차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도 누군가 넘어졌다면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 몰려든 인파 또한 이미 예상된 부분이다. 경찰은 참사 하루 전인 28일 이태원 핼러윈 행사에 10만 명이 모일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된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나 당일, 현장에 배치된 경찰 인력은 137명이었다. 경찰청은 지난해 대비 투입 경찰관 수가 늘어났다고 해명했지만, 그나마 배치된 인력 대부분은 마약 등 범죄 단속을 위한 역할을 했다. 질서 유지를 주로 담당하는 파출소나 지구대 경찰관은 37명에 불과했고, 지난해와 달리 기동대도 투입되지 않았다.
  • 주최자가 없어 안전 관리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래서 지자체나 경찰이 나서 인파를 통제하거나 지하철 무정차를 요청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 제34조 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있다. 국민의 안전권을 명시한 것이다. 따라서 주최자가 없는 축제의 경우 현행법상 지자체에도, 경찰에도 이번 축제의 안전을 관리하거나 감독할 의무가 없다는 이야기는, 법 제정 없이는 정부가 헌법을 수호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게 된다.
막을 수 있었다면 사건이고, 막을 수 없었다면 사고가 된다. 그리고 이를 흐지부지 얼버무리면 추모의 과정은 길을 잃게 될 수 있다.
FORESIGHT_ 모두의 트라우마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백종우 회장은 북저널리즘과의 인터뷰에서 “트라우마가 생긴 다음에 중요한 것은 책임 있는 대응”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먼저 그 사회가 얼마나 유족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느냐, 공감과 위로가 3일에서 일주일 사이에 이루어지느냐, 마지막으로 책임 있는 결정이 내려지고 재발 예방책이 도입되는 등 정의가 구현되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크기와 모양은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상처받았다. 이 트라우마는 다 함께 치유해야 할 과제다. 그 치유 과정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있다.
INSIGHT_ 국가

이태원은 특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서울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편견과 차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때문에 비일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태원은 사랑받았다. 《뉴욕 타임스》는 이태원의 지난 주말을 두고 "한국은 군중 통제에 관한 경험이 있는 국가다. 이번 토요일 밤의 이태원 상황은 최근 정치 집회 현장에 민간인보다 경찰이 더 많이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당일, 서울 곳곳의 집회와 시위 현장에 경찰 인력이 투입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날, 이태원에도 다른 곳만큼이나 국가가 필요했다.
북저널리즘은 이번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의 쾌유와 회복을 기원합니다. 이번 참사와 관련된 심리상담은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상담 전화(1577-0199)를 통해 받을 수 있습니다.


언론의 역할과 책임에 관해 좀 더 생각해 보고자 한다면 〈트라는 성역〉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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