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의 탈을 쓴 전쟁

11월 3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캐나다가 대규모 이민자를 기다린다. 캐나다가 벌린 팔은 환대일까, 새로운 탈을 쓴 전쟁일까?

  • 캐나다 정부가 저출생과 고령화, 인력난에 대응하기 위해 2025년까지 신규 이민자를 150만 명 수용할 것이라 밝혔다.
  • 캐나다뿐 아니라 많은 국가가 인력을 쟁취하기 위한 이민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 새로운 글로벌 자본주의의 질서 아래 이민의 의미도 바뀌고 있다.

NUMBER_ 830만 명

지난 10월 26일, 캐나다 연방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는 이민자는 830만 명에 이른다. 전체 인구인 3700만 명의 23퍼센트에 이르는 규모로, 캐나다 인구 네 명 중 한 명이 이민자인 셈이다. 캐나다는 작년 한 해 동안 40만 5000명 의 이민자를 국민으로 들였다. 올해도 43만 명 이상의 이민자를 맞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 해 동안 40만 명 이상의 이민자를 수용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캐나다 IRCC 장관인 션 프레이저(Sean Fraser)는 인구 증가와 노동력 충족을 위해서는 이민 장려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BACKGROUND_ 정책으로서의 다문화
  • 1923년 중국 이민법 ; 20세기 초반 캐나다의 이민법은 지금의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인종, 계급, 장애, 국가 등의 꼬리표는 이민을 거부할 수 있는 공식적인 이유였다. 1923년 캐나다에는 중국 이민법이 제정돼 중국인을 겨냥한 명백한 인종차별적 조치를 시행하기도 했다. 백인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캐나다와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영국과 미국 출신의 이민자는 환대의 대상이었지만 이탈리아인과 그리스인은 그렇지 못했다.
  • 1967년 포인트 시스템 ; 종전 이후 자본주의적 질서가 가속화되며 캐나다는 이민자를 생산 인구이자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노동력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시각에서 인종과 국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높은 교육 수준과 언어 능력, 기술적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캐나다의 국민이 될 수 있었다.
  • 1976년 이민법 ; 1976년 개정된 이민법은 공식적으로 이민을 캐나다의 목표와 연결했다. 다시 말해 캐나다의 인구통계학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목표와 일치하는 이를 데려오기 위해 더욱 깐깐히 심사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고급 인력의 빠른 수입을 위해 노동 허가서를 발급하거나 신속하게 이민 신청이 가능한 신속 이민 제도(Express Entry)를 도입하기도 했다.

RECIPE_ 점수

지난 10월 26일, 캐나다 연방 정부 이민 심사의 234회 차 결과가 발표됐다. 종합 랭킹 시스템(CRS·Comprehensive Ranking System)에서 이민이 허락된 최저 점수는 496점이었다. CRS에서는 학력, 나이, 언어 능력, 적응도, 배우자 등을 평가한다. 20세에서 29세 사이는 100점을, 45세 이상은 0점을 받는다. 박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이는 140점을 받을 수 있지만 고졸 미만인 자는 1점도 받을 수 없다. IRCC는 경제 이민 확대에 주목할 것이며 보건 인력, 트럭 운전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을 적극 유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대도시 과밀을 해결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신규 이민자를 소외 지역에 유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CONFLICT_ 인력난

2025년까지 150만 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캐나다의 계획은 지정학적 위기에 대한 대응, 난민 수용과 같은 대의보다는 국가 지속을 위한 계산 결과에 가깝다. 현재 캐나다는 역사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다. 올해 3월 이후에만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직장을 떠났고 노동에 참여하는 비율은 64.7퍼센트로 급락했다. 기업은 임금 인상으로, 국가는 이민 정책으로 인력난에 답했다. 국가가 원하는 이민자의 모습은 분명하다. 경제 활동이 가능한 정도의 언어 구사 능력을 지닌 고학력자이며 가족을 꾸릴 여력이 있어야 한다. 캐나다에 부족한 기술력을 지녔거나 북미권 문화에 익숙한 이는 더욱 모범적이다. 반면 난민과 망명자 등을 수용하는 인도적 이민은 전체 이민 수준의 16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수용 계획으로 추산된 난민은 2023년에는 9만 2290명, 2025년에는 8만 750명으로 해마다 줄어들 예정이다.
STRATEGY_ 의도된 평화

철저한 이민자 관리 덕에 대부분의 캐나다 국민은 이민에 긍정적인 인식을 표한다. 통계청의 발표와 함께 공개된 환경 연구소(Environics Institute)의 이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캐나다 국민 열 명 중 일곱 명은 이민 확대에 긍정적이었다. 물론 경제적 이유가 컸다. 국가의 경제를 살릴 수 있고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청년이라면 피부색과 출신 국가는 무관하다. 경제 성장을 1순위로 삼았기 때문에 현지인과 이민자 사이의 갈등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REFERENCE_ 이스라엘, 중국, 싱가포르

인력이 곧 기술력으로, 기술력이 곧 자본으로, 자본이 다시 새로운 인력의 재생산으로 순환하는 시대다. 순환을 잡고자 전 세계는 전략적 이민자 수용의 흐름을 받아들였다.
  • 이스라엘은 동포 귀환 정책을 통해 전 세계의 유대인을 모으고자 한다. 유대인이 이스라엘에 정착할 경우 실업 수당, 관세 보조, 주택 원조, 교육비 지원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 중국 역시 해외의 중국인과 대만인 등의 화교 인구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유입 정책을 쓰고 있다. 해외에서 석사 학위 이상을 취득한 화교가 중국에서 창업하면 10만 위안의 자금을 받을 수 있다. 덕분에 중국 광둥성에는 2021년 한 해에만 2만 7천 명의 인재가 유입됐다.
  •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고급 인력을 자국민으로 유입시키기 위해 비자 연장, 영주권 취득 등의 장벽을 낮추고 있다.

EFFECT_ 인도

한편 개발도상국의 인재 유출은 심화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인도다. 2021년에만 163만 명의 인도인이 시민권을 포기했다. 2020년 대비 두 배 늘어난 수치다. 인도인이기를 포기한 이들은 생활수준이 높은 미국, 캐나다 등의 서구 국가로 향했다. 기존 선진국들이 적극적인 이민 유치 정책을 펼수록, 늦게 출발한 국가는 더욱 황폐해진다. 이민 활성화는 국가적 경계와 민족적 구분을 일시적으로 희미하게 할 테지만, 한편으로는 계층 이동과 새로운 만남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기회의 땅은 사라졌고 능력주의만이 국경 주변을 떠돈다. 필리핀 마닐라의 간호사 마이크 노베다(Mike Noveda)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필리핀의 간호 인력 유출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 부서에는 15명의 간호사가 있는데, 절반은 해외 취업을 준비 중이다. 6개월 후면 그들은 해외로 떠날 것이다.”
INSIGHT_ 사라진 기회의 땅

독일의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노동력을 꼽았다. 요컨대 노동력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이다. OECD 국가의 평균 출생률은 1.59명이다. 국가적 경계 내부에서도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 선진국의 인구 재생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줄고 있는 셈이다. 성장이 멈추면 국가도 작동을 멈춘다. 지금, 제1세계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노동력 확보가 됐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자. 선진국의 적극적인 이민 정책은 다른 국가의 재생산 기반을 빼앗는다. 부유한 국가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고급 인력을 수혈받으며 더욱 오랫동안 부유해지고, 가난한 국가는 더욱 빠르게 황폐해진다.
FORESIGHT_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역사는 새로운 탈을 쓰고 다시 돌아온다. 탄소 배출과 화석 연료 사용이 과거의 착취였다면, 지금의 국가적 인력 전쟁은 착취의 새로운 모습에 가깝다. 화석 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이 현재와 미래 전체를 위기에 빠트린 것처럼 인력 전쟁도 결국은 모두에게 칼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의 시대를 거친 지금, 모든 국가는 생태계의 사슬처럼 크고 작게 엮여있다. 러시아가 시작한 전쟁이 가스 비에 영향을 주고, 인도의 가뭄이 당장 누군가의 식탁을 비운다. 한 국가의 붕괴는 다른 국가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캐나다에 150만 명의 고급 인력이 채워지는 만큼 다른 국가의 기반은 점차 허약해진다는 말이다. 새로 찾아온 이민의 시대는 과연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난민 수용 문제와 다가오는 다문화 시대가 궁금하시다면 《다문화 쇼크》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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