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삼성전자란

11월 4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그가 끝내 회장직에 올랐다. 새로운 삼성전자는 위기 속에서 더 잔인해진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0월 27일 회장으로 취임했다.
  • 경기 침체와 불황 속에서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포트폴리오가 모두 실적 부진 상태다.
  • 치킨 게임도 불사할 정도로 절치부심하지만 발목을 잡는 리스크가 너무 많다. 

BACKGROUND_ S
  • 거시 환경이 요동친다. 특히 미국의 움직임이 크다. 한때는 글로벌 공급망을 주도했으나 주요 산업의 제조 공장을 리쇼어링(reshoring)하고 있다. 9월 13일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통과 축하 행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Made in America’를 강조했다.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가 연상되는 대목이었다. 
  • ‘칩4’로 불리는 반도체 기술 동맹으로의 참여 압박은 심해지고 있다. 미국에서 칩을 생산하면 칩 연구 개발 지원 명목으로 보조금으로 500억 달러를 지원하고 세금을 공제하는 ‘칩스법(Chips Act)’ 역시 발효되었다. 핵심 조항은 중국을 향한 반도체 제조 장비 판매를 막고 중국 원자재를 배제하는 것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4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며 기준금리 4퍼센트 시대를 열었다. 기업은 경기 침체를 대비하고 있다. 고물가, 수요 둔화, 생산 감소, 경기 침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신호다. 위기 앞에서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리는 곳은 전 국민의 10퍼센트가 주주인 삼성전자다. 그리고 S의 파도 앞에서 파란 서핑 보드의 주인이 바뀌었다.

KEYPLAYER_ 이재용

10월 27일 삼성전자엔 두 가지 빅 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3분기 실적 발표고 하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장 승진 소식이다. 특히 후자의 여파는 컸다. 이사회는 이 회장 승진 의결에 대해 글로벌 대외 여건 악화 속 책임 경영 강화,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의 필요성을 들었다. 2012년 부회장 승진으로부터 10년, 부친인 고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지 2년 만이다. 취임사는 없었다. 다만 사내 게시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당면한 도전과 과제를 암시하는 말이었다.
MONEY_ 1조 5000억 원

개미들이 10월 한 달 매도한 삼성전자 주식이다. 시장은 솔직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1월 1일 깜짝 ‘6만 전자’를 찍고 다시 5만의 늪에 빠졌다. 이 회장은 ‘5만 전자 탈출’ 임무를 안고 있다. 2021년 말만 해도 8만 원을 넘었던 주가는 올해 지속 하락하며 지난 9월 30일에는 5만 1800원까지 주저앉아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다. 삼성 주가가 잠시 호조를 보인 것에 일부 언론은 이 회장 승진을 이유로 대지만 정작 취임 이튿날인 28일 주가는 하락했다. 삼성전자는 3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으나 영업 이익이 무려 31.39퍼센트 줄었다. 2019년 4분기 이후 전년 동일 분기 대비 첫 역성장이다. 그나마 10월 7일 잠정 실적 발표로 충격파가 상쇄된 모양새다. 이 회장 발언을 상기하면 절치부심이 읽힌다.
ANALYSIS_ 포트폴리오

삼성전자의 강점은 든든한 포트폴리오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물 수 있었다. 삼성전자의 사업은 크게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부품 산업을 이르는 DS(Device Solution)와 스마트폰, 가전 등 완제품을 이르는 DX(Digital Experience)로 나뉘는데 각 사업 부문마다 수요·공급의 사이클이 달라 꾸준한 실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 사업 초창기인 2013~2014년엔 갤럭시가 삼성전자를 먹여 살렸고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자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왔다. 2019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락했을 때에도 갤럭시노트10이 최단 기간 100만 대 판매를 돌파하며 삼성전자를 견인했다. 스마트폰-반도체-가전은 삼성의 세 별이었다. 3분기 실적을 뜯어 보면 부진한 분야는 메모리 반도체, 시스템LSI(팹리스), 생활 가전이었고, 강세를 보인 분야는 파운드리, 플래그십 스마트폰(MX), 디스플레이(SDC)였다. 수요 감소 앞에 삼성전자의 견고한 포트폴리오는 흔들리고 있다.
STRATEGY_ 승어부의 승부수

고 이건희 회장 타계 후 ‘승어부’를 외친 이재용 회장은 파운드리, 바이오, 6G를 삼성의 미래 주요 먹거리로 낙점했다. 그 외에 IRA의 영향을 받는 삼성SDI의 배터리가 있다. 삼성전자로 좁히면 파운드리와 하만(Harman)의 전장 사업이 있다. 어떤 것도 쉽지 않다.
  • 파운드리 ; 파운드리 업계 1위 TSMC는 3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47,9퍼센트 증가하며 삼성전자를 가뿐히 상회했다. 후발 주자 인텔은 자사 생산 제품을 파운드리 실적에 포함하며 2위 자리 탈환을 노린다. 
  • 전장 ; 전장 사업은 지난 10월 23일 자로 그룹 내 싱크탱크인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전장 관련 팀을 신설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아직 가시적 성과는 없다.
미래 먹거리만 어려운 게 아니다. 3분기 수익성 감소의 핵심 원인은 DS 부문 중 메모리 반도체였다. 파운드리에 비해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 않고, 성숙 단계에 접어들어 업황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삼성전자는 이 시장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다. 메모리는 삼성전자의 주력 상품인 만큼 삼성전자는 이 시장을 놓칠 수 없다.
RECIPE_ 메모리 불황

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 저장용 부품이다. D램과 S램, 낸드플래시 등을 의미한다. 스마트폰, 컴퓨터, 스마트 TV, 그래픽 메모리, USB, SSD 등에 쓰인다. 코로나19로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 그에 맞춰 설비 투자와 증산이 이뤄졌지만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 우려로 이들 제품 및 업계 수요가 줄었다. 이례적 공급 과잉 상황에 가격은 떨어졌다. D램의 고정 거래 가격은 지난 10월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낸드플래시 가격도 5개월 연속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평균 판매 가격(ASP) 역시 20퍼센트 가량 감소했다. 반도체 재고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삼성전자 전체의 3분기 재고는 57조 3000억 원 규모로 전분기 대비 5조 가량이 증가했는데 대부분은 메모리 사업 부문에서다. 영업 이익률 역시 하락 중이다. 업계 2위인 SK하이닉스는 3분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매출 6.9퍼센트, 영업 이익 60.3퍼센트가 감소했다.
CONFLICT_ n차 치킨 게임

공급 과잉과 수익성 약화를 해결하려면 1차적으로 감산을 해야 한다. 원가 절감폭보다 가격 하락폭이 크면 팔아도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메모리 업계는 각각 투자 축소와 감산 계획을 발표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내년 투자 규모를 금년 대비 50퍼센트 이상 줄이겠다고 했고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량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업계 3위인 미국 마이크론(Micron)과 뒤를 잇는 일본의 키오시아(Kioxia) 역시 비슷한 내용을 언급했다. 업계 1위 삼성전자는 잔인했다. “인위적 감산은 없다”고 밝혔다. 이미 기술력이 우수해 원가 절감 능력이 크니 저가 경쟁을 벌여도 삼성전자가 이기는 그림이 나온다. 업계는 ‘치킨 게임’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인텔로부터 낸드 부문을 인수한 SK하이닉스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REFERENCE_ 밥줄의 탄생

삼성전자는 어떻게 메모리 1위로 올라설 수 있었을까? 메모리 반도체 업계 간 격돌의 역사는 길다. 춘추 전국 시대 속 출혈 경쟁 즉 치킨 게임을 통해 몇 차례 세력 구도 재편이 있었다.
  • 1차 치킨 게임(1984) ; 인텔은 1971년 최초로 D램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은 인텔을 앞세워 반도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했다. 인텔의 시장 점유율은 82.9퍼센트였다. 오일 쇼크로 미국 반도체 업계가 투자를 축소한 틈을 타 일본의 NEC, 도시바, 히타치 등은 압도적인 수율을 앞세워 미국으로 진출해 저가 경쟁을 벌였다. 당시 64K D램 가격은 3달러에서 0.3달러까지 떨어졌다. ‘제2의 진주만 공습’으로 표현된 이 사건은 미국 상무부가 일본 반도체 업계에 21.7~188퍼센트의 덤핑 마진을 확정하며 미국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때 체결된 것이 1986년의 미일 반도체 협정이다. 삼성전자는 그 틈을 타 1983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견제를 당하는 동안 가성비를 앞세워 성장했다. 이때 한국 기업 역시 반덤핑 제소를 당했으나 일본만큼 징벌적 수준은 아니었다.
  • 2차 치킨 게임(2007) ; 글로벌 금융 위기가 있던 시기다. 한국이 휘청이던 틈을 타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이 성장해 저가 경쟁을 걸어왔다. 512M D램 가격은 6.8달러에서 0.5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은 오히려 생산 공장을 늘려 도전을 받았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14.3퍼센트,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50퍼센트가량 영업 이익이 감소하는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독일의 키몬다는 파산했고 대만 기업은 고용량 D랩 시장에서 철수했으며 일본 엘피다는 공적자금을 투여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2차 치킨 게임은 한국,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 3차 치킨 게임(2010) ; 대만과 일본은 가만있지 않았다. 투자 증대와 증산으로 다시 한 번 공급량을 늘리며 싸움을 걸어왔다. 그 결과로 엘피다는 파산했다. 대만은 고성능 제품군에서 삼성전자, 하이닉스, 마이크론의 3강 구도를 깰 수 없었다. 이 흐름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이번에 치킨 게임이 다시 벌어진다면 삼성전자발 4차 치킨 게임이 된다.

FORESIGHT_ 잔인한 계절

겨울은 왔다. 삼성도 잔인해질 것이다. 이 회장의 취임으로 삼성전자에 걸린 기대는 크지만 과거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첫 진출을 알렸을 때 만큼의 혁신은 부재해 보인다. 주가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삼성 전체로 보면 신산업에 공격적 투자를 이어나가려고 해도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시설 투자(CAPEX)에 계속 돈을 써야 하는 실정이다. 올해 시설 투자 예상 금액이 54조 원이나 된다. 전년 대비 12퍼센트나 늘렸고 대부분 4분기에 집중돼 있다. 북한의 계속된 도발로 지정학 리스크는 높아지고 미-중 기술 경쟁까지 심화하며 삼성의 리스크는 가중되고 있다. 활로는 모빌리티에 있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빨라지고 자율주행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하며 차량 OS 경쟁이 가시화되고 있다. ‘달리는 스마트폰’이 된 차량에서 전장과 소프트웨어, 이를 뒷받침할 반도체와 배터리는 우상향할 시장이다. 완성차는 없지만 삼성전자의 미래는 역설적으로 모빌리티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INSIGHT_ 천수답

삼성의 위상은 독보적이지만 국민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이 회장 취임 당시 대부분의 언론은 뉴삼성에 대한 기대감만을 전했다. 취임사 없이 겸허히 승진한 점과 더불어 그의 소탈한 행보를 조명하는 곳도 있었다. 이 회장은 취임 당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물산 합병·회계 부정 의혹 관련 재판에 출석했다. 박근혜 정부 뇌물 제공 혐의와 삼성물산 불법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관련 비리는 어느덧 가려졌다. 참여연대는 이 회장이 미등기임원인 점을 꼬집으며 권한은 있으나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위치에 올랐다고 꼬집는다. 이것이 ‘사법 리스크’인지 ‘오너 리스크’인지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무노조 경영을 이어온 삼성이 책임 경영과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것의 진정성 역시 눈여겨볼 일이다. 확실한 것은 한국이 삼성이라는 단 하나의 거대 기업에 의존하는 천수답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면 이 양가감정은 계속된다는 점이다. 경기 침체 우려로 투자가 곧 도박인 시기에 삼성이 다져야 할 것은 어쩌면 내실일지도 모른다.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지배구조 등이 궁금하시다면 〈세 번째 별〉 을, 칩4 동맹에 따른 최근 반도체 시장 상황이 궁금하다면 〈반도체의 기정학개론〉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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