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 대잔치

11월 7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기후변화 대응을 논의하는 글로벌 총회가 ‘그린워싱 쇼’가 됐다. 말뿐인 약속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 시작 전부터 그린워싱이라 비판 받던 COP27가 개막했다.
  • COP27을 비판하는 환경운동은 구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말뿐인 약속은 부족하다는 뜻이다.
  • 온실가스를 줄일 수 없다면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DEFINITION_ COP

지상 최대 그린워싱 쇼가 시작됐다. 그 이름은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무대는 이집트, 출연진은 각국의 정상이다.
  • 1992년 197개국이 모여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내용이 담긴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했다. COP는 당사국이 모여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첫 총회를 시작해, 코로나19 판데믹으로 개최가 연기된 2020년을 제외하고 매년 열리고 있다. 참석 여부는 기후변화대응에 대한 각국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기도 하다.
  • 현지시각 6일부터 18일까지 이집트 휴양지 샤름 엘 셰이크에서 진행되는 COP27엔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브라질의 정상이 참석한다. 우리나라에선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이끄는 정부 대표단과 함께 나경원 기후환경 대사가 대통령 특사로 참석한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이제 COP은 세계적인 그린워싱 축제일 뿐”이라며 불참을 선언했다. 일부 인권·기후 운동가도 불참 의사를 밝혔다. 80여 개국의 정상이 참여하는 글로벌 총회는 어쩌다 그린워싱이 됐을까.

BACKGROUND_ 지연된 약속

COP은 전 세계가 모여 기후변화 대응을 약속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 회의다. 합의한 내용은 폐막일에 공동성명으로 발표된다. 역대 기후변화 대응 관련 굵직한 약속들이 COP에서 나왔고, 대부분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 교토의정서;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3차 COP의 결과물이다. 주요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해 온실가스를 감축하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탈퇴를 방지할 대책이 없고, 당시 개발 도상국이던 중국과 인도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 이후 미국, 러시아, 일본 등이 경제적 이유로 탈퇴하며 사실상 무력화됐다.
  • 파리협정;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COP의 결과물이다. 교토의정서의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협정으로 채택됐다.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선진국만 해당되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당사국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2021년 8월 발표된 제6차 IPCC[1]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의 노력으로 ‘1.5도의 목표’을 달성하기엔 역부족이다.
  • 글래스고 기후조약;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COP의 결과물이다. 석탄 사용 종식을 두고 각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폐막일을 하루 넘겨 채택됐다. 결국 석탄 사용 종식에 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아 파리협정의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KEYPLAYER_ 이집트
  • 오랜 시간에 걸쳐 전 세계의 약속은 지연돼 왔다. COP27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개최되는 5번째 총회다. 기후변화에 취약한 아프리카 지역에 관심을 모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지만, 의장국 이집트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집트의 인권 문제를 친환경으로 덮는 그린워싱이라는 것이다.

  •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은 쿠데타로 대통령직에 오른 인물로 10년째 집권 중이다. 권위주의 정부 아래 공공장소에서 시위가 금지되고 있으며 많은 언론인, 인권운동가가 탄압 받고 있다. 기후운동가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인권기구에 따르면 현재 수감 중인 정치범은 6만 명에 이른다.

  • 개최 장소에서도 시위에 대한 반감이 드러난다. 샤름 엘 셰이크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휴양지로, 대규모 태양광 수소 발전기가 설치돼 있고 내부 시설은 재생 에너지로 운영된다. 하지만 내부엔 대규모 인원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이 지역에 들어가기 위해선 광범위한 수색을 받아야 한다. 이집트는 회담 장소와 멀리 떨어진 사막을 시위대를 위한 공간으로 지정했다.


REFERENCE_ 코카콜라

이집트가 이번 총회의 후원사로 코카콜라와 손을 잡은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2019년 코카콜라는 1년에 300만 톤의 플라스틱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플라스틱의 99퍼센트는 화석연료로 생산된다. 제26차 COP 의장국 영국은 화석연료 관련 기업을 후원사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코카콜라는 이번 후원 활동을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5퍼센트 감축하고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을 위한 목표의 일환”이라고 설명했고. 이집트 당국은 이런 코카콜라의 계획을 믿는다고 밝혔다.
CONFLICT_ 환경 운동
  • 시작 전부터 COP27은 ‘그린워싱’이라는 평을 받았다. 많은 환경 단체가 코카콜라 후원사 지정 반대 성명에 동참하는 등 COP27 비판 행보를 보이고 있다. COP27 개막 하루 전엔 ‘그린피스’와 ‘멸종 저항’의 시위대가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의 전용기 구역을 점거했다. 한 사람이 비행기로 이동하면 1킬로미터당 약 286그램의 탄소가 발생된다. 전세기로 이동할 경우 탄소 배출량은 10배가 된다. 각국 정상은 전세기를 타고 이집트로 향한다. 시위대는 전용기 바퀴 앞에 앉아 시위를 벌였고 전용기 몇 대의 이륙이 지연됐다.

  • 이 외에도 여러 환경 단체의 시위가 기사화되고 있다. 이탈리아 환경단체 ‘울티마 제네라지오네’는 반 고흐 작품에 야채 스프를 끼얹고, 독일 환경단체 ‘라스트 제너레이션'은 클로드 모네 작품에 으깬 감자를 끼얹었다. 시위대는 작품 훼손을 막기 위해 예술 복원 전문가와 상의했으며 보호 유리가 있어 작품 손상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위 방식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ANALYSIS_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 환경 운동은 이제 더는 구호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레타 툰베리는 “사람들이 실제로 의미 있는 행동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기회의 장으로 COP을 활용하지 않는 한 이 총회는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각국 정상이 모여 나누는 ‘공식적인’ 논의나 말뿐인 약속으로 충분치 않다는 뜻이다.

  • 주요 선진국은 코펜하겐에서 열린 COP15부터 개발 도상국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약속해왔다. 2020년까지 1000억 달러의 기후금융을 조성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돕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약속 또한 COP26에서 미뤄졌다.

  • COP27에서 주목할 건 ‘손실과 피해’ 정식 의제화 여부다. ‘손실과 피해’는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의 용어로, 인간 활동이 만들어낸 기후변화로 인한 악영향을 말한다. 이제 기후변화 취약국은 지원을 넘어선 보상을 요구한다. 선진국은 국제적 협력으로서의 지원에는 동의하지만 보상금 지급에는 미온적이다. 손실의 의미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INSIGHT_ 숫자가 말하는 것
  • 영국의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이 토마토 스프를 끼얹은 반 고흐 ‘해바라기’ 의 가치는 8420만 달러, 한화로 약 1200억 원이다. 현장에 있던 활동가들은 재물손괴와 불법칩입 혐의로 체포됐다. 숫자로 환산하면 피해와 책임은 명확해진다. 이번 시위의 메시지는 ‘명화를 보호하듯 지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와 책임도 숫자로 따질 순 없을까?

  • 이옥수 저자는 《그린워싱 주의보》에서 데이터로 환경 문제를 보는 법을 설명한다. “사회학자 맥스 로저(Max Roser)가 설립한 글로벌 데이터랩(Global Change Data Lab)에선 다음과 같은 통계를 내놓았다. 1751년부터 2017년까지 누적된 온실가스 배출량을 살펴보면 북미와 EU의 기여분이 그중의 50퍼센트를 차지한다. (…) 또 주목할 것은 중남미나 아프리카 소재 개발 도상국의 배출량이다. 이들 국가의 경우 누적 온실가스 배출수준은 전 세계 배출의 6퍼센트에 불과하다.”


FORESIGHT_ 성장의 대가

2022년 9월 덴마크가 기후변화로 피해를 겪는 개발 도상국에 1억 크로네, 한화로 약 187억 원을 주기로 약속했다. 선진국이 ‘손실과 피해’에 실질적 보상을 한 첫 사례다. 이 기금은 아프리카 서북부 사헬 등 기후위기 취약국에 쓰일 계획이다. 성장의 대가는 다른 나라의 피해가 아닌 성장의 산물로 치러야 한다. 이번 그린워싱 대잔치에서 기후변화 대응를 향한 ‘진심’을 입증하는 건 바로 이 숫자일 것이다.

COP27 의장국 이집트의 속사정을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쇼는 계속되면 안 된다〉를, 기후불평등에 대해 알고 싶다면 〈3.5퍼센트의 모든 것〉을, 숫자로 읽는 친환경이 궁금하다면《그린워싱 주의보》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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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설립한 유엔 산하 국제 협의체로, 기후 변화와 관련된 위험을 평가하고 글로벌 대책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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