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불평등

11월 9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기회의 공정은 풀리지 않는 화두다. 불평등한 도서관에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 마포구가 작은도서관을 없앤다. 주민 반발은 작지 않다.
  • 도서관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기회다. 그러나 이 기회는 전혀 공정하지 않다.
  • 우리의 일상은 지역 정치와 긴밀하게 맞닿아있다. ‘우리 동네 정치’가 중요한 까닭이다.

BACKGROUND_ 작은도서관

마포구에서 도서관이 없어진다. 무려 9곳이나 없어진다. 물론 구립 도서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내의 ‘작은도서관’ 9곳의 문을 닫겠다는 것이다. 당장 주민 반발이 심하다.
 
ⓒ서울 마포구청 누리집

그런데 ‘작은’ 도서관은 장서는 천 권, 너비는 33㎡ 이상을 기준으로 하는 미니 도서관이다. 책 천 권에 공간 열 평. 이 소박한 공간이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였길래 이렇게 민심이 술렁이는 것일까?
DEFINITION_ 도세권

어떠한 공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한국식 자본주의 문법으로 번역해 보는 방법이 있다. 바로 부동산 프레임을 이용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익숙한 ‘역세권’이라는 용어가 이동 편의성의 가치를 증명한다.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초코아(초등학교가 코 앞인 아파트)’ 등의 용어는 아파트와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열망을 가감 없이 비춰 낸다. 도서관은 어떨까? 놀랍게도 ‘도세권’이라는 용어가 있다. 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도서관이 중요한 고려사항이라는 뜻이다.
ANALYSIS_ 작은도서관의 크기

도서관의 가치가 부동산 시장에서도 유효하다니,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는 탄식은 다 거짓말일까? 그렇지 않다. 독서량은 줄고 있다. 하지만 도서관의 가치가 함께 줄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포구청의 주민 소통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어보면 많은 경우 ‘아이들’을 언급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문화공간이었다는 얘기다. 또, 그곳에서 활동해 왔던 독서 동아리 등 지식 기반의 지역 커뮤니티 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즉, 작은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 한 지역 커뮤니티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왔던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비용을 지불하고 ‘특별한’ 독서 모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런 모임은 너무나 멀고 비싸다. 만약 우리 동네에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평범한’ 독서 모임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무한의 기회를 내포한다.
KEYPLAYER_ 도서관에 가지 않는 사람들

그렇다면 누가 도서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일까? 조금주 서초구립반포도서관 관장의 분석에 따르면 가구별 월평균 소득에 따라 도서 대출량에 차이가 보인다. 월평균 소득이 중상위권으로 올라갈수록 공공도서관 이용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도서관에 잘 가지 않는 계층도 존재한다. 이들을 도서관으로 끌어들일 의무가 우리 사회에는 있다. 도의적인 의무가 아니다. 법에 정해진 의무다. 도서관법 제7조에 따르면 “도서관은 국민이 신체적·지역적·경제적·사회적 여건과 관계없이 공평한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여야 한다”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2019 국민독서실태 조사 자료에 의하면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성인 10명 중 한 명꼴이 ‘집에서 멀다’는 점을 꼽았다. 학생의 경우에는 3명 중 한 명꼴이었다. 우리에겐 커다란 도서관보다 가까운 도서관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REFERENCE_ 아이디어 스토어

도서관이 기회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증거 중 하나로 꼽히는 사례가 바로 영국의 ‘아이디어 스토어’다. 이름은 ‘상점’이지만 정체는 ‘도서관’이다. 런던의 32개 자치구 중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히는 타워 햄리츠의 공공 도서관으로, 원래 이 지역 주민의 83퍼센트는 한 번도 도서관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1998년, 지자체가 주민들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어떤 도서관이 필요한지 묻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로 탄생한 이곳은 책을 비롯해 음반, DVD 등 각종 자료의 대출 서비스는 물론이고 각종 평생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민자를 위한 어학 프로그램, 구직자를 위한 취업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컴퓨터 사용법, 요리, 무용 등 종류가 다양하다. 집에 컴퓨터가 없는 주민이 많아 컴퓨터도 다수 비치되어 있으며 구청의 간단한 행정 서비스까지 처리할 수 있다. 방문자도 4배 이상 증가했고, 자료 대출도 280퍼센트 이상 상승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한다. 도서관이 주민의 삶을 바꾸고 있다.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아이디어 스토어는 빈민가의 노점상 거리, 그 한복판에 있다.
CONFLICT_ 강남구와 금천구의 공정

우리 사회의 ‘공정’ 논란에 따라붙는 꼬리 질문이 바로 ‘기회의 공정’이다. 공공도서관이야말로 그 ‘기회’가 지역별로 얼마나 공정하게 분포되어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된다. 서울 강남구의 우성아파트나 은마아파트의 경우 걸어서 10분이 안 걸리는 거리에 공공도서관이 세 곳이나 있다. 지역별 소득격차가 100퍼센트 공공도서관 숫자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나 구 등 지방자치단체가 공공도서관의 건립 주체인 만큼, 각 지자체의 재정자립도 및 지자체 단체장의 의지 등에 따라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21년 기준 강남구의 공공도서관 수는 14곳이다. 금천구는 4곳에 그쳤다. 강남구와 금천구의 기회는 정말, 공정할까?
MONEY_ 20만 원이 사라지는 방법

문제는 지역 간 격차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다양한 복지 및 문화 정책과 이를 위한 예산 배분은 지자체장이 바뀌면 특히 휘청이는 경우가 많다. SOC 건설 등과 같이 한번 공사가 시작되면 쉽사리 중단하기 어려운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충청남도의 경우 최근 여성 농민을 대상으로 연 20만 원 가량씩 지급해 오던 여성농민 행복바우처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도지사가 바뀌면서 “정책방향이 바뀌었다”라는 것이 충남도의 설명이다. 올해 7월, 강원도 강릉시는 강릉국제영화제와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 대한 지원 중단을 발표했다.
FORESIGHT_ 복지의 재정의

복지 및 문화 정책은 꾸준히 지속하며 장기적인 영향을 쌓아갈 때 의미 있는 결과를 거둘 수 있다. 주민의 경험과 환경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복지가 없어지면 삶의 환경이 달라진다. 7살 아이에게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가 없어진다면 삶에 큰 변화다. 매년 우리 ‘바깥양반’이 아니라 오롯이 ‘나’에게 지급되는 20만 원이 있었다가 없어진다면 그 또한 큰 변화다. 정책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정부는 복지를 재정의하고자 한다. 신임 지자체장들도 마찬가지다. 더 효율적인 복지를 위한다는 명분에 반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신중해야 한다.
INSIGHT_ 우리 동네 정치

매일같이 쏟아지는 뉴스에는 여의도와 용산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국가의 명운을 걸고 오가는 정치인들의 설전으로 포털의 뉴스 섹션은 늘 시끄럽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 더 가깝고 내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쩌면 지자체일 수도 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청년 정치인이라는 이름으로 지방 의회에 도전장을 내미는 후보자에 관한 기사를 접하게 된다. 거리 곳곳을 메운 구청장 후보자의 현수막도 어지러울 정도다. 그러나 그뿐이다. 우리는 누가 우리 동네의 일을 결정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어떻게 결정하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생각보다 지자체의 힘은 세다. 우리의 일상을 바닥부터 뒤흔들 수 있을 만큼. ‘우리 동네 정치’에 관심을 가져볼 만한 이유로 충분할 만큼.

조금주 서초구립반포도서관 관장이 말하는 도서관의 가치가 궁금하시다면 북저널리즘의 인터뷰 시리즈, TALKS 중〈미래는 공공도서관에 있다〉편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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