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가 정의하는 시대

11월 10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르노와 구글이 손을 잡는다. 소프트웨어가 모든 것을 정의하는 시대, 자동차는 공장 밖에서 완성된다.

  • 완성차 제조사 르노가 구글과 손잡고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건 자동차 시장만이 아니다. 가전제품 제조사도 운영체계(OS) 경쟁을 벌이고 있다.
  •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주목받는 지금, 완성품 제조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BACKGROUND_ 르노의 계획

8일 프랑스 완성차 제조사 르노가 대대적인 사업구조 개편 계획을 밝혔다. 설립 124년만이다. 이번 개편에서 눈에 띄는 건 구글과의 협력이다. 르노는 구글과 자동차용 소프트웨어 공동 개발에 나선다. 르노의 CEO는 성명을 통해 “구글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자동차 디자인부터 생산, 출시까지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 과정부터 소프트웨어를 중심에 두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개발 과정에 디지털 트윈 기술을 도입한다. 차량 배포 전, 가상 공간에서 차량 작동 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오류를 감지하고 해결할 계획이다. 르노의 계획은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oftware Defined Vehicle,SDV)를 향한 야심을 말하고 있다. 자동차를 공장에서 내보내면 끝인 시대는 지났다.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는 공장 밖에서 완성된다.
DEFINITION_ SDx
  • 소프트웨어 정의 기술(Software Defined Everything, SDx); 소프트웨어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하드웨어를 설계한다. 하드웨어가 중요치 않은 경우도 있다. 소프트웨어 정의 네트워킹, 소프트웨어 정의 스토리지, 소프트웨어 정의 데이터센터 등이 있다.

  •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oftware Defined Vehicle, SDV); 운행·편의·안전 기능 등 자동차의 모든 것을 소프트웨어가 결정하는 자동차를 말한다. 엔진, 파워트레인, 차체 등 하드웨어 중심의 자동차 개발 과정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전통 완성차의 평균 수명 주기는 15년이다. 이 기간 동안 튜닝을 하지 않는 한, 차의 기능은 거의 변경되지 않는다. 하지만 SDV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차량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RECIPE_ 자동화, 개인화, 연결성

SDV 시장에서 하드웨어는 껍데기일 뿐이다. SDV는 공장 밖으로 나간 후에도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계속 진화하기 때문이다.
  • 자동화; 무선 통신(Over-the-Air,OTA)으로 차량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진행한다. 대부분의 자동차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위해 서비스센터에 방문해야 한다. SDV는 정비소에 가지 않아도 소프트웨어의 오류를 개선하고 주기적으로 기능을 향상할 수 있다.
  • 개인화; 운전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 차량 내부의 음향, 조명 등을 바꿀 수 있다. 또 운전자의 운전 습관 등을 분석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다. 구독을 통해 원하는 서비스를 추가할 수도 있다.
  • 연결성; 운행 데이터가 클라우드로 전송된다. 이는 향후 업데이트에 반영되는 등 서비스 개선에 이용된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는 궁극적으로 자율주행에 활용될 수 있다.

KEYPLAYER_ 구글

하드웨어를 가진 완성차 제조사들은 내실을 다지기 위해 빅테크 기업과 손을 잡거나 자체 운영체계(OS)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2017년 구글은 차량용 OS인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를 내놓은 바 있다. 당시 완성차 제조사들은 빅테크에 종속될 것을 우려해 자체 OS 개발에 몰두했다. 하지만 기술의 격차를 따라잡기는 어려웠다. 2020년 스웨덴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를 시작으로 포드 등이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BMW는 내년부터 주요 신차에 구글 OS를 쓰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르노는 구글과의 공동 개발이란 새로운 선택지를 택했다.
REFERENCE_ 가전제품

소프트웨어에 눈을 돌리는 건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다. 소프트웨어가 모든 것을 정의하는 시대, 가전제품 시장에서도 OS 경쟁이 뜨겁다. TV 시장은 하드웨어의 기술이 평준화되고 대체 영상기기들이 나오면서 매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타이젠’, LG전자는 ‘웹OS’을 개발하는 등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OTT , 게임 등의 콘텐츠를 업고 ‘TV 플랫폼’으로 나아갈 돌파구로 소프트웨어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RISK_ 독점

그럴수록 힘을 가지는 건 빅테크 기업이다. 현재 차량 내부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안드로이드 오토에서, 구글은 자사 앱마켓 플레이스토어에서 다운로드 받은 앱만 실행되도록 하고 있다. 원스토어, 삼성 갤럭시스토어 등 국내 앱마켓의 앱은 연동이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우려해 테슬라, 도요타, 폭스바겐, 현대차그룹 등은 여전히 통합 OS를 자체 개발 중이다. 가전제품 시장에서 구글의 위력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스마트 TV OS 시장 점유율은 구글 안드로이드가 41.3퍼센트다. 2020년부터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ANALYSIS_ 완성품

자동차는 기계에서 벗어나 전자기기의 꿈을 꾸고 있다. 가전제품은 전자기기를 넘어서 플랫폼의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만든 건 소프트웨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이 밀접해질수록 ‘완성품’의 개념은 옅어진다. 계속 진화하는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공장에서 나오는 형태만으로 완성품이라 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가 모든 것을 정의하는 ‘SDx의 시대’에서 자동차와 가전제품은 모두 공장 밖에서 완성된다.
INSIGHT_ 다시 하드웨어

그렇다면 하드웨어 제조사가 쌓아온 기술에선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흔히 SDV를 두고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라 한다. 자동차가 스마트폰과 유사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 중심으로 재편되던 시기, 좋은 휴대폰을 판단하는 기준이 디자인이나 카메라 성능 같은 하드웨어에서 OS로 옮겨간 것처럼 말이다. 스마트폰 OS 경쟁이 구글과 애플의 양강구도로 굳어진 후 폴더블, 롤러블 등 하드웨어의 발전이 다시 혁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전제품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엿볼 수 있다. OS 경쟁 속에서 인기를 끈 건, LG전자의 무선 이동식 스크린 ‘스탠바이미’, 삼성전자의 휴대용 프로젝터 ‘더 프리스타일’이다. 기존의 틀을 깨는 디자인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 있다. 
FORESIGHT_ 하드웨어의 진화

테슬라는 금속패널을 용접하는 전통적인 생산 방식이 아닌, 거대한 알루미늄을 압축해 차체를 통째로 만드는 ‘기가 캐스팅’ 기법을 쓰고 있다. 조립 과정을 단순화해 원가를 절감한 혁신적인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볼보도 올해 전기차 생산 과정에 ‘메가캐스팅’ 기법을 도입할 계획을 밝혔다. 거의 모든 완성차 제조사가 SDV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지금, 한 발 더 나아간 미래를 내다본다면 또 다른 혁신을 준비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이후의 혁신은 다시 공장 안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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