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11월 18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소득 수준에 따라 부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낮은 소득 수준’과 ‘부양’이란 단어를 교차하면 무엇이 보이나.

  • 우리나라 10명 중 6명이 ‘부양은 개인과 국가의 공동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는 통계청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 부양에 대한 인식 변화는 2년 전부터 이어졌다. 
  • 주목해야 할 건 ‘인식의 차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살피면 ‘영 케어러’ 문제가 보인다.

NUMBER_ 60퍼센트

통계청의 ‘2022년 사회조사 결과’에서 62.1퍼센트가 ‘부모 노후를 가족·정부·사회가 함께 돌봐야 한다’고 응답했다. 더 이상 돌봄을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인식이 두드러지는 결과다. 돌봄에 대한 인식 변화는 일찍이 2018년에서 2020년 사이에 일어났다. 2018년 결과는 48.3퍼센트, 2020년 결과는 여기서 13.3퍼센트포인트 상승한 61.6퍼센트였다. 이번 조사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식 변화’가 아니란 소리다. 60퍼센트라는 숫자 너머의 현실을 봐야 한다.
ANALYSIS_ 세대?

이번 조사에서 주목할 점은 ‘인식 변화’가 아닌 ‘인식 차이’다. 부양을 둘러싼 인식 차이라고 하면 쉽게 ‘세대’를 떠올린다. 자식이 부양을 마다하는 건 불효라는 유교 사상이 강하게 남아 있는 인식 말이다. 하지만 통계청의 ‘2022 고령자 통계’로 이러한 인식은 그야말로 옛말임이 드러났다. 지난 10년간 가족이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인 세대는 38.3퍼센트에서 27.3퍼센트로 감소했다. 반면, 50퍼센트에 가까운 노인 세대가 부양은 가족·정부·사회의 공동 책임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부양에 대한 인식 차이는 세대 간의 문제가 아니다.
MONEY_ 100만 원과 600만 원 사이

인식 차이를 유발하는 건 다름 아닌 소득 수준이다. ‘2022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 월평균 소득이 높을수록 부양을 가족·정부·사회의 공동 책임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 100만 원 미만인 계층에서 해당 응답에 대한 비율이 55퍼센트인 반면, 600만 원 이상인 계층에서는 66.7퍼센트까지 높아졌다. 또 부모의 노후는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은 100만 원 미만 계층이 가장 높았고, 600만 원 이상인 계층이 가장 낮았다. 이러한 인식 차는 왜 발생하는 걸까?
 DEFINITION_ 영 케어러

‘낮은 소득 수준’과 ‘부양’이라는 단어를 교차하면 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영 케어러’다. 장애·질병·알코올 중독 등을 앓는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청년을 말한다. 영 케어러는 학업과 취업에 집중할 시기에 뒤바뀐 부양의 책임을 떠안는다. 이는 결과적으로 빈곤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2021년 22세 청년이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하고, 우리나라에서 영 케어러라는 단어가 알려지게 됐다. 그전까지는 법적·정책적 인지가 없었다.
OPINION_ 사회의 구멍

‘22세 청년 간병살인’으로 알려진 사건을 취재·보도한 탐사보도 전문 매체 셜록의 박상규 기자에게 부양 및 돌봄을 둘러싼 인식의 변화 그리고 차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사건이 알려진 초반, 많은 언론사가 살인에 초점을 맞췄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자로서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가 궁금하다.

‘오죽했으면 아들이 아버지를 방치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취재였다. 기사에 드러나지 않은 구체적인 이야기가 궁금했다. 강도영(가명) 씨 사건의 경우,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곳에서 일어난 문제다. 그걸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구멍이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 사건으로 영 케어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돌봄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결국 강도영 씨는 징역 4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제도적으로 바뀐 점이 있나.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인식은 달라졌어도 제도적 변화는 없다. 보건복지부와 서대문구청이 가족돌봄청년 지원 시범사업 업무협약을 맺은 정도다.
ANALYSIS_ 정보의 차단

‘2022 사회조사 결과’에 나타난 가구 월평균 소득에 따른 인식 차이는 어떻게 해석하나.

영 케어러들이 실제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경제적 취약성이 교육 수준으로 연결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영 케어러들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다. 부모님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가 도움을 줄 거라는 정보 자체가 없다. 제한된 생활 공간과 관계, 다시 말해 집에서 부모님만 마주하는 환경 탓에 제도 관련한 정보 취득 경로가 다양하지 않다.

영 케어러가 직면한 문제는 무엇인가.

일차적인 문제는 위에서 드러난 대로 부모의 문제에 대해서 공동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국가와 정부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파악하고 요구할 수도 없다. 혼자 감당하다보니 극심한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앓는 사람이 많다. 심리상담 서비스가 필수적으로 제공돼야 한다.

경제적 취약성과 사회적 취약성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 같다.

영 케어러는 학교, 직장 등 자기 삶을 살 수가 없다. 결국 청년의 돌봄 노동을 대체할 실질적 노동력이 필요한데, 돌봄 노동을 할 사람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최소 8시간은 확보돼야 영 케어러가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다.

영 케어러 문제와 관련해 계획 중인 것이 있나.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은 강도영 씨 보도 이후, 의료인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심포지엄을 진행하는 등 우리 사회에서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고민을 같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은 복지가 잘 발달된 국가에 비해 ‘돌봄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인식이 덜하다. 주변국에서 좋은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도 대책 마련이 힘든 이유 중 하나다. 해외 사례가 늘 모범 답안을 주는 건 아니지만, 영국, 호주 등 해외 취재를 통해 정책 제안을 할 예정이다.
RECIPE_ 영 케어러 찾기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영 케어러를 해외에서는 숨겨진 집단(hidden army), 잊혀진 최전선(forgotten front line)이라 부르기도 한다. 영국과 호주 등은 영 케어러를 법률에 명시해 가시화하고,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같은 고민을 가진 영 케어러들을 위한 자조모임을 형성하는 등의 대안이 마련되고 있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다.
RISK_ 나올 수 없는

대외활동을 통해 영 케어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조모임을 추진한 대학생 윤현지 씨에게 의견을 물었다.

활동 중에 영 케어러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나.

영 케어러를 찾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영 케어러를 지원하는 단체, 공공기관 관련자만 인터뷰하던 중이었다. 근로장학생 시절 만났던 친구가 떠올랐다. 아픈 가족을 돌보느라 군대를 안 갔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 친구에게 전화해 활동을 설명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친구는 영 케어러라는 단어가 있는 줄도 모른다고 했다. 인터뷰를 통해 처음 접했다고 했다.

자조 모임은 어떻게 구성하게 됐는지.

영 케어러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건 돌봄 서비스나 금전적 지원인데, 대학생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돌봄 이후에 집중했다. 간병하던 가족이 돌아가시는 등 돌봄이 끝난 후, 영 케어러가 자립하는 과정 말이다. 지원이 지속 가능하려면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했다. 영 케어러가 일하며 미래를 준비할 자금을 모으고, 커뮤니티도 형성할 수 있는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카페를 섭외해 자조모임을 우선적으로 진행하자는 계획이었다.

11월 5일 진행된 자조모임은 어땠나.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오지 못했다. SNS에 ‘가족돌봄’, ‘가족돌봄’  등의 해시태그를 검색해보면, 아주 소수지만 가족을 간병하는 모습을 직접 공유하는 영 케어러가 있다. 메시지를 보냈더니 돌아오는 답변이 모두 같았다. 아예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이렇게 좋은 걸 이제 알았다고 아쉬워하는 분도 계셨다. 병원 게시판에 포스터를 붙이면 더 많은 영 케어러가 볼 수 있다는 조언도 해주셨다.

자조모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조모임(Support group)은 공통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 간에 도움을 주는 모임이란 뜻이다. 영 케어러를 인터뷰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영 케어러의 공통적인 문제는 마음을 털어 놓을 데가 없다는 것이다. 영 케어러는 친구들과 만날 시간도 없고 공통적인 대화 주제도 없어서 고립감이 심하다. 정서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
INSIGHT_ 보이지 않는 25만 명

우리나라는 영 케어러에 대한 정확한 수치조차 없는 상황이다. 청소년 인구의 5~8퍼센트가 영 케어러라는 해외 국가별 조사를 활용해 추정할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25만 명의 영 케어러가 있다고 추정된다. 결국 이 문제는 영 케어러를 찾는 데서 시작한다.
FORESIGHT_ 변화 혹은 격차

혹자는 영 케어러 문제를 두고,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청년층을 잃는 것이라 설명한다. 사회적 손실이라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간병한 조기현 작가는 저서 《새파란 돌봄》에서 질문을 던진다. 영 케어러의 돌봄은 손실일까, 생산일까? 영 케어러는 보이지 않지만 돌봄이라는 사회 필수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조기현 작가는 정부가 최종 고용자가 되어 이러한 비공식 노동을 보상하는 방법, 지원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새로운 돌봄 사회를 설명한다. 영 케어러의 돌봄을 보이는 곳으로 꺼내 놓지 않으면 부양에 대한 인식 변화는 또 다른 격차로 남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돌봄을 둘러싼 또 다른 논의가 궁금하다면 〈돌봄의 미래〉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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