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11월 25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AI가 그려낸 이미지가 인류를 홀리고 있다. 불분명한 것은 예술의 경계다. 분명한 것은 기술의 현재다.

  • 유력한 갤러리인 비트폼스(bitforms) 샌프란시스코 전시장에서 “Artificial Imagination”이라는 주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작품들을 그려낸 것은 이미지 생성 AI, 달리(DALL·E)다.
  • 계산하는 AI는 친숙하다. 예술하는 AI는 낯설다. 그러나 이미 AI는 창작의 영역에 깊숙이 비집고 들어와 있다.
  • 예술은 이미 새로운 기술을 흡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과 제도, 인식도 이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ANALYSIS_ 상상의 영역?

만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살아 돌아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21세기를 목격한 다빈치는 어떤 예술을 우리 시대에 제시할까? 혹은, 반 고흐가 부활한다는 상상도 해 볼 수 있다.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연일 크고 작은 소란을 일으키며, 한편으로는 세계를 매혹할 작품을 연거푸 그려내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장을 쥐고 흔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청년 시절과 노년 시절의 화풍이 오묘하게 달라졌던 렘브란트를 부활시킨다면 어떨까? 빛을 누구보다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던 그의 눈에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한 불빛이 가득한 21세기의 밤거리를 보여준다면, 제3의 화풍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그저 상상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적어도 렘브란트에 관해서는 이미 6년 전에 실현되었다.
The Next Rembrandt ⓒThe Next Rembrandt

REFERENCE 1_ The Next... What?

바로 지난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가 렘브란트 박물관 등과 손잡고 진행한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The Next Rembrandt) 이야기다. 이 프로젝트는 렘브란트의 작품 346점을 모두 디지털 스캔하여 딥러닝 알고리즘에 학습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진짜 물감을 사용해 3D 프린터로 21세기의 렘브란트 작품을 탄생시켰다. 아니, 렘브란트의 수제자쯤 되는 AI가 그려낸 그림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겠다. 결과물을 마주한 전문가들은 100퍼센트 렘브란트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후원사였던 ING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광고 효과를 얻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6년이 지난 지금, 누구든 AI로 창작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어도, 큰 돈을 투자하지 않더라도 가능하다.
ⓒMidjourney.com
BACKGROUND_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MidJourney)에 “use oil paint Rembrandt portrait”라는 키워드를 넣으면 위와 같은 이미지가 생성된다. 시간은 30초에서 1분 정도 걸린다. 미드저니라는 AI가 지금까지 학습한 렘브란트의 이미지에 근거하면 이 정도의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 한 점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라는 제목의 회화 작품이다.
미술대회서 인공지능 작품이 1등…“붓질 없어도 예술?” | 뉴스A ⓒ채널A 뉴스
지난 9월, 이 작품은 지역 미술 공모전에서 1등 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뒤늦게 작가가 미드저니를 사용해 작품을 완성했다는 사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작가는 딱히 사실을 숨긴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심사위원들은 미드저니를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AI를 이용해서 온전히 작업했다는 의미인 줄 몰랐을 뿐이다.
DEFINITION_ 재현의 기술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을 두고 벌어진 논쟁의 핵심은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순히 AI에 키워드를 입력하는 것만으로는 본인의 기술이 들어간 본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다. 전시기획자 임은우 씨는 “사진 기술의 발명 이후 미술에서 재현의 기술은 힘을 잃었다”고 이야기한다.
OPINION 1_ 단순 장식물

이 작품, 1등으로 선정되었는데?

제임스 앨런의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 수상한 분야는 ‘디지털 예술’이다. 사람의 손으로 직접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심사에 고려되었다 할지라도 사람이 직접 구상하고 아이디어를 낸 작품으로 간주하여 평가되었을 것이다. 해당 공모전은 순수 예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기술적인 측면에 주목한 자리였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작품을 예술작품으로써 분석해 본다면?

이 그림은 초현실주의적 특징을 보인다. 서로 다른 맥락에 있던 소재들이 혼재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현실과는 또 다른 세계를 구현한다. 192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초현실주의 미술은 당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 연구와 더불어 전쟁의 영향으로 기성 사회의 제도와 통념 등에 반발하며 이성에 억눌려왔던 무의식 세계, 상상의 세계를 해방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시대적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시대적 맥락과 의의를 벗어난 채 형식적 답습에 천착하고 조형적 효과만 취한다는 점에서 단순 장식물에 그칠 수 있다.

AI가 그렸다는 점을 포함해서 평가해 보면 결론이 달라지나?

AI가 그린 그림을 평가해야 한다면 그것은 별도의 논의가 된다. 평가를 위해서는 예술의 경계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AI가 그린 그림에 관한 논의에는 한계가 생긴다. 예술적 가치 보다는 기술 발달 정도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향후 기술의 발달에 따라, 그리고 예술의 경계에 대한 지속적인 검토에 따라 논의가 확장될 것이다.
REFERENCE 2_ 러다이트 운동

인간은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한다고 느낄 때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과 기술을 대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목격한 순간, 인류의 반응은 다름 아닌 ‘파괴’였다. 1800년대 초반 산업혁명 시기에 기계에 밀려난 영국 노동자들이 일으켰던 ‘러다이트 운동’ 얘기다. 노동자들은 망치로 기계를 고장 내거나 부쉈다. 공장에 불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러다이트 운동이 산업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21세기에 우리는 또 다른 러다이트 운동을 목도하게 될 가능성 앞에 서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는 “소득 불평등이 커지는 한편, 기술의 진보가 가속화하면서 러다이트 운동과 같은 기술 반감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술 분야에서는 어떨까? AI는 작가를 대체할 수 있는 존재일까? 혹은 그저 최첨단의 도구일 뿐일까?
OPINION 2_ 창작의 주체

임은우 씨는 미술계 내에서도 의견은 갈린다고 이야기한다.

현대 미술의 관점에서 AI는 도구인가, 창작의 주체인가?

관련해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시각차가 존재한다.
ⓒ이진우, 〈인공지능 미술 관련 국내 연구동향 분석〉, 문화예술경영학연구 제15권 2호, 2022
다만, 기존의 발상에 따르면 AI를 창작의 주체로 보기는 힘들다.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지점이 예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더니즘 미술 이후 예술의 경계에 관해서는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어왔다. 또, 트랜스 휴먼, 포스트 휴먼 등에 관한 논의가 확장되고 있는 만큼, 창작의 주체와 예술의 경계에 대한 논의 또한 변화할 것이다.

AI가 창작의 주체가 아니라고 한다면, AI가 그려낸 이미지는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나?

AI는 쉽고 빠르게 다양한 콘텐츠를 대량 생산하며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대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AI가 조합한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우연성을 내재한다. 그 결과물을 감상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는 감상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예술의 주체는 예술가뿐 아니라 감상자가 되기도 한다. 그 우연한 이미지의 조합이 창의적 발상을 유도한다면 누군가에게는 감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AI가 ‘창작’을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창작의 주체가 된다면 어떨까?

만약 AI가 시대적 맥락에 따라 새로운 조형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수준에 이른다고 상상해 보자. 인간의 아이디어를 초월하는 인공지능의 예술을 향해 극복할 수 없는 경외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맥락에서의 ‘숭고미’가 논의될지도 모른다.
INSIGHT_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

다만, 현재의 AI는 학습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주어진 키워드에 따라 이미지를 조합해 낸다. 미드저니에 “in the middle of space animals hunters plants anime styled”라는 키워드를 넣어봤다.
ⓒMidjourney.com
기술적으로 매끄럽게 잘 완성된 결과물이다. 그러나 어디선가 본 듯하다. 학습된 소스를 바탕으로 생성해 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현재 이미지 생성 AI의 가장 큰 한계이자 문제점이다. 학습한 것 이상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살아있는 연어의 이미지를 학습하지 못한 AI는 강물에서 헤엄치는 연어회를 그려냈다.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0대가량의 백인 남성, 옷깃이 있는 검은색 옷과 모자 등은 AI가 결정한 소재다. 학습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넥스트 렘브란트’가 무엇을 그릴 것인지를 결정한 결과다. 인종, 성별, 국적 등에 있어 편향된 이미지를 학습한 AI는 편향된 결과물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냉정한 현실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CONFLICT_ 절도와 학습 사이

논쟁의 소지는 또 있다. 저작권의 문제다. 라이브 드로잉으로 대중과 친숙했던 김정기 화백이 지난 10월 별세했다.
SK이노베이션_ Big Picture of Innovation 편 ⓒSK이노베이션
그런데 추모 분위기가 채 식기도 전에 한 트위터리안이 김 화백의 생전 그림과 똑 닮은 그림들을 게시했다. 이미지 생성 AI에 김 화백의 그림들을 학습시킨 후 만들어 낸 이미지였다. 그리고 결과에 만족한다며, “그림을 퍼갈 때는 김정기 작가가 아닌 내 크레딧을 남겨달라”고 덧붙였다.
ⓒ@BG_5you
당연히 거센 반발과 논란이 일었다. 사실, 실용 미술의 분야에서는 이미 현재진행형인 논란이다. 국내외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자신의 그림을 AI에 학습시키지 말라’고 고지하거나 아예 블로그, SNS 등에서 작품을 내려버리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관련해서 법적인 제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아직 그 목소리가 입법부에 가 닿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FORESIGHT_ 인간과 비인간의 연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AI와 예술의 유착 관계는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일례로, 지금 디지털매체 예술에 관해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비트폼스 갤러리에서는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AI를 이용해 제작된 회화와 조각 작품을 모은 전시회다.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이렇게 경계에 서 있다. 공모전의 수상 여부로는 논란이 일지만, 유력한 갤러리에서 전시되며 판매되고 있기도 하다. 이 새로운 기술은 혁신일까? 아니면 함정일까? 임은우 씨는 이렇게 전망한다.

AI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놀라운 기술이지만 아직은 초창기로, 현업에서 활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좋든 싫든 관련 인공지능 기술은 발전할 것이다. 시대에 따라 예술의 양상 또한 변하기 마련이다.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AI가 함께하는 예술의 미래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AI 예술에 대한 시선에는 권리와 인식의 문제가 얽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법적·윤리적 논의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인간과 비인간의 새로운 연대가 기대된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이것은 미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있다. 이것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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