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페이퍼, 블루 웨이브

11월 29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중국과 대만의 두 정치 지도자가 동시에 흔들린다. 위기를 수놓은 색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 중국에서 제로 코로나 항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연일 이어지고 있다.
  • 대만은 집권 민진당이 지방 선거에서 패하며 차이잉원 총통이 당 주석직을 내려놨다.
  • 두 정치 지도자가 맞닥뜨린 위기는 어떤 의미와 여파를 지닐까?

DEFINITION_ 색의 시대

색의 시대다. 지난 미국 중간 선거의 화두는 레드 웨이브의 존재 여부였다. 남미 지역은 브라질의 좌파 대부 룰라 대통령이 당선되며 핑크 타이드가 강해지고 있다. 지난 COP27의 화두는 그린워싱이었으며 검은 석유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 FIFA는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성 소수자 인권을 뜻하는 ‘무지개 완장’ 착용을 제재해 논란이 일었고, 파업이 이어지는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의 쟁의 행위를 보호하는 취지의 ‘노란봉투법’이 발의되고 있다. 한편 지난 주말, 중국과 대만의 두 지도자는 각각 다른 색 물결을 맞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마주한 흰색,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마주한 푸른색은 각각 그들의 국내 정치적 위기를 의미한다. 이 물결이 가져올 변화에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다.
CONFLICT 1_ 백지

중국 공민[1]들이 백지를 들었다. 쓰이지 못한 글자는 “자유”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도시에서는 11월 25일부터 ‘제로 코로나’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하며 3일 내내 이어졌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봉쇄를 멈추라는 게 골자다. 시위대는 중국 당국의 검열에 항의하는 뜻으로 백지를 들었다. 글자는 지울 수 있어도 목소리를 지울 순 없다. 시 주석과 중국공산당(이하 중공)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까지 나왔다. 베이징에서는 1000명 이상의 시민이 베이징 싼환루(三环路, 3환로) 량마허(亮马河, 양마강)를 따라 두 그룹으로 모였고 28일 새벽까지 해산을 거부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상하이, 청두, 우한, 광저우, 정저우, 티벳 등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졌다. 개인을 검열할 순 있어도 군중을 검열할 수는 없다. 중공에게 군중은 통제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그들은 ‘톈안먼 항쟁’ 이후 중국의 국제적 고립을 기억한다.[2] 시위 영상은 실시간 당국에 의해 실시간 삭제되고 곳곳에서 몸싸움이 벌어지며 일부는 체포되고 있지만 그 이상의 강경 진압이 어려운 이유다.
BACKGROUND_ 우루무치

시위의 트리거가 된 것은 신장 웨이우얼(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乌鲁木齐, Urumqi)에 있는 아파트 화재 참사였다. 우루무치는 신장 위구르의 중심 도시다. 8월 초부터 봉쇄 중이다. 현지시간 11월 24일, 우루무치의 한 아파트 건물 15층에서 불이 났고 고층으로 번졌다. 불은 3~4시간 만에 진화됐지만 열 명이 숨지고 아홉 명이 다쳤다. 피해는 왜 커졌을까?
  • 최초엔 건물이 봉쇄되어 있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신장의 공직자들은 건물 입구가 폐쇄되어 있지 않았고 유독 가스 흡입으로 혼선이 빚어지며 참사가 일어난 것이라 주장했다. 정작 네티즌들에 의해 밝혀진 바는 소방차가 방역 정책을 위해 설치한 각종 장애물 때문에 원활히 사건 현장으로 진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 화재 발생 인근 주거 단지의 한 남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신장 사람들은 건물 문이 잠겨있지 않더라도, 법을 어기는 것이라 허가 없이 감히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없다.” 당국은 방역을 단계적으로 해제할 것이라 밝혔지만 주거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꼼짝없이 사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 우루무치의 한 시민이 경찰에게 구타당하는 영상이 퍼지며 시위는 촉발됐다. 위구르인들이 많이 살아 우루무치중루(乌鲁木齐中路)라고 이름 붙여진 상하이 거리에서는 참사 피해자 추모 집회가 열렸다. 자국 내 탄압받아 온 소수 민족의 죽음이 시위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이란의 ‘아미니 시위’와도 유사한 지점이 있다.

NUMBER_ 3+1

이 시위는 세 가지 면에서 급진적이다. 전례 없는 규모라는 점, 시 주석과 중공을 직접 비난한다는 점, 우루무치 독립까지 요구된다는 점이다. 권력을 향한 비난의 중심엔 학생 시위가 있다. 톈안먼 6.4 항쟁 당시에도 대학생이 큰 역할을 했다. 시 주석의 모교 베이징 칭화대를 비롯 중국 전역의 50개 대학교에서는 자유라는 키워드를 포함, 시 주석의 3연임을 독재로 규정하는 ‘종신 통치자’, ‘황제’ 등의 키워드가 나왔다. 우루무치 독립 역시 ‘하나의 중국’과 정면 배치되는 사안이다. 시 주석의 정치적 위기가 거론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이 시위가 톈안먼 시위 때와는 양상이 다를 것으로 본다. 미국 예일대학교 정치학 조교수인 대니얼 매팅리는 영국 《가디언》의 보도에서 이 시위가 중공에게 압박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시 주석이 중국의 엘리트와 군대를 자신의 편으로 삼는 한 권위가 흔들리는 수준의 위협은 오지 않을 것이라 진단했다.
RISK_ 상하이

매팅리 교수의 말대로 중국의 민주화 혹은 중공 전복은 대항 세력을 이끌 엘리트나 군사력을 필요로 한다. 중공은 이제껏 공청단, 태자당, 샹하이방이 권력을 나눠 갖는 집단 지도 체제였고 내부 분란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강력한 통치 기반을 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위에는 위에 거론한 것 이외에도 숨은 문제가 하나 더 있는데, 특히 상하이의 분노와 맞닿아있다는 점이다. 시 주석을 위시한 태자당은 베이징 기반이며 반대파인 샹하이방은 상하이 기반이다. 이제껏 베이징은 정치적 중심지로, 상하이는 경제적 중심지로 대표됐다. 그러나 시 주석은 중국의 권력 구도를 베이징으로 옮겨오고자 했고 대표적인 것이 베이징 증권 거래소 설립이다. 상하이 출신 정치 세력을 견제하며 경제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봉쇄로 큰 타격을 입었던 상하이에 대안 세력이 등장할 경우 시 주석의 정치적 위기 혹은 내란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RECIPE_ 제로 플러스 원

독재의 명분은 사회 유지와 번영이다. 공산당이 약속한 샤오캉(小康)과 다퉁(大同)은 흔들리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제로 코로나와 탈중국이 있다.
  • 제로 코로나 ; 중국은 코로나19 대유행 초기부터 우한을 봉쇄하며 사실상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해왔다. 전국적으로 번짐에 따라 봉쇄 방법에도 변화가 있었다. 특정 지역에서 권역을 나눠 순서대로 ‘순환 봉쇄’를 단행하거나 행정 구역 단위별 이동 시 검역에 따른 매뉴얼을 강화하는 형태였다. 2020년 8월 16일 전수검사에서 본토 신규 확진자가 0명을 기록한 이래 한 달 가까이 신규 확진자가 나오지 않자 시 주석은 9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했음을 천명했다. 제로 코로나는 실제 방역 성과와 별개로 서방에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한 대표 정책 중 하나였다. 봉쇄는 서방 국가와 차별되는 권위주의식 사회 통제의 자랑스런 결과물이었지만 공산당 일당 독재의 명분을 갉아먹고 있다.
  • 탈중국 ; 중국은 늘 폭발적인 경제 성장률을 보여왔다. 글로벌 저성장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6퍼센트대를 유지해 왔다. 올해 역시 5.5퍼센트를 예상했으나 사실상 3퍼센트대에 그칠 예정이다. 일본의 투자은행 노무라는 제로 코로나 정책이 국내총생산(GDP)의 12.2퍼센트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금융·무역 중심지 상하이 등이 포함되며 가뜩이나 경제 타격이 큰데 글로벌 기업들은 제조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른바 ‘중국 플러스 원’으로 인도, 베트남, 멕시코 등 제조 거점을 늘리는 것이다. 대표적 사건으로는 ‘폭스콘 공장 사태’가 있다. 폭스콘은 애플의 주요 부품을 생산하는 대만 기업이다. 중국 허난성 정저우에 위치한 폭스콘 공장에서 현지 방역 조차에 항의하는 직원들의 대량 탈주로 아이폰14의 생산 차질이 우려되기도 했다. 애플은 이로 인해 인도로 생산 기지를 옮기고 있다.

CONFLICT 2_ 범람

이번에는 대만 얘기다. 지난 11월 26일 4년에 한 번 열리는 대만 지방 선거가 있었다. 6대 직할시 시장과 시의원, 기초 단체장 등 아홉 가지 공직자 1만 1023명이 뽑히는 선거다. 아홉 공직자가 뽑힌다고 하여 ‘구합일(九合一)’ 선거로도 불린다. 여느 중간 선거가 그렇듯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소속된 집권 여당 민진당(DPP)은 심판대에 올랐다. 민진당은 대만의 독자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범록 연맹’의 수장이다. 반대파인 ‘범람 연맹’을 이끄는 제1 야당은 국민당(KMP)이다. 친중국 노선에서 대만 중심의 중국 통일을 추구하는 성향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지만 핵심은 어떻게든 중국과의 연결성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결과는 국민당의 압승이었다. 21개 시·현에서 민진당이 승리한 곳은 다섯 곳뿐이었다. 특히 6개 직할시 시장직에서 수도 타이베이를 포함 신베이·타오위안·타이중까지 국민당에 뺏기며 범람 연맹의 푸른 물결을 허용했다.
KEYPLAYER_ 장완안

타이베이 시장 선거는 차기 대선의 유력 주자를 결정짓는다. 이번 타이베이 시장 선거는 장제스 초대 총통의 증손자 장완안 전 의원(KMP), 코로나19 방역 총책임자 천스중 전 위생복리부장(DPP), 무소속 황산산 전 부시장의 3파전이었다. 황산산 부시장의 경우 현 타이베이 시장의 지지가 있던 인물이었다. 장 의원은 시장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는데 여기엔 국민당의 전략과 장제스의 증손자라는 후광이 있었다. 차이 총통은 ‘총통 3연임 금지법’으로 차기 대선에 출마가 불가능해 이번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민진당의 잠룡을 만들어야 했다. 예상치 못한 선거 참패에 차이 총통이 민진당의 당 주석직을 내려놓으며 장 의원이 장제스 집안의 세 번째 총통이 될 가능성은 더 커졌다. 8년 만의 타이베이 시장직 탈환으로 국민당의 기세는 높아지고 있다.
ANALYSIS_ 민진당의 악수

이 같은 선거 결과는 묘한 구석이 있다. 양안 관계의 불안은 커져 왔고 민진당은 국민당과 달리 대중국 강경 노선을 취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일 미국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며 중국은 군용기를 띄워 대만 해협을 위협했다. 차이 총통은 대응 사격을 지시하며 대응 수위를 높였지만 이는 국민적 피로감을 안겼다. 문제는 지방 선거에서도 중국 위협론에 의존했다는 점이다. 국민당은 최근 유럽 및 서구권 국가의 선거 문법을 따랐다. 민생과 경제를 강조한 것이다. 특히 타이중의 대기 오염 및 타이베이의 기술 중심지인 난강 지역의 교통 체증, 코로나19 백신 구매 전략 등을 비판하며 승기를 잡았다. 다만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국민당의 차기 당권 경쟁 과정에서의 내부 분열 가능성, 친중국 노선에 대한 의구심으로 국민당의 과제 역시 짚었다. 이번 선거는 국민당의 전략보다 민진당의 악수가 컸다는 의견이 다수다. 선거 결과로 인해 미중 갈등의 직접적 영향에 놓인 국가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국민당의 대중국 노선에 따라 양안 관계가 크게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INSIGHT_ 색의 종말

시 주석과 차이 총통의 위기는 구조적으로 다르지만 두 집권 세력이 주장해 온 정통적인 프로파간다가 먹히지 않았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중공은 내부적으로는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고 외부적으로는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펼치는 정책이 흔들리고 있고, 대만은 차이 정부의 실책을 덮으려던 반중 전략이 젊은 유권자를 중심으로 외면받았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반복해서 드러내는 한계는 서구권에서 정치적 양극화를 일으키고 있지만 역으로 중국과 대만에서는 공민·유권자를 성숙하게 만든 셈이다. 특히 대만의 사례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책적 실패[3]를 더 이상 혐오 정서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선거이기 때문이다. 대만과 한국은 인접 국가와 민족 분쟁을 겪고 있으며 권위주의 시절을 지나 선진국으로 진입 중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제껏 대만과 한국의 주요 선거 전략으로 대중, 대미 노선이 유효했지만, 지금의 유권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투명성과 성과다. 색깔론으로 대표되는 이념 그리고 선동의 구호는 옅어지고 있다.
FORESIGHT_ 양안 관계의 변화

두 정치 지도자의 위기는 양안 관계를 보다 우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 대만의 국민당은 양안 관계에 우호적인 입장이며 차이 총통 역시 남은 2년의 임기에서 대중국 강경책을 펼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봉쇄로 인한 경제적 리스크를 해소하는 데 대만과의 교역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 중국은 현실적으로 제로 코로나를 쉽게 해제할 수 없는 상태다. 인구 대비 의료 시설이 부족하고 고령층의 백신 접종률도 낮으며 주요 도시에는 인구 밀집도가 커 한 번 유행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시위의 규모를 감안해 봉쇄를 단계적으로 해제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 투자 은행인 골드만삭스 역시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내년 4월 이전 조기 종료될 것으로 전망한다.
  • 중국은 이와 동시에 탈중국 행보를 보였던 글로벌 기업들에도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이때 대만의 유화 정책은 큰 도움이 된다. 차기 대선에서 국민당이 승리한다면 키는 오히려 국민당이 쥐고 있다. 국민당은 ‘친중·반미’ 이미지를 벗기 위해 미국과의 유대를 강조하지만 안보적 긴장감을 올리는 선택을 피할 것으로 보인다. 장제스 시절 독재 정권의 역사와 내부 잡음을 이겨내고 대만의 국민당이 영리한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국과 중국 사이 균형 외교를 펼쳐야 하는 한국에게도 새로운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양안 관계와 대만 정치 구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양안 관계의 뉴 노멀〉을, 시진핑 3연임에 대해 궁금하다면 〈시진핑, 시진핑, 시진핑〉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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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민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링크에 잘 정리되어 있다. 요지는 ‘인민’은 정치 지위를 강조하는 개념이며, ‘국민’은 국민국가(nation-state)의 국민 즉 다민족 국가가 아닌 경우의 국민을 이를 때 사용한다. ‘공민’은 법률 지위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 ‘국민’이라고 표현되는 것에 가장 가까운 표현이 공민이다.
[2]
1989년 톈안먼 6.4 항쟁 이후 자유주의 진영의 주요국들은 즉각 비난 성명을 냈고 차관이나 투자가 멈췄다. 덩샤오핑이 ‘도광양회’할 수밖에 없는 국제적 상황이 마련됐다.
[3]
차이 정부의 대만은 외부적 시선과 내부의 시선이 큰 온도차를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친기업 중심으로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고 2년 연속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아시아 1위를 차지한 신흥 강국이다. 반면 차이 정부 아래 물가와 인플레이션을 잘 다루지 못했고 린즈젠이라는 타오위안 시장 후보의 논문 표절 논란도 있었으며 대만 청년 몇천 명이 동남아에 취업 사기를 당해 납치당한 사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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