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와 냉소 사이

11월 30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기후재난 지원 기금 조성에 대한 합의가 COP27의 블랙홀이 됐다. 그 속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가.

  • COP27의 기후재난 지원 기금 조성 관련 합의에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 그러는 동안 우리 정부는 녹색항로와 블루카본 관련한 약속을 가지고 돌아왔다.
  •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 다음 COP28까지 우리가 할 일이다.

DEFINITION_ 알려지지 않은 약속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당초 폐막일을 이틀 넘겨 끝났다. 시작 전부터 그린워싱이란 평을 들었던 COP27이 ‘역사적 합의’로 탈바꿈됐다. 선진국이 기후취약국의 피해를 지원하는 기금 조성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세계가 이룬 약속은 굵직한 뉴스가 되어 돌아왔지만, 그 밖의 작은 약속들은 묻혔다. 우리나라의 미래 나아가 지구의 미래가 걸렸을지 모르는 약속 말이다. 지금 주목해야 하는 건 바로 이 약속들이다.
BACKGROUND_ 두 가지 약속

정부는 COP27에서 두 가지 약속을 들고 돌아왔다. 녹색항로과 블루카본이다.
  • 녹색항로; 나경원 기후환경대사와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는 부산항과 미국 타코마항을 잇는 녹색해운항로(Green Shipping Corridors)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타코마항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인접한 교역항이다. 이 곳까지의 뱃길을 친환경 메탄올 등 무탄소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으로 오가겠다는 것이다.
  • 블루카본; 해양수산부는 인도네시아,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와 블루카본 분야의 국제감축사업 전망 등에 대해 논의했다. GGGI는 개발도상국의 녹색성장을 위해 우리나라 주도하에 출범한 국제기구다. 관련 토론회에서 해양수산부는 블루카본으로써 국내 갯벌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국가 간 협력을 통해 블루카본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로 협의를 이뤘다.

NUMBER_ 99.7퍼센트

첫 번째 약속, 녹색항로는 한국이 해운 강국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유럽환경청에 따르면, 2050년 국제 해운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전세계 방출량의 17퍼센트가 될 전망이다. 이 문제에서 우리나라는 자유롭지 않다. 북한에 가로막힌 우리나라는 뱃길로 교역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수출입 무역의 99.7퍼센트를 해운 운송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선대(船隊) 보유량은 세계 4위에 달할 정도다.
STRATEGY_ 녹색항로

녹색항로는 불가피한 선택인 동시에 기회다. 녹색항로는 2050년까지 해운업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녹색항로는 로스앤젤레스-상하이, 싱가포르-로테르담, 두 개 뿐이다. 부산-타마코는 전 세계 세 번째 녹색항로가 될 예정이다. 녹색항로를 오갈 선박에 쓰일 차세대 연료로 그린 메탄올, 그린 암모니아 등이 언급된다. 양산되는 단계까지 시간은 걸리지만, 우리나라 조선사는 이 분야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세계 최대 컨테이너해운사 머스크(AP Moller-Maersk)의 1조 6000억 원 규모 메탄올 연료 컨테이너선박 수주에 성공했다. 이어 일본 선사 이노카이운(INO KAIUN)의 암모니아 레디 운반선 수주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가능성이 두 번째 약속에 있다.
RECIPE_ 블루카본

바로 블루카본이다. 해양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를 말하는 블루카본은 전 세계 탄소 감축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 블루카본은 세 가지다.
  • 맹그로브 숲; 맹그로브는 바닷물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탁월한 탄소 저장-수질 정화 능력을 보인다. 맹그로브 숲은 아열대나 열대 해변에서 발달하며 동남아 해안지역이 대표적인 맹그로브 군락지다.
  • 염습지; 바닷물이 드나드는 습지를 말한다. 갈대와 칠면초 등 염분이 많은 토양에서 자라는 염생식물의 서식지가 된다.
  • 잘피림; 잘피는 해수에 완전히 잠겨서 자라는 식물로, 해조류와 달리, 잎-줄기-뿌리 기관을 모두 가지고 있다. 잘피림은 수심이 얕은 바다나 펄, 바위에 형성된다.
2009년 유엔보고서 ‘블루카본-건강한 해양의 탄소 포집 역할’에 따르면, 해양생태계는 열대우림보다 더 빨리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하고 수천 년 동안 저장한다. 대표적으로 맹그로브 숲은 같은 면적의 열대 우림보다 5배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인다. 전 세계의 맹그로브 숲은 연간 2,000만 톤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EFFECT_ 온실가스 통계

2013년,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는 세 가지 블루카본을 공식적인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인정한 바 있다. 세계 71개국이 블루카본 세 가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151개국이 적어도 한 가지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는 블루카본을 국가 온실가스 통계에 반영하고 있다. 염습지와 잘피림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염습지 탄소 흡수량을 국가 온실가스 통계에 반영하기로 했다. 2020년 기준, 국내 염습지는 1.1만톤의 탄소를 흡수했다.
CONFLICT_ 갯벌

세계 5대로 꼽힐 만큼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 갯벌은 매년 49만 톤의 탄소를 흡수한다. 이는 내연기관차 약 20만 대가 배출하는 탄소의 양과 동일하다. 하지만 국내 갯벌의 98퍼센트는 식물이 살지 않는 비식생 지역으로 블루카본에 포함되지 않는다. 해양수산부가 COP27에서 약 1000여 종의 해양 생물이 서식하는 우리나라 갯벌의 잠재력을 설명하고 돌아온 이유다.
INSIGHT_ 알려지지 않은 약속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의의는 여기에 있다. 교토의정서, 파리기후협약, 선진국의 기금 조성 등 굵직한 성과에 관심이 집중되지만, 그 안에선 국가 간의 크고 작은 협약들이 이뤄진다. 우리 눈에 보이는 건 지연된 약속들 뿐이라도 1년 뒤 총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FORESIGHT_ 드로다운

환경활동가 폴 호컨은 2001년부터 기후환경 전문가를 만날 때마다 지구온난화를 되돌리기 위한 방법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모두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기후변화와 관련해 ‘게임은 끝났다’는 인식이 퍼져가던 무렵, 호컨은 회피와 체념을 넘어 지구온난화를 되돌린다는 미션을 가진 비정부기구 ‘프로젝트 드로다운(draw down)’을 조직했다. 프로젝트명은 온실가스가 정점에 다다른 뒤 매년 감소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의미하는 단어 ‘드로다운’에서 따왔다. 연구진 70명은 각계 전문가 120인의 자문을 거쳐 가장 강력한 기후변화 대책 100가지를 마련했다. 규모에 비해 안에 담긴 내용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면 2050년까지 70.53기가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 등이다. 모두 알고 있지만 행하지 않는 것 말이다. 반복된 논의에 피로감을 느낄 수도, 지연된 약속에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마저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COP28까지 남은 1년은 이 과제를 해결하는데 써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환경 문제에 있어 가장 큰 적은 이산화탄소가 아닌 무관심과 냉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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