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사람들

12월 1일 - FORECAST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뉴욕시가 정신 질환을 앓는 홈리스들을 관리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홈리스를 감독하면 도시 범죄율은 낮아질까?

  • 미국 뉴욕시가 홈리스(homeless people)의 정신 건강을 돌보겠다고 밝혔다.

  • 도시 전반의 치안과 질서 제고가 주 목적이다.

  • 홈리스는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우문인지 모른다.


DEFINITION_ 위반자

신자유주의 시대에 근면은 성공의 조건이다. 역으로 홈리스는 게으름의 결과다. 돌봐야 할 가난이 아닌 무가치한 가난으로 읽힌다. 홈리스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누구나 지키며 살아가는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이 된다.


INCIDENT_ 뉴욕 홈리스 멘탈 케어

미국 뉴욕시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홈리스들을 돌보는 방침을 발표했다. 전문 시설을 신설하고, 지하철을 비롯한 공공장소에 정신 질환을 앓는 홈리스 전담팀을 파견한다. 도시 전반의 치안과 질서 정비가 목적이다. 이번 발표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은 도시 질서 개선에 집중한다. 《뉴욕타임즈》에선 홈리스를 공공장소에서 내모는 것에 비판을 제기한다.


BACKGROUND_ 켄드라법

1999년 1월, 뉴욕 한 지하철역에서 켄드라 웹데일이라는 한 여성이 정신 분열증을 앓던 사람으로부터 떠밀려 선로 위에서 숨졌다. 그해 11월, 뉴욕시는 외래치료명령제에 관한 법안을 마련했다. 쉽게 말해 치료 의지가 없는 정신 질환자에게 커뮤니티가 나서서 의료 서비스를 연결한다. 해당 법안은 피해자의 이름을 따 켄드라법(Kendra's Law)이 됐다. 정신 질환자 지원보다 공공의 안전 증진에 방점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일명 외래명령치료제(AOT·Assisted Outpatient Treatment)로 불린다.


RECIPE_ 지하철 안전 계획

비슷한 사고가 올초 뉴욕에서 발생했다. 2022년 1월 15일, 뉴욕 타임스퀘어 지하철역에서 한 여성이 조현병을 앓던 홈리스에 의해 선로 위 떠밀려 목숨을 잃었다. 이에 뉴욕시는 2월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하철 안전 계획(Subway Safety Plan)을 공개했다. 이번 홈리스 멘탈 케어도 해당 계획의 연장이다. 주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태스크포스 ; 지하철 내 약물 복용과 흡연을 단속한다. 열차 혹은 역사에서 무단으로 수면하는 행위를 금한다. 뉴욕 경찰당국과 협력해 사고 발생 시 출동 리소스를 강화한다.

  • 주거 지원 ; 향후 5년간 NYC Health+ 기관 근처 650개의 새 주거 공간을 마련하고 주기적인 의료 지원을 한다. 또 지원주택(Supportive Housing)[1]의 서류 절차를 간소화한다. 

  • 정신 건강 ; 드랍인센터(Drop-in Center)[2]를 증설하고 켄드라법(Kendraw‘s Law)을 확대 개정한다. 뉴욕 지하철 운영당국에 정신 건강 전문가를 배치한다. 이 전문가는 본인 혹은 타인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홈리스를 입원하도록 제안(request)할 수 있다.


NUMBER1_ 80000

오늘날 뉴욕의 홈리스 인구는 8만 명으로 추산된다. 뉴욕 시민 120명 중 한 명 꼴이다. 그중 지하철이나 길거리 등에 머무는 홈리스는 약 3400명이다.[3]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홈리스는 ‘쉘터’라는 이름의 보호소에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머물고 있다.


KEYPLAYER_ 에릭 애덤스
  • 2022년 1월 1일 뉴욕 시장으로 취임했다. 뉴욕 경찰국에서 20년 넘게 근무했으며 2006년 정계에 뛰어들었다.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트럼프발 중국계 혐오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청하는 등 진보적인 목소리를 다수 내왔다.
  • 올해 1월 뉴욕 경찰관 네 명이 총에 맞고 그 중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애덤스는 불법 총기 단속을 위한 사복 경찰팀 운영을 재개한다고 밝혔다.[4] 여론은 갈렸다. 애덤스가 책임감 있게 범죄 예방팀을 재구성할 것이라는 의견과, 과거의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집행 방식이 재개될 것이라는 의견이 부딪쳤다.
  • Safety, safety, safety.” 당선 전부터 애덤스가 강조해 온 강력한 가치는 안전이다. 이번 지하철 안전 계획에서도 경찰 개입 확대는 핵심 안건 중 하나다. 흑인이라는 정체성과 민주당 당적, 그러나 동시에 20년 넘는 경찰 경력. 양가적인 배경의 애덤스는 나름의 중도파 시장으로 입지를 다졌다. 이번 홈리스 헬스 케어는 단순히 특정 정당의 가치를 넘어 범죄의 도시 뉴욕에 사는 시민들의 불안을 반영한 것이다.

CONFLICT_ 교통공사, 시민단체, 의료계

이번 홈리스 멘탈 케어를 바라보는 시각은 각기 다르다.

  • 뉴욕교통공사(MTA) ; 지난 1년간 뉴욕시에서 발생한 강력 범죄는 11만 4996건이었다. 특히 지하철 내 강력 범죄 건수는 지난해 1997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2월, 뉴욕 시민 3만 4000명을 대상으로 열차 내 치안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오직 26퍼센트만이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MTA 측은 지하철 이용률 위축을 우려한다. 뉴욕시가 지하철 안전 계획에서도 분명히 명시한 것은 MTA의 권한 강화였다.
  • 시민 단체 ; 입장이 다르다. 뉴욕시민자유연합(NYCLU)의 도나 리버만 대표는 해당 방침을 두고 “정신 질환 관리에 마땅히 투여해야 할 리소스를 쏟지 않는 간편하고 루즈한 방식(fast and loose)”이라고 지적한다. 비영리 단체 Coalition For The Homeless의 재클린 시몬 대표는 외래치료명령제가 아닌 “자발적 치료의 접근 경로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의료계 ; 미국 내 다수 의료 집단은 외래명령치료제를 지지한다. 뉴욕의 정신질환자협회(NAMI)는 자발적 치료 의사가 없는 환자는 선제 조치를 통해 치료에 노출시켜야 한다고 밝힌다. Legal Aid Society의 제프리 버만 대변인은 “정신 질환자들이 체포 후 감금되는 고리를 끊고 치료 중심의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외래치료명령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ANALYSIS1_ 홈리스 = 정신 질환?

정신 질환과 홈리스를 묶어서 생각할 수 있을까? 홈리스가 되는 여러 요인 중 정신 질환은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홈리스 원인의 통계는 조사 기관마다 상이하지만 가난(실업), 주택 부족, 약물 중독과 더불어 정신 질환은 대표적인 요소로 꼽힌다. 성인 홈리스 인구의 30~35퍼센트는 심각하거나 지속적인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 모집단을 여성으로 한정할 경우 그 수치는 70퍼센트로 올라간다.


ANALYSIS2_ 홈리스 = 범죄?
  • 홈리스를 감독하면 범죄율이 낮아질까? 많은 경우 홈리스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비친다. 그러나 도시에서 홈리스가 행하는 범죄는 총 범죄 건수의 10퍼센트 미만이며, 배회(loitering)[5]와 같은 경미한 범죄일 때가 많다.
  • 한편 홈리스가 범죄의 원인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 역의 관계는 높은 확률로 성립한다. Prison Policy Initiative의 조사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르고 한 번이라도 수감됐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홈리스가 될 확률이 13배가량 높았다.
  • 홈리스 전문 비영리 단체 National Alliance to End Homelessness는 “홈리스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그 자체로 홈리스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 말한다. 잠을 자고, 걸어다니는 것과 같이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경찰과 마찰이 생기고, 비싼 벌금을 내거나 구금된다는 것이다.

NUMBER2_ 14404
  •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 수는 쪽방주민 포함 1만 4404명이다. 이중  정신 질환을 앓는 비율은 66.3퍼센트였다. 대표적인 질환은 알콜 중독이며 모집단을 여성으로 좁힐 경우 우울증이 압도적이다.
  • 외래치료명령제는 유사한 형태로 한국에 존재한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1)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는 동시에 2)이것이 자타의 위험으로 이어질 경우, 강제 입원이 가능하다. 다만 노숙인의 정신 질환이 별도의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적은 없다. 뉴욕만큼 강력 범죄로 이어진 경우가 적고, 따라서 표심과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INSIGHT_ 낙인

이번 뉴욕시 방침은 권고(require)가 아닌 제안(request)이다. 집이 없던 사람을 위한 주거 공간을 마련하고 정기적인 정신 치료까지 지원한다. 일견 흠없는 제도다. 그러나 홈리스를 위한 별도의 멘탈 케어 시설을 마련하는 것은 ‘홈리스이자 정신 절환이 있는 사람’을 관리 대상으로 보는 시각의 결과다. 선의의 사회적 구금은 낙인 효과를 낳는다. 대부분의 홈리스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REFERENCE_ 마인드포스트
  • 《마인드포스트》는 2018년 정신 질환 당사자 기자들이 모여 창간한 대안 언론이다.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미디어 개선을 요구해 왔다. 2021년 영화 〈F20〉이 정신 질환자를 예비 범죄자로 보는 편견을 조장한다고 비판했으며, 올해 5월 텍사스주 총기 난사 사건을 정신 질환과 연결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  “우리를 빼고 우리를 이야기하지 말라”는 마인드포스트의 선언은 홈리스의 문제에도 적용된다. 홈리스 멘탈 헬스 케어에서 홈리스의 목소리는 음소거된다. 이번 뉴욕시 멘탈 헬스 케어는 뉴욕 교통공사와 의료계, 시민들의 불안을 반영했으나 정작 8만 명의 홈리스 당사자의 의견을 담지 못했다.

FORESIGHT_ 집 없는 사회

홈리스는 늘어날 거다. 인구는 80억 명을 돌파했는데 빈부 격차는 심해지고 경쟁 과열은 뉴노멀이 됐다. 경제 불황과 기후 위기를 겪으며 집이라는 신분증을 잃는 사람들은 많아진다. 집 잃은 뉴욕 사회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미래다. 언제까지고 지원 주택을 늘릴 수는 없으며 홈리스를 위반자로 보는 시각은 달라져야 한다. 《사회가 가둔 병》의 하경희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치료를 위한 삶이 아닌 삶을 위한 치료가 필요하다. 언제나 증상보다 중요한 것은 삶이다.” 시민들은 현재의 홈리스를 두려워하지만 정책에게 필요한 건 미래의 홈리스까지 내다보는 시각이다.


선의의 구금에 대한 또 다른 논의가 궁금하다면 《사회가 가둔 병》을 추천합니다.
정신 질환을 질환으로 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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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거 생활이 취약한 사람들에게 주택 및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대표적인 미국 뉴욕의 지원주택 ‘더 크리스포터(The Christopher)’에선 200여 개 객실에 홈리스 및 저소득층이 함께 거주하며 일자리를 제공받는다.
[2]
정신 질환자, 홈리스,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에게 식사·치료·교육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주거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쉘터(homeless shelter)와는 다르다.
[3]
올해 1월 25일 기준이다. 2020년 1월 27일 기준 3900명에 비해 감소했으나, 이 통계의 산정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다음 기사 참조.
https://www.nytimes.com/2022/06/17/nyregion/new-york-city-homeless-count.html
[4]
사복 경찰팀은 지난 2020년 그들의 집행 방식이 위헌으로 결정되며 해체됐다. 흑인과 라틴계를 비롯한 다수의 유색 인종들이 차별의 표적이 되어 왔다는 시민 단체의 강력한 반발이 그 배경에 있다.
[5]
사유 공간의 무단 침입, 무단 점거 등이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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