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12월 2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9만 원짜리 딸기 뷔페가 인기다. 불황이기 때문이다.

  • 2023년도 소비 트렌드는 ‘평균 실종’이다. 가성비든 가심비든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한다는 얘기다.
  • 평소에는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주말에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이 트렌드는, 불황의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 불황에도 물론 기회는 있다. 그러나 기회보다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위험이다. 불황이 몰고 올 위험에 우리는 어떤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할 시간이다.

BACKGROUND_ small luxury

딸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뷔페. 가격은 얼마가 적절할까? 시장의 판단은 1인당 약 9만 원이다. 서울 한 호텔의 딸기 뷔페의 경우 6만 3천 원이었던 가격을 8만 9천 원으로 올렸고, 다른 곳은 6만 9천 원이었던 것을 8만 2천 원으로 올렸다. 가격이 올랐는데 인기는 여전하다. 손님이 너무 몰리는 나머지 예약도 어렵고 현장에서 일손이 딸려 서비스 불만까지 나온다. 끼니로 먹을 수 있는 뷔페도 아니고 디저트일 뿐인 딸기 뷔페가 이렇게 비싸고, 또 잘나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끼니는 필수지만 디저트는 선택의 영역이다. 즉, 사치의 영역이다. 지금 우리는 ‘작은 사치’에 열광한다. 불황이기 때문이다.
REFERENCE_ 평균 실종

경제가 가라앉았다. S의 공포가 현실인지 우려인지 가늠해 보던 올해 봄이 순진하게 느껴질 정도다. 내년 경제 성장률은 1퍼센트대로 점쳐진다. 마이너스 성장을 예측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불황의 시대, 소비는 양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매년 늦은 가을이 되면 서점가를 휩쓰는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의 새 책, 《트렌드 코리아 2023》은 이 불황기의 소비 트렌드를 ‘평균 실종’으로 잡았다. 사실 전망이라기보다는 이미 현상이다. 저렴한 한 끼의 최저선을 지키는 편의점과 명품 소비의 중심에 있는 백화점의 실적이 함께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CU 편의점을 운영하는 BGF리테일 등 편의점 주가는 지난 9월 대비 25퍼센트 가까이 상승했다. 현대백화점의 주가는 11월 한 달 10퍼센트 넘게 올랐다.
KEYPLAYER_ 앰비슈머

불황기에 저렴한 상품으로 몰리는 현상은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불황기에 오히려 비싼 고급 재화가 잘 팔리는 현상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소비자 한 명으로 좁혀 생각해 보면 소비 패턴이 보인다. 평소에는 편의점에서 저렴하게 끼니를 때우고, 주말에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멋진 한 끼를 즐기는 것이다. 필수재는 최대한 가성비를 따져 저렴한 것을 선택하고 자기만족을 위한 아이템에는 가심비를 우선해 아낌없이 돈을 쓴다. 이렇다 보니 그 중간쯤에 있는 1만 3천 원짜리 정식은 잘 팔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평균이 실종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소비 형태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앰비슈머(ambivalent consumer)’라는 용어가 수년 전부터 MZ세대의 소비 트렌드로 소개되어왔다. 양면성(ambivalent)을 가진 소비자(consumer)라는 뜻이다.
RISK_ 세대론의 함정

그런데 MZ세대의 소비 행태를 정의하고자 하는 단어가 너무 많다. 사회는 이들의 ‘플렉스’ 문화를 이야기하다 갑자기 ‘무지출 챌린지’에 주목했다. ‘오픈런’을 두고도 여러 시선이 엇갈리는 와중인데, 이제는 ‘앰비슈머’에 ‘가심비’라고 한다. 이러한 단어들은 특정 집단을 납작하게 단순화하는 동시에 대상화하고 타자화한다.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모아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청년들에 대한 호기심, 새로운 소비의 방식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달라진 소비자 집단을 마케팅의 대상으로 삼아 그럴듯한 전략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상업적 동기 등이 어지럽게 뒤얽힌 시선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오류가 어디에 있는지 보인다. 소비가 무언가의 결과라면 그 원인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ANALYSIS 1_ 가성비와 가심비 사이

그렇다면 ‘평균 실종’, ‘앰비슈머’같이 그럴듯한 단어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뻔하고 골치 아픈, 저성장이라는 실체가 자리한다. 더 이상 성실함이 계급 상승도, 안전한 미래도 보장할 수 없는 시대다. 살아남기 위해 가성비를 챙겨야 한다. 그렇다고 아무런 만족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면 현재의 만족은 더욱 커다란 가치가 된다. 그래서 가심비를 챙기는 소비도 중요해진다. 모순 같은 두 경향이 저성장의 시대에는 논리적으로 양립한다. 결국 방향을 잃고 난립하는 소비 트렌드 용어들은 달라진 경제 환경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초상화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ANALYSIS 2_ 욕망과 현실 사이

게다가 저성장은 양극화와 함께 온다.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 노동소득 대비 자본소득의 힘이 더 세진다. 1970년대 이후 사회 정책 전반에 개입하게 된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 노선은 미국 사회 전반에 번영을 가져왔지만, 양극화 경향에 기름을 부었다. 자신을 과시하고 타인을 엿보는 것에 익숙해진 SNS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양극화는 개인의 욕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무한대로 벌려낸다. 그렇다면 점점 일상을 평균에 맞춰 유지할 여유는 없어진다. 순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매일의 삶은 점점 더 쉽게 희생된다.
CONFLICT_ INSIGHT

결국, ‘작은 사치’에 대한 열망은 우리 사회가 이미 불황에 잠식되었음을,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현상이 이미 기본 전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다음으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값비싼 딸기 뷔페가 잘 팔리고, 편의점과 백화점이 동시에 흥하는 이 현상을 분석하고, 적당한 가격의 적당한 물건은 잘 팔리기 힘들다는 인사이트를 얻는 것으로 끝나도 될까?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불황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불황형 소비가 더 강화할 것이라는 시장 예측을 얻는 것으로 충분할까?
INSIGHT_ 능력의 양극화

그것보다는 좀 더 복잡한 고민을 해 봐야 할 이유가 있다. 한번 가난의 굴레에 들어서면 개인의 힘으로는 돌파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증명한다. 가난이 인간의 능력치를 떨어뜨린다는 데이터다. 영국과 미국의 과학자들이 농부들을 대상으로 인지 능력 테스트를 했다. 1년 중 가장 돈이 부족한 시기인 추수 직전과, 반대로 가장 풍요로운 시기인 추수 직후를 비교해본 것이다. 돈이 두둑하게 들어온 후의 인지 능력이 약 13점 높았다. 13점 차이는 알코올 중독자와 정상인 사이의 점수 차에 해당한다. 즉, 인간의 뇌는 돈이 부족할 때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뇌가 본능적으로 돈을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돈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폭넓게 사고할 수 없는 것이다. 가난은 아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 보스턴대학 아동병원 인지신경과학연구실장 찰스 넬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와 같은 빈곤 국가의 아이들은 3세 기준으로 평균 대비 약 25퍼센트 낮은 지능을 보였다. 부의 양극화는 고스란히 능력의 양극화가 되어 대물림된다.
FORESIGHT_ 불황의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

불황에도 기회는 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외면할 필요는 없다. 다만 불황이 가져올 뻔한 위험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대비가 되어있는지 질문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가난이 늘어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면 해결책을 궁리해야 한다. 해결책이 없다면 완화책이라도 논의해야 한다. 예를 들면 미국 바이든 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이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 한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학자금대출 보유자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빚과 이자를 갚아야 하므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시간도, 여유도 없이 빠르게 노동시장에 진입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학자금 대출이 계층 사다리에서 추락하는 청년들을 만들어낸다면 해결방안을 논의해 볼 일이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논의들이 쌓인다면 불황이 몰고 올 고통의 크기를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대론이 가리는 우리의 진짜 문제에 관한 또다른 생각, 〈MZ라는 쉬운 문법〉도 함께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세대 안의 간극과 우리 경제의 현실을 자세하게 풀어뒀습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