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에 번쩍 서에 번쩍, 카카오 엔터

12월 5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카카오 엔터테인먼트가 팬덤 플랫폼을 인수한다. 카카오 엔터는 전통적 제작사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유통사다.

  •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 ‘스타쉽 엔터테인먼트’가 ‘엔씨소프트’의 팬덤 플랫폼인 ‘유니버스(Universe)’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 카카오에게 엔터 사업은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이다.
  • 카카오 엔터테인먼트가 꿈꾸는 엔터 기업은 기존 엔터사와 무엇이 같고 다를까?

BACKGROUND_ 유니버스
  • ; 바야흐로 팬덤 사업의 전성시대다. ‘SM’의 팬덤 플랫폼 자회사인 ‘디어유’가 모회사인 SM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었고, ‘하이브(HYBE)’는 네이버와 손을 잡고 자사의 팬덤 플랫폼인 ‘위버스’와 ‘브이앱’을 통합했다. 2021년, 이 춘추전국시대에 도전장을 내민 곳이 있다. 다름 아닌 게임 회사 엔씨소프트다.
  • ;  엔씨소프트의 첫 꿈은 원대했다. 게임 회사라는 장점을 살려 그래픽으로 승부를 보려 했다. K팝 스타의 아바타를 가상공간에 구현해 아바타와 팬이 만날 수 있게끔 했다. 팬들의 반응은 시들했다. 실제 스타가 있는데, 아바타를 좋아할 필요가 없었다. SM이나 하이브와 달리 고유 IP가 없는 엔씨소프트는 플랫폼 자체를 세계관을 가진 기획사처럼 운용하려 했다. 기획사들이 하는 오리지널 콘텐츠, 이른바 ‘자컨’을 만들려 했고, 직접 온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했다. 그럼에도 역시 인기를 끌었던 건 스타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기능인 ‘프라이빗 메시지’, 일명 ‘프메’였다.
  • ; 지난 9월, 배우 이동욱의 프라이빗 메시지가 소소한 화제를 끌었다. 팬을 향한 진정성이 담긴 마음을 유니버스의 메시지 기능으로 전한 것이다. 이 소소한 사건은 표면적으로 유니버스의 승리였지만 근본적으로는 유니버스의 패배이기도 했다. 결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플랫폼의 지향이나 모습이 아닌 사람, 즉 IP였기 때문이다. 이건 어쩌면 엔터 산업의 숙명이었다. 핵심 IP가 없는 유니버스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이동욱은 카카오 엔터의 계열사인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의 소속 배우였다.
  • ; 결국 유니버스는 엔씨소프트의 강점을 드러내지 못했고 한계만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SM이 가진 세계관이나 하이브가 내세우는 기획사-콘텐츠-서비스의 연결도 없었다. 후발 주자이기 때문에 보여줘야 했던 차별점조차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유니버스를 운영하는 엔씨의 자회사 ‘클렙’은 올 3분기 매출 88억 원, 영업손실 3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 1분기부터 이어진 적자다.

ANALYSIS_ 후발주자, 그게 전부?

유니버스의 실패 원인은 늦게 출발했다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이른바 ‘현질 유도’라는 게임의 문화를 팬덤 문화에 무리하게 적용하려 했다. 특정 사진을 다운로드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내 재화를 지불해야 했다. 팬과 게이머 모두 하나의 IP를 좋아한다는 느슨한 공통점을 갖고 있으나 그 애정의 양상은 다르다. 이미 게임 회사라는 이름이 붙여진 엔씨소프트에게, 그리고 실제로 스타를 위한 기획을 실제로 진행하지 않는 게임 회사에게는 팬과 소속사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감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결제 유도는 외려 독이 됐다. 다양한 지점에서 유니버스가 팬덤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DEFINITION_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의 이진수 대표는 2010년, 김범수 의장을 최대 주주로 영입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이름은 ‘포도트리’였고, 교육 서비스였다. 몇 차례의 위기를 넘긴 포도트리는 2013년 ’카카오 페이지‘로 전환한다. 카카오 페이지는 콘텐츠를 분절 판매하는 방식을 도입한 콘텐츠 오픈 마켓 플랫폼이었다. 사업 확장을 반복한 뒤, 2021년에는 사명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로 바꾼다. 지금 카카오 엔터테인먼트는 웹툰, 소설, 드라마, 음악, 뉴미디어까지 다양한 분야의 IP를 8500개가량 갖고 있다. 크게는 미디어, 스토리, 뮤직으로 분류된다.
RECIPE_ 뷔페

전통적인 제작사, 기획사가 아니었던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의 생존 전략은 공격적인 인수 합병이었다. 이 전략은 엔터 분야의 꾸준한 단점으로 지적됐던 단기 수익만을 위한 수단, 높은 리스크 등을 떠받치기에도 좋았다. 현재 카카오 엔터에 소속된 계열사는 무려 63곳으로, 웹툰, 웹소설, 영화, 드라마, 예능을 모두 유기적으로 아우른다. 계열사인 ‘영화사 월광’이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수리남〉은 넷플릭스에서 14개국 1위를 차지했다. 역시 카카오 엔터의 계열사인 ‘영화사 집’이 제작한 영화 〈브로커〉는 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일견 다른 회사의 작품 같지만 모두 카카오 엔터의 손 안에 있다.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의 비즈니스 모델은 정확한 타깃을 설정하고 원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오마카세보다, ‘네가 원하는 게 하나쯤은 있겠지’ 종류의, 뷔페에 가깝다.
ANALYSIS_ 카카오의 경쟁자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카카오에게 카카오 엔터테인먼트는 왜 중요할까? 2021년 4분기, 카카오 종속 회사의 총 매출 중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44퍼센트였다. 엔터와 콘텐츠는 매출을 채우는 든든한 수호자이기도 했지만 단지 매출만이 그 이유는 아니다.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통신사가 콘텐츠와 엔터 계에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KT는 미디어 플랫폼 확장을 향한 포부를 밝혔다. KT의 ‘스튜디오 지니’는 웹툰, 웹소설, 드라마를 제작하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히트작을 냈다. LG U+는 토종 OTT인 왓챠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카카오는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아마존화(Amazonization)’를 꿈꾼다. 그런 카카오에게 엔터는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이다.
RISK_ 카카오 엔터의 경쟁자

통신사, 플랫폼만이 카카오의 적은 아니다. 카카오 엔터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들을 위협하는 건 전통적인 엔터 강자다.
  • 세계관과 IP ; 하이브는 다양한 멀티 레이블 체제를 통해 IP의 수를 늘리고, OSMU를 공격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SM에는 모든 IP를 연결하는 세계관이 있다. 최근 SM은 오프라인 공간인 ‘광야@서울’을 오픈했다. SM의 팬덤 경험은 스크린을 넘어 직접 움직이고 설 수 있는 공간에 놓인다.
  • IT ; 전통적인 강자는 한편으로 새로운 위협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은 음악과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기술 융합을 꿈꾼다. 지난 7월, 하이브는 기술 연구 개발을 수행하는 법인 ‘바이너리코리아’를 설립하고 인공지능 음성 기업 ‘수퍼톤’을 인수하기도 했다. 박지원 대표는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업계의 혁신을 주도하고 업의 경계를 확장해 지속적이고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STRATEGY_ 기획사보다는 유통사

새로운 위협과 전통 강자에 맞서 카카오 엔터가 택한 전략은 제작과 기획으로의 집중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유통망과 네트워크 건설에 가까웠다. 카카오 엔터에는 확고한 모습의 콘셉트가 없다. 적극적인 인수 합병을 통해 다양한 결의 작품을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그를 또 다른 유통사에 배급한다. 콘텐츠의 중간 물류 창고가 되기 위해 카카오는 비싼 값에 제작사를 사들였다. 외부에서는 비싼 값에 영업권을 인수하는 카카오를 걱정스레 바라보기도 했지만 카카오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와 함께 콘텐츠를 생산하는 자회사의 가치도 올라갔다. 이런 점에서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의 행보는 디즈니보다는 롱테일 전략을 취하는 넷플릭스와 비슷하다. 카카오 엔터는 디즈니처럼 세계관이 흔들릴 위험이 없다. 한편으로는 넷플릭스처럼 구독자 수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의 사업은 전통적 엔터 사업보다는 플랫폼의 모습에 가깝다. 이곳저곳에서 만들어진 IP는 카카오를 거쳐 수많은 가게에 진열된다.
INSIGHT_ 카카오에게 유니버스가 필요한 이유

그렇다면 카카오에게 유니버스는 왜 필요했을까. 답은 플랫폼이 된 엔터 사업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카카오의 커다란 전략에 있다. 바로 커뮤니티 강화다. 카카오 엔터에 소속된 계열사들은 이미 팬덤과 스타를 관리해 온 경력직들이다. 그들은 팬과 커뮤니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커뮤니티 조직력은 기존 유니버스에게는 부족했던 능력이고, 카카오에게는 필요한 능력이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을 관심사 기반의 커뮤니티로 재편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커뮤니티에 강점이 있는 팬덤 문화가 필요하다. 팬덤은 명확한 관심사와 반복적이고 일관된 소통, 커다란 확장 가능성을 가졌다. 유니버스가 스타쉽 엔터를 넘어 카카오 엔터에 소속된 계열사 전체를 엮는다면 이곳저곳에 퍼져있는 콘텐츠를 한 곳에 모을 수 있다.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자신의 관심사를 통해 말하는, 이상적 모습의 커뮤니티다.
FORESIGHT_ 가능성?

카카오 엔터의 유니버스는 그렇다면 더 큰 가능성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엔씨소프트의 원대한 기획이었던 가상공간과 아바타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인기 웹툰과 웹소설의 주인공을 아바타로 구현해 메타버스 상에서 팬들과 소통하게끔 만들 수 있다. 또한 카카오 페이지에서 활동하는 9400여 명의 작가 풀을 이용해 연예인과 셀러브리티로 한정됐던 팬덤 기능의 범위를 인기 작가나 콘텐츠 제작자로 넓힐 수 있다. 확장이 더 진행된다면 사람이나 음악 IP 뿐 아니라 텍스트, 웹툰, 가상 캐릭터로 그 범위를 넓힐 수도 있을 것이다. 빈살만의 1조원 투자 발표는 카카오 엔터의 더 큰 꿈에 바람을 불었다. 카카오가 꿈꾸는 것은 플랫폼화 된 엔터 기업이다. 그에 맞춰 팬덤 플랫폼도 무한히 확장할 것이다.


팬덤의 문화, 팬덤 커뮤니티, 세계관 등의 엔터 사업이 궁금하시다면 〈너와 나의 연결고리〉, 〈모두의 것, 세계관〉, 〈슈퍼 팬덤의 커뮤니티, 트위치〉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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