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을 바에야 말하지 않는 이들
 

12월 7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MZ세대에 콜 포비아라는 병명이 붙었다. 이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원인은 정말 통화일까?

  • MZ세대의 29.9퍼센트가 통화 공포증, 이른바 ‘콜 포비아’를 겪고 있다.
  • 콜 포비아는 기존의 소통 문화와 충돌하는 MZ세대를 비춘다.
  • 유쾌한 소통과 만남을 위해 필요한 건 완벽주의로부터의 탈출이다.

DEFINITION_ 콜 포비아

콜 포비아는 전화와 공포증의 합성어다. 통화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거나 통화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현상을 뜻한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불안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혹은 전화를 하기 전에 대본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면 당신도 콜 포비아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콜 포비아 관련 조사 결과도 매년 등장한다. 2020년 ‘잡코리아’가 성인 남녀 5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의 58퍼센트는 전화가 두렵다고 답했다. 지난 9월, ‘알바천국’이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29.9퍼센트는 콜 포비아를 겪고 있었다. 콜 포비아는 대화에 두려움을 갖는 ‘토크 포비아’와도 멀지 않다. 말실수, 나쁜 경험, 참을 수 없는 대화 사이의 침묵은 사람들을 유쾌한 소통이 아닌 두려움으로 이끌었다.
CONFLICT_ 레거시의 충고

콜 포비아를 MZ세대의 이해할 수 없는 유별남으로 바라보는 대부분의 기성 언론은 기사 말미에 콜 포비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윗세대와의 수직적인 소통이 아닌 긍정적인 통화 경험을 만들고, 사회적 기술 훈련을 통해 콜 포비아를 넘어설 수 있다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들은 MZ세대의 불편함을 개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상정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콜 포비아, 나아가 토크 포비아는 MZ세대 개인이 극복할 수 있는 서사일까? 어쩌면 콜 포비아는 구조가 만든 거시적 현상일 수 있다.
ANALYSIS_ 통화
  • 즉각적 ; 전화 소통은 즉각적이다. 통화하는 사이 즉각적인 액션과 리액션이 이뤄져야 한다. 즉각적인 소통은 불확실하다. 상대방에게서 언제, 어떻게,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른다. 상대방의 액션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나 자신의 리액션도 불안정하다. 답변을 정제하거나 시간을 두고 생각할 수 없다.
  • 집중 ; 전화 소통은 일대일이다. 나와 상대방이 대화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인 만큼 집중하지 않으면 소통의 맥락을 놓치기 쉽다. 기록이 남지 않는 경우 더더욱 그렇다. 통화를 위해서는 통화라는 행위에만 집중해야 한다.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가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방해한다는 감각은 소통의 주도권이 온전히 나에게 주어져있지 않다는 불안감에서 비롯한다.
  • ; 전화 소통은 말을 중심에 둔다. 발화 행위를 통해 상대방이 가진 정보를 흡수하고 내가 가진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실수는 용인되지 않는다. 수정, 취소, 삭제가 가능한 메시지와 달리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제스처나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통화는 때때로 오해를 낳기도 한다. 실제로 10-20대의 36퍼센트가 말실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화를 꺼린다고 답했다.

ANALYSIS_ 메시지
  • ; 전화와 달리 메시지를 통한 소통에는 사이의 공간, 텀(term)이 있다. 즉각적인 소통이 강요되지 않으며, 내가 원할 때 답하거나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알림과 배너 등의 미리보기 기능을 통해 메시지를 확인하고, 미리 답변을 생각하거나 바쁜 일이 끝났을 때 답할 수 있다.
  • 멀티 플레이 ; 텀을 허락하는 소통인 만큼 메시지 소통에는 지속적인 집중력이 필요치 않다. 소통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원하는 정보를 찾아볼 수 있고, 여럿과의 소통도 가능하다. 요컨대 우리는 메시지를 통해 소통하며 음악을 들을 수 있고, TV를 볼 수 있다. 멀티 플레이는 메시지의 감각이다.
  • 하이퍼미디어 ; 말과 발화는 메시지의 중심이 아니다. 메시지는 여러 미디어를 오간다. 메시지를 통해 사진을 전송할 수도, 동영상을 공유할 수도 있다. 더 많은 정보가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링크를 전송하는 것도 가능하다. 메시지 소통은 하나의 독단적인 주인공만 갖지 않는다.

STRATEGY_ 클럽하우스와 디스코드

음성 기반 SNS라고 불리는 ‘클럽하우스’는 소셜 미디어와 음성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였다. 실시간 음성 소통 프로그램인 ‘디스코드’는 게임과 NFT, 암호화폐 등의 정보 공유처로 쓰이며 웹3.0을 주도하는 소통 공간이 됐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음성을 사용하지만 통화보다 메시지에 가깝다는 점이다
  • 자기 주도적 소통 ; 클럽하우스의 경우 대화방에 참여한 청취자가 ‘손 들기’ 버튼을 눌러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발언권을 직접적으로 요청하기 전까지 대화의 흐름을 좇으며 자기 주도적인 정보 전달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 콘텐츠 ; 한편으로 클럽하우스와 디스코드 모두 소통의 목적과 대화방의 이름이 선제적으로 주어져있다. 요컨대 이들의 대화에는 콘텐츠가 있다. 이 콘텐츠는 소통 내용에 테두리를 만든다. 자신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분야의 소통은 아예 피할 수 있는 것이다. 행여 대화가 진행되는 도중 자신이 모르는 정보가 나와도 괜찮다. 그저 손을 들지만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BACKGROUND_ 완벽주의

심리학자 토마스 커런(Thomas Curran)과 앤드류 힐(Andrew Hill)의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의 밀레니얼 세대는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두 심리학자는 완벽주의적 성향의 확산 원인으로 능력주의의 보편화를 꼽는다. 개인의 능력이 모든 평가의 절대적 기준이라고 믿는 능력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사회 전체의 기대수준이 높아졌고, 이것이 MZ세대의 집단적 완벽주의로 드러난 셈이다. 한 마디의 말을 하거나 한 조각의 정보를 전할 때도 그들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쉽게 시달린다. 완벽하게 소통하지 못할 바에야 아예 소통하지 않기를 택한다. 완벽한 소통을 위해서는 자신이 소통 전체를 주도해야 한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없고, 자기 주도적인 소통을 허락하지 않는 통화는 그와 거리가 멀다.
REFERENCE_ 완벽함과 당당함 사이
  • 대설교메 ; 완벽한 소통에 대한 MZ세대의 강박은 전화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사이트 ‘대설교메(대학생이나 돼서 설마 교수님께 메일 보내는 법도 몰라?)’는 교수를 대상으로 메일을 보낼 때 활용할 수 있는 여러 폼을 제공한다. 성적 정정 요청, 추천서 작성 의뢰, 수강 신청 문의 등을 문의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실수할 염려가 없고, 편리하게 예의 바르고 공손할 수 있다.
  • 인턴 기자 주현영 ; 쿠팡 플레이의 ‘SNL 코리아’에서 인기를 끈 캐릭터 인턴 기자 주현영의 떨리는 목소리는 완벽주의와 두려움의 기이한 결합에서 탄생했다. 앵커의 질문에 완벽하게 답하지 못하는 상황, 자신이 주도하지 못하는 정보는 두려운 대상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주기자는 성장했다. ‘주기자가 간다’를 통해 기성세대 권력자들과 당찬 대화를 나누는 인턴 기자의 자기 발전 서사는 MZ의 열광을 불렀다.

INSIGHT_ 공짜가 된 통화

변화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역시 시장이다. 휴대폰 요금제의 주인공은 제공되는 통화 시간이 아닌 데이터의 양이다. 전화와 문자 양을 정해주는, ‘알’과 ‘링’을 주고받는 시대는 끝났다. 사람들은 가격과 무제한 데이터 제공 여부에 민감하지만 통화 시간에는 무감각하다. 월 1만 원대의 알뜰 요금제에서도 어렵지 않게 통화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요금제를 찾아볼 수 있다. 이제 통화는 공짜다. 그리고 공짜는 더 이상 사람들이 갈구하지 않는 대상이다. 그렇게 소통의 도구는 바뀌었지만 그 본질은 여전하다. 소통은 개인과 개인, 그를 넘어서 사회를 구성하는 무형의 연결이다. 개인과 개인이 마주치는 과정에서는 새로운 깨달음과 일종의 ‘진화’가 일어난다. 1973년, 생물학자 밴 베일런(Leigh Van Valen)이 제안한 진화생물학의 ‘붉은 여왕 가설’은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과 의도적으로 경쟁하고, 마주쳐야 한다고 말한다. 소통이 스트레스와 포비아의 대상이 된다면, 그 원인은 완벽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이들을 만든 사회의 구조에 있다.


FORESIGHT_ 타인과의 불완전한 마주침

지금의 청년 세대가 자란 시대에서 한 번의 실수는 취업 문턱 앞에서의 추락으로, 입시 결과의 당락으로 나타났다. 능력주의의 근본적 원인은 청년에게 주어진 재도약 시스템의 부재다. 능력이 회사와 대학 등의 간판으로 평가받는 시대에 청년 세대에게 기득권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유일한 도약의 기회다. 유일한 기회 앞에서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자연스럽게 나약해진다. 그렇다면 콜 포비아의 해결 방법은 긍정적인 통화 경험 구축이나 개인의 트라우마 극복이 아니다. MZ세대 위에 드리운 완벽주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만 타인과의 유쾌한 만남이 가능하다. MZ세대에게 편안한 소통은 모든 게 자신에 맞춰져 짜여진 공간이다. 연령대, 성별, 상황, 관심사에 따라 구축된 온라인 커뮤니티의 인기가 그를 대변한다. 이 니즈에 맞춰 새로운 시대의 SNS는 탈중앙화된 시스템을 내세운다. 개개인의 관심사가 서버가 되고, 서버가 세계가 되는 체계다. 개인만으로 대표되는 탈중앙화가 불통의 다른 표현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타인과의 완벽하지 않은 마주침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언론의 엉성한 세대 분류와 그것이 가로막는 세대간 소통의 가능성이 궁금하시다면 〈한국이 만든 MZ세대〉를 추천합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