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속의 개인

12월 9일 - FORECAST

화물연대가 6월에 이어 11월에 돌입한 파업에서 동력을 잃었다. 그간 변한 것은 무엇인가.

  • 화물연대의 파업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으로 맞섰고, 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랐다.
  • 대기업과 공사 노조의 민주노총 총파업 이탈까지 이뤄지며 화물연대 파업은 동력을 잃었다.
  • 노조란 단어에 대해 다시 질문할 때다.

BACKGROUND_ 강대강 대치

올해 들어 두 번째 파업이다. 2022년 6월 7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한 바 있다. 6월 파업은 다섯 번째 노정 협상에서 일몰제 지속 추진에 합의를 이루며 8일 만에 멈췄다. 그로부터 5개월 후인 11월 24일, 화물연대는 같은 이유로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화물연대가 1년에 두 번 파업한 건 2003년 이후 19년 만이다. 5개월 만에 다시 벌어진 노정 갈등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나.
DEFINITION_ 업무개시명령
  • 5개월 전과 다르다. 정부는 ‘선복귀 후대화’ 입장을 고수하며 업무개시명령이라는 초강력 대응책을 내놓았다. 업무개시명령은 파업이 국민 생활이나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으로 판단될 때 정부가 내리는 것으로, 정당한 이유 없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관련 면허 취소 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 업무개시명령이 처음 도입된 건 국민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의료 분야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2014년 원격의료 반대, 2020 의과대학 정원 확대로 인한 의료계 집단 휴진때 발동된 바 있다. 운송분야의 업무개시명령은 2004년 참여정부에서 법제화됐다. 그 이후 화물연대 파업이 여러 번 있었음에도 발동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여겨져왔다. 

  • 그런 업무개시명령이 화물연대 파업 역사상 처음으로 발동됐다. 정부는 11월 29일 시멘트 분야 업무개시명령을 시작으로, 9일 만인 12월 8일 철강과 석유화학 분야에 대한 업무개시명령까지 의결했다. 파업 2주 만에 3개 분야에 대해 업무에 복귀할 것을 명령한 것이다.


CONFLICT_ 화물연대의 반발

화물연대는 당연 반발했다. 처분 취소 소송을 청구하고, 국제법 위반국제노동기구(ILO)에 긴급개입 요청 서한을 보내는 등이다. 화물연대는 ILO 협약 제29호와 제97호에 주목하고 있다. 각각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결사의 자유를 보호하는 내용이다.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으로 판단될 때’라는 불명확하고 추상적인 기준으로 해당 협약을 저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관련해서 ILO가 2일 한국 정부에 보낸 공문을 두고도 노정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관련 공문에 ‘결사의 자유 침해’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화물연대의 주장에 정부는 단순 의견 조회 요청일뿐이라 일축했다.
NUMBER_ 41.5퍼센트 

5개월 사이 정부의 태도와 함께 변한 것이 있다. 바로 현 정부의 지지율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41.5퍼센트로 약 5개월여 만에 앞자리 4를 되찾았다. 11월에 진행된 조사에 비해 9.1퍼센트포인트 오른 수치다. 전문가들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지지율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파업은 진보와 보수 유권자의 태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슈다. 강경 대응의 효과를 맛본 정부는 지금의 태도를 유지할 확률이 높다.
RISK_ 파업 동력

업무개시명령이라는 강력한 대응책 앞에 화물연대의 파업은 동력을 잃었다. 업무개시명령서를 송달받은 화물기사는 생계 유지를 이유로 속속 복귀하고 있다. 지금까지 업무개시명령 대상자는 13000여 명이다. 이들이 업무에 복귀하며 관련 분야 물동량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파업 동력은 이와 반비례한다. 주목할 건 개별 기업 노조의 이탈이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제철 등 대기업 노조는 사측과의 교섭에 집중하겠다며 민주노총 총파업 불참 의사를 밝혔고, 포스코 노조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탈퇴를 결정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는 총파업 하루 만에 임금·단체협약하며 파업 대열에서 이탈했다. 단일 대오에 균열이 생기며 파업 동력은 더욱 약화했다. 화물연대는 한발 물러나 9일 조합원 총투표로 철회 여부를 결정하겠다 밝혔다.
ANALYSIS_ 내부의 목소리

서울교통공사의 파업 철회를 두고 공사 내 MZ세대의 역할이 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30을 중심으로 하는 올바른노조의 “노조 활동도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올바른노조는 제3노조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속하지 않는다. 지난 교섭 기간 동안 상당수가 올바른노조로 옮겨오며, 조합원 수가 52퍼센트 증가했다. MZ세대 직원들에게 기존 노조의 성공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REFERENCE_ 스타벅스 시위

2021년 스타벅스코리아 직원들은 근로여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진행했다. 시위 예고를 본 민주노총 측은 도울 의사를 전달하며 노조 결성을 권유했지만, 스타벅스코리아 직원들은 이를 거부했다. 블라인드 앱 내 투표를 통해 장소, 항의 문구 등을 정하고, 트럭을 대여해 시위를 진행했다. 이들은 본사로부터 신규 인력을 확보하고 임금체계 약속을 받아냈다.
INSIGHT_ 집단과 개인
  • 노조는 개인이 권리를 얻기 위해 연대한 결과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노조라는 이름표는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것이 됐다. 한길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13퍼센트만이 노조의 전반적인 활동에 대해 지지 입장을 보였다. 다른 조사에서 유가상승을 고려해 최저운송비를 정해두자는 화물연대의 요구를 밝히고 파업 지지 여부에 대해 묻자 찬성 응답이 58퍼센트로 올라갔다.

  • 화물연대는 민주노총 산하에 있지만, 개인 화물기사들이 모여 만든 것이다. 화물기사의 계약서상 지위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다. 때로는 집단에 속하는 게 유리할 수도, 개인으로 남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 노조라는 이름표를 선택할지 말지는 노동자 개인이 결정할 일이다.


FORESIGHT_ 집단 속 개인

윤석열 대통령은 파업 5일 차에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노사 법치주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상층에 속하는 건 대기업 정규직 등이고, 하층에 속하는 건 간접고용·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노동구조 이중화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화물연대는 노정 갈등의 한축이지만, 특별고용직 노동자로서 화물기사는 노동구조 이중화의 피해자다. 이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 한, 화물연대의 파업은 끝나도 끝나지 않은 게 될 것이다.
화물연대의 6월 파업에 대해 궁금하다면 〈분노의 섀도복싱〉을 추천합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