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INSIDE
5화

과몰입 ; 나의 세계, 남의 세계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2022년은 온라인에 깊이 빠져든 해였습니다. 모든 것이 멈춘 코로나19 팬데믹, 유일하게 활기를 띈 곳은 온라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관계를 맺고, 온라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4월 18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습니다. 757일 만이었죠. 온라인으로의 과몰입은 우리 세계를 어떻게 바꿔놓았을까요?

나의 세계


2022년의 진정한 시작은 1월 1일이 아닌 4월 18일이었습니다. 2년 1개월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날이었죠. 기업은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고, 사람들은 미뤄뒀던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그간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회식보다 혼술, 다시 말해 함께보다 혼자가 편해진 뒤였습니다.

바깥 세상과의 단절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자신에 대한 정의를 찾으려 나섰던 MBTI 열풍에서 볼 수 있듯 말이죠. 그런가 하면 온라인 속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출시된 SNS 비리얼의 인기가 말해줍니다. 비리얼은 알림이 오면 2분 안에 전·후면 카메라로 지금의 상황을 찍어 올려야 합니다. 설정도 필터도 없이, 그야말로 날 것을 공유하는 것이죠. 기존 SNS의 문법을 깨는 시도에 Z세대가 호응했습니다.

안티 소셜 미디어의 등장이 현실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빅테크 기업으로 하여금 더 깊은 가상세계를 구축하게 했습니다. 바로 메타버스입니다. 카카오톡은 메타버스의 첫 단추로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소통할 수 있는 오픈링크를 제시했습니다. 네이버와 크래프톤 등 국내 IT 기업은 메타버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오디오 기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미국 유통기업 월마트는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 가상매장을 오픈했습니다. 가상세계 속 주도권은 온전히 이용자 개인에게 있습니다. 그 안의 정체성, 관계, 세계관은 개인이 만들어가는 것이죠. 
  • 4월 15일 뉴스룸; [경향신문]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link
  • 5월 6일 뉴스룸; [WSJ]The Rise of Photo Widgets link
  • 6월 8일 뉴스룸; [블로터]카카오 유니버스, 생소한 ‘텍스트 중심’ 메타버스 link
  • 9월 13일 뉴스룸; [서울경제]화룡점'聽'…메타버스, 사운드에 달렸다 link
  • 9월 27일 뉴스룸; [techcrunch]Walmart arrives on Roblox with two new virtual worlds link

온라인은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AI 알고리즘은 더욱 과몰입을 유도하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는 필터 버블 시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조사에서 30퍼센트의 응답자가 인터넷발 코로나 바이러스 음모론을 믿다고 답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글로벌 콘텐츠전송네트워크 클라우드플레어가 “인명에 대한 즉각적인 위협”을 이유로 온라인 게시판을 차단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작년 에잇챈에 이어, 올해 키위팜스가 차단됐습니다. 트렌스젠더 공격을 모의하는 글 때문이었습니다. 잘못된 정보나 고정관념은 ‘나만의 세계’에 뿌리 깊게 박혀 자랍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한 정부의 대책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메타버스 윤리원칙’을 발표했습니다. 메타버스 내 아바타는 “진실하게 행동하고, 참여 및 행동을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며, 상호 간 존중과 예의를 갖추고, 가상공간에서도 사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었죠. 미국 정부는 ‘AI 권리장전’을 발표했습니다. AI 기술은 “설계 과정에서 특정 인종이나 피부색, 민족, 성별, 종교, 연령, 장애 등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고정관념이 내재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022년은 그런 해였습니다. 당연해 보이는 문장들이 정부의 권고 사항으로 나오는.
  • 9월 5일 뉴스룸; [CNN]US internet service company blocks online forum citing link
  • 9월 7일 뉴스룸; [파이낸셜뉴스]국민 30% "재유행 와도 접종 안해"…8% "백신 속 괴생명체" link
  • 10월 5일 뉴스룸; [CNN]The White House released an ‘AI Bill of Rights’ link
  • 11월 29일 뉴스룸; [머니투데이]"아바타도 진실하고 예의 갖춰야"…메타버스 윤리원칙 공개 link

남의 세계

나의 세계에 몰입한 만큼 남의 세계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습니다. 9월, 온라인에서 벌어진 ‘심심한 사과’ 논란 기억하시나요? 한 누리꾼이 매우 깊고 간절한 마음을 뜻하는 심심(甚深)이란 단어를 ‘지루하다’로 오해했고, 언론은 이를 젊은 세대의 문해력으로 비췄습니다. 하지만 이 논란은 세대 간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자어에 익숙한 세대가 있는 한편 그렇지 않은 세대도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살아온 삶에 대해 질문하고 있나요? #9월 1일 포캐스트 〈언어의 줄다리기〉
 

질문하지 않으면 알지 못합니다. 음모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 심리학자 패트릭 레만은 음모론은 분리감에서 나온다고 설명합니다. 11월 독일에서는 쿠데타 시도가 있었습니다. ‘제국시민운동’ 구성원이 연루되어 있었는데요. 이들은 독일이 실제 국가가 아니라는 음모론을 믿고 있습니다. 백신 음모론 뒤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제국시민운동 뒤엔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이 있습니다. 이는 쉽게 차별과 혐오로 번지기도 하죠. #9월 8일 포캐스트 〈신뢰 종말 시대의 음모론〉 #12월 12일 포캐스트 〈혐오가 자란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한없이 무감각해질 수 있는 존재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고통》에서 작가 수전 손택은 자신의 안전이 보장된다고 느끼는 한 타인의 고통에 무심해질 수 있는 인간의 본성을 고발했습니다. 나의 세계가 안전한 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도, 물에 잠기는 몰디브도 남의 이야기인 것이죠. 기후위기 의제를 다룰 때 늘 언급되는 것은 공감입니다. 과연 이상적인 방안에 불과할까요? 거대한 시스템을 바꾸는 것보다 오히려 현실적인 방안일지 모릅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도 우리는 늘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의 행동은 어떻게든 남의 세계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나를 바꾸는 것은 세계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죠. #10월 6일 포캐스트 〈불을 끌 시간〉 #11월 종이책 《그린워싱주의보》


우리라는 세계


문학은 시대 흐름을 반영합니다. 2022년의 단절은 신춘문예로 드러났습니다. 빈곤·취업·가족 내 갈등 등 응모작의 주제가 전체적으로 “내면화됐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심사위원으로 나선 시인 박준은 “타자, 외부가 있어야 내 목소리도 생기는 것”이라며 시선이 내면에만 머물면 메시지가 부유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나의 세계도 타인이 있어야 더욱 단단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2022년은 북저널리즘에게 ‘당연함에 질문을 던지는’ 해였습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에게 휠체어를 타고 시민의 출근길 지하철에 오른 이유를, 홍성수 법학부 교수에게 왜 차별금지법인지를 물었습니다. 모든 답은 ‘평화롭고 안전하게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서’로 닿았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더라도 계속해서 질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5월 5일 전자책 〈지하철을 타는 장애인〉 #5월 31일 톡스 〈법학자의 시선으로 본 차별금지법〉

2022년 6월 종이책은 《당신의 몰랐던 MBTI》였습니다. MBTI는 전쟁의 후유증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마이어스와 브릭스 모녀는 전쟁이 만들어낸 고통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가치와 삶의 목적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스스로 질문하고 답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나도 몰랐던 나에 대해 질문할 때, 나의 세계는 만들어집니다. 당연함에 다시 한 번 반문할 때, 나의 세계는 깨집니다. 그제야 비로소 남의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죠. ‘우리’라는 세계는 그렇게 확장됩니다.

2022년, 당신은 어디에 몰입했었나요? 질문하고 반문하며 다가오는 2023년을 엽니다.

정원진 에디터
해당 전자책은 전체 무료로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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