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의 재발견

12월 16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에르메스가 버섯 가죽에 투자한다. 버섯은 소재 산업의 미래가 될까?

  • 버섯으로 만든 인조 가죽이 각광받고 있다.
  • 패션뿐 아니라 제품 소재, 건축 자재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 버섯 가죽은 원재료의 커스텀 재배의 첫발이다.

BACKGROUND_ 인조 가죽
대부분의 가죽 대체재는 플라스틱, 폴리우레탄, PVC를 원료로 한다. 플레더(pleather)라는 말이 생긴 이유다. 도살하지 않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LCA 관점에서 심각한 환경 오염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에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인조 가죽이 각광받는다. 버섯이다.
DEFINITION_ 레이시
버섯 가죽의 원료는 레이시(Reishi)라는 일종의 버섯 균사체다. 레이시를 톱밥과 같은 재료와 섞어 얇은 종잇장처럼 만든다. 자연의 버섯을 따서 사용하는 게 아니다. 삼림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농장에서 재현해, 균사체를 발췌하고 가죽으로 가공한다. 다양한 질감 연출이 가능하며 섬유, 면과 같은 기타 소재와도 혼합 가능하다. 무두질 과정에서 크롬(chromium)[1]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재배 및 제조 과정이 짧고 단순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동물 가죽에 비해 다양한 질감과 사이즈로 제공되고, 자연 분해되는 것도 장점이다.
KEYPLAYER_ 마이코웍스
“그건 완전히 다른 행성에서 온 생명체 같았다.” 현재 버섯 가죽 시장을 선도하는 마이코웍스(MycoWorks)[2]는 미국 출신 예술가 필립 로스(Philip Ross)에 의해 시작했다. 로스는 2007년 버섯을 소재로 한 작품 전시를 준비하던 당시를 위와 같이 회고한다. 특정 종의 버섯이 매우 단단하고 질기다는 점을 깨달은 그는 플라스틱이나 유리와 같은 소재를 버섯으로 대체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 2013년, 레이시를 활용한 기술을 개발·접목하는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마이코웍스를 세웠다. 올해 안에 네덜란드 공장을 완공하고, 내년 말까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건설 중인 4200평 규모의 농장을 완공 예정이다.
CONFLICT_ 볼트스레즈

볼트스레즈(Bolt Threads)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이다. 마이크로실크(Micro silk)라는 합성 실크 브랜드로 5년 전 크게 주목을 받았다.[3] 마이코웍스와 함께 세계 버섯 가죽 시장의 선도자로 꼽힌다. 마이코웍스에 ‘레이시’가 있다면 볼트스레즈엔 ‘마일로(Mylo)’가 있다. 지난해 봄 디자이너 스텔라 맥카트니와 협업으로 의류를, 올해 여름엔 가방을 출시했다. 룰루레몬과 요가 매트와 더플백을 내놓았으며 아디다스와의 협업으로 스탠 스미스 마일로[4]선보였다.


ANALYSIS_ 소재와 자재
  • 가죽 ; 버섯 가죽에 일차적으로 집중하는 것은 패션 업계다. 에르메스는 마이코웍스와의 협업을 통해 빅토리아 핸드백을 제작했고[5], 모자 디자이너 닉 푸케(Nick Fouquet)가 레이시를 활용해 만든 모자는 완판됐다. 자동차 산업 또한 가죽 사용량이 많은 사업으로 꼽힌다. 올해 10월, GM벤처스는 마이코웍스와 협력안을 체결하며 ‘지속 가능한 자동차 디자인’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 자재 ; 버섯 가죽은 단순히 동물 가죽의 모사품으로 소구되지 않는다. 패션 디자인에서 제품 디자인으로의 확장을 통해, 가죽을 넘어 새로운 자재로 활용될 수 있다. 미국 친환경 기업 에코베이티브 디자인(ecovative design)은 균사체를 농업 폐기물이나 나무 부스러기에 배양해 스티로폼을 대체하는 친환경 완충재를 만들었다. 뉴욕의 디자인 스튜디오 더 리빙(The Living)은 버섯 균사체와 옥수수 줄기를 활용해 임시 건축물을 지었다.


MONEY_ 6억 5000만 달러

폴라리스마켓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천연 소재(bio-based) 가죽 시장은 6억 5000만 달러 수준이며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 예정이다. 이 중 버섯 가죽 시장은 상기한 마이코웍스와 볼트스레즈 2개사가 대다수 점유하고 있다. 볼트스레즈의 댄 위드마이어 대표는 2009년 창사 이래 5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마이코웍스는 올해 1억 25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펀드를 제외한 최대 투자자는 우리나라의 SK네트웍스였다. 


REFERENCE_ 마이셀

우리나라의 버섯 가죽 시장은 어떨까? 현대차 사내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마이셀(Mycel)은 균사체를 이용해 신소재를 개발한다. 올해 8월 130억 원 규모의 프리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올초 현대차는 인조 가죽 시트를 활용한 신차를 내년 중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방글라데시에 양산 공장을 지어 하루 최대 300제곱미터 규모의 버섯 가죽을 생산할 계획이다.[6]


RISK_ 생산비, 내구성, 수요
  • 생산비 ; 인조 가죽을 선호하는 이유는 환경 보호만이 아니다. 저렴한 가격도 한몫한다. 그런데 버섯 가죽의 개발 및 제품 생산비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다. 현재까지 버섯 가죽을 사용한 제품들은 대부분 하이엔드 브랜드다. 마이코웍스 측은 자사의 에르메스 빅토리아백을 두고 천연 가죽 제품 생산비와 “견줄 만하다(comparable)”고만 밝힐 뿐 자세한 비용은 밝히지 않는다.
  • 내구성 ; 천연 가죽은 50년간 지속한다. 그러나 버섯 가죽의 내구성은 시험된 바 없다. 버섯 가죽 연구자 야콥 힐데브란트는 버섯 가죽으로 제작한 야구공을 두고 “여름에 잘 닳고 특히 물이 조금이라도 닿으면 끈적해진다”고 평한다.
  • 수요 ; 럭셔리 패션 지주 태피스트리의 조안 크레보이세라 CEO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체 가죽을 원할 것인가?” 친환경 소비가 늘고 있는 추세가 럭셔리 브랜드 소비층에게도 유효한지에 대한 물음이다. ‘지속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모호한 명제가, 천연 가죽 제품을 선호하던 소비자들을 설득할 만큼 강한 유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RECIPE_ 양산

버섯 가죽이 당면한 과제는 양산 체제다. 대량 생산이 가능할 때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뿐 아니라 수익 모델로서 가치를 키울 수 있다. 현재 마이코웍스가 쟁반에 재배하는 버섯의 사이즈는 가로 2피트, 세로 3피트 사이즈다. 동물 가죽의 절반 정도다. 재배의 속도와 정확성,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마이코웍스 매트 스컬린 CEO는 농장 자동화를 꼽는다.


INSIGHT_ 가죽의 중단

가죽은 엘리트의 상징이었다. 높은 내구성과 비싼 가격은 동물을 사냥하고 햇볕에 장시간 말리고 부드럽게 무두질하기까지의 오랜 공정에서 기인한다. 자동화 공장에서 단시간에 생산해 낸 버섯 가죽은 가죽의 오랜 정체성을 파괴하는 아이러니다. 대체재 개발에 앞서 그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하다. 직물 산업의 발전에 따라 가죽을 소비할 이유는 흐려지고 있다. 시대가 변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체재가 아닌 소비의 중단일 수 있다.


FORESIGHT_ 커스텀 재배

가죽의 상징성과 별개로 버섯 가죽에 활용되는 기술은 미래 제조 공정의 핵심이 될 수 있다. 천연 가죽은 필연적으로 로스(loss)가 생긴다. 인조 가죽은 커스텀 재배를 통해 로스를 최소화할 수 있다. 마이코웍스는 플라이니트(Flynit)와 같은 신발 브랜드와 함께 신발 제조에 필요한 사이즈와 모양에 꼭 맞는 버섯을 재배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문자 그대로 제로-웨이스트를 추구한다. 신발뿐 아니라 모든 제품군에 확대 적용될 수 있는 기술이다. 버섯 가죽을 시작으로, 제작에 필요한 재배 공정의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소재의 재발견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면 〈플라스틱 아크: 완전히 새로운 플라스틱〉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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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성 가죽 제조 과정에서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받던 물질이다. 크롬 태닝된 가죽은 피부 질환, 폐암을 유발하는 등 신체에 유해하고 폐기 시 토양 오염 등 심각한 환경 오염을 야기한다.
[2]
마이코텍처(mycotecture·균사체)라는 단어에서 딴 이름이다.
[3]
거미 유전자를 효모와 발효해서 만든 단백질로 옷을 만든다.
[4]
스탠 스미스(Stan Smith)는 아디다스 시그니처 스니커즈 라인 이름이다.
[5]
참고로 패트릭 토마스 에르메스 전 CEO는 현재 마이코웍스 이사회 소속이다.
[6]
마이셀은 버섯 균사체를 활용한 소재뿐 아니라 식품 분야에도 진출하고 있다. 대체육과 대체 단백질 원료를 하루 2톤 규모로 생산할 설비 건설을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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