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는다. 다짜고짜 직업과 연봉을 묻는다. 사람들은 유쾌하게 자신이 하는 일과 연봉을 밝힌다. 한나 윌리엄스(Hanna Williams)가 운영하는 Salary Transparent Street은 94만 7000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틱톡 계정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과 그 가치를 궁금해한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비교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시에서 지난 11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현재 일하는 사람들의 연봉을 공개하는 법이 아니다. 기업들이 채용 공고를 낼 때 급여 범위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법이다. 연봉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명시해야 한다. 불투명한 보상(보험, 초과 수당, 복지 등)은 카운트하지 않는다. 콜로라도, 워싱턴, 코네티컷 등 미국 17개 주가 이미 비슷한 법안을 시행 중이며 캘리포니아도 내년부터 시행 예정이다. #뉴욕급여공개법
독일은 지난 2018년 급여공개법을 시행했다. 근로자 200인 이상의 기업은 근로자가 요구할 시 동일 업무를 수행하는 동료와 월급을 비교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400인 이상의 기업은 위 사항과 더불어 동일 노동-동일 임금 원칙에 대한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제출할 의무가 있다. 도입 배경은 임금 불평등 때문이었다. 2020년 Eurostat이 유럽권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한 남녀 임금 불평등 통계에 따르면 독일은 18.3퍼센트로 4위였다.[1]
뉴욕시의 급여공개법 또한 성별·인종 등에 따른 연봉 차별을 막겠다는 취지다. LEB(Law Enforcement Bureau)의 사프나 라쥬 부국장은 위와 같이 밝힌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차별을 겪어 온 구직자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뉴욕시의 건강한 비즈니스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성별 ; 남녀 임금 격차는 만성적인 문제다. 급여공개법은 이에 뉴욕시가 제시하는 새로운 형태의 정책 실험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남녀 임금 격차가 생각보다 일찍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올해 8월 2000개 대학에서 졸업 3년차 시점의 근로자 17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5퍼센트 확률로 남성 평균 연봉은 여성 평균 연봉보다 높게 나타났다. 격차의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마더후드 페널티(motherhood penalty)가 꼽힌다.
인종 ; 지난 2019년 급여 전문 데이터사 페이스케일(Payscale)이 180만 명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흑인 남성은 같은 직종과 학력의 백인 남성에 비해 2퍼센트 적게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급여공개법의 발단은 임금 불평등이었으나 문화적 흐름으로 번지고 있다. 구직자(무직, 이직 준비자 포함) 중 65.8퍼센트는 자신이 충분히 보상받지 못한다(underpaid)고 느낀다. 급여공개법이 적용된다면 근로자 입장에선 제시된 연봉이 적정 수준인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고용자 입장에선 채용 후 연봉 협상에 소요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뉴욕시의 급여공개법은 초기 단계다. 다음과 같은 허점들이 지적된다.
모호성 ; 기업들은 급여 범위를 턱없이 넓게 설정하기 시작했다. 11월 6일 기준 아마존은 이커머스 프로덕트 매니저의 연봉 범위를 12만 1000~23만 5200달러로 공고했다. 상한선이 하한선과 두 배가량 차이 난다. 구글은 광고 프라이버시 부문 연봉 범위를 13만 5000~20만 9000달러로, JP모건은 시니어급 연봉 범위를 30만~50만 달러로 제시했다.
형평성 ; 인사팀은 해당 법안이 시행되는 지역을 피한다. 미국 콜로라도주는 지난 2021년부터 급여 공개법을 시행했다. 이후 존슨앤존슨과 CBRE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원격 근무자 채용 공고에서 “콜로라도주 거주자는 지원이 불가”함을 명시하기 시작했다.
특수성 ; 뉴욕시의 급여공개법은 연봉만을 취급한다. 인센티브나 초과 수당은 포함되지 않는다. 일부 직종에서 고정 연봉은 전체 급여 중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2]
실효성 ; 연봉의 범위를 안다고 해서 성공적인 협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고용 전문 변호사 트레이시 레비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고용자는 구직자가 제시하는 연봉 범위 중 하한선으로 협상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여성들은 ‘욕심 많아(greedy)’ 보이는 것을 우려해 이를 받아들인다”라고 답했다.
해당 법안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더라도 관련 부작용이 예상된다. 일각에선 불필요한 갈등을 부추긴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2022년 11월 레쥬메빌더가 1200명의 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직 근로자들의 임금 범위를 공개하는 법안이 합법화될 경우 해당 정보를 요구할 것이라는 응답자 비율은 88퍼센트에 달했다. 응답자의 68퍼센트는 자신의 급여가 동료보다 적을 시 인사팀에 동일 임금을 요구할 것이라 밝혔다.
급여공개법은 인재 전쟁을 본격화한다. 자사의 급여 범위는 경쟁사와 숫자로 비교된다. 인재 유치를 위한 연봉 경쟁은 특히 IT직군을 중심으로 심화하고 있다. 2022년은 글로벌 물가 상승 흐름에 인건비 상승 압력이 겹친 해였다. 급여 공개는 노사 갈등을 넘어 제품 및 서비스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사회적 악순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
급여공개법은 한국에도 도입될까? 한국 채용 문화의 두 가지 특수성과 부딪친다.
급여공개법은 단순히 큰 보상에 대한 논의가 아니다. 평가 방식의 투명한 소통을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이다. MZ세대의 40퍼센트는 서로의 연봉을 공유하고, 성과급 계산식 공개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신의 능력을 숫자로 듣기 이전에 그 계산 과정을 듣고, 설득되고 싶어 한다. 페이스케일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기업의 57.8퍼센트는 페이 커뮤니케이션(pay communication) 교육의 필요성을 간과한다. 인재 전쟁 시대의 화두가 휴먼 리소스 관리(HRM)라면, 그 첫발은 체계적인 평가 방식과 소통 매뉴얼을 마련하는 것이다.
금전적 보상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것은 조직 문화였다. 좋은 동료가 최고의 복지라는 말은 관습처럼 내려왔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워크 흐름이 가속화하며 조직 문화의 힘은 흐려지고 있다. 고급 인재 전쟁은 진행형이며 헤드헌팅의 범위는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 디지털 근무 환경에서 페이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해 대다수의 소통은 한층 어려워졌다. 하이브리드 워크와 페이 커뮤니케이션, 충돌하기 쉬운 두 개념을 조화시킬 때 기업은 급여공개법에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