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가 월드컵을 연 진짜 이유

12월 21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월드컵이 끝났다. 카타르는 왜 국제 무대를 원하나?

  • 카타르 월드컵이 현지시각 12월 18일,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 초반부의 비판이나 우려와 달리 카타르는 원하는 걸 얻은 것처럼 보인다.
  • 카타르에게 국제 스포츠 대회는 어떤 의미일까?

DEFINITION_ 카타르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중동 지역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국제 스포츠 대회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한 올림픽은 아직까지 중동 지역에서 개최된 적이 없다. 당연하다.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에게는 국제 대회가 간절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의 주요 중동 국가는 자원을 통한 하드 파워(경성 권력)를 휘두른다. 그러나 카타르는 다르다. 카타르는 중동의 문화와 경제를 잇는 허브 국가가 되고자 한다. 월드컵 개최는 그런 계획과 멀지 않다.
BACKGROUND_ 타임라인

카타르는 2000년대부터 국제 이벤트를 개최하려는 노력을 이어왔다. 2006년에는 도하 아시안 게임을 유치했고, 2010년대부터 월드컵을 위한 물밑 작업에 들어갔다.
  • 2010~2011년 ; 2010년 카타르가 월드컵 개최권을 확보하자마자,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2011년, 국제축구연맹(FIFA)의 회장 선거를 앞둔 시점, 잭 워너(Jack Warner) 당시 피파 부회장은 카타르의 로비를 카리브 국가들에 전하는 전달책 역할을 했다. 그는 25명의 카리브축구연맹 간부에게 건넨 돈 봉투를 “함맘의 선물”이라 칭했다. 카타르 출신의 아시아축구연맹회장, 모하메드 빈 함맘(Mohammed Bin Hammam)을 뜻하는 말이었다.
  • 2012~2017년 ; 카타르의 대대적인 로비 의혹은 피파 간부가 벌인 비리 사건과 함께 흐지부지됐지만, 카타르 내부의 문제는 지속됐다. 《가디언》은 2013년, 카타르의 노동 착취를 집중 보도한다. 인권 단체 국제엠네스티 역시 지속적으로 보고서를 발표하며 카타르의 노동자 처우, 이주 노동자 차별 등을 지적했다. 2017년 5월, 수많은 노동자의 땀과 죽음으로 완성된 칼리파 주경기장이 문을 열게 된다.

CONFLICT_ 문제

일각에서는 터져 나온 카타르의 이슈들을 보며 2022 월드컵을 ‘스포츠 워싱’이라 비판했다. 인권 탄압과 다양성 침해, 노동 문제 등을 축구로 지우고 있다는 의미다.
  • 노동 ; 카타르에서 시행했던 ‘카팔라 제도’는 걸프 지역 국가들의 신원 보증 제도다. 일종의 이주 노동자 관리 제도로, 외국인 노동자의 근로 비자 발급을 고용주가 관리한다. 비자를 인질로 잡힌 근로자는 임금 체불이나 열악한 근로 조건에도 고용주에게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 카팔라 제도에 현대판 노예 제도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칼리파 경기장을 짓는 4년 동안 최소 1000명의 인도 노동자가 숨졌다. 북한, 네팔 등 저개발 국가 출신의 노동자 역시 피해자가 됐다. 카타르는 월드컵을 2년 앞둔 2020년, 카팔라 제도를 폐지하고 최저 임금 제도를 도입한다.
  • 평등 ; 꾸준히 지적 받던 평등과 인권 문제에 있어서 이번 카타르 월드컵도 예외는 아니었다. 잉글랜드 대표 팀의 주장 선수인 해리 케인(Harry Kane)은 카타르의 인권 탄압과 각종 차별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무지개 색 완장을 착용하려 했으나, 카타르는 정치적, 종교적 의미를 담은 장비 착용을 엄격히 금지한다는 규정을 들었다. 잉글랜드 팀 전체는 완장을 포기했다. 잉글랜드와 이란의 월드컵 B조 예선 첫 경기, 휘슬이 울리자 잉글랜드 선수들은 일제히 잔디 위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ANALYSIS_ 스포츠 워싱

‘스포츠 워싱(Sportswashing)’은 한 국가가 대형 스포츠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세계와 대중의 인식을 바꾸려는 관행을 뜻한다. 스포츠 워싱은 언제, 어디서나 반복됐지만 그 시각과 양상은 달랐다.
  • 냉전 ; 정치로 얼룩진 대표적인 올림픽은 1980년 소련 올림픽과 1984년 미국 올림픽이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치러진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서방 진영 국가는 참여하지 않았다. 4년 후 열린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는 동구권 국가와 소련이 참여하지 않았다. 두 번의 올림픽이 반쪽짜리 올림픽이 됐다.
  • 정경 ; 반쪽짜리 올림픽 이후 열린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집단적 불참 없이 모두가 참여한 ‘화합의 올림픽’으로 비춰졌으나, 그 내부의 실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형제복지원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사람들을 감금했고, 정치권은 군부 독재 정권이라는 오명을 지우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올림픽 개최에 사활을 다했다.

RECIPE_ 새로운 중동의 중심

그렇다면 카타르에게 월드컵은 어떤 의미일까. 카타르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다. 동시에 강대국과 국경을 맞댄 작은 나라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 UAE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걸프만을 지나서는 이란과 이라크가 있다. 인구 역시 239만 명으로, 사우디아라비아(3534만)와 이란(8303만)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런 카타르가 포스트 오일 시대를 준비하며 택한 것은 국제 사회의 인식과 인정이었다.
  • 믿음직한 국가 ;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땅이 작은 UAE와 카타르는 서구 문명에 보수적인 타 중동 국가와 달리 서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미국과 유럽의 대학을 유치하고 국제 대회의 문을 꾸준히 두드렸다. UAE가 물류, 무역, 교통을 통해 경제적 차원의 허브가 되고자 한다면, 카타르는 문화, 예술, 미디어, 스포츠, 교육을 바라봤다. 카타르가 꿈꾸는 이상은 보고 즐길 것이 있는 믿음직하고 안전한 나라다.
  • 국가 브랜딩 ; 이러한 카타르의 전략은 국가 이미지 구축과도 멀지 않다. 중동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서구인들에게 중동은 9.11 테러를 연상시키는 지역이다. 2001년 이후 미국에서 실시한 ‘중동 사람 불심검문’은 이 편견을 더욱 가중시켰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퍼센트는 중동 지역의 중요성에 공감했지만, 29퍼센트만이 중동 출신의 이민자를 긍정적으로 봤다. 카타르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중동을 향한 부정적 인식과 카타르를 분리하고자 했다. 그렇게 만들어질 새로운 중동의 중심에 카타르가 위치하길 원했다.

STRATEGY_ 스피커

브랜딩을 위해서는 마케팅이 필요했다. 스포츠는 국제 사회에 카타르를 알리기 위한 가장 좋은 도구였다. 서구의 비판에는 대항할 수 있는 스피커가 있었다. 바로 중동의 BBC라 불리는 ‘알자지라(ALJAZEERA)’다. 알자지라는 스피커로서 카타르의 목소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매체다. 알자지라는 카타르 월드컵에 얽힌 다양한 사건을 숨기지 않았지만, 서구의 비판에는 날카롭게 대항했다. 알자지라 소속 칼럼니스트인 벨렌 페르난데즈(Belén Fernández)는 서구의 월드컵 비판을 위선이라 표현하며 “옛말에 남을 판단하기 전에 거울을 보라고 했다”는 속담을 인용했다. 그는 주류 금지 정책을 비롯한 카타르의 결정은 여성과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월드컵을 선사했으며, 이에 대한 서구의 판단은 차별적인 시선에 기반을 둔다고 비판했다.
INSIGHT_ 소프트파워의 패권, 자원의 힘

‘소프트파워’는 문화 양상과 가치관, 정치적 목표 등을 통해 상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외교 전략을 말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가 처음 제안한 이후, 카타르의 전략에는 소프트파워라는 개념이 붙었다. 그간 중동의 소프트파워 전략은 뚜렷한 한계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뇌물 스캔들이 위배하는 스포츠 정신, 중동에서 반복되는 인권 탄압과 성 차별 문제 등이 그렇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카타르에게는 전 세계를 향한 언론 스피커가 있으며,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자원이 있다. 2020년 기준 카타르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3위, 석유는 13위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인해 위기에 직면한 독일은 2026년부터 15년간 카타르에서 200만 톤의 LNG를 공급받기로 했다. 카타르의 에너지 장관은 이번 결정이 “독일 주민에 대한 의무”라며 우호적인 관계를 강조했다. 자원을 가졌으면서도 몇 안 되는 소프트파워 국가인 카타르는 기존 패권이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손을 뻗을 선택지다.
FORESIGHT_ 비동맹 국가의 약진

중동이 가진 힘은 자원뿐 아니라 그들이 비동맹 국가라는 사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의 중동 국가 뿐 아니라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 인도네시아, 아메리카 대륙의 작은 국가들이 비동맹 국가에 속한다.
  • 성장 ; UN 회원국 중 비동맹 국가는 3분의 2를 차지하며, 세계 인구의 55퍼센트를 점한다. 골드만삭스가 발표한 ‘2017년 글로벌 경제 전망’ 보고서는 2050년, 인도네시아와 나이지리아의 경제 규모가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 봤다.
  • 공략 ; 비동맹 국가는 어떤 강대국과도 손잡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신냉전 질서로 편이 나눠진 지금, 기존의 패권 국가는 이들을 공략해야 한다. 미국의 아프리카 순방,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은 이들을 겨냥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건 어디에나 속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결국 유럽에는 겨울이 왔고, 중국에는 시위가 일었다. 러시아가 시작한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정학적 질서의 위기가 고조될수록 이들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진다. 사우디는 이집트 등과 함께 2030 월드컵 공동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2029 동계 아시안 게임은 ‘네옴시티’에서 열릴 예정이다. 카타르 월드컵에 대한 서구의 비판은 제1세계의 위선이 됐고, 소프트파워 질서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미래의 중동이 개최한 스포츠 무대에 카타르 월드컵에 쏟아진 것과 같은 종류의 비판이 이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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