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미디어

12월 22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AM 라디오가 전기차에서 사라지고 있다. 매체의 탄생과 종말은 무엇을 의미하나?

  • 전기차 제조 회사들이 차량 내 AM 라디오를 배제하고 있다.
  • SBS와 MBC도 지난 11월 AM 라디오 방송을 전부 폐지했다.
  • 기술 발전은 많은 매체의 종말을 부르지만 모든 매체는 탄생의 이유가 있다.

CONFLICT_ EVs Killed the AM Radio Star

전기차(EV) 제조 회사들이 자사 전기차에서 AM 라디오 수신 기능을 배제하고 있다. 전자파 발생이 많은 전기차에서 모터 등 전기 구동부에 전자기 간섭을 일으켜 기능 오류를 유발할 수 있고 라디오 품질도 덩달아 낮아진다는 이유다. 테슬라, 아우디, 포르쉐, 볼보, 폭스바겐 등이 자사 전기차에서 AM 라디오를 제거했다. 포드 역시 자사의 인기 전기 픽업트럭인 F-150 라이트닝에서 AM 라디오를 제거할 예정이다. BMW는 애초부터 전기차에 AM 라디오를 지원하지 않는 대표적 회사였다. FM 라디오도 장기적으로 배제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AM 라디오보다 상대적으로 전자기 간섭에 강해 아직은 논란에서 안전한 편이다.
DEFINITION_ 파장의 이름

AM과 FM은 어떻게 다를까? AM 라디오는 중파 대역 전파를 이용하는 매체다. 초단파(VHF)대역인 FM 라디오 보다 먼저 등장해 과거엔 ‘표준 방송’으로 불렸다. FM과는 주파수 변조 방식의 차이다. 주요한 특징과 차이는 다음과 같다.
  • AM(Amplitude Modulation) ; 주로 300~3000킬로헤르츠(kHz)의 낮은 주파수를 사용한다. 장애물이 있어도 멀리까지 쉽게 전파 된다. 다만 기상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잡음과 전파 혼선에 취약하다. 따라서 음질이 좋지 않고 잘 지직거린다. 송수신 범위가 수백 킬로미터로 매우 긴 편이다.
  • FM(Frequency Modulation) ; 주로 87~108메가헤르츠(MHz)높은 주파수를 사용한다. 물리적 장애물에 쉽게 전파를 방해받지만 AM에 비해 기상 조건의 영향은 덜 받고 음질 역시 우수하다. 현재 대부분의 라디오가 FM이다. 송수신 범위가 수십 킬로미터로 AM보다 짧은 편이다.
  • SW, MW, LW ; 변조 방식이 아닌 주파수 대역에 따른 구분이다. 각각 단파(Shortwave), 중파(Midiumwave), 장파(Longwave)다. AM은 주로 중파를 이용하고 간혹 장파 방송도 있다. 유럽에서는 AM을 대역에 따라 MW 혹은 LW로 부른다.

BACKGROUND_ FM 전성시대

AM 라디오의 시대는 한참 전에 저물었다. 1930년대에 미국에서 FM이 개발되며 많은 라디오가 FM으로 편성됐다. 한국에서는 1965년 개국한 ‘서울FM’을 시작으로 FM 시대가 열렸다. 1987년에는 표준 방송이던 AM 라디오가 FM 방식으로 송출되는 ‘표준FM’도 등장했다. 대부분의 FM 방송이 AM과 짝을 지어 존재했지만 어느새 AM 방송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 음질 ; 주파수 변조 방식에 따른 난청 문제도 있지만 FM은 AM보다 더 많은 정보 값을 담을 수 있다. AM은 모노, FM은 스테레오 방식으로 FM이 음악 방송 등에 더 유리하다.
  • 환경적 특성 ; AM은 철근 콘크리트 투과율이 낮다. FM은 창문과 같은 진입 통로가 있을 시 AM보다 실내 침투성이 더 좋아 건물 밀집도가 높은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선호됐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콘크리트 건물이 늘어나 AM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 높은 비용 ; AM이 FM보다 송출 비용이 비싸다. 송신소를 위해 넓은 부지를 필요로 한다. 청취자도 적어 방송사의 유지비 부담이 커진다.
  • 미디어의 변화 ; 비디오 매체의 확산, OTT의 등장, 모바일 및 통신 환경의 변화는 FM 라디오에게도 위협적이었지만 AM에는 치명타였다.

KEYPLAYER_ MBC, SBS

2020년 7월 방통위에서 나온 ‘라디오 방송 진흥을 위한 정책 건의서’에 따르면 AM을 송출하는 방송국은 50개, FM을 송출하는 방송사는 179개 수준이었다. 근근이 유지되어 오던 명맥에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2021년 11월 ‘AM과 표준FM 기능 조정’ 방안을 제시하며 FM 라디오의 송출이 원활하다는 전제 하에 AM의 송출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상기한 이유로 방송국들이 AM 송출 중단을 원했기 때문이다. 운영이 어려운 지역 방송국 및 송신소의 줄폐국·폐소가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11월 8일, MBC와 SBS의 서울 송신소가 AM 방송 송출을 중단했다. 6개월간 휴지를 거친 후 2023년 5월 방송을 공식 종료할 예정이다. 서울 송신소의 폐국은 AM 라디오 시대의 막을 본격적으로 내린 상징적 사건이다.
STRATEGY_ Why, AM?

골칫거리인 AM 라디오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유는 뭘까? AM 방송은 변조 방식이 단순해 다양한 상황에서 쉽게 수신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주로 재난 방송과 대북 방송으로 사용됐다. 학계에서는 AM 운영 비효율성 문제가 오랫동안 지적됐다. 방송사들은 AM 방송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유지가 어려워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지난 2019년 방통위는 KBS, MBC, CBS 등 아홉 곳이 대북 방송인 ‘한민족방송’ 등 AM 방송의 출력을 편법으로 낮춰 운영했다며 전파법 위반으로 과태료 및 과징금을 부과했다. 출력을 낮추면 전파 도달 거리가 짧아져 청취 지역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폐국을 허용한 것으로부터 불과 2년 전 일이다. 방통위는 AM 폐지를 허용하면서도 전시·재난방송 등 AM 라디오의 고유한 역할을 강화할 예정이라 밝혔다.
NUMBER_ 2014

AM 라디오는 사장되는 것일까? 전기차의 AM 라디오 퇴출이 더 치명적인 이유는 자명하다. 모빌리티 시장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빨라지고 있고 라디오 이용 방법 중 차량 내 청취 비율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방통위의 〈2021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간 라디오를 청취한 비율은 20.8퍼센트로 전년 대비 2.3퍼센트포인트 감소했고, 주 청취층은 30~50대로 75.7퍼센트가 자가용에서 청취했다. 앞서 소개한 전기차 AM 라디오 논쟁 역시 오래됐다. 미국 라디오 전문 미디어 《라디오잉크(Radio Ink)》의 논평가 에릭 로즈(Eric Rhoads)는 2013년 당시 실리콘밸리에서의 컨퍼런스 이후 자신의 블로그에 “AM/FM 라디오가 차량 대시보드에서 제거될 것”이라 비관적 전망을 해 논란이 됐다. 2014년엔 BMW가 AM 라디오 수신 기능이 없는 모델 ‘i3’를 미국에 출시했는데, 상대적으로 AM 라디오 청취 비율이 높은 미국에서 불만이 컸다. 이듬해 한 해커가 i3를 해킹해 AM 라디오를 수신하는 방법을 공개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RISK_ 있다, 청취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약 4700만 명의 미국인이 AM 라디오를 청취하고 있으며 AM 청취자는 다른 라디오 청취자보다 나이가 많은 경향이 있다. 약 3분의 1이 65세 이상으로 알려진다. AM 방송에는 FM에서 편성되지 못한 특정 종교나 문화, 스포츠 혹은 기타 커뮤니티를 위한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한국에서도 AM 라디오는 많은 방송국에게 아픈 손가락이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송국도 있다. 기독교 방송인 극동방송이다. 해외를 통한 전파 선교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관련 기사를 주제로 벌어진 레딧의 토론에서도 종교 관련 라디오 토크 쇼를 즐겨 듣는다거나, 여행지에서 쉽게 라디오를 수신해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댓글이 보인다. AM 라디오의 종말은 이들의 청취권을 앗아갈 수 있다.
ANALYSIS_ 공생은 끝났다

《뉴욕타임스》의 같은 기사에서는 이러한 전자기 방해 현상이 극복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전기차의 전자 부품을 일부 재배치해 고정하고 케이블과 필터로 보호막을 설치하면 전자기 방해 현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이 비용과 노력을 수반하기에 전기차 제조사가 AM 라디오를 배제하는 것이라 꼬집었다.
  • 미국의 미디어 컨설팅 업체인 ‘제이콥스미디어전략(Jacob’s media strategies)’은 그간 차량의 필수 인포테인먼트 요소였던 라디오와 자동차의 90년 공생 관계를 결혼 생활에 빗대 표현하고 있다. 차량과 라디오의 공생이 끝나고 있는 것이다.
  • 국가별 온도차도 드러난다. BMW를 비롯 라디오를 탑재하지 않은 차량은 주로 유럽 회사들이다. 유럽은 국토가 좁고 인구가 조밀해 2차 대전 이후부터 AM보다는 FM 위주로 라디오가 발전해 왔다. 실제로 AM을 완전히 폐기한 유럽 국가도 많다.
  • 반면 AM 라디오의 보급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이나 일본은 아직 AM 기능이 지원되는 차량이 많다. 쉐보레(Chevrolet)의 ‘볼트(Volt)’나 닛산(Nissan)의 ‘리프(Leaf)’가 대표적이다.

INSIGHT_ 최소한의 미디어

AM 라디오는 극한에 서 있다. FM 라디오도 저물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청취 환경의 변화 앞에 두 아날로그 매체는 과거의 유물이 되려 한다.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것을 대체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AM 라디오의 종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매체에는 탄생의 이유가 있다. 문명과 기술로부터 한 발짝만 떨어져도 유산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AM 라디오와 유사한 단파 방송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유용하게 쓰였다. 코로나19로 교육이 원격으로 진행되자 디지털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들에서는 라디오가 교육 격차 해소에 일조했다.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에드워드 J. 마키(Edward J. Markey)는 20개 자동차 제조사에 서한을 보내 전기차의 AM 서비스를 계속 지원해달라 요청했다. 찾는 사람은 적어도 접근성이 뛰어난 무료 서비스이자 통신 메커니즘이기에 꼭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 전기차에서 퇴출되고 있는 것은 구시대 유물이 아닌 최소한의 미디어다.
FORESIGHT_ 튠인

수신기 없는 송신소는 없다. 내연차의 종말과 동시에 AM 방송국도 대부분 사라져갈 것이다. 그렇다면 전기차에서는 이제 AM 라디오를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일까? 대안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튠인(TuneIn)’이다. 튠인은 5G 신호를 통해 지상파 라디오에 액세스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전 세계적으로 월간 활성 청취자가 7000만 명에 달한다. 5G는 AM 라디오 본연의 가치인 ‘구동의 단순함’을 해결하진 못하지만 AM 방송국이 계속해 콘텐츠를 생산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청취자를 위한 기술적 대안이 계속해 고민되는 한 AM 라디오의 종말은 조금 더 유예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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