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의 계절이다. 그것도 사회적으로 용인된 술자리의 계절이다. 대중교통 운행 시간까지 연장하며 2차, 3차를 향하는 술꾼들의 음주를 응원한다. 그런데 술자리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달라졌다. 팬데믹 이전의 송년 분위기와 미묘하게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변화의 근원은 ‘마음’이다. 모임과 술자리, 회식을 대하는 마음이 지난 3년간의 팬데믹 기간에 달라져 버렸다.
변화는 숫자로 나타난다. 최근 오비맥주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식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참여를 강요하지 않는 문화’였다. 또, 가장 바람직한 회식 문화로 꼽은 것은 ‘메뉴, 귀가 시간, 잔 채우기 등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형 회식’이었다. 즉, 회식의 존재 이유가 달라졌다. 동료와의 ‘단합’이 목적이었던 시절, 회식은 ‘업무’였다. 조직의 결속력을 다지는 것 또한 직장인들에게는 업무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회식의 정체는 ‘즐길 거리’로 진화했다. 참여하는 모두가 ‘즐거워지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한 정체성 변화는 왜 일어난 것일까?
일을 하는 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긱 경제, 분산 근무제, 원격 근무제 등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난 다양한 업무 환경이 보편화하고 있다. 게다가 다수의 회사가 집중 근무 시간, 회의 없는 오전 등 개인의 효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제도를 마련하고 실험하는 중이다. 게다가 직원들이 느끼는 부담감도 차원이 다르다. 한 발짝을 잘못 내디디면 끝도 없이 추락할 것만 같은 불안감, 완벽한 결과로 나의 능력을 매 순간 증명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이제 직장생활의 상식이다. 결국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극단적인 능력주의가 맞물리면서 ‘회식’이라는 단어는 비효율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사 안에는 회식을 통해 직원 간의 유대를 공고히 할 수 있다고 믿는 관리직이 존재한다. 그리고 회식에 관해 전혀 다른 관념을 가진 MZ 세대의 등장은 연말연시 레거시 언론의 단골 소재가 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직급이나 세대의 문제라기보다는 2010년대를 어떻게 겪어냈느냐 하는, 경험치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졌다. 물질의 성장이 아니라 자본의 성장으로 쌓아 올렸던 2000년대의 허상이 무너지자 성실함은 그 무엇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밀레니얼의 마음》의 강덕구 저자는 2010년을 “성장이 멈춘 시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상실한 시대, 과거가 현재를 압도하는 시대”였다고 회고한다. 회사가 직원의 평생을 책임져 줄 것이라는 환상은 1997년 IMF 금융위기로 깨졌고, 안정적인 직장이 안정적인 생활을 담보한다는 법칙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정되었다.
그렇다고 직원들이 동료와의 유대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협업 플랫폼 미로(Miro)가 북미 전역의 직장인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하이브리드 및 원격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은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던 가벼운 잡담을 대체할 동료와의 관계 형성 방법을 찾고 있다. 다만, 그 방법은 근무 외 시간에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니다. 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협업’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비단 북미 지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고용 환경을 가졌던 일본의 경우, ‘노미니케이션’이라는 단어가 있다. 마시면서(노무·飮む) 커뮤니케이션한다는 뜻으로, 우리 회식 문화의 일본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퇴근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서 ‘노미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의 비율은 2019년 57.3퍼센트에서 2021년 38.2퍼센트로 급감했다. 어떤 나라에서든, 직장이 곧 삶일 수 없는 시대라면 근무 시간에 얻고 싶은 가치와 퇴근 후에 얻고 싶은 가치는 명확히 분리된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의 회식은 즐거워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취향이 존중되어야 한다. 귀가 시간, 메뉴와 주종, 그리고 알코올의 농도 같은 것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무알코올 맥주의 부상은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다. 우리나라 무알코올 맥주의 시장 규모는 2012년 13억 원가량이었던 것이 2021년 200억 원으로 성장했다.
놀고 싶지만, 알코올에는 약한 ‘알쓰’도 존중받는 술자리는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능력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취향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각자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무게만큼 각자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그렇다면 개인의 삶과 취향이 존중받는 조직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 함께 술을 마시면 마음이 열린다는 생각은 이제 안일하다. 관계 형성은 근무 시간 외에 할 일이라는 생각도 시대착오적이다.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처음으로 맞게 되는 연말연시, 함께 일하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다면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