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실험의 조건

12월 28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바이오테크가 동물 실험의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논란의 동물 실험이 지속돼 온 이유는 무엇인가?

  • 우리나라 국민의 78퍼센트는 동물 실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세포 배양, 머신러닝 등 동물 실험을 대체할 신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 동물 실험 시장이 축소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의료계의 목소리다.


BACKGROUND_ 법적 제재
동물 실험과 그 폐해에 대한 논의는 오랜 시간 지속됐다. 2013년 EU는 화장품 개발 과정에서 독성 시험의 동물 사용을 금지했고 2016년 미국에선 연방 연구 기관에서 동물 사용을 대체하거나 줄이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국내에선 2017년부터 화장품 독성 검사에서 동물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됐다. 그러나 2021년 한해 동안 한국에서 실험에 쓰인 동물 수는 488만 마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최근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 랩에선 1500마리의 실험 동물이 사망하며 논란이 됐다. 전 세계 동물 실험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대체할 기술적 대안은 무엇인가?
DEFINITION_ 동물 실험
교육, 시험, 연구 등 과학적 목적을 위해 동물을 대상으로 행하는 실험이다. 주로 ‘실험 동물’이라는 유전적으로 최대한 균일한 상태의 생명체를 택한다. 객관적인 결과물을 도출하기 위해 키운 실험쥐(humanized mice)가 대표적이며 이외에도 조류, 어류, 파충류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돼지와 토끼 등 일부 포유류도 해당한다. 주로 의학과 생물학을 비롯한 과학 분야와 화장품, 식품 등의 분야에서 쓰인다.
KEYPLAYER_ 러쉬
동물 실험 논란이 거세지며 코스메틱 브랜드를 중심으로 각종 기업에도 동물 실험 반대의 목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영국발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가 대표적이다. 러쉬는 매년 동물 실험 폐지에 기여한 개인 혹은 기업에게 러쉬프라이즈(LushPrize)를 시상한다. 참고로 올해 정치 공로(political achievement) 부문에선 우리나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공동 수상했다.
CONFLICT_ 윤리, 자원, 정확도
동물 실험은 크게 세 갈래의 비판을 받는다.
  • 윤리 ; 2019년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전체 동물 실험 중 40.1퍼센트가 동물 실험 E그룹에 해당했다. E그룹은 고통의 분류 등급 5단계 중 가장 높은 단계로, ’극심한 고통이나 억압 또는 회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경우’를 말한다.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는 동물권의 핵심이 동물-인간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말한다.
  • 정확도 ; 인간을 얼마나 동일하게 재현할 것인가, 동물 종마다 다른 결과를 보이는 약품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등이 지적된다. 미 국립보건원(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에 따르면 동물 실험을 통과한 약품의 95퍼센트가 인간에겐 효과가 없거나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 자원 ; 동물 실험은 자원 집약형(resource intensive) 실험이다. 실험 동물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MONEY_ 정부와 의료계
그렇다면 연구 기관은 동물 실험의 비용을 어디서 충당하고 있을까?
  • 정부 ; 미국에서 매년 정부가 동물 실험에 투여하는 예산은 160억 달러로 추산되며, 2020년 기준 미 국립보건원은 동물 실험 연구 기관에 총 420억 달러의 후원금을 냈다.
  • 의료계 ; 의료 단체의 전폭적인 지원도 있다. 미 동물 실험 연구 기관의 주요 후원처는 소아마비구제협회(March of Dimes)[1]와 미국암협회(American Cancer Society), 다발성경화증연구진흥협회(National Multiple Sclerosis Scoeity)[2] 등 의료 관련 비영리 단체로 이뤄져 있다. 

NUMBER_ 78퍼센트
오랜 논란 속에서도 동물 실험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리서치가 2022년 3월 25~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동물 및 동물권에 관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78퍼센트는 동물 실험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52퍼센트는 동물실험이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답했다. 모순적으로 79퍼센트의 응답자는 동물이 ‘인간과 동등한 생명권을 지니며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고 학대나 착취를 당하지 않을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한국리서치는 동물 실험이 과학 발전을 위한 ‘필요악’으로 여겨진다고 분석한다.
RECIPE1_ 피부 이식
동물 실험은 정말 필요악일까? 동물 실험을 대신할 각종 기술적 대안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분당서울대병원 재생의학센터는 관련 기관과 피부외 이식(human skin explant) 관련 MOU를 체결했다. 수술 후 폐기물로 버려지는 신체 조직을 가공해 동물 실험의 대체 시험 물질로 활용하는 것이다
RECIPE2_ 세포 배양
생체 외(In Vitro) 실험도 거론된다. 세포 배양 등의 기술로 인체를 유사한 형태로 구현한다.
  • 인조 표피 ; 인체의 세포를 배양해 인공 조직을 개발한다. 주로 화장품 등 뷰티 업계에서의 활용도가 높다. 화장품 브랜드 로레알은 동물 실험에 대한 반발이 일자 무려 1998년 에피스킨(Episkin)이라는 인조 피부 점막을 개발해 안정성 테스트에 쓰고 있다.
  • 바이오프린팅[3] ; 인체를 모사해 3D 프린터로 구현한다. 특정 신체 부위를 작은 칩 위에 구현한 ‘칩 위의 장기(Organ-on-a-chip)’가 대표적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바이오공학과 허동은 교수 연구실의 아이온어칩(Eye-on-a-chip), 하버드대 생체모방공학 위스연구소의 하트온어칩(Heart-on-a-chip) 등이 있다. 이스라엘 인공지능 스타트업 큐리스테크놀로지스(Quris Technologies)가 개발한 칩 위의 환자(patient-on-a-chip)는 칩과 인공지능을 조합한 형태다.

REICIPE3_ 머신러닝
비물질적인 대체 실험도 거론된다. 컴퓨터상 시뮬레이션으로 인체를 구현한다.
  •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동물대체시험연구센터의 토마스 하퉁 연구진은 동물 실험 없이 화학 물질의 독성을 예측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머신러닝을 이용해 독성을 예측할 경우 그 정확도는 87퍼센트로, 동물 실험의 정확도(81퍼센트)보다 높다고 밝혔다.
  • 프랑스발 3D 소프트웨어 개발사 다쏘시스템은 2015년 맞춤형 가상 심장을 3D 공간에 구현하며 화제가 됐다. 현재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인간의 장기와 세포를 구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환자의 데이터와 버추얼 트윈 기술을 접목해 뇌, 폐 등의 장기는 물론이고 피부나 심혈 관계 등 신체의 전 부위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RISK_ 상용화
인체를 모델화거나 유사 인체를 만드려는 시도는 20세기부터 있었다. 반 세기가 넘도록 상용화되지 못한 이유는 시간과 비용의 제약이 크다. 일례로 바이오프린팅 분야에서 유일하게 코스닥에 상장한 국내 기업 T&R 바이오팹이 제작한 3D 바이오프린터의 한 대 가격은 약 2억 원이다.
INSIGHT_ 정확도, 보완재
  • 정확도 ; 동물 실험이 나쁘다는 논리는 인간의 생명에 무게를 두는 여론 앞에서 힘을 잃는다. 동물 실험에 대한 논의를 단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 중심 사고에 대한 비판보단 동물 실험의 정확도에 대한 비판이다.
  • 보완재 ; 기술은 동물 실험의 대체재보단 보완재로서의 가능성이 점쳐진다. 동물 실험이 도입됐다고 해서 인류는 인체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제약 시장에서만 연간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임상 시험의 대상자가 된다. 다만 기술은 동물 실험의 전 단계로서 실패 확률을 급감하는 도구가 될 것이며, 실험 동물로 소비되는 개체 수는 지금에 비해 현저히 감소할 것이다.

FORESIGHT_ 휴먼인더루프
  • 휴먼인더루프(Human in the Loop)는 인간이 인공지능의 학습 과정에 개입해 중간 결과물을 확인하고, 학습 데이터를 조정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기계적 절차의 중간에 인간이 개입해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프로세스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 사람은 기계를 믿지 않는다.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와 그 결과를 설명하는 의사를 믿는다. 더 나아가 그 기술자와 의사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우리 사회의 교육 과정과 자격증을 신뢰한다. 수많은 동물 보호 단체들이 동물 실험의 부정확도를 역설하는 통계 자료를 배포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이 아닌 제약사 혹은 의사 집단의 목소리다.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고도 머신러닝 등으로 구현한 의료 서비스가 안전하다고 말하는 의료계 목소리가 커질 때, 동물 실험 시장은 축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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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개선하는 미국 비영리 단체. 전신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1938년 소아마비 퇴치를 위해 설립한 전국 영유아 마비 재단이다.
[2]
‘Multipe Sclerosis’이란 다발성 경화증으로, 젊은 연령층에서 주로 발병하는 중추 신경계 질환이다.
[3]
바이오프린팅의 활용처는 현재 의료 및 환경 분야가 대표적이며 배양육 산업에도 쓰인다. 다음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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